by slowalk | 2018-04-18 10:06
사람이 다른 동물들, 심지어 영장류와 비교해도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지능이 완전히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날 때 이미 지능의 발달이 완료된 상태지만 사람은 겨우 25% 정도만 발달한 상태에서 태어난다. 나머지 75%는 후천적으로 발달한다. 그 덕분에 인간의 지능은 다른 동물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유연성, 가소성,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이 유연성, 가소성, 확장성을 발휘시키는 과정이 바로 교육이다.
지능의 발달은 뉴런의 연결망이 복잡해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태어나서부터 10세까지의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며 12세를 전후하여 대체로 마무리 되고, 이후 서서히 감퇴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12세 이후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주로 유동성 지능의 발달을을 중심에 두었을 때의 이야기다. 유동성 지능은 새로운 것을 익히는데 사용되는 휘발성 강한 지능이다. 유동성 지능이 발달하는 시기의 인간의 두뇌는 뉴런들의 새로운 연결망을 활발히 만들며, 반대로 만들어진 연결망도 쉽게 바뀐다. 새로운 연결망의 생성과 변화를 무수히 거치면서 두뇌의 복잡성이 빠르게 증가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능의 발달이다. 그러니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이 끈기가 부족하고 주위가 산만해 보이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잊어버린다. 결국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12세를 전후한 나이 때까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자극과 경험을 누리면서 두뇌의 복잡성을 발달시켜 왔느냐에 달려있다.
이후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의 지능은 유동성 지능보다 결정성 지능 쪽으로 바뀐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는 배워둔 것을 굳건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전환되는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로 14-15세 무렵이다. 그래서 이 나이가 지나면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발달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의 인지발달, 도덕성발달 이론이 항상 3세-14세까지를 다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을 인간에 대한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변화 과정이라고 본다면, 결국 유동성 지능이 활발한 시기에 교육이 집중되어야 가장 효과가 크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 속에 깊은 진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세 살 때 바늘을 훔치느냐 마냐는 아주 작은 차이지만, 열여섯 살 때 스쿠터를 훔치느냐 마냐는 엄청나게 큰 차이다. 세 살 바늘 도둑은 가소성이 높아 바늘 장인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열여섯 살 스쿠터 도둑은 교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스쿠터 기술자로 발전시키기도 어렵다.
그러니 공교육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어릴 때 가장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인 PISA 역시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공교육의 성과를 14세까지의 교육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16세부터는 성인문해력 평가(PIACC) 대상으로 들어간다. 이때부터는 교육의 성과가 교육기관, 교육체제가 아니라 본인의 책임이 되는 셈이다. 심지어 16살 때 즐겨 들었던 음악을 결국 평생 듣는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하는 교육은 15세 이전 까지의 교육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등학생 쯤 된 나이의 학생들에게 아무리 관심을 기울이고 예산을 투입해도 이미 여든까지 갈 버릇이 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극단적으로 적용하여 3-5세의 극빈층 가정 자녀에게 교육지원을 집중 투입하는 ‘헤드 스타트’ 정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교육을 통한 빈곤 탈출을 목표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 개혁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쏟아 부은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헤드 스타트 정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빈곤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우수한 교사들을 골고루 배치할 만큼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교사들의 연봉이 다른 대졸 정규직 노동자들의 70%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그래서 상당수 교사들이 부업을 하느라 수업에 지장이 생길 정도다. 그러니 우수한 교사들이 확보될 리가 없고, 우수한 교사가 없으니 아무리 인프라나 프로그램에 돈을 쏟아 부어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세금을 더 걷으면 되겠지만, 중산층 유권자들은 자기들 세금을 빈곤층 학생들을 위해 쓰는 것에 반대했다. 그래서 오바마는 “교사들에게 높은 존경과 대우”가 주어지는 “동아시아 교육선진국”들을 부러워만 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초등교사의 처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 유입되면서 현재 정책 책임자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교사 수준이 높아졌다. 사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초등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다. 1997년의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다른 직종이 하향평준화 되었고, 마침 교사가 공무원인 관계로 덩달아 그 헤택을 누렸을 뿐이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이는 우리에게 우연히 찾아온 절호의 헤드 스타트 기회다.
그런데 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서도 우리나라 정부는 헤드 스타트는 커녕 우연히 모여든 우수한 인재들을 자괴감에 빠뜨리는 일만 계속했다. 교육이 아닌 엉뚱한 행정 잡무로 진을 빼고, 이들을 초등교사로 유인했던 직업상의 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사회적 질시와 여론을 핑계로 지속적으로 축소시켜왔다. 이것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무시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일구어낸 수많은 교육혁신 성과를 슬그머니 정부나 교육감 치적으로 가로채는가 하면, 각종 교육 정책 결정에서 엉뚱한 사람들(주로 사교육업자나 직업이 운동가인 교육시민운동가)을 ‘교육전문가’로 초빙하고 교사를 철저히 무시하곤 했다.
게다가 정부의 교육 관심은 온통 이미 여든까지 갈 버릇이 거의 완성된 15세 이상의 학생들에게만 집중되었다. 15세 이상 학생들 전체도 아니다. 그들 중 이른바 인서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20% 정도의 학생들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들 부모의 목소리만 여론에 반영되었다. 그러는 동안 15세 이상 학생들의 80%, 그리고 정작 가장 중요한 15세 미만 학생들은 마치 버린 자식처럼 관심 밖에 방치되었다. 서울시내 유초등 학교를 모두 책임져야 할 교육감이 선거 때가 다가오자 정작 자기 권한도 아닌 대입제도를 놓고 분란을 일으키는 핵 단추를 누르기도 했다. 어차피 유초등 학부모의 관심도 유초등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최종 목표인 대입일 것이라는 얄팍한 표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인이 그런 식으로 표 계산을 했다면, 이는 결국 그 표를 주는 국민들 책임이다. 이 나라 국민들에게 교육문제란 거의 대입 제도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들에게 어쩌면 유초등학교는 기껏해야 맞벌이 부부가 밤늦도록 일할 때 애 봐주는 곳 정도나 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특히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세대, 그 중에서도 남자들이 더욱 그렇다.
혹시 “초등학교? 그거 어린 애들 보고 구구단이나 가르치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 두어 시간 더 남아서 애나 봐주라고 해. 어차피 나랏돈 먹잖아?” 이런 식의 아재이즘에 빠진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현직 교사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은 국가교육회의 위원 명단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천박한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긴다는 게 설마 실화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자꾸 뺨을 꼬집어본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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