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되는 것이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는 교직 사회를 위하여

by slowalk | 2017-03-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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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 가끔 회자되는 말이다. 교사를 두 부류로 나누면 ‘교환’과 ‘교포’로 나눌 수 있단다. 누군가는 여기에 ‘교양’을 더하여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다. 무엇을 줄인 말일까? ‘교환’은 좀 점잖지 못한 표현인데, ‘교장 되려고 환장한 교사’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교포’는 ‘교장되기를 포기한 교사’의 줄인 말이란다. 그럼 ‘교양’은? ‘교장되기를 양보한 교사’라는 뜻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이런 일종의 은어들은 때로 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럼 교사 문화의 어떤 단면을 드러낼까? 이 은어들은 교장 승진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교사를 분류할 수 있을 만큼 교사들이 ‘교장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교사들의 승진 동기에 대한 학술 논문도 한국 교사들이 직업적 생애의 마지막을 교장으로 마무리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모든 나라를 다 조사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몇몇 나라에서는 교장되는 것이 교사의 꿈이 아니다. 내가 미국의 몇몇 교사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 이들은 교장 되는 것이 미국 교사들의 일반적인 지향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행정을 하려고 교사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여기에 더하여 교장이 되면 잡무가 늘어나고 책임감도 막중해지기 때문이란다. 이런 분위기는 영국이나 독일 학교의 교장 부족 현상에 대한 언론 기사를 통해서도 유사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은 꽤 높은 연봉을 줌에도 불구하고 막중한 책임감과 행정 업무의 부담 때문에 중견 교사들이 교장되기를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교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독일도 사정은 유사하다.

 

한국의 교사들이 교장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사에서 교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일원적인 승진제도 때문이다. 하나의 직업에서 승진이 제도화되는 방식은 무엇이 그 직업 세계에서 지향해야 할 가치인지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한국의 교장 승진제도는 문제가 있다. 가르치는 일에서 벗어나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승진이라는 동의하기 어려운 시그널을 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교장이 되기 위해서 점수를 모아가는 과정도 논란거리이다. 도서 벽지에서 근무한 점수나 연구대회에서 수상한 점수 등이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 적잖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서 벽지 근무나 연구대회 수상이 가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남들이 가기 꺼리는 도서 벽지에서 근무하는 일은 존경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런 벽지 근무가 좋은 교장이 되는 것과 특별한 상관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교장 승진의 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한국의 교장제도는 교사에서 교장으로 나아가는 일원적 승진제도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승진제도 내에서 점수를 쌓아가는 기준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내가 지적하는 이런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왜 일까? 기존의 관습이 고착화되고 기존의 관행에 따라서 점수를 축적해 온 교사들이 제도 개혁을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교장 제도의 개혁 방안이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쳐 좌초된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이유는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현재 소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한 교장 제도에 대한 대안은 주로 선거를 통해서 민주적으로 교장을 선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나는 이런 주장이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동안 권위주의적 교장으로 인해서 생겨난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선거 방식으로 교장을 선출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장 제도의 문제를 민주주의 문제로 다소 협소화하는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적인 선거로 좋은 교장을 선발할 수 있을까? 1,500만이 넘는 동의로 뽑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 행태를 보면 선거로 좋은 리더를 뽑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웅변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 방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국의 운영은 선거에 기반해야 한다. 대표와 위임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 공동체의 운영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선거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의 동의에 의해서 형성된 정치 공동체인 국가의 작동 원리가 정치 공동체 내 작은 하부 단위들의 작동 원리로 곧바로 원용될 수는 없다. 나는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민주적인 교장이 민주적 학교 운영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박근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가 학교를 꼭 민주적으로 운영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학교 구성원이 교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민주적인 교장이 담보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교장이 능력 있는 교장일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자질 있고 능력 있는 교장을 선발하는 문제와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는 다소의 연관성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로 묶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은 아니다. 양자는 구분해서 논해야 한다.

 

나는 교장 제도 개선에 대한 여러 논의들의 밑바탕에는 교사에서 교장이 되는 것이 승진이라고 보는 오랜 문화적 관습이 여전히 전제되어 있다고 느낀다. 현재의 교장 승진 제도에 대한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 중에 하나로 수업을 잘 하고 교육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사가 교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현행 교장 승진 제도에 비해서는 더 나은 주장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옳은 주장이 아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교육활동을 잘 하는 교사는 평생 긍지를 가지고 그 일을 잘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맞다. 수업을 잘 하고 교육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교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 제도를 비판하는 주장이지만 현행 승진 제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용인하는 주장이기도 한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장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은 외국의 제도를 보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영미권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교사와 교장을 별도의 경로로 제도화하고 있다. 서로 수행하는 직무와 역할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교장직 수행에 있어 교사 경력은 매우 중요하게 간주된다.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훈련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교장을 위계적인 승진 구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때로 30대 초반의 교장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풍토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영미권의 제도화 방식이 우리나라 제도에 비해서는 더 우월하다고 본다. 실제로 교사와 교장이 수행하는 일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삶이나 제도는 합목적적으로만 기획될 수 없다.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외국의 제도를 합리적이라고 해서 바로 수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30대 교장이나 40대 교장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나이를 중요하게 따지는 우리 문화에서 젊은 교장이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와 관행을 어느 정도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럼 대안이 있을까? 사실 나도 특별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중요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근본적으로 교장을 교사 생애의 최종 목적지로 받아들이는 일원적인 승진 제도에 끊임없이 균열을 내야 한다. 수석교사 제도가 그 한 좋은 시도이다. 이 글에서 수석 교사 제도의 의의와 한계를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수석교사 제도가 일원적 승진 제도에 대한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는 점은 분명히 언급하고자 한다. 장학사, 장학관과 같이 전문직으로 나갔다가 다시 교감, 교장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상호 순환하는 제도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갈 수 있도록 교류의 비율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가르치는 전문성, 장학직의 전문성, 학교 관리자로서의 전문성이 별개로 존중되면서 공존할 수 있도록 승진 제도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이 패배자로 낙인찍히지 않는 문화적 풍토도 조성해야 한다.

 

둘째, 교장의 직무 기준과 역할을 명료화해야 한다. 근대 공교육 제도가 도입된 지 100년이 되어가지만 교장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부족해 보인다. 2014년에 경기도교육청을 중심으로 교장이 수업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아마도 이 정책을 추진한 쪽에서는 교장이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도 교사들의 애로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현직 교장단의 반대에 직면해서 시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교장이 수업을 하는 문제는 교장의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다소 중심에서 벗어난 논쟁이라고 본다. 교장이 수업을 하는 것이 미덕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교장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사항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사의 수업에 대한 장학의 권한 내지 의무를 지고 있는 교장이 학교 교사들의 수업을 제대로 관찰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혹은 개인주의적 교사 문화를 탈피하여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 교장은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가? 혹은 우등생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존중받고 성장하는 학습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교장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 또 학교 밖의 다양한 교육적 자원을 학교와 연결시키기 위해 교장은 지역사회와 어떻게 접촉하고 협력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비추어 교장의 역할을 정립하고 책무성을 부과하는 것이 교장이 수업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영미권과 한국의 교장 역할을 비교한 문화기술지 논문에서 영미권 교장을 ‘일꾼’의 이미지로, 한국 교장을 ‘어른’의 이미지로 대비시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연공서열과 나이가 존중되는 한국 사회에서 교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다소 권위주의적인 어른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이 말이 한국 교장 선생님들 전체를 폄훼하는 말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열심히 일하는 좋은 교장 선생님들도 무수히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개별 교장의 미덕에 맡겨져서는 곤란하다. 21세기의 변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학습이 가능한 학습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 경영자에 대한 명료한 직무 기준이 마련되고 그에 따른 분명한 책무성이 요구되어야 한다.

 

셋째, 교장 양성 과정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의 교장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교장 선출 방식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는 좋은 교장이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은 현장에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거 제도의 도입과 같이 선발 제도를 바꾸면 좋은 교장이 확보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물론, 학급 경영도 잘하고 동료 교사들과의 협력 관계도 잘 맺으면서 교장의 자질을 자연스럽게 갖추어 가는 교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리더십을 함양한 교사의 숫자가 일만 개나 넘는 한국 학교의 교장 자리를 다 채울 수 있는 정도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외국에서 학교 리더십과 관련된 별도의 학위를 이수하게 하거나 1년 이상의 전문적인 교장 연수 과정을 개설하는 이유는 학교장의 자질이 전문적인 훈련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교장 승진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180시간 정도의 자격연수로는 교장직 수행에 필요한 이론과 실무 능력을 얻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원 과정 개설을 포함하여 좋은 교장을 양성하기 위한 독립적인 교육 기관이나 체계적인 양성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넷째, 교장 승진제도와 관련하여서는 특별한 복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현재와 같이 점수를 축적해서 승진하는 방식의 비율을 줄이고 내부형 공모제 운영 방식의 비중을 좀 더 늘리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전면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학교와 지역의 여건에 따라서 교장선출보직제도 선택적으로 실험해볼 수는 있겠다. 어중간한 주장일지 모르지만 다양한 선발 방식을 병존시키면서 상호 경쟁시키는 방식은 어떨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사족을 하나 더 달고 싶다. 새롭게 학교를 건축할 때 교장실의 위치와 크기를 비롯한 현재 학교 공간 구조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시민을 기르는 삶의 공간으로서 학교 건축이 지니는 기능을 생각해 볼 때 현재의 학교 건축 구조는 너무 권위주의적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권위주의적 공간 구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적 시민과 민주적 리더가 양성될 수 있도록 교장실의 위치와 크기를 포함한 학교 건축물에 대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다시 최초의 은어들로 돌아가 보자. ‘교환’, ‘교포’, ‘교양’은 교장 승진 문제에 대한 교사의 태도를 바탕으로 한 분류 기준이라고 했다.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해도 보람되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런 은어들은 그 존재 이유를 잊을 것이다. 정말 좋은 교장이라면 자기 학교의 교사 문화를 이런 문화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