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7-10-11 12:04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에 대한 불만
그동안 교육과정과 대입전형, 수능시험 등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불평이 많았다. 학교교육의 최대 목적이 상위권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입전형이나 교육과정이 바뀌면 학부모와 학생은 수험준비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수능개편의 연기로 인한 교육과정 운영의 혼란, 중3, 중2 학생들의 예측 불가능성 증가도 그 한 예다. 이런 변화는 대개 정권교체 시기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관행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불만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육이 100년지대계라면서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 정권이 들어서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펴기 위해 지난 정권이 도입한 정책을 뒤엎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사회적 현상들은 불가피한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
교육정책, 잦은 변경의 불가피성
세계에서 교육과정이나 입시정책이 가장 자주 바뀌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대한민국일 것이다. 잦은 변경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동안의 분석을 보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이전 정권의 정책을 뒤엎고 교육정책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꾼다’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일견 타당한 분석처럼 보이지만 이는 정확하지 못한 분석이다. 교육정책이 자주 바뀌는 데는 몇 가지 다른 원인이 있다.
첫째,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그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을 도입할 때 중앙정부는 주로 도입 목적, 여건 마련, 역량 개발, 예산 배정 등의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어떤 작은 정책이라도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정부가 새로운 교육정책을 도입할 때 현장에서 그 정책이 어떻게 작동할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충 검토하고 직관에 따라 “A를 변경하면 B라는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 아래 교육개혁을 단행한다. 현실은 초기 기대를 비웃듯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도입할 때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후유증을 일으킬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 문제는 대표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의 하나다. 문제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내외부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결과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늘날처럼 변화가 빠르고 비선형적이며 불확실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의 도입 후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후속적인 교육정책의 변경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다. 시범 운영이나 질 높은 리서치를 통해 증거기반으로 교육을 바꾸려고 하지만 이것 역시 한계가 있다.
둘째, 교육 개혁을 졸속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개혁의 졸속 추진이 교육정책을 자주 바꾸게 만드는 주된 이유다. 개혁의 졸속 추진이란 개혁의 의미, 당위성, 절차, 준비 등의 주요 과정에 대해 연구도 부족하고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 그리고 사회적 합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로 개혁을 밀어붙이는 방식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한국의 대부분의 교육개혁은 이런 식이었다. 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은 교육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킨다고(예: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영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추진의 절차가 민주적이고 사회 합의 과정을 거치고 증거기반일 때 가능해진다.
셋째, (수능과 내신평가의 경우) 문제풀이 기술 연마 대신 진정한 실력 함양을 위해 적정 주기로 변경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수능을 예로 들어보자. 수능은 그동안 문항의 큰 변화 없이 객관식 표준화 시험으로 23년간 지속되어 왔다. 이렇다 보니 학교나 학생들은 문제 유형을 암기하게 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반복적인 문제 풀이에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수능의 문제 유형을 일정한 기간(예: 5-10년)이 지나면 적정 비율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을 연마하게 된다. 이는 롤즈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특정한 정책안의 선택을 둘러싸고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어떠한 대안이 자신에게 유불리한지를 모르는 상황)’을 수능시험에 원용(援用)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대평가 제도 아래서 문항을 자주 바꾸면 매년 난이도가 들쭉날쭉해서 시험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동안 수능의 문제 유형을 자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문제 유형을 몇 년마다 일정 비율 바꿔주면서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내신 평가도 마찬가지다. 정형화된 평가나 정형화된 NEIS 입력은 비교육적 대응전략과 부정을 낳고 학교교육을 입시준비로 몰고 간다. 역설적으로 어떤 문제가 시험에 출제될지 잘 모를 때 입시준비교육이 아닌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이런 접근의 이점을 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입전형 제도나 전형 도구가 변하지 않는 것은 교육적으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클 수 있다.
대입전형이나 교육과정이 안정적이면 좋겠지만 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학습이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는 쪽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 주기로 문제 유형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졸속개정으로 인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개정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졸속개정이나 졸속개편을 중단하기만 해도 교육정책의 변경 횟수는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교육정책의 안정성·지속성 확보를 위한 21세기 방식
세상의 모든 것이 급속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 역시 불가피하다. 물론 그렇다고 잦은 변경 자체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들이 이해가능하고 수용가능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변경의 빈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차의 정당성과 공정성이다. 이를 통해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변화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 대해 우리 사회가 매우 미숙하고 성공 경험이 없다. 교육부는 ‘과거에는 그냥 일방적으로 교육부가 정해서 발표를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민주적으로 변했다.’라는 식으로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교육변화를 이끌어내는 절차나 기술, 역량이 앞서가는 나라들에 비해 한국은 너무 후진적이다. 따라서 교육 정책에 관여하는 모든 인사나 부서가 지금보다 교육변화의 원리와 실행 방안에 대해 좀 더 강도 높은 학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교육변화 분야의 세계적 컨설턴트인 마이클 풀란은 새로운 정책이 실패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개혁가의 잘못된 가설 때문이라고 하였다. 무지의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수능 개편안에 깔린 가설도 그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수능을 9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학교교육 내실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가설을 세웠지만 이것을 ‘타당성, 실행가능성, 검증가능성, 의미성’이라는 4가지의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타당성과 의미성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교육정책의 안정성·지속성 확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할 일은 이해당사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미(shared meaning) 영역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30일 교육문화 분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과도한 입시경쟁의 완화, 심화하는 교육격차의 해소, 정의롭고 공정한 교육의 실현’을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삼은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가 제출했던 수능개편 1, 2안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의미의 공유는커녕 의미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태였기에 그 중 어떤 안을 선택해도 기대하는 성과를 내기가 불가능했다. 어떤 혁신도 의미의 공유 과정이 없으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고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마이클 풀란의 조언(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2016 8쪽)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의미의 공유를 통한 사회적 합의는 성숙한 사회의 의사결정 모습이다. 이런 과정만이 교육정책의 안정성·지속성을 담보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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