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의 자사고정책, 자로 잰 듯한 신의 한 수

by slowalk | 2014-09-16 10:48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지난 9월 4일, 중앙고 등 8개 자사고는 지정취소, 나머지 6개 자사고는 추첨선발 조건부 지정을 결정하고 관계법령에 따라 교육부 협의절차에 들어갔다. 미리 공언한 대로 교육부는 협의요청을 즉각 ‘반려’했다. 조교육감이 협의를 재차 요청했지만 상황이 바뀔 것 같진 않다. 교육부의 처사는 비이성적이다. 법에 따라 협의를 요청하면 의견을 제시하고 이견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협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제멋대로 적법절차마저 무시하는 위법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대통령은 후보시절과 당선인시절 자사고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 취임 직후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의 성적기준 학생선발권을 박탈하고 100% 추첨선발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사고 학부모들과 보수언론의 반발에 밀려 성적제한을 없애는 대신 면접선발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서울시교육청이 애초의 교육부 안을 대신 나서 실행해 주니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정책을 쌍수 들고 환영해야 옳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갑자기 자사고 수호천사 노릇을 자임한다. 정책내용과 상관없이 진보교육감의 정책이라 무조건 어깃장을 놓는다는 의심을 살만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전형적인 이중잣대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학생선발권을 갖는 지금의 자사고는 처음부터 한시적 성격의 실험학교로 도입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사회의 중등교육기관의 한 유형으로 새로 인정받기에는 철학적, 정책적 근거가 워낙 박약하기 때문이다. 자사고 신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유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첫째, 고교평준화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이른바 수월성교육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자사고시대가 열어젖힐 게 분명한 고입경쟁의 격화는 많은 학부모들에게 악몽에 가까웠다. 둘째, ‘끼리끼리 특권학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반고에 비해 3배정도 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경제력과 중상위권(상위50%이내)의 실력을 갖춰야만 다닐 수 있는 이중특권학교를 대다수 시민이 무슨 이유로 찬성하겠는가.

 

자사고 법안은 들끓는 반대여론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입법과정에서 두 가지 조건이 붙은 후에야 간신히 통과될 수 있었다. 첫째 조건은 5년 후 자사고 재지정여부를 교육감이 심사해서 결정한다는 한시적, 실험적 조건이었다. 일단 5년을 시행해본 후 기대했던 학교다양화 효과가 실증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문을 닫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한 셈이었다. 또 다른 조건은 신입생의 20%를 저소득층(사회적배려대상자)에서 충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부모를 뒀다는 이유로 수월성교육의 혜택에서 무조건 비켜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셈이다. 거꾸로 보면 사학법인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한테도 훌륭한 교육을 공짜로 시켜줄 테니 비교적 넉넉한 집안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서 교육시킬 수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한 것이 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수월성교육 주창론자들은 이런 조건을 달고서야 간신히 자사고법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시행 5년차에 재지정여부를 심사하는 교육감이라면 무엇보다도 첫째, 자사고 실험 첫 5년 동안 기대했던 수월성교육 효과, 특히 학교다양화 효과가 나타났는지, 둘째, 자사고가 저소득층자녀들에게도 차별 없는 수월성교육을 시켰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당연하다. 나아가서 논란 많은 자사고가 과연 긍정적 효과가 압도적인지, 아니면 부정적 효과가 압도적인지를 살펴봐야 당연하다.

 

먼저 자사고가 과연 저마다 개성 있고 다양한 수월성교육을 하는지 지극히 의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자사고들은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을 강화하고 문제풀이 반복수업과 선행학습에 매달리는 구태를 계속할 뿐, 정작 교육과정의 통융합적 운영이나 교수학습방법의 혁신, 창의인성 교육활동에선 앞서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사고가 명문대 입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 역시 일반고에 모범과 자극이 되는 다양한 수월성교육 효과가 아니라 우수학생 선발효과에 기인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른 한편 자사고의 부정적 효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확실하다. 첫째, 자사고 비중이 높은 서울의 경우 중상위권 학생들이 자사고로 대거 몰리면서 주변 일반고들에선 우수학생들을 만나보기 어려워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일반고에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물론 일반고 교장들까지 한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것이 이 문제다. 적어도 서울교육계는 자사고를 그냥 놔두고는 일반고 살리기가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둘째, 자사고 때문에 고교입시경쟁이 크게 심화, 확대됐다. 종래 상위 20% 정도에 국한됐던 중학교 시절의 입시경쟁이 50% 선으로 확산된 건 자사고 탓이 결정적이다. 이 부분의 사회적 비용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한마디로 자사고의 부정적 효과와 사회적 비용은 압도적으로 크다.

 

그렇다면 사회적 배려 대상자(이하 사배자) 학생들은 자사고에서 제대로 수월성교육을 받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다만 최소한 두세 가지 측면에서 취지의 타락이 일어난 것은 확인된다. 첫째, 입법당시 염두에 둔 사배자는 당연히 이른바 경제적 사배자, 즉 저소득층 자녀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자녀를 둔 부유계층 등 기타 비경제적 사배자 자녀가 전체 사배자의 과반수를 점하고 있다. 둘째, 입법당시 20% 사배자 학생들의 교육비용은 당연히 자사고 학교법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육부가 처음부터 자사고 판촉차원에서 100% 국고로 지원해왔다. 자사고의 재정 편의를 위해 교육부가 사배자제도의 원 취지에서 벗어난 이중의 타락을 눈감아준 셈이다.

 

그렇다면 자사고 학교법인들은 경제적 사배자 아이들이 집안형편상 감당할 수 없는 해외수학여행 경비나 방과후학교 경비 등을 100% 지원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최소한 이 아이들이 넉넉한 집안아이들과 학력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특별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제공했을까? 역시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사배자 학생들은 등에 잘못 붙은 혹처럼 이질적 존재가 되거나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경제적 사배자 학생의 성공적 학교생활에 필수적인 섬세한 지원배려 시스템을 뿌리내리지 못한 대부분의 자사고는 법의 취지를 어겼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자사고를 비판하면 반드시 영국의 이튼스쿨이나 미국의 필립스아카데미 등 유서 깊은 사립학교를 예로 들며 우리라고 왜 이런 명문사립을 키우면 안 되냐고 되묻는 분들이 있다. 전통과 규율이 강하고 인문교육에 치중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튼스쿨 등 영미권 선진국의 명문 자사고들도 교육과정에서는 배워야할 점이 많지만 특권학교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민자녀를 위한 장학금제도가 완비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상류층을 위한 특권학교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한 것은 영미권의 명문사립학교들이 민주주의와 공교육의 보편화 이전에 생긴 학교들이지 민주주의가 낳은 학교거나 민주주의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하게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힘으로 남아있는 구체제의 잔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이런 고비용 사립학교들이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라고 치켜세우지는 않는다. 현대 민주정치는 이런 학교를 선망하거나 신설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21세기 한국의 자사고 도입은 민주주의와 공교육의 관점에서 명백한 뒷걸음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진단과 분석이 옳다면 지난 5년간 본래의 입법취지 및 존재목적과 무관하게 오직 대입경쟁력을 위해서만 운영돼온 자사고에 대해서는 엄정한 평가를 거쳐 재지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름대로 도입취지에 맞춰 운영돼온 자사고에 대해서도 학생선발방식을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재지정해야 한다. 적극적인 학생선발권을 갖는 자사고는 개별학교 단위에서 아무리 모범적으로 운영돼도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압도적으로 커서 정책적으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정책은 예측가능성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므로 최대한 시행시기를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희연 교육감의 자사고 정책은 이 모든 요건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적어도 내 입장에선 더 보태고 뺄 게 없다는 뜻에서 신의 한 수가 아닌가 한다. 반드시 성공해서 일반고 전성시대로 가는 대문을 활짝 열어주기 바란다.

 

※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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