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4-12-17 16:58
2010년 11월쯤에 교과부 특별교부금 200억이 내려올 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교육재정법에 따라 교과부장관은 교육예산의 4%까지는 미리 용도를 특정하지 않고 예산을 짤 수 있다. 교육부장관의 ‘쌈짓돈’이라 불리는 특별회계예산이 그것이다. 2010년 현재 이미 1조가 넘는 거액이다. 만약 이 예산을 일반학교 예산으로 전용하면 전국의 1만여 학교에게 빠짐없이 연간 1억씩을 더 줄 수 있는 예산이다. 만약 학교가 이 추가 재원을 추가 냉난방에 1/3, 시설관리에 1/3, 교육활동 지원에 1/3을 쓰면 학교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만큼 큰 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돈을 교육부장관이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주무른다.
특별회계는 본래 재해지역 학교에 긴급구호 및 복구자금을 보내야 할 필요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용도의 자금비중은 8.6%(2003~2007)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회계의 대부분은 교육부장관이 독자적으로 정책사업을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 자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걸로도 다 쓸 수 없어서 상당부분은 전국의 교육청에 연 2회 특별교부금 형식으로 나눠준다. 서울교육청의 몫은 대체로 연간350억에서 4백억이다. 교육부장관이 체육관 신설, 식당 신설로 용도를 국한해서 특정해주는 경우도 있고 용도를 특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시설예산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변이다.
서울교육청은 봄가을에 교육부로부터 학교시설용으로 특별교부금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초 예산을 짤 때 탈락했던 시설소요 중에서도 연간 3~4백억은 추가적으로 충족되리라는 점을 안다. 보통 학교로부터 그때마다 다시 신청을 받는다. 서울의 시의원, 구의원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특별교부금을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크게는 몇 억까지 금년도 시설예산을 짤 때 우선순위에서 빠진 갖가지 시설사업이 올라온다. 때로는 다양한 줄을 타고 올라온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관내학교의 시설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장의 부탁을 받고 강력한 로비를 하는 건 자연스럽다. 특별한 업체와 연결된 게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교육부 특별교부금 로비는 좀 특이한 부분이 있다. 교육부와도 얘기가 끝났다면서 밀고 들어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교육청에서 후순위로라도 올려주기만 하면 교육부에서 우선순위를 부여받게 돼 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할 때가 있다. 실무진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후순위라도 올려주게 돼 있다.
2010년 늦가을, 나는 2백억이나 되는 교육부 특별교부금을 아무런 전략목표 없이 학교에서 시설소요를 신청 받아 찔끔찔끔 쓰는 오랜 관행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시설용도 특별교부금 200억을 모두 중학교 식당 신설에 쓰도록 조치했다. 친환경무상급식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중학교 식당 신설이 최우선 시설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식당이 없는 중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그 중에서 제일 중식지원비율이 높은 학교 순으로 총17개의 학교를 선정했다. 다시 말해서 제일 가난한 지역의 학교부터 식당을 지어주기로 했다. 더 많이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지원하고 같은 값이면 더 빨리 지원한다는 소신을 반영한 셈이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한 달 후 교과부의 공문을 보고나서 어이가 없었다. 신청학교 식당시설자금의 각 50%만 돈을 대줄 테니 나머지 50%는 교육청 예산을 매칭시키라는 조건부 승인이었다.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교과부의 전 방위적 딴지걸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무엇보다 졸지에 200억에서 100억으로 특별교부금액이 100억이나 날아간 게 원통했다. 특별자금을 전략적인 특별용도를 정해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원칙인데 이것 때문에 처벌받은 셈이었다. 둘째, 2011년 예산으로 확보된 매칭자금이 없기 때문에 17개 중학교에 대해서는 공수표를 날린 셈이 됐다. 아무리 빨라도 식당 신설이 2012년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려오는 얘기는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보복에 더해 다른 요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교과부장관과 얘기가 다 된 관내학교들의 시설자금 소요를 내가 100% 무시했다며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사실 직원들도 당시 100억은 일반용도로 열어서 신청을 받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나는 특별교부금은 반드시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식당 신설로 용도를 특정하고 중식지원비율을 객관적 선정기준으로 제시했다. 특별교부금을 둘러싸고 로비가 통할 여지를 원천봉쇄한 셈이었다. 그 결과 그때까지의 관행을 믿고 이런저런 약속을 했던 국회의원들과 시의원들이 머쓱해진 것이었다. 이 분들에게는 미안스럽게 생각하지만 특별교부금에 대해서는 전략적 목표를 정해서, 예컨대 동아리실 시설개선, 아이들 샤워실 제공, 학교 구석구석에 아이들 쉼터 마련 등의 특별한 목표를 정해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래야 특별교부금이라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교육부장관에게 천문학적 규모의 특별자금이 주어지면 국회의원은 누구든지 교육부장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지역구 학교에 이 돈으로 뭔가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도 규모는 작지만 쌈짓돈이라고 불리는 미리 용도를 정하지 않은 특별자금이 주어진다. 때로는 시의원들과 국회의원들이 이 자금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기는 것처럼 교육부장관의 쌈짓돈 역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교육감의 쌈짓돈 규모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교육부장관의 쌈짓돈도 줄여야 한다. 이 돈을 쓰기 위해 수많은 정책사업이 만들어지고 교육부 관료들이 밤낮없이 바쁘다. 이 돈은 교육부장관의 권력의 원천이다. 교육의 중앙집권의 원천이다. 교육감 선거가 교육계 권력분산의 1차 계기였다면 이제 교육부장관의 특별회계 규모 대폭감축으로 교육계 권력분산의 2차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부를 없애야 교육이 산다는 역설은 교육부장관의 특별회계와 정책사업 감축에 비례해서 교육자치와 학교자율이 살아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맞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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