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6-06-16 10:16
누구든지 계산속이 복잡할 수 있고 내밀한 평가에서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사태가 엄중하고 상식에 어긋나도 단순히 지켜만 보는 제3자들이 많은 건 그래서다. 그러나 가끔은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몸서리치게 분노해야 할 일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관자들의 상황논리적인 속셈과 판단을 보란 듯이 비웃는 일이 있다. 그때 더 분노하고 더 강하게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사안이 있다. 나는 전교조 법외노조사태가 그런 사안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우리사회는 벌써 3년 가까이 박근혜 정권과 전교조 간에 진행된 진검승부를 보아왔다. 정권이 동원한 망나니들의 칼도 서슬이 퍼랬지만 순교를 각오한 전교조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겉으로는 정권의 일시적 승리로 보일지 몰라도 싸움의 최종승자는 전교조가 될 게 틀림없다. 6만 명의 조합원 중 해직교사 9명이 끼어있다는 이유 하나로 전교조의 합법지위를 박탈한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화 조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정당화할 수 없는 억지이자 폭거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법외노조화 방식의 전교조 죽이기는 철두철미 박근혜 표다. 후보시절 그녀는 전교조를 해충으로 비유하며 박멸을 다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집권 첫 해 10월 교육부와 노동부는 해직교사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전교조규약을 고쳐서 9명의 해직교사 조합원을 퇴출시키라고 요구한다. 전교조는 해직교사를 조합에서마저 내칠 수 없다며 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불복을 결정한다. 정부는 이에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다. 전교조는 법원으로 뛰어간다. 1심은 효력정지 가처분인용으로, 2심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잠시 희망을 주었으나 결국 정권의 손을 들어준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은 전교조가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박근혜의 헌법재판소는 8대1로 해직교사의 노조가입 금지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한다. 해직교사 가입금지는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과연 6만 전교조가 해직조합원 9인에게 휘둘리며 자주성을 상실할 가능성을 진실로 걱정했던 것일까. 헌재는 과연 법외노조의 고통을 감수하기로 선택한 조합원들의 결정이 해고조합원 아홉 명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비자주적으로 내려졌다고 본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전교조의 자주성을 전면 말살하려는 정부조치를 손들어주면서 자주성 보호를 위해서라고 둘러댄 황당 개그가 아닐 수 없다.
전교조는 출범당시부터 ‘자주적으로’ 해직교사를 동료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조합원들도 해직교사 조합원들 때문에 자주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해직조합원 9명은 전체조합원 6만 명의 0.015%에 지나지 않는다. 아홉 명이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조합원 지위는 전교조의 자주성과 연대성의 징표에 다름 아니다. 법외노조 시기에도 전교조가 엄연히 살아있는 건 바로 유난히 강력한 자주성과 연대성 덕분이다. 금년에도 5월 28일 27회를 맞는 전교조 생일날 전국에서 7천여 조합원이 여의도공원에 모였다. 집회에서는 교육부와 정권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유령노조도 어용노조도 아닌 진성노조 전교조를 법의 보호 바깥에서 오랫동안 떨게 할 수는 없다.
한번 생각해보라. 9명의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만으로 6만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통째로 박탈하는 것이 과연 원칙과 상식에 맞겠는가. 조합원의 자격요건이나 충족여부는 조합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이것이 자주성의 원칙이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겠는가. 해직노동자는, 그것도 조합활동을 하다 해직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조합원으로 품어야 맞다. 이것이 연대성의 원칙이 요구하는 상식 아니겠는가. 해직교원의 가입을 허용하면 교원노조가 아니라고 규정한 교원노조법의 관련조항은 원칙과 상식,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나는 악법일 뿐이다.
해고노동자의 조합원자격박탈 조항은 본래 전두환 정권 때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면서 노동조합법에 들어왔다. 전투적 노조활동으로 해고당한 강성지도부가 다시는 회사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신설된 것이었다. 기업별 노조의 속성상 조직대상을 재직자로 한정하고 해고노동자를 배제한 것은 나름 이해할 구석이 있다 치자. 반면 산업별, 직종별 노조의 경우에는 재직자를 넘어 실직노동자나 구직노동자까지 조직대상으로 삼아온 확립된 전통과 논거가 있어서 계속 논란이 됐다.
대법원도 이 점을 의식해서 직종별, 산업별 노조에 대해서는 해석을 통해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즉, 직종별, 산업별 노조의 경우 해고노동자 배제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다. 교원노조법을 제정할 당시 이런 올바른 법해석을 직종별 노조로 설계된 교원노조의 조합원자격에 적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원노조법으로 교원이 아닌 자의 조합가입을 명문으로 금지했고 당해 조항이 합헌으로 결정 났다. 사법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는 셈이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20대 국회에선 반새누리 연합세력의 의석이 170석도 넘는다. 야3당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교원노조법의 문제조항, 즉, 해직교사의 조합가입금지조항을 폐기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제기되는 문제는 하나다. 20대 국회와 야3당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하루바삐 독자적으로 해직교사 조합가입금지조항의 폐기입법을 추진할 것인가.
박근혜의 대법원이 1심과 2심을 뒤집고 전교조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문제의 법조항에 대해서는 박근혜의 헌법재판소가 이미 압도적으로 합헌 판단까지 내려준 상태다. 다만 대법원은 이제 여소야대 국회를 눈치 보지 않을 수 없고 박근혜 정권이 레임덕에 빠진 사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진퇴양난이다. 정부의 손을 들어주자니 법리적으로 부담되고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자니 심리적으로 마뜩찮다. 이럴 때는 판단을 마냥 미루는 꼼수가 제격이다. 특히 전교조가 이미 법외노조가 된 마당에는 가만히 있어주는 게 정부 편을 확실하게 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대법원이 눈 딱 감고 정부의 전교조 죽이기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에는 국회와 야3당이 순리적으로 사태를 풀어나가는 게 더 어려워진다. 헌재와 1,2,3심 법원이 예외 없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얘기가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법원까지 이렇게 나오면 한국의 사법부 전체가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고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죽이기를 방조한 꼴이 된다. 국민들이 꼭 이런 막장까지 봐야 하겠는가. 진성노조 전교조를 유령노조 취급하는 위록지마의 악법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는가.
향후 전개될 경우의 수에 대한 이런 분석이 타당하다면 국회와 야3당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보자며 관행적으로 대처하면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에 대응책을 강구해보자고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면 안 된다. 그건 사법권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 아니고 입법권에 대한 직무유기일 뿐이다. 설령 대법원이 뒤집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안에서도 만약 법 자체에 문제가 많다면 입법부가 먼저 나서서 법을 명확하게 바로잡는 편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더 바람직하다.
2015년 합헌결정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국회가 어떻게 합헌으로 판명된 법조항을 손대냐고 지레 위축될 필요도 없다. 헌재가 어떤 법률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당해법률이 더 바람직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규율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대안규율들이 위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언컨대, 20대 국회가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둘 수 있게 허용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을 단행할 경우 그 법 역시 100% 합헌판단을 받을 것이다. 오히려 단 1명의 헌법재판관도 위헌의견을 달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다. 법원이나 헌재는 얼마든지 법해석을 그르치거나 엉터리 법리를 세울 수 있다. 이때 입법권자인 국회는 얼마든지 입법권을 행사하여 사법부의 엉터리 법리를 뒤집을 수 있다. 사법부와 입법부 사이에도 이런 견제와 균형 잡기가 있어야 바람직하다. 법원과 헌재가 정치와 입법의 역할을 대체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헌재와 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에서 시대정신과 국제기준에 맞는 적극적 법해석으로 올바른 법리를 세우지 못했다. 그렇다면 국회가 나서서 진취적인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도다.
요컨대, 법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과 분쟁이 법원으로 가는 순간 국회와 정치권이 무조건 일손을 놓아온 오랜 관행은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처럼 입법적 해결이 가능한데도 국회와 정치권이 사법부만 쳐다보는 무책임한 행태를 계속해선 안 된다. 만약에 야3당의 공조로 해직교사의 조합원자격을 인정하는 교원노조법 개정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노동인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는가, 해가 되겠는가. 답은 100% 전자 아닌가.
실로 그날이 오면 직접당사자 6만 교사가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배우자와 부모자식 등 직계가족 36만이 안도할 것이다. 열렬지지자 1천만 시민이 환호할 것이다. 양식 있는 국민 4천만 명이 옳다고 성원할 것이다. 유엔, OECD, ILO, UNESCO, EI(국제교원단체총연맹) 등 국제기구들이 일제히 환영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안이 이보다 더 비정상의 정상화에 부합할 것이며 어떤 사안이 이보다 더 국내외에서 정치적 호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야3당은 조금도 망설이거나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전교조의 합법지위 회복입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공조해서 야3당이 잃을 것은 전혀 없다. 시대착오적인 전교조 법외노조 사태마저 되돌려놓지 못하면 20대 국회와 야3당은 두고두고 역사적 직무유기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다. 전교조는 이미 넘치게 괴롭힘을 당했다. 부당한 고통과 시련은 단 한시라도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악법 하나 때문에 엄연히 살아있는 전교조가 공식세계에선 죽은 유령노조 취급을 받는다. 이것이 법살이 아니고 무엇이랴. 악법과 법살만큼 두고두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고 부담으로 남는 건 없다. 공동체구성원 모두가 일정부분 공범인 측면이 있는데다 법질서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불신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법과 법살의 과거청산은 새로운 법공동체의 최우선 과제다. 잊지 말자.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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