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7-11-01 15:49
2017년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중세 유럽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질서있게 배치된 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종교개혁은 단지 좁은 의미의 교회개혁은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중세의 질서를 깨뜨리고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 사회 전반의 변혁의 시초였다. 실제로 교육만 하더라도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의 일부 특권 계층에 국한된 수도원 중심의 교육 틀을 깨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보편적인 인간됨의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근대 공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의 교육사상을 살펴보고 그의 교육사상의 빛 아래서 오늘 한국 공교육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공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근대 공교육의 탄생
잘 알려진 대로 종교개혁자 루터의 핵심 사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만인제사장설’이다. 물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흔히 축자영감설로 표현되는 문자주의를 주장하자거나 성경해석과 관련된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자는 말이 전혀 아니었다. 루터의 ‘오직성경’은 성경 해석에 대한 교황의 독점권을 해체시키고, 개별 성도가 직접 성경을 읽고 그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만인제사장설’은 ‘오직 성경’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사상이다.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성경을 통해 직접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 성도들에게 자신이 일상에서 매일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즉, 교회에서 예배를 수종들과 말씀을 전하는 사제 뿐 아니라 농민이든, 대장장이든, 가정주부든 하나님이 주신 창조세계를 가꾸고 이웃을 섬기는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 종교 영역에서 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영역에서도 혁명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루터 이후로 성과 속의 구분이 사라졌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참 자유인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루터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 ‘교육’이었다. 모든 성도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려면 우선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라틴어는 물론이고 독일어를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긴 했지만 우선 독일어를 대중들에게 가르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소명의 장이라는 생각의 전환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전 영역에 대해 기본적인 배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루터 당시의 교육은 일부 귀족들만 받을 수 있었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수도원 교육 외에는 평민이 접근할 수 있는 교육이 없었다. 이러한 귀족교육 시스템은 일반 평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수도원 교육은 삶과 유리된 교육을 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루터는 모든 아동들을 위한 보편적인 교육을 위해 공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루터가 제시한 것이 공교육이다. 루터는 1524년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것을 독일의 모든 시 의원들에게 권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국가와 시의회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부모들이 이것(교육의 과제)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누가 이것을 대신 해주어야 하겠는가? 어린이들을 그냥 방치해 둘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통치자들과 시의원들이 바로 이것을 해주어야 한다. ······ 통치자들과 시의원들은 성장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의 모든 재산과 생명을 위탁받은 자들이고 따라서 그들은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힘써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번영이란 단순히 부를 모으고, 성벽을 높이 쌓고, 좋은 집과 갑옷과 투구를 갖추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 안에 멍청한 인간들만 있다면 오히려 큰 피해만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한 국가가 번영하는 일은 그 안에 훌륭히 교육받은 현명한 시민이 있어서 그들이 그 국가의 모든 재산과 생명을 바로 보호할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1
이러한 루터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모든 아동을 국가가 책임을 지고 교육하는 공교육이 시작되었고, 이후 루터파 교회가 지배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공교육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래서 루터가 공교육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다.
루터의 보편교육론에 비추어 본 한국교육
한국은 해방 이후부터 국민의 강한 교육열과 정부의 교육기회 확대 정책이 맞물려 1957년에 초등학교 완전 취학(취학율 90% 기준)을 달성했고, 중학교는 1979년, 고등학교는 1985년에 완전취학을 달성한다. 그래서 한국은 제일 짧은 시간에 제일 빠른 속도로 교육 기회를 확대한 나라로 꼽힌다. 심지어 대학 교육의 경우도 70% 이상의 진학률을 나타내고 있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한국은 공교육의 보편교육 정신을 비교적 잘 실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첫째, 실질적 보편교육 실현을 위한 국가의 투자 부족이다. 한국의 보편교육의 실현은 국가가 아닌 국민들의 사적 동기와 부담을 통해 이루어진 측면이 크다. 해방 직후에는 국가의 경제력이 미치지 못해 국민들의 상급학교 진학 욕구를 국가가 다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부모의 비용에 의존해 교육을 확대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경제가 성장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민들의 교육비 부담을 전제로 공교육에 대한 국가 부담을 확대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내용차원에서 실질적인 보편교육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부담 공교육비가 GDP 대비 4.7%로서 OECD 평균(5.0%)보다 낮은 수준이다. 반면, 민간이 투자한 비율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2.8%로서 OECD 평균(0.9%)보다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전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즉, 학교교육을 위하여 정부가 투자한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낮고, 민간이 투자한 비율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말한다. 이 점은 공교육을 위하여, 즉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가계의 부담을 줄이고 정부의 투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림 1> 민간 부담 공교육비 비율(Private Expenditure on Educational Institutions as a Percentage of GDP)

민간이 투자하는 공교육비는 학부모가 부담하는 공교육비와 기타 민간기관이 지출하는 공교육비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교육비 전체를 100.0%로 보고, 정부부담, 민간부담, 가계부담으로 구분하여 비율을 살펴보면, 정부부담 59.6%, 민간부담 10.9%, 가계부담 29.5%로 공교육비의 약 30%를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담 공교육비 비율 29.5%는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그림 2> 가계부담 공교육비(Household Expenditure on Educational Institutions)

둘째, 부모의 소득이나 계층에 따른 교육격차 확대로 인해 보편교육이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계층 상승의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대다수의 국민이 가난했고,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는 이러한 믿음이 현실 가운데서 증명이 되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한국 교육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와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또 이미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경제적인 계층이 조금씩 고착화되면서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여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자녀의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되면서 교육은 계층이동의 수단이 아닌 계층상속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2012년 3월 서울대학교가 처음으로 발표한 신입생들의 소득 수준에 대한 조사는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발표에 따르면 2007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가구의 소득 수준을 건강보험 납부액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소득 수준 상위 10%에 들어가는 신입생 가구가 39.8%였고 상위 20% 가구의 학생은 신입생의 절반을 훨씬 넘는 61.4%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하위 30% 가구에 해당되는 신입생은 전체의 10.4%였다. 신입생 중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1.3%인 25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서울대 뿐 아니라 주요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3> 소득 10분위 비율 상위 10개 대학 소득 계층 분포

부모의 소득이나 계층이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교육 시장의 발달이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교육격차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표 1> 소득 수준별 사교육비 격차

셋째,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미비하다. 현재 우리 나라는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매년 6-7만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 둔다.
<표 2> 등교 중단율 현황(2009학년도)

<표 3> 등교 중단 세부 이유

그런데 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나면 국가 차원의 모든 교육적 지원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시도별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운영되고는 있다. 하지만 학교밖 청소년이 이 기관을 찾지 않는 한 지원이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9년 전국의 등교 중단자(거리응답자 414명, 시설(쉼터와 비인가 대안학교) 응답자 315명, 보호관찰소 응답자 178명)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보호관찰 대상자의 86%, 거리응답자의 86.2%가 어떠한 교육도 받은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둔 이후 2/3 정도인 66.5%(602명)가 한 번도 검정고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등교 중단자 대부분이 중단 학교급의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로 사회에 진출하므로 이는 청소년기에 적절한 교육기회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최근 한국 사회의 인구 변동에 따라 다문화와 탈북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일반 가정의 학생들에 비해 더 학교를 떠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표 4> 2012 – 2013 다문화 가정 자녀의 취학율

<표 5> 탈북학생 정규학교 재학 현황

일반 학교를 떠나 미인가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일반 학교의 경직된 교육과정 운영으로 인해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을 찾아 떠난 학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방식이든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넷째,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대책의 미비다. 학교가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는 균등하게 제공을 하고 있지만, 거기서 이루어지는 교육성취에 있어서는 책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국가가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려면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정해진 학습의 성취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다양한 형태의 장애로 인해 학습 기준을 성취하기 어려운 학생들에 대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교육은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고 지원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의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인해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현재 우리 교육의 경우 학습부진아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리와 파악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전체 학생 가운데 최소한 20% 정도의 학생들이 학습부진으로 인한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표 6>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학급에 학습부진아가 있다면 그 수는 몇 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표 7> 학습부진아 규모 현황(추정)

심지어 학교 내 실질적인 문맹자들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청주교대 엄훈 교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행 연구에서 한 학급에 3-5명의 학생들이 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제적인 문맹자임을 밝히고 있다.2 이러한 사실은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좋은교사운동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들의 96.5%가 글자의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거나 글을 읽어도 내용 파악이 심각하게 되지 않는 학생들을 매 해 만난다고 응답하고 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은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의 우수성과 보편교육으로 인해 문맹률이 거의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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