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by gyobasaNPO | 2020-04-14 11:00

밥이냐, 공부냐…그것이 문제로다

 

착착착… 썰어놓은 파를 한껏 달궈진 프라이팬 속에 투하한다. 마늘도 한줌이다. 촤악… 벌써 파 기름이 배어 나온다. 파와 마늘만 달달 볶고 있는데 그 순간에 벌써 냄새로만 끝나버린 아이들도 있다. 부엌문 너머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이는 참지 못하고 슬금슬금 컵을 집어 들고 괜히 목을 축인다. 그러나 결국 “오늘 점심은 뭐에요? 오늘 뭐 먹어요?” 한 마디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온다.

 

나는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그나마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들 중 일부가 나오질 않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에 준비해야 할 식사 인원은 20명이 넘어간다. 최근 들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센터를 나오는 아이들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 고로 점심 준비는 점점 더 전투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리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긴 하지만 저녁만 담당하신다. 지역아동센터들 대부분이 급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조리사는 센터에서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부분이어서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 센터는 하루 한 끼만 준비를 해주신다. 그나마 그 정도도 감지덕지하며 살고 있다.

 

아무튼 그런 까닭으로 방학이나 학교가 쉬는 일이 생기면 아이들 점심부터 걱정을 해야 한다. 물론 점심 한 끼 정도니 도시락과 같은 간편식을 주문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미지근하게 식은 도시락은 약간의 편리를 제공하긴 하지만 딱 그뿐이다. 도시락으로 배달되어온 음식을 권하는 것이 때로는 더 힘들어, 마음이 힘든 것보다는 몸이 힘든 게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든 날부터 나는 부엌칼을 들기 시작했다.

 

물론 매일 신경 써서 장을 보고. 시간 맞춰 조리해서 점심을 내는 게 결코 쉽진 않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코를 벌렁거리는 아이들 모습이 보기 좋으니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그런 콧노래가 현실로 실현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의 기대와 흥분에 같이 전염되어 매일 멋진 작품을 기대하며 점심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점심 준비가 고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모두 아침 공부를 하고 있다. 대부분 지난 학기에 배웠던 수학 등의 기본과목을 문제집을 통해 복습을 하고 있는데, 이를 전혀 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 숨어 있는 진짜 문제의 하나다. 사무실에서 잠깐씩 업무를 보면서도 가능했던 공부 봐주기가 치열한 점심 준비를 하면서는 전혀 가당치 않다. 12시를 맞추어 음식을 내려면 치열한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밥이냐, 공부냐…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왜 불러? 왜 불러?

 

만약 밥을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신이 나서 아이들과 공부를 했을 것이다. 특히 지난 겨울방학에 5학년 과정을 마친 여학생 3명과 함께 시작한 ‘분수의 곱셈’ 부분은 아이들이나 나나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공부를 해오고 있던 터라 밥만 아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작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처음부터 공부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공부라면 ‘됐고’ 특히 수학이라면 ‘딱 질색’인 아이들이었다. 초등학생들만 이용하는 우리 센터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최고 학년에 해당하는 절친 3인방의 여학생들이니 ‘천하무적’인 셈이다.

 

어느 날 아이들을 불러 모으니 ‘아.. 새삼스레 왜 그러시냐?’ 돌아오는 반향이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서로 모른 척 살았는데 새삼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저 멀리서 “아 싫어요, 왜 그러세요?”를 연발하며 좀비 셋이 흐느적거리며 겨우겨우 사무실 문턱을 넘는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 중에는 늦장을 부리거나 아예 센터를 빠지고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없지 않다. 그런 아이를 보다 못해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 집을 들러 아예 함께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센터에라도 성실히 나와 주는 아이들에게는 감사를 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센터에 나온 아이들은 하루 온종일을 센터에서 보내게 되므로 센터 교사들은 아이들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특히 조금씩은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교사들이 많다.

 

그래서 방학이나 지금처럼 학교를 가지 못하고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오면 보통 오전에는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학년의 공부를 큰 고민 없이 잘 해내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아이를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으면 바로 곁에서 “선생님 몰라요, 도와주세요.”가 연발한다. 특히 학습지도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센터 교사들은 때로는 땀을 한 바가지씩 흘려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행정업무는 물론 외부 회의 등 소화해내야 할 일정도 적지 않아서 아이들 곁에 앉아있을 짬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밥을 하러, 전화를 받으러, 코로나 사태로 11시마다 긴급 돌봄 현황을 보고하러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모래가 손아귀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럼 이건 뭘 것 같아?

 

어쨌든 그 와중에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서는 학교 공부와 달리 익히는 것 위주로 공부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어 가능하면 문제풀이에 매달리지 말고 여러 가지를 직접 경험해보는 식으로 공부를 해보길 권유하고 있다. 수학 공부를 하면 길이를 재는 문제가 나오면 직접 자나 줄자를 가져와서 재보게 하고, 수를 다루는 문제는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여러 개 구입해놓고 직접 헤아려가며 문제를 풀어보게 한다. 곱하기나 나누기를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으면 우선 곱하기나 나누기가 무엇인가를 되물어본다. 곱하기는 곱하는 것이고, 나누기는 나누는 것이라는 답을 하는 아이들은 이런 일을 무척 귀찮아한다. 이런 과정을 못 견뎌 하며 “더해요? 빼요? 아니면 곱해요?”를 연발하다가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다른 선생님을 찾아 화를 내며 떠나버리는 아이도 있다.

 

초등수학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개념을 배우는 것이므로, 추상성이 높은 수학도 가능하면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며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나로서도 벌써 몇십 년간 무척 고심을 하고 있는 초등수학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분수의 나눗셈에 대한 개념 문제이다. 분수의 곱셈은 곱셈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직접 조작해보는 것이 가능해서 내가 이해한 바대로 내 말로 설명을 할 수 있겠는데, 분수의 나눗셈은 영 감이 오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3인방과 함께 고민을 해볼 시간이 조금 넉넉해지자 그 실마리가 마침 보이길 시작했다.

 

우선 분수의 곱셈을 공부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다는 말을 먼저 해두어야겠다. 우는 아이, 짜증내는 아이, 싫증 내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긴 길을 걸어온 기분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분수의 곱셈 단원을 그래도 즐기며 공부하게 되었고, 어려운 문제를 대하면 포스트 잇을 달라고 하여 종이를 접고 잘라가며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정도에는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접고 자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럼 이건 뭘까?”를 묻고 또 물었다. 왜냐하면 종이 한 장에 한 장을 더하면 두 장이 된다는 생각에 틀이 박힌 아이들은 포스트 잇 한 장을 잘라 두 조각을 내어도 “두 장!”이라는 답을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포스트 잇 두 장과 포스트 잇 한 장을 둘로 자른 두 조각을 나란히 들고 “그럼 이건 뭐라고 부르고, 이건 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를 몇 번이고 되뇌어야 했다.

 

끈적한 포스트 잇은 서로 잘 달라붙기 때문에 곱하기의 몇 배를 붙여서 보여가며 익히는 과정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포스트 잇을 4조각으로 나누어 그 중 한 조각을 잘라버린 똑같은 포스트 잇 세 장을 겹쳐 붙여본다.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3/4 곱하기 3’이라고 답한다.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3/5 곱하기 3’을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포스트 잇 한 장을 5조각으로 나누어 두 조각을 잘라버린 똑같은 종이 3장을 겹쳐 붙여놓는다. 그럼 다시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할까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9장이라고 답한다. 그럼 다시 우리가 종이 한 장을 몇 조각으로 나누었던가? 그래서 지금 보는 9개의 조각들의 각각은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가를 재확인한다. 분수의 곱셈이 만지고 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연하게 명명하는 것을 배우는 순간이다.

 

또 포스트 잇을 한쪽 방향으로 3조각으로 접어준 후 다른 방향으로 4조각으로 접어서 이를 펼쳐 종이가 12조각인 것을 확인한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앞서 접은 것은 1/3이고, 이를 모두 똑같은 조각 수만큼 접어냈으므로 그 과정이 곱하기라는 것을 익힌다. 또 4조각으로 더 잘게 조각을 냈으므로 이것이 3/1의 1/4씩을 만드는 과정이란 점도 익힌다.

 

종이를 가지고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수학적 용어로 표현될 수 있고, 그것이 실제 생활의 어떤 부분과 맞닿아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쉬운 과정은 아니었기에 공부를 다 하고 나면 책상 가득 포스트 잇이 수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한 과정을 포스트 잇이라는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써서 접고 오리며 공부하고, 그리고 별 무리 없이 이해되는 과정이 신기해서 아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오랜만에 수학에 몰두할 수 있는 눈치였다. 툭하면 우는 아이를 다독여가며 조금의 발전도 놓치지 않고 칭찬해가며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다. 개학을 할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복습이 아닌 6학년 수학의 첫 단원 분수의 나눗셈을 공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분수의 곱셈은 역수를 곱하라는 공식이 박제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1 나누기 1/2은 2가 되는 것인지를 나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땐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은 그게 가시처럼 목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1 나누기 1/2은 2가 되는 것인지 나는 아리송하기만 했다. 아마 아이들 교과서를 보고 공부를 했더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을 나는 그저 내가 이해한 논리 속에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마냥 끙끙거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포스트 잇을 접고 나누던 어느 순간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1 나누기 2가 종이 한 장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 한 사람의 온전한 몫이 1/2장의 종이가 되는 것이라면, 반면 1 나누기 1/2은 종이 한 장을 가지고 한 사람의 온전한 몫 중 절반만을 나누어주는데 쓰는 것이므로 이 한 사람이 온전한 몫을 가지려면 종이가 2장이 필요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1 나누기 1/2이 2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한 장을 절반이라고 치고 나누어준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온전한 몫은 당연히 두 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정말 기뻤다. 그리고 분수의 나눗셈은 실은 나누기를 통해 한 사람이 받아야 할 온전한 몫의 문제, 즉 평등의 문제를 묻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비로소 몇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왜?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는 지역아동센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가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거나,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며 긴급 돌봄을 하느라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거나 정보통신 취약계층 가정들의 아이들을 많이 돌보고 있는 센터에서는 이번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더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 온라인 개학을 센터에서 맞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어 그나마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다행이란 학부모님들도 계시지만, 더 이상 일을 쉴 수가 없으니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적지 않다. 특히 그런 가정에서는 아이들 혼자 맞이하는 온라인 개학을 감당할 수 없을까봐 거듭 센터에 부탁을 해 오신다.

 

초등학생들까지 개학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센터 내에서도 고민이 적지 않다. 정부에서는 컴퓨터 등의 사무기기도 일종의 자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지역아동센터 운영보조금 등에서는 구입을 할 수 없도록 한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설혹 구입이 가능하다고 해도 부족한 운영비에서 이를 지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를 빌려준다고 하는데도 혹시 기기가 파손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빌리고 싶지 않다는 학부모님들도 계신다. 그러니 ‘돌봄’에서 잘 좀 알아서 돌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신다. 또 스스로 핸드폰에서 아이 계정을 없애시고 계정이 없어 학교 플랫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를 봐달라는 분도 계신다. 한 명, 한 명 출석과 과제를 확인하고 진도를 확인하는 일에 총 매진을 해야 할 때가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하드웨어도 문제, 소프트웨어도 문제 부족한 일손에 두려움만 커져간다.

 

이렇게 개학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이미 공부를 한 터이니 더 이상 센터에서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그럼 또 언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놀이로 바꾸던지, 프로그램으로 변형을 하던지, 이도저도 아니면 일상에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녹여내던지, 이렇지 않고는 공부를 할 시간이 별로 없을 터이다. 공부란 그저 학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엄중히 항의를 해올 것이다. 우리가 왜 또 센터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요? 그에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도 나눌 기회가 없다.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말이다. 왜 여기서?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3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