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교장제도 혁파,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만큼 중요하다 – 이제 진보교육감들이 제왕적 교장제도 혁파에 나설 때다

by slowalk | 2017-02-01 11:32

“너무나 피폐한 삶을 살고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과 눈 맞출 시간이 없어요. 늘 컴퓨터 앞에 매달려서 공지 뜬 거 확인하고 네이스 입력하다 보면 하루가 가요. 학교가 작은 편이라 부장직을 두 개 맡고 있어 하루 평균 11시간 일해요. 도저히 내가 나로 사는 게 불가능해요. 교장승진제도, 정말 고쳐야 해요.”

 

교감승진코스에 들어간 지 5년째 된다는 선생님이 새해 벽두 내게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지금의 교육부와 교육청의 중앙집권적 교육시스템에 지금의 교장승진제도가 결합되면 교육이 아니라 교무행정에 밝은 교사가 교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과 동료교사, 학부모가 인정하는 교사가 아니라 교장과 교육청이 인정하는 교사가 교장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지금의 제도를 내심 선호하는 이유다. 물론 진보교육감이 들어선 이래로 이런 사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교장승진제도의 큰 틀을 교육부에서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교육감이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아주 제한적이다.

 

지금의 교장승진제도가 왜 문제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제왕적 교장을 만들어내고 교사를 제왕적 교장의 신민으로 자리매김한다. 교장의 제왕적 지위는 인사권 독점과 현행 교원승진제도에서 비롯된다.

 

교장이 되려면 먼저 교감이 되어야 한다. 교감이 되려면 장학사 시험을 쳐서 교육청에서 일하다 교감으로 나오든가 승진점수를 따서 교감자격을 얻어야 한다. 장학사시험이 상대적으로 빠른 길이다. 점수 채워서 교감이 되려면 교직생활을 적어도 20년 넘게 하고 그 중에서 10년 정도는 점수취득에 필요한 스펙관리를 해야 한다. 반면 장학사가 되면 5,6년 장학사로 일하다 교감으로 나간 다음 다시 교육청에 돌아와 장학관이 되고 교장으로 나갈 수 있다. 교육행정의 전문가로 계속 교육청에 있어야 할 장학사나 장학관이 몇 년 주기로 학교를 들락날락하는 것도 문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장학사와 장학관이 학교와 교육청을 회전문처럼 오가는 대신 교육청에서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키우도록 인사제도를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장학사시험을 치지 않는 이상 교감이 되려면 승진점수를 착실히 쌓는 수밖에 없다. 승진점수는 크게 세 가지 점수로 구성된다. 경력점수와 근평점수, 가산점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경력점수는 20년만 채우면 누구나 만점에 도달한다. 가산점은 각종 연구점수와 포상점수, 기타 가산점으로 채우는데 예를 들면 석사 1.5점, 연구학교 0.12점(월0.01점), 이런 식이다. 가산점 대상항목은 이미 차고 넘친다.

 

교사들 대부분의 경우 웬만큼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저절로 가산점과 경력점수가 제법 쌓이게 된다. 가산점 남발은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를 연장시키는 수훈갑이자 교사의 동기구조를 왜곡시킨 주범이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승진목적 가산점 취득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유인이자 동기가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귀찮기는 하지만 가산점 점수도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면 누구든지 대체로 만점을 채울 수 있다.

 

결국 변별력을 갖는 것은 교장이 매기는 근무평가 점수다. 교사의 근평은 매년 이뤄지는데 교장 40%, 교감 30%, 다면평가 30%로 구성된다. 아무래도 교장의 평가가 결정적이다. 교감이 교장의 의중에 따라 고과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진을 원하고 맘먹은 교사들, 대체로 부장교사들에게 교장은 제왕적 권력을 갖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구도 교장에게 ‘아니오’를 말할 수 없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참 교육자들이 교장 될 마음을 갖지 못한다.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교장이 됐기 때문에 비합리적 보상심리가 똬리를 트는 것도 당연하다. 눈앞의 교장에게 입 막고 귀 막고 눈 막고 10년을 지내서 간신히 교감이 되고 다시 그렇게 7년 정도 지나야 간신히 교장이 된다. 그때는 다시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하고 어느새 제왕적 교장 노릇에 빠져있기 십상이다.

 

교장들의 인사권한은 점점 강해진 측면마저 있다. 이명박 정권의 교육부가 교장한테 일정한 범위의 교사초빙권한과 전보유예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외부교사를 초빙해서 근평 1등을 주고 교감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교장도 드물지 않다.

 

교감이 돼도 마찬가지다. 교감에 대한 근평권한은 교장과 지역교육청이 50%씩 나눠 갖는다. 당연히 교감은 있는 힘을 다해 교장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교장이 교감에게 만점을 주는 고과관행이 생겨난 이유다. 같은 이유로 교감은 교육청에 꼼짝 못한다. 교육청에서 아무리 무리한 요구가 내려와도 밤을 새우고 숫자를 꾸며서라도 기한 내에 보고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정책사업에 대한 가산점제도와 교장의 제왕적 근평권한을 이용하여 학교를 100% 컨트롤한다. 교육청이 줄을 당기면 학교는 무조건 따라오게 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이란 게 공허한 수사를 넘을 수 없다.

 

교육감도 교장과 장학관에 대한 인사전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교육감은 4년에 한 번씩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데다 시도의회의 감시와 견제는 물론 언론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는다. 반면 교장은 공식적으로는 오직 교육감의 견제만 받을 뿐이라 학교조직 내부의 입지가 훨씬 제왕적이다. 교육감도 인사권과 감사권을 통해 교장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뿐 학교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간섭할 법적 권한은 갖지 못한다. 법정기구로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지만 제한된 법정안건을 심의하고 의견을 제시할 뿐 교장에게 구속력 있는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한마디로 교장한테는 의회에 해당하는 견제기구가 없다.

 

학교인사위원회가 제도화됐지만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활동과 관련해서는 교직원회의가 제일 중요한데 법적위상이나 법적권한이 전무하다. 학교운영이나 교육활동에 관련된 질문이나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교육청과 교장의 지시전달회의가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교무회의에서 토론 좀 하시라고 교육감이 통사정하겠나. 교사회의가 이럴진대 학생회나 학부모회의 교장견제역할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교장은 나이도 많다. 장학관 출신이 아닌 이상 55세 이전에 교장이 되는 건 정말 어렵다. 65세가 정년이었던 2000년 이전에는 정말 교장의 나이가 많았고 남성이 거의 100%에 육박했다. 당시의 교장은 가부장적 봉건영주의 모든 조건을 갖췄던 셈이다. 학교문화도 자연히 교장을 닮아 봉건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런 현상을 바로잡고자 교육계의 정년을 65세에서 지금의 62세로 단축하며 구태에 찌든 연만한 교장들을 대폭 내몰았다. 그러나 교장의 권한은 그대로 뒀다. 간신히 학교운영위원회를 공사립 모든 학교에 도입해서 약간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선에서 그쳤다.

 

노무현 정부는 교장승진제도를 밟지 않은 평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처음으로 열었다. 평교사도 응모할 수 있는 이른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평교사 출신 교장은 자율학교로 지정된 학교에서 발생한 교장공석 중 15%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05조의2) 구조적으로 극소수 학교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MB정권이 이른바 자격증 없는 교장을 반대하는 교총의 손을 들어주며 대통령령을 제멋대로 고쳐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껍데기만 남겼기 때문이다.

 

현재 평교사 출신 교장은 아주 미미한 비율을 차지할 뿐이지만 교사와 학부모, 학생 만족도는 평교사 출신 교장이 제일 높은 것으로 판명됐다. 교장승진트랙을 밟지 않아도 교장역할을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자 내부형 공모제를 대폭 늘려야 할 확실한 경험적 근거다. 평교사 출신 공모교장 제한 규정은 모법의 내부공모제 확대 취지에 정면으로 거슬리는 위법한 것이기 때문에 차기정부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가 하루바삐 무효화 입법을 통과시켜야 마땅하다.

 

교장의 인사권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교육청의 정책사업에 대한 무조건적 협력을 강제하는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공교육의 민주주의적 성격이나 교육전문성의 요구에 어떤 순기능도 행사하지 못하는 나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교사들은 정당가입과 선거운동 등 정치활동의 자유마저 없다. 학교에서는 제왕적 교장의 권위주의에 고분고분 따르고 바깥에서는 정치적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이중으로 수동적인 교사들이 과연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사의 민주적 기상이 살아나고 민주적 학교문화가 뿌리내리려면 하루바삐 제왕적 교장제도를 혁파하고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를 풀어야 한다.

 

제왕적 교장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교장도 얼마든지 상상해볼 수 있다. 구미의 학교를 방문하고 온 사람들은 방문소감을 얘기할 때 새로운 유형의 교장을 만나 두 번 놀랐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에는 직접 안내하러 나온 교장선생님을 보고 놀란다. 청바지에 스웨터나 티셔츠를 걸친 채 목에 신분증을 걸고 바깥에서 아이들과 격의 없이 인사와 대화를 나누다 기다리던 손님이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뛰어와 맞이한 사람이 수위가 아니라 교장이라서 놀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장실에 들어가서다. 교실 한 칸(20평)을 다 쓰는 우리나라 교장실에 비하면 너무 작고 초라하기 때문이다. 물론 구미에서도 교장은 교사들의 코치노릇을 할 만큼 교육전문가이자 교육행정 전문가다. 또한 학생상담과 학부모상담 전문가이기도 하다. 교사가 상대하기 어려운 학생이나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은 100% 교장 몫이다. 교사들은 교육활동에만 신경을 쓰고 교무행정은 100% 교장 몫이다. 이런 까닭에 구미의 많은 나라에서는 교사들이 기를 쓰고 교장이 되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구미에선 교장자격 취득연한이 상대적으로 짧고 교장자격 취득여부가 교장이 매기는 근평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교장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자리일 뿐 교사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될 수 없다. 교육청도 가뭄에 콩 나듯 공문을 보낼 뿐이라 교육청 보고에 정신이 팔릴 일도 없다. 물론 어느 나라도 교육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그러니 구미의 교육시스템을 찬양하고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시스템은 우리시스템에 비해 교육청의 간섭이 적고 학교의 자율성이 살아있으며 교장의 횡포가 적고 교사의 자율성이 살아있는 이점이 있다.

 

진보교육감들이 정책사업 줄이기, 교원업무정상화, 학교혁신 등을 줄기차게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일반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긴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의 교장승진제도가 만들어내는 인센티브 구조가 워낙 강하게 작동하는데다 그 제도의 승자인 현직교장들이 아직도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 시대를 제대로 꽃피우려면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를 혁파하는 일에 진보교육감들이 최우선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침 과감한 개혁입법을 요구하는 촛불민심이 꺼지지 않고 있고 여소야대 국회의 야당들도 현행 교장승진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인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 교장승진제도의 발본적 개혁은 교육계의 중요한 대선의제가 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교육계 사정을 아는 분들은 교장승진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교사와 학교의 행태를 교육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이 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크게 봐서 두 가지다. 우선 지금의 교육체제와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장승진제도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교육체제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시스템이다.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적, 행정적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잘 따르는 교사만이 교장이 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장승진제도를 혁파하려면 학교를 교육관료제의 말단조직으로, 교사를 교육관료제의 말단수족으로 묶어두는 현 중앙집권적 교육관료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교장승진제도가 만들어낸 기득권의 힘이다. 교장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면 이제껏 현재의 교장승진제도 아래에서 열심히 승진점수를 취득한 수만 명의 교사들이 일제히 반발하게 돼있다. 교장승진제도를 손볼 때 가장 큰 저항세력은 다름 아닌 현직 교장, 교감들과 교감승진트랙에 올라탄 부장교사들이다. 교장승진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더라도 일정한 경과기간을 두고 일정비율을 기득권자 몫으로 나눠주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교육조직이 아니라 관료조직으로 왜곡시키고 교사들 간의 반목을 조장하는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하루바삐 혁파되어야 마땅하다.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학교도 교장하기 나름이다. 학교운영과 관련해서 국회가 법률로, 대통령이 시행령으로, 교육부가 시행규칙이나 고시로, 시의회가 조례로, 교육감이 지침과 정책으로 정한 사항들이 몹시 많다. 그러나 현장 적용과 집행은 전적으로 교장의 몫이다. 또한 위에서 정해지지 않은 더 많은 사항은 전적으로 교장의 판단과 결정에 위임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제왕적 대통령만 있는 게 아니라 제왕적 학교장도 있다. 제왕적 학교장은 학교현장의 모습과 학교교육의 속살을 결정짓는 강력한 요인이다. 제왕적 교장이 혁파될 때 교사들도 학교교육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게 되어 자율성과 책무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학교현장과 교사행태를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제왕적 교장제를 바꿔야 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목표는 제왕적 교장제도를 혁파하는 것이다. 제왕적 교장의 권한을 학운위와 교무회의, 인사위원회에 대폭 위임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장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학교운영 관련 주요사항을 경중을 가려 교무회의 의결사항으로 바꿔야 한다. 교장은 재의요구권을 갖는 것으로 족하다. 제도의 연속성을 생각한다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적용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교장승진제도 운영에서 교장근평의 비중을 줄이고 가산점도 정리하는 등 승진항목을 재구성해야 한다. 나아가서 교장을 선출보직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시범적으로 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제왕적 교장제를 그대로 두고는 진보교육감이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의 효과가 살아나지 못한다. 2017년은 진보교육감들이 제왕적 교장제를 혁파하는 일에 집단적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공사부문을 막론하고 통제받지 않는 제왕적 권력을 혁파하라는 것이 촛불시민들의 한결같은 요구다. 제왕적 대통령시대와 함께 제왕적 교장시대도 끝내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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