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7-04-05 12:12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방안은 대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 의제에 대해서는 대선 후보자들보다 시도교육감들의 관심이 더 커 보인다. 중앙정부 독점 행정체제로 인한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 이를 실제로 운영했을 때 예상되는 역기능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교육위원회의 상도 여러 가지이고 이에 대한 선호도 갈렸었지만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양상이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법률기구로서, 대통령 소속 독립행정기관으로 설립하고 교육부는 집행기구로 존치시키자는 안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옥상옥이 될 우려가 크다.
학교교육 정책결정, 집행, 실행의 기관은 <국가교육위원회-교육부-교육청-교육지원청-학교>처럼 5층 구조다. 너무 많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이 빠른 변화다.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구조가 현재의 위계적, 수직적인 것에서 의사결정의 신속성, 다양성 포용, 개방성, 유연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학교교육 변화를 주도하게 해야 한다. 교육부는 국가가 반드시 관리해야 할 것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한다. 또한 교육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듯이 교육청 역시 축소하는 것이 옳다. 교육지원청이 제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이 요즘 세계적 추세이기도 한 ‘중간 리더십 강화(Leadership form the Middle)’와도 어울리는 일이다.
2. 교육의 질 향상보다 권한 분점에 초점을 두는 것이 문제다.
조희연 교육감(2017)이 최근 공개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안에 따르면 이 위원회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 · 의결한다.
① 교육발전에 관한 중 · 장기 정책목표와 방향, 기본계획에 관한 사항
② 국가 수준의 주요 교육정책 및 계획의 수립 · 조정에 관한 사항
③ 국가 수준의 주요 교육정책 및 교육성과에 대한 평가에 관한 사항
④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의 수립 · 조정에 관한 사항
⑤ 다음 연도 시행계획과 전년도 추진실적에 관한 사항
⑥ 교육 관련 예산의 확대방안에 관한 사항
⑦ 매년도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관련 예산의 배분 및 조정과 효율적 운영에 관한 사항
⑧ 교육의 지역균등 보장을 위한 교육보조금에 관한 사항
⑨ 고용, 노동, 복지 분야 등 정부 부처간 교육혁신 관련 정책의 종합 조정에 관한 사항
⑩ 교원 및 교육공무원의 양성 및 임용을 위한 정책에 관한 사항
⑪ 대통령, 교육부장관, 중앙행정기관의 장, 시 · 도교육감협의회의 장, 교육감이 심의를 요청하는 사항
⑫ 그 밖에 교육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률안들도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내용이 위와 대동소이하다. 국내 관련 연구를 수정·보완한 조희연 교육감의 제안은 국가 수준에서 결정할 기본 사항은 물론 ‘12. 그 밖에 교육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처럼 교육 정책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심의·의결 권한을 갖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지나친 하향식 교육행정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분권화와 교육자치의 강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문제해결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교육부의 전횡적 교육행정을 민주화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학교자치를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후자의 초점은 학교 중심의 교육 자치와 교육지원청의 지원에 모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역할과 기능 축소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방안은 자칫 교육부의 권한을 국가교육위원회와 시도교육청이 나눠 갖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다. 초중등교육에 관한 일차적 책임을 교육감에게 부여하고, 교육부는 다음과 같은 역할로 그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김용, 2017 재인용).
(1) 여러 정부 부처와 협력하여 국가 수준에서 열린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는 일
(2) 전국적으로 통일적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는 일
(3) 전국적으로 통계 및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일
(4) 다양하게 추진되는 정책을 전국적 견지에서 평가하고 그 결과를 환류하는 일
(5) 지역간 격차 해소와 교육기회 형평성을 확보하는 일 등
3. 심의·의결(국가교육위원회)과 집행(교육부)의 분리에 따른 문제가 크다.
심의·의결(국가교육위원회)과 집행(교육부)의 분리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이 둘을 분리하기 어려운 과제들이 많을 것이다. 한 예로, 교육개혁은 리서치나 증거기반으로 추진하는 것이 원칙인데 시범학교 운영은 누구의 소관인가? 이런 예를 통해 보더라도 기획과 집행의 분리는 수많은 갈등, 비효율성 등을 야기함으로써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4. 합의제가 문제다.
국가교육위원회 제도는 현 교육부의 독임제와 달리 합의제다. 그런데 국가교육위원회가 심의·의결할 의제에 대해 합의(consensus)에 이르는 방식이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 안 중 안민석 의원 안과 이용섭 의원 안 모두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함’이라고 되어 있다. 합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49%를 희생하면서 51%가 지지하는 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합의제 정신에 위배된다. 그렇다고 합의가 만장일치도 아니다. 합의는 모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토론을 통해 이견을 좁혀 합의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처럼 가치 갈등이 첨예한 나라에서 주요 교육의제에 대해 합의가 가능할 것인가? 진보진영, 보수진영 내에서도 합의가 어려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감에 이르지 못하면서 다수결에 의한 합의로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합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다수결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핀란드의 교육위원회처럼 전문가 집단이 이해당사자들의 견해를 문서로 받아 초안을 만들고 초안 내용을 각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히 검토하게 하고 최대한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의 합의가 현실적인 사회적 합의다. 그리고 국가교육위원회는 합의제 기구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우기도 어렵고 국회의 견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핀란드에서 배울 것은 교육정책을 누가 결정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결정하는가 즉 의사결정의 프로세스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구성은 전문성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표성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란 용어를 쓰든 쓰지 않든 위원의 구성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구성은 매우 정치적이다. 그래서 총론에서는 일부 합의가 가능하겠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 실질적 합의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5. 문제해결의 목적과 수단이 불일치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의 목적으로 정책의 안정성, 지속성 및 교육행정의 민주화를 거론한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부의 교육정책을 뒤집어엎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제3의 기구를 만들어 이런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가 전 정부의 교육정책이 바람직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는데도 뒤집으려 하고 또 이것이 가능할까? 정책이 자주 바뀌는 것은 정책의 도입과정에서 정책결정 프로세스가 졸속인 것과 관련이 깊다. 정책결정의 과정이 핀란드처럼 민주적이고 사회합의적 성격을 갖는다면 어떤 정권도 함부로 전 정권의 정책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책의 안정성, 지속성’이란 표현 자체가 긍정성을 갖기 때문이지 이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21세기 사회에서 교육도 잦은 변화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시와 정시는 지금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이런 전형제도에 대한 연구나 평가도 매우 부족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이를 법제화해서 지속시키겠다는 것인가? 흔히 안정성을 해치는 사례로 교육과정의 잦은 변경을 든다. 이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교육과정의 개정 주기를 지금의 수시개정에서 8~10년(전면 개정의 경우)으로 바꾸면 된다. 그리고 대입전형제도를 개선하는 프로세스의 선진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졸속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바꾸거나 증거를 기반하지 않은 법제화는 않는 것만도 못하다.
또한 ‘교육행정의 민주화’란 목적 달성을 왜 반드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통해 해결하려는가? 이는 교육자치의 질을 높이도록 현재 심각한 수준인 입법지체를 해결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에 교육법개정특위를 만들어 법개정을 통해 중앙정부는 큰 방향만 제시하고 초중등교육은 17개 시도교육청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분권화와 교육 자치를 위한 법 개정을 주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적합한 생각도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보다는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등에 버금가는 교육자치의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이다.
6.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교육부를 집행기구로 축소하고 심의의결 권한을 국가교육위원회가 갖는 변화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운영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너무 크다. 이것만 설치운영하면 실제 교육이 달라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교육개혁에 성공하려면 의지만으로 또는 제도의 변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의지’와 함께 변화의 성공에 필요한 ‘역량’의 확보와 ‘여건’ 마련(예: 신뢰, 동기 등)이 필요하다. 변화 역량의 확보와 여건 마련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별개의 문제다.
교육의 질을 높인 경험의 부족도 문제다. 혁신학교처럼 단위 학교 수준에서는 성공적인 경험을 해본 적이 있지만 교육시스템 전체에 긍정적 성과를 낸 경험은 매우 드물다. 교육자치를 한다고 교육의 질이 향상되는가? 교육개혁 분야의 세계적인 컨설턴트인 마이클 풀란 교수가 “교육개혁은 개혁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사들 개인 및 집단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하향식도 문제지만 상향식만으로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교육개혁에 성공한 적이 없다. 하향식과 상향식의 장점을 절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란 그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교육위원회 제도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이 매우 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흥순(2016)은 역기능으로 ‘기능적 중복과 혼선, 기존 행정기관의 무력화, 국무회의 심의기능 저해, 견제장치 없는 독주와 월권, 정책결정과 업무진행시간 지연, 문제해결 지연 수단화 가능성, 행정청의 책임회피 수단화 가능성, 과다한 비용의 발생, 책임한계의 모호와 책임감 감소, 타협과 동조의 위험성, 사회경제적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통로 역할, 이익 및 압력단체에 의한 활동범위 제약, 정부 정책 정당화 수단, 개별 행정부처의 조직 및 인력 확대 수단화 가능성’ 등을 들고 있다. 조흥순의 이런 역기능 외에 제도의 복잡성과 갈등 증가로 새로운 체제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7.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현재 제안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안은 기존의 교육제도나 학교교육(schooling)의 연장선에서 교육부를 대신하거나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2030년경이면 대학과 초중고의 존재 형태 자체가 크게 변할 것이란 연구가 많다. 현재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안은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학교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늘날의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은 핀란드만 하더라도 1/2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학교제도가 2030년경에도 이대로 존재할 것이란 기대는 지나친 낙관이다. 이럴 가능성에 동의한다면 기존의 학교제도를 전제로 한 교육개혁을 고민할 게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미래 환경에 맞는 ‘교육환경'(learning environment)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2030년경의 학교교육의 모습은 지금과 매우 달라 기존의 거버넌스 개념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교실 내 학생 구성의 다양성이 급증하고 있다. 2030년경이면 아바타가 교육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것도 현실이 될 것이다. 또한 학교의 개념도 지역사회와 가상세계로 크게 확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개인의 강점을 기반으로 하는 개별화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 학생 평가의 목적도 양적 평가보다 질적 평가가, 선발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학습 환경의 변화는 교육의 탈표준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교육의 지방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시대 변화를 앞두고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중앙기구를 설치해 국가의 주요 교육의제를 결정하려 한다면 이는 시대 흐름에 정면 역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은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운영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자치 실현을 막고 있는 입법지체 현상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당장에라도 국회에 교육 관련법 개정을 위한 특위를 만들고 법 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주요 연방제 국가들이 실시하고 있는 수준의 학교자치 구현에 집중하는 것이 바른 접근이다.
교육의 변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하려는 것처럼 위에서 변화의 방향을 결정해 시행을 강제하는 방식과 현장의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하도록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혁신학교의 예를 볼 때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방안은 진정한 합의의 가능성, 변화의 역량과 여건은 생각하지 않고 의욕만 앞서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자치의 실현을 위해 국회 교육법개정특위 설치만으로 부족하다면 이와 병행해서 큰 틀의 교육 변화를 위해 가칭 국가교육재설계위원회를 한시적 조직으로 운영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세계 주요국 학교교육의 성공사례를 연구하고 컨설팅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 컨설팅회사(예: 맥킨지 McKinsey & Company )에게 교육행정체제에 대한 컨설팅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를 비효율적인 예산의 운영 등 다양한 적폐까지 청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주요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거론하고 있는 독립적 상설기구로서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섯불리 강행한다면 엄청난 실패의 후유증을 겪는 것은 물론 한국 교육자치의 발전을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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