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30년지대계 (8) – 대입전형의 미래를 위한 제언 (1):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미래

by slowalk | 2015-04-01 15:08

※ 본 글의 내용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 개최한 ‘학교교육과 평가, 그 미래방향을 모색한다’ 토론회의 발제문에 게재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제시된 3개의 제언 각각을 3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제언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미래’를 소개합니다.


 

역사적인 경험은 가까운 장래에 대입전형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하지만, 한국 대입전형이 추구해야 할 변화(즉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도모해야 할 바람직한 변화는 있는 것이다. 대입전형의 미래 변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제안하는 것은 결국 자의적인 행위이다. 제안하는 개인의 안목과 정신을 드러내는 데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와 만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한 숙의는 새로운 제안과 함께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대입전형의 역사는 또 하나의 기로에 닿아 있다. 이른바 객관적이고 투명한 전형을 추구하며 국가시험을 세련시켰던 역사는 시험의 편협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와 지속적으로 씨름해 왔다. 학교 교육과 학생들의 학업이 모두 하나의 시험 준비로 좁아드는 현상을 늘 고심해야 했다. 이 맥락에서 전형 역사에 들어 선 대안은 학교 내신(학생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 대입전형은 국가시험과 학교 내신의 마땅한 조합을 찾고 있다. 대학이나 국가 수준에서나 여러 방향의 실험(시행착오)과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크게는 내신과 시험 성적을 수시와 정시를 나누어 채택하는 구도를 만들어 왔다. 그 안에서는 시험 성적과 내신을 함께 고려하기도 하고 별도로 고려하기도 하며, 어느 한 쪽을 취하고 다른 것을 버리기도 한다. 이 과도적 과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지 답해주어야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제안의 핵심이다. 최근 국가 정책은 국가시험의 영향력을 낮추고 내신(학생부)의 역할을 키우는 방향으로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있다. 대입전형의 강박적인 부담을 완화하면서 학교교육의 ‘정상화’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최근 정책에 싣고 있다. 대입전형의 미래 논의는 이런 정부 정책 경향을 면밀하게 검토해주어야 한다.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미래

 

대입전형의 미래를 보며 정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력 또는 부담을 낮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마땅하고 현실적인지 검토해보자. 한국 대입전형에서 시험의 요소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한국 대입전형 역사에서 시험이 배제된 적은 없다. 이미 보았듯이 시험은 꾸준히 세련되면서 국가 수준의 것으로 표준화되어 왔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고등학교 교육의 실질적인 과정(課程)을 규정하고 있다. 각 고등학생이 학습해야 할 교과와 수준을 사실상 규정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니는 이런 영향력은 반사적으로 많은 비판을 몰고 온다. 부담을 가중한다든가 학교교육을 훼손한다든가 하는 비판들이 그런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미래 향방은 이런 비판들이 동원해내는 반기(反旗)의 힘에 달려 있을 터이다. 최근 정부가 시도하는 ‘선택형 수능’이니 ‘절대 등급제’니 하는 변화가 그런 반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소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시험이 중요한 전형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신뢰가 한국 사회에서 뿌리 깊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여년 역사를 통해 구축된 수능의 신화(‘실력’의 잣대가 다름 아닌 수능이라는 신화)가 쉽게 해체되지도 않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중요한 대입전형 요소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입전형의 중심에 남아 있게 되는 이유는 한국적인 통념이나 신화 탓만은 아니다. 대입전형을 위한 국가시험은 한 나라 학교교육에 명료한 목표와 동기를 제공한다. 학교교육의 결실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실체적인 전망을 제공하고, 학생과 가정 그리고 학교가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지원해야 할 이유를 뚜렷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시험이 국가 학업 성취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학업성취를 비교하는 많은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학업 성취도 국제 비교에서 한국이 기록하고 있는 탁월한 성적은 대입전형에 결부된 국가시험에 신세지고 있는 바가 작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없애거나 그 시험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낮춘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국제 비교에서 한국의 명성은 퇴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가 교육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 변화의 득실이 어떻건, 한국사회가 그런 변화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의 초점이다. 국가시험은 과도적으로 변방으로 밀리더라도 다시 중심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위상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그 시험으로 인한 부담은 한국사회가 감수해야 한다. 남는 과제는 부담을 의미 있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부담 없는’ 시험으로 변화시키기보다 마땅한(교육적인) 부담을 지우는 시험이 되게 해야 한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다분히 ‘잔꾀’를 부리는 공부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위한 교재나 강의에서 ‘요령’이나 ‘전략’이란 단어를 무수히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그 시험공부가 상당하게 정도(正道)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진로(전공)에 필요한 과정(수험 과목)을 반드시 요구하지도 않고, 다양한 교과들의 가치를 고유하게 존중해주지도 않는다. 필요한 교과에 정통한 학업보다 전략적인 과목 선택을 오히려 부추긴다. 평가 양식에서는 문제 해결의 과정을 불문에 부치고 ‘답 찍기’만 요구한다. 득점의 실질적인 의미가 모호할 수밖에 없는 시험이다. 이런 상태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부담이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기울인 노력(부담)이 대입이라는 엄청난 보상을 얻게 될 수 있지만, 그 보상이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준비가 교육적으로 가치로울 수 있는 시험이 되어야 한다.

 

교육적으로 가치롭기 위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우선 국가 교육과정 표준에 근거한 시험이어야 한다. 교육과정의 정신을 바탕으로 학업이 이루어지도록 이끄는 시험이어야 한다. 고등학교 교과를 대체로 포괄해야 하고, 속도시험(speed test)이 아니라 능력시험(power test)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문항 형식은 시험 관리나 채점의 효율성을 위해 결정되기보다, 평가되어야 할 역량을 감안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성적은 수험생들의 서열을 변별하기 위한 용도로 매겨지기보다, 개개인의 성취를 교육과정 표준에 비추어 절대적으로 표시하기 위한 용도로 매겨져야 한다. 수험생들의 점수 분포를 특정하게 만들기 위해서 난이도를 조정한다는 발상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시험이어야 한다. 철저하게 교과표준이 지시하는 난이도를 지키는 시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요건을 전제하면 ‘물 수능 불 수능’의 사태는 논리적으로 없다, 교육과정 표준에 비추어 잘/잘못 출제된 시험이 있을 뿐이다. 자격시험이니 선택(본) 시험이니 하는 구분도 태생적으로는 없다. 대학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격시험일 수도 있고 본시험일 수도 있다. 절대평가니 상대평가니 하는 논란도 시험 성격에 이미 정리되어 있다. 당연히 절대평가의 성질을 전제한다. 시험과목은 고등학교 과목 수만큼으로 많아져야 하고, 시험 시간은 과목별로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이런 시험을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매우 이상적인 제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국가시험이 추구해야할 방향이라는 점도 틀림없어 보인다. 국가시험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상황을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면, 이상적인 요구들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흘려버려서도 안 된다. 그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책의 사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들의 길이다. 정책이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만큼 고등학교 교육을 훼손하게 됨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대가(미래 국민의 비교육적 성장의 대가)를 상상해보면, 이상적인 국가시험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막대하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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