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1-01-20 10:25
[첫 번째 이야기]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 대부분은 학교 숙제나 기초적인 문제집의 풀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해 온라인 학습을 할 때는 그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학습에 문제가 많은 아이들은 온라인 학습조차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하루 종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교사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온라인 학습 하나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다. 자기 공부를 알아서 책임감 있게 해나가는 경우가 드물지만 없진 않다. 특히 학습에 부담이 적은 1~2학년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얼른 자기가 해야 할 공부를 마치고 다른 활동에 참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3~4학년이 되면서부터 이런 태도에는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학습에 흥미를 잃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다. 아이들 말을 빌리면 우선 공부가 너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학습 과정에서 서서히 추상성이 높아져서 단박에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전보다 더욱 높은 사고력이 필요해지게 되므로 아동들은 이런 순간에 일차적인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
수학을 예로 들면 일부 아동들은 곱셈 배우기와 구구단을 외운 상태 그 어디쯤에서 머물고 만다. 따라서 곱셈을 막 배우기 시작한 단계에서는 암기한 구구단을 가지고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계속 곱셈의 개념을 심화시켜 나가는 학습 단계에 이르게 되면 학습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아동들은 ‘생각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일정한 방식으로 누진적이고 체계적으로 적용하여 식을 전개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이런 특성은 수학 문제집을 받아들었을 때 서너 줄 이상이 되는 문장제 문제가 나오면 문제를 읽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해결을 요구하는 문제’와 ‘문제 해결에 적용되는 조건’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미 그런 문제를 받아들었을 때 일부 아이들은 너무 고통스러워 분노감을 느끼기도 한다. 문제집을 들고 와서 “이거 모르겠어요. 가르쳐 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교사가 자기 대신 문제를 읽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과 설명을 더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선 교사들은 국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른 과목도 잘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교사가 즉각적으로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해주지 않고 “뭘 알려달라는 거니? 네가 모르는 게 뭔데?”라고 되묻기라도 하면 아이는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가며 “이거요. 이거 다 모르겠어요.”라고 한숨을 내뱉듯 대답을 하는데, 교사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러니까 뭐? 뭘 모르겠다는 건데?”하고 한 마디를 더 하면 바로 폭탄은 터져버린다. 어떤 아이들은 짜증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몰라서 아니 생각하기 싫어서 다 가르쳐달라는 건데 그걸 안 가르쳐주고 자기에게 되묻는다는 것이다.
그러곤 그때부터 화를 내고 공부를 안 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될 수 있으면 심하게 짜증을 내는데 그러면 아이에게는 두 가지 좋은 점이 생긴다. 첫째는 마음껏 짜증을 부리며 약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잘 하면 그렇게 해서 그 날은 공부를 얼렁뚱땅 넘길 수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절로 수긍이 된다. 무엇보다 불편한 상태를 인내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 없다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의 문제집 풀이
이런 아이들 중에는 급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얼른 빨리 공부를 끝내고 놀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한 교사조차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고 모르는 게 뭐냐고 똑같은 말로 묻기만 하니 어떻게 짜증이 안 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물론 어쩌다 교사나 다른 상대의 말을 듣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끝까지 듣는 것은 역시 힘들어한다. 교사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섣부르게 알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바로 문제집을 낚아채가거나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교사의 말을 무례한 방식으로 중단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얼른 부여된 만큼의 문제집을 풀고 빨리 해방되고 싶고,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을 들으며 공부에 한 순간도 더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아동들의 학습을 대하는 신념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아동들은 공부를 하는 것은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다. 물론 어린 학생들 대부분 학습을 자신의 고유한 동기나 신념에 의해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부모님이 하라고 한 일이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하고 있고, 누구나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일이므로, 자신도 힘들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공부를 잘 하면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도 기뻐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잘하고 싶어 한다. 물론 가끔 학습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공부에 대한 사회의 신념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거나 억압적인 태도로 학습을 시키는 가정의 아동들은 학습에 대한 저항감이 높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앞서도 말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하면 자신이 엄청난 손해를 본 것처럼 역기능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실제 적지 않다.
이런 아이들에게 억압적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학습을 시키면 그런 저항감은 점점 더 심해지고 학습에 대한 거부감은 높아져만 간다. 따라서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해도 좋다.”라는 식으로 선택권을 아동들에게 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아동들에게 자기주도성이 느껴질 수 있는 학습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 그나마 일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동들에게 그런 해방감이 생각한 대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억압감이 심했을수록 또 저항감이 심했을수록 아동들은 어른의 그런 허용적 태도를 이용하여 학습을 멀리하는 방패막이로 삼으려 하는 경우가 많고, 아동들과 그런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학교의 진도는 쏜살같이 날아서 과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지, 곧 어른들이 망설임과 의구심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많은 어른들은 그런 허용적 태도를 금방 철회하게 되고, 아동들은 짧은 해방에 어리둥절하고 아쉬워질 뿐이다.
그 때부터는 다시 “왜 지난번에는 그래도 된다고 하더니 지금은 안된다고 하는 거냐?”고 시비를 거는 일에 아이들은 더 몰두를 한다. 왜냐면 그것은 최소한 공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학습을 완전히 포기하기 전에 함께 손을 맞잡고 어려움을 이겨내 갈 수 있는 방식 말이다.

| 이 이야기는 3월의 칼럼에서 ‘두 번째 이야기’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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