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4-09-16 15:38
특별한 성장 배경을 가진 마이클 애플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Can Education change Society?)’ 이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교수 마이클 애플(Michael W. Apple)이 작년에 펴낸 책의 제목이다.
필자가 이끄는 단체의 이름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라, 지난 봄 미국의 AERA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Association) 교육학회에 참가했을 때, 도서전시회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떻게 하면 혹은 어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어떤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제안하고 있을지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그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부모에서 태어나 인쇄공으로 일하다가 교원이 되어 교원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최종 학력은 콜롬비아 대학에서 교육과정을 전공한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1979년에는 <이데올로기와 교육과정(Ideology and Curriculum)>이란 저술을 통해 지난 20세기에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저서 20권에 선정되기도 한 저명한 학자다. 이런 그가 이번 가을 한국을 방문한다. 서울을 비롯해서 전주 등 지방까지 돌며 이 질문과 관련해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책의 표지제목이 던지는 질문의 답은 정부와 한국의 교육계 모두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 독후감을 겸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공유한다.
이 책의 구성과 개요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교육이 불평등을 생산하는 측면에서 우파(the Right)와 좌파(the Left)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양쪽 다 교육이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키거나 지금의 교육을 전면 바꾸기 위해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필자가 마이클 애플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모든 관심과 노력이 불평등 해소, 사회정의 실현 등에 초점이 있고, 이의 실현을 위한 개혁 운동도 <배려, 사랑, 연대>란 가치를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교육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실행 사례들을 보여준다.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1장과 8장에서 표지 질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머지 장에서는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와의 토론 내용을 통해, 또 진보적 교육을 꿈꿨던 조지 카운츠(George Counts) 등의 학자를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책 속의 논의에 초대해 자신의 견해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란 주제와 관련해서 주로 미국의 사례를 들지만 아르헨티나, 한국 등의 외국을 방문한 경험도 들려준다.
그는 과거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교육이 독자적으로 사회를 바꿀 힘이 있는지 아니면 교육은 경제적, 문화적 지배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도 애플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자들이 실질적으로 교육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책 제목으로 쓴 질문에 대해서는 논의의 주제에 따라 책의 여기저기에서 약간씩 강조점이 다르게 답을 제시한다. 책의 제1장에서는 아래와 같이 매우 간결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이 정도의 답을 줄 수밖에 없어 답답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정직한 대답이라고 고백한다.
필자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읽기 전까지는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그가 주문하는 방법들이 매우 급진적이거나 과격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가지고 있었지만 실은 그 반대다. 책을 읽어 갈수록 그는 급진적 평등사회를 꿈꾸는 학자임은 틀림이 없지만 매우 합리적이고 신중하며 온건하기까지 한 ‘액티비스트(activist)’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소개하는 자신의 성찰이나 주장은 독자가 처한 환경에 맞는 내용인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부탁한다. 특히 교육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때는 그 교육이 처한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애플과 신자유주의
위스콘신 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바 있고, 그의 사상을 잘 아는 국내 학자 한 분은 그만의 특별한 사상이란 게 없다고 말한다. 그저 여러 사람들의 사상을 잘 결합시키고 재해석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동일한 주제를 말하더라도 그만의 통찰력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행동하는 학자란 점이 존경스럽다.
우선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크다. 그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상품화, 시장화, 경쟁, 선택, 비용과 효과의 분석 등을 바탕으로 한 하나의 종교에 맞먹는 힘을 가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오랫동안 직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계층에게는 기회의 문이 되지만 다른 어떤 계층에게는 기회의 문을 닫는다고 그는 말한다. 또, 그는 신자유주의는 ‘그들이 누구인가(=정체성)’에 대해 한 가지 선택만 강요하며, “소비자가 되라”란 메시지를 통해 제품의 선택으로 개인적 이득을 얻는 것으로 동기를 유발시키려 하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 속성으로, 선택과 개인적 이득 추구에 충실하면 집단적 책임감이나 사회정의 같은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그릇된 믿음, 선택의 강조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과 같은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파괴시키는 점’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울러 집단 정체성(collective identities)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대해 저항하기를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학교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또 사람들을 상품의 소비자로만 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공동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 이득만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있는 오늘날의 학교교육은 경쟁과 선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준다.
애플의 사회개혁 철학 – <배려, 사랑, 연대>
그는 자신의 책 제목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꺼번에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나서는 이와 연결시켜 조금씩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진보적 사회개혁을 위해서 그는 3가지 중요한 가치 <배려(care), 사랑(love) 그리고 연대(solidarity)>에 바탕을 두며,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면 배려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연대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교원노조를 이끌었던 그의 경력에 어울리는 생각이다. 연대란 단어 앞에 배려와 사랑이란 단어를 꼭 붙인다.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관절염을 앓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스스로 장애인이라 규정한다. 그는 장애인 권익 신장 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관절염 때문에 장시간 서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하는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대학은 넉넉지 않은 예산 사정 속에서도 장소나 통증에 따라 사용자가 높이나 기능을 다양하게 바꾸어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자를 제공한다. 이 의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신은 다시 ‘정상인’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의자를 갖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자신이 ‘장애인’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는 정상인(normal)과 장애인(disabled)의 2분법적 구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그는 세상을 바라볼 때 결코 장애인으로서 바라보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장애인이라는 명칭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깎아 내리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실제 역량보다 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교 안팎의 장애인 인권운동을 지지하며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명예스러운 ‘딱지 붙이기의 정치(politics of labeling)’를 줄이는 데도 힘을 쏟는다. 그는 책의 이 지점에서 다시 책 제목의 답을 새로운 각도에서 밝힌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바꿀 수 있다.” “사회가 각종 계급적 요소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때만(if and only if) 가능하다.”
애플은 교육이 사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지, 아니면 교육이 소위 ‘보수적 현대화(Apple, 2006)’에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그런 꿈은 유토피아를 찾는 일에 불과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아 나간다.
애플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계급 간의 관계와 경제적 역학관계와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전 세계적이며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그 힘이 가공할 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 외에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감성적 불평등(affective inequality)’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성적 불평등은 다름 아닌 <배려, 사랑, 연대>를 좌절시키고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을 감성적 불평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애플의 주장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애플의 사회개혁 전략 – ‘탈중심적 연대’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계급, 인종, 성의 경계를 초월하고 동일한 힘을 가진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의 수평적 연대란 의미를 갖는 ‘탈중심적 연대(decentered unities)’이다. 그는 이를 아래와 같이 자세히 정의한다.
“‘탈중심적 연대’란 소수적 약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혹사나 부당하게 이용당하고(exploitation), 지배받는(domination)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 아래 뭉쳐진 수평적 연대를 말한다. 이는 교육적, 사회적 변혁을 위한 진보적 운동이 공동의 발판(common ground)을 마련할 수 있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탈중심적 연대’에 대한 그의 정의가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그가 꿈꾸는 수평적 연대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하나의 이해를 축으로 한 리더십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누구나 “아, 성숙된 사회개혁 운동은 바로 이런 연대를 통해 하는 거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한국의 각 노조들과 시민적 연대도 애플의 바로 이런 원칙과 철학에 주목하면서 더 성숙된 개혁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해관계가 다른 단체들이 어떻게 수많은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는 소위 프레이저(Fraser)의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와 ‘재분배의 정치(politics of redistribution)’의 접목을 언급한다. 상호존중 및 정체성을 위한 문화적 투쟁과 생산·통제·분배·자원의 접근·계층이동·자본 등을 둘러싼 경제적 투쟁이 상호갈등 없이 ‘차이를 초월한 연대(alliances across differences)’를 통해 함께 만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애플이 추구하는 사회 – ‘민주적 급진 평등주의(radical democratic egalitarianism)’
애플은 이 책의 전체를 통해 교육과 사회개혁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며, ‘민주적 급진 평등주의(radical democratic egalitarianism)’와 같은 ‘건강하고 강력한 평등주의’만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과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적 급진 평등주의(democratic radical egalitarianism)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집단적 힘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장애물을 제거하고, 이런 개인과 집단이 바라는 정책과 실행에 좀 더 반응적인 길을 트는 평등주의를 말한다. 이를 실행하는 전략적 도구가 ‘수평적 연대(decentered unities)’인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배려, 사랑, 연대>의 가치 위에 재분배 이데올로기와 인정의 이데올로기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분배는 인정을 요구하고, 인정은 재분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또 사회운동에 있어서 실천적 행동은 ‘정곡을 찌르고 아주 절실한 것’일 때 사람들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런 행동이나 운동은 사람들에게 운동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는 수평적 연대를 통한 연대의식(collective sens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파적 정책들이 어떤 도전도 받지 않고 실행되고, 힘을 더해가면서 소수자의 연대에 큰 손실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교의 개혁운동에 따르는 위험 경고
애플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학교를 사회개혁을 위해 ‘행동하는 장소(places for action)’로 보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모험이 따르는 행동(tasking risks)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히고 있는데, 그는 “학교 내에서든 혹은 학교를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교육기관을 통해서든 정치적/교육적 쟁의 활동에 참가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is risky).”고 경고한다. 그의 이런 경고는 두 가지 위험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는 “나는 문제의 해법과 윤리적/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식의 오만함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고이다. 그는 이런 오만함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개혁운동 과정에서 여러 번 겪었던 일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특정 정치적 성향에 충실한 경우 겸손함과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성실함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위험은 공동의 선(common good)을 비전으로 삼고, 배제도 없고 만인에게 반응적인(responsive) 그런 이상적인 교육제도를 구축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윤리적, 정치적 그리고 교육적 깊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면서 기존의 제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개혁하기를 요구하게 되면 이는 권력을 잡은 지배층 사람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는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배려, 사랑’이란 가치는 반대의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지금처럼 보수주의자들의 공세의 위력이 큰 시대에 교육자들에게 뒤따를 수 있는 위험을 축소하여 말하고 싶지 않다는 심경도 솔직히 밝힌다. 그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대학에 재직하고 있고 “저명한 교수직(distinguished professorship)”이란 자격까지 갖춘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편할 것이란 판단에서 덧붙인 말이다.
비판적 교육학자며, 이 분야의 운동가(activist) 이기도 한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예상 밖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급여를 받으며 노동자로서 존중받을 권리, 합리적인 건강보험, 살만한 주택, 적정 예산이 투입되고 교사와 학생이 동시에 존중받는 학교, 출신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 정직한 정부…등이 일상적으로 거부당하고 있는 현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의 솔직함을 생각하면, 그가 왜 쟁의활동에 따를 수 있는 위험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생존이 버겁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부당하고 억압적인 조건에 저항하면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현실이며 이는 단순히 수사적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마지막 장에서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이룩한 사회개혁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마도 아닐 것(Probably not)”이란 자답을 한다.
그는 마지막 장에서 학교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그 실현을 실험해보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수반해야 함을 재 언급한다. 한국의 상황을 잘 아는 그는 교사를 중심으로 한 교육운동이 어떤 위험에 빠져들게 할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직업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전교조의 법외노조 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셈이다.
학교는 수평적 연대의 한 축이 되어야
그는 책의 제목인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라고 말한다. 교육기관 자체가 ‘일터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장소로서, 특정 지식과 문화를 합리화하는 장소로서, 전략을 동원하고 학습하는 장소로서’ 사회의 일부며 사회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이 우리의 사회와 분리되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며 학교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서 사회개혁을 위한 수평적 연대(decentered unities)의 한 축이 되어야 함을 그는 끊임없이 일깨운다.
그는 또 교육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실제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행동은 마치 좋은 나무가 좋을 열매를 맺듯이 매우 교육적인 힘(educative power)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애플은 이 책에서 지금까지 아래의 두 가지 질문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고 말한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질문과 답을 구하고 있는가?”
그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아래의 질문 하나를 추가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행동으로 옮길 교사는 누구인가?”
그는 교사들이, 억압이 있는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집단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상황이나 시기에 교육기관은 사회 변화에 직접 참여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고 실제 되고 있다. 학교는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될 수 있지만 <배려, 사랑, 연대>란 가치 위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장이 되고, 실제 그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실험실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이 일상적으로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킬 때, 이는 ‘비 개혁가들의 개혁(non-reformist’s reforms)’이 된다. 이를 통해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성과는 진보적 운동과 이를 실행하는 주체들이 늘 깨어있으며, 재분배와 인정의 정치를 잘 결합시키고 이를 계속 진전시킬 때만 가능하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애플의 답
애플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정리한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 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사회 차원의 큰 개혁사업을 구상하고,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며,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평적 연대를 함께 구축하고 이를 방어해 나갈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길은 매우 길고 험난한 길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끝맺는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수없이 많고 현실을 변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다음의 두 가지 핵심사항을 기억하면서 이 책을 끝내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하는 일이 지배 그룹이 원하는 것과 방향이 같으면 그들은(=지배 그룹) 학교나 다른 교육기관에 심하게 분노할(또 탄압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학교기관들은 이미 주요 개혁활동에서 나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어?’와 같은 냉소주의 시대에 이러한 사실을 회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째,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추상적 차원에서는(in the abstract) 알 수 없다. 발코니에 앉아 싸움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창조적이고 결연한 노력을 통해 기존의 잘못된 질서나 관계에 저항하기 위한 새로운 대중(counter-public)을 구성하고 이들을 연대함으로써만 찾아질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를 읽고 나서 떠오르는 질문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애플의 대답을 패러디해서 필자가 만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 같다.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아래 질문들에 대해 어떤 답을 기대하고 원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우리는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가?’,
‘우리는 어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가?’
‘우리는 누구를(어떤 계층을) 위해 바꾸고자 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연대의 힘을 쌓지 않고 또, 지속적인 노력 없이 교육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리고 교육은 사회를 바꾸는 주된 수단도 아닌 것 같다. 이제 왜 애플이 이 질문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지 알 것 같다.
질문의 답을 담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니까, 왠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서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제 더 이상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란 질문보다는 아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오늘날의 교육을 이렇게 만들어온 사회적 힘은 무엇인가?”
“어떤 사회변화를 통해 교육을 바람직하게 바꿀 수 있는가?”
책을 읽은 다른 소감 하나는 씁쓸함과 답답함이다. 애플이 개혁을 위해 그토록 강조하는 학교 교원들의 문제제기와 적극적 행동은 어디 갔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과 학교장들은 왜 공정하지 못한 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데 왜 소수의 교사들만 위험을 무릅쓰고 참가하는가? 애플이 제안하는 <배려, 사랑, 연대>를 통해 지배그룹의 힘을 견제하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새로운 탈중심적 연대는 한국에 존재하는가? 아직 없다면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가?
[후기] 애플의 사상과 비판적 교육학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이 책을 원서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직접 관련이 있는 제1장과 8장 중심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쓴 매우 미흡한 독후감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 바로잡아주고 보충해 주시길 바란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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