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7-05-18 09:53
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나날이 분위기가 달라져 세상이 바뀌었다는 실감이 들 정도다. 이 모든 게 촛불시민혁명의 결과라 생각하니 의미가 깊다. 그런데 이 느낌! 포장은 새롭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아닌가. 지난 2003년 참여정부 때의 경험과 겹쳐지는 것이다. 그 시절에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 같은 기대와 희망이 일렁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학부모는 그 어떤 정부보다도 교육문제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속앓이를 했다. 학생들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입시지옥 속에서 여전히 헤매었다. 그러한 기억 탓인지 새 대통령에게 교육 분야에 관한 기대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자신이 교육대통령이라고 공언하면서 교육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들이 내건 교육공약을 보는 학부모들은 신선함보다 식상함을 느꼈다. 후보자들의 공약이 대동소이하고 역대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교육을 완화하고, 대학입시를 개선하고, 평등교육을 지향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내용이 꾸준히 되풀이되어 왔다. 그런데도 공약은 용두사미에 그치기 일쑤였으며 시간이 갈수록 교육 불평등이 더욱 견고해져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전대통령은 교육공약으로 당선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괜찮은 교육공약을 내걸기는 했다.)
왜 그럴까? 그 첫 번째 이유는 현실정치라는 거대한 화두 앞에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전투구의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지간한 철학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교육정책을 올곧게 밀고 나가기 버거울 테니까. 그런데 교육정책을 쥐락펴락 하는 분들은 머리와 입으로야 교육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구구절절이 체감해보지는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제 많은 우리나라의 교육체제 속에서 어쨌든 성공한 사람들이고, 그 자식들 또한 외고와 특목고를 나오거나 어학연수를 통해 이 비뚤어진 교육현실에 나름 잘 적응해 온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현실에 대해 치열한 문제의식 없는 정책을 내놨다가 여기저기서 지적을 하면 고치고 고쳐서 결국 누더기 정책, 파편화된 정책을 내고 만다. 예를 들면 수년 전에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정규수업시간에 선행학습을 못하게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애초에 이 법을 만들 때는 학원을 포함해야만 그 정책이 실현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학원관계자의 표를 의식해서 학원은 빼버렸다. 그러자 사교육비가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방과후수업 시간에 선행학습을 허용하였다. 이렇게 저렇게 뜯어 고쳐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는 정책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정부나 교육부가 어떤 교육정책을 시행하려 할 때마다 학부모들이 불신하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빈약하고 느슨한 사람들이 현실정치란 미명하에 자신의 무능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교육은 한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본다.
두 번째 이유. 어쩌면 첫 번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마저 이 나라의 교육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 때 교육공약을 발표하면서 교육으로 다시 희망의 사다리를 놓겠다고 했다. 많은 청년들이 ‘수저론’을 들먹이면서 더 이상 교육이 신분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못한다며 패배주의에 빠져들자 사다리를 놔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수천마리의 미꾸라지가 사는 개천에서 한 마리의 용이 나게 하는 교육을 하는 게 정말 바람직한 교육일까? 우리는 왜 모두가 개천의 미꾸라지로 살기보다는 용이 되기 위해 용쓰는 걸까? 명문대 졸업장으로도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지 못한 현실인데 왜 명문대 간판에 목을 맬까? 원인은 학벌에 대한 편견과 직업군에 관한 차별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를 노동문제와 함께 풀어가야 할 이유다. 굳이 대학교육을 받지 않아도 사회에서 필요한 시민으로 얼마든지 제 몫의 노동과 그에 따른 소득을 보장받는 사회라면 교육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교육이 경제에 종속되지 않고 본연의 가치지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 교육공약을 누구의 입장에서 만들 것인가이다. 학부모들은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할 때 교육·보육정책을 맨 먼저 본다. 이렇다 보니 후보자는 학부모들의 표를 의식한 공약을 다투어 내놓는다. 이번 대통령 후보들도 유아정책에서부터 대학정책까지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 맞벌이 부부 육아시간을 확보하는 정책, 공교육 강화와 입시제도 간소화 정책 등 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학부모들을 위한, 즉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어른위주의 공약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아이와 사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아이의 행복지수가 어떻게 다를까? 부모들은 경제적 문제와 직결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정책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것은 다 아는 바이다. 삶의 만족도는 매우 낮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슬프거나 절망에 빠져본 적이 있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교육을 받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수록 불행해지는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삶이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에 관한 공감을 바탕으로 교육을 바꾸고, 이 기회가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교육정책을 바로 세웠으면 한다.
이번만큼은! 제발 자의적인 교육정책을 내놓지 말고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며 아이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 바란다. 지난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에 청소년들의 대통령선거 모의투표가 있었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은 청소년이 주권자로서 당당하게 사회적 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사실상 정치적 손익계산을 이유로) 18세 투표권을 3년 뒤로 유예시키고 말았다. 청소년들의 모의투표 결과는 놀랍게도 사회문제와 후보들의 면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오히려 유권자인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학부모들의 최대 행복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볼 때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해 신뢰하고 만족해한다. 그런데 교육공약 만큼은 아이 중심이 아닌 부모 중심의 교육공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정책을 논의할 때 어느 순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얘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이 눈앞에 보이고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면 어른들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육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새 대통령에 대한 바람이 미풍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기 바란다. 아이들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정농단, 교육농단에 맞서 열심히 저항했다. 이들에게 이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때다. 진정한 변화는, 정치권을 넘어 모든 이들의 삶이 당당해지는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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