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0-12-16 12:12

1. 이곳에 아이를 보내시겠어요?
지역아동센터는 사회복지시설이므로 가끔 사회복지실습생들이 실습을 하러 온다. 이들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 및 인력의 전문성을 실습 과정에서 익히고자 오는 것이지만, 그 양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파랑새에는 유감스럽지만 정규 4년제 대학교의 실습생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 센터 자체에서 실습에 대해 그리 열의를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사회복지실습생 모집 공고를 내거나 하는 일 등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습생들이 꾸준히 있는 것은 실습기관의 자격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것을 보고 필요한 분들이 문의를 해오거나 혹은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와서 이뤄지는 경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습을 왜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냐고 묻는다면, 역시 여력이 없어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을 전문가로 성장시키기에 필요한 만큼의 실습과정을 진행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벅차다.
그런 실습생들의 압도적 다수는 중년층 이상으로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다. 특히 중년의 여성들이 가장 많은데, 이들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이직 등을 고려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마련하고자 하는 경우다. 따라서 이미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고 또 기혼으로 초등학생 이상 연령대의 자녀를 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 대부분이 센터에 오시면 꼭 몇 가지 반응을 보이곤 하신다. 우선은 ‘지역아동센터란 곳을 전혀 몰랐는데, 와 보니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이란 것을 알겠다’고 놀람을 표시하신다. 그 후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에도 놀라움을 표현하시고, ‘급식이나 다양한 지원사항들이 우리 집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서 부러울 지경이다’란 말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좀 유치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이런 칭찬에는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대개 ‘이런 차이는 지역아동센터가 바로 사회적 자원을 집합적으로 연계하여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 제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이런 반응들에는 항상 부정적 반응들도 함께 뒤따른다. 예를 들면 “이렇게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일부 아이들이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든지 “선생님들이 너무 고생이 많아서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가 많이 된다”는 칭찬인지 염려인지 모를 말들도 뒤따라온다.
그러나 가장 압권인 것은 역시 “실습생에게 만약 초등학생 연령의 자녀가 있다면 지역아동센터에 보내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그에 따른 반응들이다. 실제로 어떤 실습생들은 실습을 하고 있는 중에도 집에 홀로 있는 초등생 자녀들에게 전화가 와서 엄마를 찾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겐 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무래도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매우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 왜 못 보내실까요?
“내 아이를 여기 지역아동센터에서 우리 아이들로 함께 키울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특히 실습생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들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센터의 모든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누구보다 지역아동센터와 그 종사자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동료로써 만날 수도 있으므로 지역아동센터에 일정한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가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므로 사정을 잘 알고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에 있다면 그 답은 긍정적인 것이 되어야 마땅하겠으나.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물론 왜 그런 부정적 대답을 하는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대부분 주거지 근처에는 이런 시설이 없는 것 같고, 생각도 못 해본 일이며, 지금 다니는 학원들을 빼고 가라고 하기에는 어렵고, 잘 모르겠고 그냥 좀 망설여진다고 한다. 더욱이 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너무 우악스러운데 우리 아이는 유약해서 잘 적응을 못할 것 같다고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센터에서 본 아이들에 대한 평가를 표현하시기도 한다.
지역아동센터가 취약계층 아동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게 되면서 이용 아동들 중에는 정서적·행동적·사회적·인지적 어려움을 가진 아동들이 집중적으로 몰려들어, 이들 아동들이 자아내는 집단적 역동이 때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무기력하거나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며, 학습이나 프로그램 등을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하고, 오직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노련한 실무자들이라 할지라도 한숨이 절로 나올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그것이 인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그 짧은 기간에 가늠하는 일은 어쩌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상과 실천은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서나,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모두를 위해 그렇다.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사회적 자산으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었고, 미래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애쓰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좋은 아이’, ‘잘 하는 아이’, ‘착한 아이’의 긍정적 자극이기에 하는 소리다. 물론 지금도 우리에게는 그런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이 그런 아이들이 필요하다.
좌절과 슬픔과 빈곤과 무기력과 우울과 분노에 휩싸인 한 명의 아이를 밝은 햇살 속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훨씬 더 많은 태양처럼 빛나는 아이들이 필요하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장적더미와 같은 그 아이의 마음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려면 태양과 바람과 불쏘시개가 되어줄 아이들이 필요하다.
그것 때문에 교사들도 노력하고 있지만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일과 교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성질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친구의 잘못된 말을 웃으며 막아주고, 친구가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할 때 그 손을 잡아 다른 길로 이끌어가고, “나는 이것도 해보고 싶은데, 나는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란 말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친구들이 우리는 너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그 힘을 회복했을 때 서로가 더 나은, 더 멋진, 더 힘찬 미래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도록, 당신의 아이들을 우리들의 아이들로 함께 돌보며 키워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서 자꾸 묻는 것이다. “선생님 댁에는 아이들이 있나요? 그 아이를 지역아동센터에서 함께 자라도록 하면 어떨까요?”라고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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