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0-07-15 11:30
2020년의 한국,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익숙했던 일상의 모습들이 변하고 있다. 학교, 시장, 병원 등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현실 공간을 대신하여 온라인 공간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며, 낯선 방식들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느린 필자에게는 마스크를 끼고 있는 영아들, 유아들, 그리고 유아교육현장의 모습이 여전히 낯설다. 교육부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따라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1인 1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며, 등원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교사는 원격수업을 해야 한다. 유아교육을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방역이 최우선이라지만 비(非)교육적/반(反)교육적이지는 않는가? 다가올(?)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어떻게 유아교육을 할 것인가?
필자가 이런 질문들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 때마침 6인의 학자들과 시사평론가 정관용씨의 대담 내용을 엮은 책 『코로나 사피엔스』(최재천 외, 2020)을 만나게 되었다. 생태학, 공학,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학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거기에 유아교육에 관한 고민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변화를 읽어내는 그들의 통찰에 도움을 받아 (포스트)코로나시대 유아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생겼다. 책으로 만난 그들과 유아교육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필자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글쓰기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이어 유아교육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답하는 식으로 대담 장면을 상상하기!

『코로나 사피엔스』 저자들과의 가상 대담1
#생태교육
• 필자: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는데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최재천: 한마디로, 생태적 전환이지요.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것을 인간이 만들어냈고, 이러한 환경이 역대 최고의 바이러스 전성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고,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지금까지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 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행동백신의 일종인 셈이지요. 앞으로는 그 어떤 방역체계와 화학백신도 바이러스 팬데믹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의 일부답게 사는 것,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는 것. 호모 사피엔스 이름에 걸맞게 현명해져야 합니다.
• 필자: 자연과 공존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생태백신과 행동백신의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교육이 그 자체로 백신이 되지 않을까요? 국가수준 유아교육과정(이하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들이 주변의 동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생명과 자연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경험을 교육내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행동이 몸에 각인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런데 유아교육기관에서의 생태교육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일관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그리고 그 후손들이 건강한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가족 모두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자는 말이 흘러간 옛 구호가 아니라, 생태계 파괴의 대가를 절감하고 있는 현재에서는 일상 그 자체가 되어야겠지요. 유아뿐 아니라 교사나 부모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일! 생명체의 현재와 미래의 생존을 위해 유아교육이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디지털 윤리
• 필자: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여기는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른다지요? 인문과 공학을 연결해 온 학자로서 포노 사피엔스 시대로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 최재붕: 지난 10년간 엄청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검색 포털과 유튜브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각종 무인화서비스나 온라인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초연결 사회에서 포노 사피엔스는 영역과 경계 없이 만나고 있어요. 어린 아이가 최대한 멀리해야 하는 물건, 어른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디지털기기, 스마트폰 사용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대전환기를 살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환자의 동선을 텍스트로 보고하지만, 디지털 문명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앱을 개발하여 이동 경로를 지도로 보여주었지요. 포노 사피엔스의 문명을 막아서느냐, 받아들이느냐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지만 새로운 문명의 도래는 이미 정해진 인류의 미래입니다.
• 필자: 디지털 문명의 지배가 현재이자 정해진 미래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로봇, 증강현실 등 디지털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도 크지요.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디지털 환경에 매몰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또한 분명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거부할 수 없는 현재이자 미래라면, 디지털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공동의 선(善)을 지키며 공동체의 삶을 해치지 않는, 그야말로 슬기로운 디지털 윤리 교육이 어릴 때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신의 기술을 다투어 내놓는 속도 경쟁 일변도의 문화에서 우리는 디지털 윤리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n번방 사건과 같은 범죄가 디지털 기술만 있고 윤리가 빠져있는 IT 강국, 한국의 민낯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요? 디지털을 효율적인 도구로만 여기고 사유 없이 기술을 과용해 온 탓은 아닐까요? 요즘 어린 아이들은 IPTV로 영어를 따라 읽고, 유튜브의 헤이지니 채널을 보며 남이 하는 놀이를 구경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의 초기부터 디지털 기기를 일방향적으로 수용하도록 두어도 정말 괜찮을까요? 개정 누리과정에서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바르게 사용하는 경험을 유아의 교육내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르게’라는 말에는 필요한 때에 기기들을 적절히 사용한다는 빈도의 의미도 있지만, 자신과 사회를 해치지 않고 윤리적으로 사용한다는 가치적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디지털을 바르게 사용하는 교육이 필요한 만큼, 부모의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인식과 바른 사용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유모차에 앉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며 쇼핑을 하는 부모를 마주칠 때, 카페에서 아이에게 게임하라며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옆에서 사교육에 대한 수다가 한창인 부모들을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집니다.
#영유아교사
• 필자: 코로나가 경제에 미친 타격이 심각합니다. 코로나 시대의 경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유아교육과 연결 지점이 있을까요?
• 장하준: 코로나 사태는 경제체제의 모순, 즉 무한 이윤 추구와 성장이라는 수단이 공공복지생명이라는 목표를 앞지르는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 공공, 복지가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경제, 인간을 위한 복지에 힘을 쏟아야 할 때인 거지요. 영국에서는 의료, 먹거리,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을 핵심 인력(key worker)이라고 불러요. 지금까지 시장에서 사람이 원하는 게 더 많이 생산되고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생산이 안 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사회를 유지하려면 더 필요한 이들이 있고,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임금구조나 노동시장 구조도 변해야 하고, 가사노동의 가치와 돌봄 경제(caring economy)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해요.
• 필자: 교육 종사자를 사회의 핵심 인력으로 부르는, 그러한 인식이 부럽군요.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전수하는 형식적 전달체가 아닙니다. 코로나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학교와 교사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유아를 교육하는 교사를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인력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열악한 임금 구조를 개선하는 것! 그것은 유아교육이 제대로 교육적이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 필수조건입니다.
#공정함
• 필자: 많은 분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의 지배 가치와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홍기빈: 지난 40년 동안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가 지구적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구조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불러왔어요.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는 생태적 환경에 대한 무한한 착취를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것이고, 그 결과 전대미문의 생태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삼아야 할 원칙들이 있어요. 우선, 사회적 방역시스템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제 건강과 보건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서로 연대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 경제활동 조직을 시장경제에만 맡겨야만 한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국가는 사회적 기업, 플랫폼 협동조합 등 여러 가지 형태와 협력하여 실업자를 고용해야 하고요. 아주 근본적인 문제로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히 긍정한 현대 문명에 질문을 던지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입니다. 어떤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대안적 질서와 체제를 제대로 구현할 기회일 수 있어요.
• 필자: 말씀하신 사회적 방역시스템의 의미가 인상적이네요.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저는 단연코 교육의 공정함(equity)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시장경제 논리로 교육을 접근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더욱 고통 받는 약자들, 이를테면 빈곤층이나 문화적 소수자들, 장애우와 같이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 대한 교육적 지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는 안 되겠지요. 개인(민간)이 설립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현실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아이행복카드의 결재권을 쥔 학부모의 선택이 기관의 존폐를 결정하는데, 학부모의 욕망에 맞추느라 교육적 가치를 온전히 구현해낼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국공립유치원, 국·공립어린이집을 더 많이 짓자는 말이 아닙니다.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용자가 많지 않은 비수익 노선을 시도가 지원해주는 버스(준)공영제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심신의 장애로 위기에 처해있는 아이들의 학습권(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영아전담 어린이집이나 장애아전담(통합)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늘리는 것, 영유아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이나 빈곤층 밀집 지역에 국공립 유치원 및 어린이집 설치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놀이
• 필자: 우리나라 유아교육은 아이들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국가교육과정에서 이를 선언했지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아이도 어른도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 김경일: 우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불안한 거잖아요. 불확실하니까 불안이 커지는 겁니다. 불확실함은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더 적은 것으로 함께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적정한 기술이 최고의 기술보다 중요하듯, 적정한 행복이 무한한 욕망보다 우선시되어야 해요. 사회적으로 강요된 것이 아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적정 기술로 공존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한마디로 ‘지혜로운 만족감’이 곧 행복이지요.
• 필자: 그래요. 외부로부터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얻는 만족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 해라’, ‘~해야만 한다’라는 말에 길들여져 왔던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놓은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성취와 소유를 무한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일!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놀이입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놀이는 자발적이고 주도적이며 실험과 모험, 상상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또 아이들은 놀이하며 인간-비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요. 말씀처럼 놀이는 아이들에게 지혜로운 만족을 주는 행복의 행위입니다. 지난해 개정된 누리과정은 놀이중심의 교육을 선포하면서 놀이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불확실함으로 불안한 시대 속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또 때로는 삼삼오오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흘러가는 놀이가 코로나 시대 유아교육의 최선의 방법이자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경험이 아닐까요? 저는 코로나가 놀이중심 유아교육의 위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놀이를 찾아줄 수 있는 기회이자 놀이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존엄
• 필자: 끝으로, 코로나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누리: 코로나19 사태는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세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꿔놓았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견고해 보이던 것이 견고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본주의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사회공동체를 파괴하여 정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야수자본주의인 것이지요. 이제 야수자본주의에 안녕을 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던 수월성 사고, 실력주의를 존엄성 사고로 바꾸어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 필자: 존엄을 지키는 교육! 감사합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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