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4-07-16 17:28
목차
1. 2015 개정교육과정 개정의 초점
2. 2015 개정교육과정의 교과통합이 심각히 우려되는 이유
가. 빅 아이디어를 교과 통합의 조직자로 삼는 공통사회, 공통과학 개발의 구상은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수년간 연기하는 것이 옳다.
나. 공통사회, 공통과학의 도입 논리가 설득력/진성성이 약하고, 도입목적과 달성수단 간의 부조화가 심하다.
다. 융합적 사고력 향상은 교육과정이나 교과 간의 통합을 통해서 시도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교수학습 방법과 수업활동을 통한 실현이 현실적이다.
라.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융합형 교재로 개발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평가도구부터 개발하라.
마. 본격적인 통합교과를 활용한 범교과 수업은 고부담 표준화 시험이 있는 나라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바. 범교과 통합수업은 개별교과의 지식 습득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사. 융합적 접근에 개별교과의 기여나 포함 정도의 차이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아. 범교과 통합수업을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과 교사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7월10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가교육과정 무엇을 왜 개정하는가?”란 제목으로 열린 제1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을 다녀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 방향과 내용에 대해 심히 우려되는 점이 몇 가지 있어서 급히 공유하고자 한다.
1. 2015 개정교육과정 개정의 초점
2015 개정교육과정은 아래의 내용에 초점을 두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가. 2009개정 교육과정의 문제점 해소
2009개정 교육과정의 실행에서 나타난 각 학교급별 문제점을 해소하고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다.
나. 창의적 융합인재 육성을 위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의 도입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란 용어는 사용에 혼선이 있었다. 초기에는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는 계열 통합’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문이과 계열이 존재하는 것은 주로 수능 시험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계열 통합의 의미로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란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이 반영되는 교육과정’이란 의미라고 다시 정의를 하고 있다(제1회 국가교육과정전문가포험 자료집, 2014). 즉, 앞으로는 “어느 영역으로 진로 또는 진학을 결정하든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일부 교과를 공통 교과로 개발 편성하는 교육과정(개정위원회)”이라는 의미로 쓰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부교과는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1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의 자료집을 보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① 진로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인문, 사회, 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②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소수의 핵심적인 지식과 기능을 중심으로 교과 내, 교과 간 연결을 하여 융합적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한다. 현재처럼 구제적인 사실과 정보들을 많이 담게 되면 현장의 획일적 운영을 낳고 교사에게 교육과정의 재구성의 여지를 주지 못하게 된다.
③ 교과의 학습은 학습의 전이를 통해서 학습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④ 진로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기초 소양’을 갖추도록 사회와 과학을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으로 개발하여 편성한다.
⑤ 생성력이 있고, 학습의 전이가 큰 빅 아이디어(big idea; cross-cutting theme)1를 중심으로 교과의 내용을 재구조화하고 이를 교사가 학생들의 선지식을 고려하고, 흥미와 관심에 따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학습하게 하고, 학생 스스로 자신의 사고과정을 수시로 검증하고 개선하도록 수업을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한다.
다.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도입
학습자의 정의적 영역의 특성을 고려하며 교육 내용의 실질적 감축을 추구한다.
2. 2015 개정교육과정의 교과통합이 심각히 우려되는 이유
이상과 같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추진은 무엇이 문제인가? 언뜻 보기에는 매우 바람직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만히 내용을 뜯어보면 우려되는 바가 매우 많다. 우려의 핵심은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통합교과로 개발하려는 구상이다. 이는 신중히 재검토 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빅 아이디어를 교과 통합의 조직자(=공통분모)로 삼는 공통사회, 공통과학 개발의 구상은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수년간 연기하는 것이 옳다.
이번 제1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 자료집을 보면 ‘통합적 접근’을 빅 아이디어를 통해 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를 근거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은 다학문적 혹은 간학문적 접근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연구 책임자인 김경자 교수의 발제문에서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영역 간 단순 병렬적 통합이나, 활동이나 사소한 주제를 통합의 조직자(=공통분모)로 하는 것을 지양한다. 그보다는 빅 아이디어를 통합의 조직자로 삼는다. 또한 빅 아이디어를 다학문적 통합의 가운데 놓으면 교과별로 동일해 보이는 내용을 여러 각도/여러 렌즈로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교과 내 영역 간, 교과 간 연결을 이러한 빅 아이디어와 같은 조직자를 중심으로 한다면,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되는 ‘융합’, ‘통합’의 의도를 살릴 수 있고 실제적 내용 감축을 할 수 있다.’
21세기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복잡하고 여러 학문 분야를 두루 동원해야 풀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고교과정의 일부 과목을 다학문적 혹은 간학문적 접근을 통해 융합적 사고력을 기르고, 범교과 프로젝트형 수업을 통해 학습내용을 학습자의 실제 삶과 연결시킴으로써 학습자가 의미를 느끼고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당위성은 있지만 이런 고민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도 대학이나 대학원 수준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물며 고교 수준에서 사회와 과학의 다양한 과목을 빅 아이디어 중심으로 재구조화하여 교육하려는 나라(더 정확히는 미국의 일부 주)는 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이를 시행해본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안다.
한국은 관련 기초연구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정부터 발표해 놓고 너무 서둔다. 포럼 자료집에서 언급한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등의 국가들도 주로 과학 교과에 한해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s; big idea)의 도입을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 한국이 주로 참고하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차세대 과학교과의 성취기준(Next Generation Science Standards)을 개발하여 발표한 것이 2013년이다. 2014년 3월 기준으로 이에 관심을 갖는 주는 약 40개 주가 되지만 실제 채택하겠다는 주는 11개 주에 불과하다. 2013년 성취기준을 발표했을 때 뉴욕타임즈는 앞으로 실제 새로운 가이드라인들 만들고, 이에 준거해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실현시킬 교사를 훈련하고, 표준화 시험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Wikipedia).
일정뿐만 아니라 고1의 사회, 과학의 성취기준 개발을 위한 프레임과 고2,3에서 배울 전통적인 교과의 성취기준의 프레임 자체가 상이한 것도 문제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미국은 차세대 과학의 성취기준을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과도 정합(alignment)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핵심성취기준을 개발을 했지만 현장반응은 매우 부정적인 상태다. 게다가 한국은 고교 1학년에서 배우게 될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의 성취기준 개발의 프레임이 고2,3에서 선택해서 배우는 사회와 과학의 성취기준의 프레임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런 부정합의 상황이 용인되어도 되는가?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의 차세대 과학교육의 구상이 매력적이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면 개발 절차까지 제대로 참고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고교 교육의 목적을 대학진학(college-ready)과 취업 준비(workplace-ready)로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성취기준을 마련했다. 그리고 역순방식으로 K-12의 성취기준을 하나로 정렬시켰다. 한국의 경우는 현재의 일정대로라면, K-12의 정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교육과정 개발의 원칙이 상위에 있지 않고 문이과 통합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가장 상위에 있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온갖 과정을 꿰맞추는 형국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개발 절차를 밟기 바란다.
전문성 측면에서도 우려되는 바가 크다.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과를 재구조화하는 일은 깊은 전문성을 요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이 여러 전문가 팀을 동원하였다. 이는 간학문적 교과 개발이 얼마나 높은 전문성을 요하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에 경험 있는 간학문 전문 과학자나 학습과학 전문가가 있는지 묻고 싶다.
• 간학문 전문 과학자
• 과학교육 전문가
• 학습과학 전문가
• 교육시스템과 정책 전문가
• 4개의 설계팀의 지원
출처: http://www.gael.org/app/webroot/media/useruploads/files/pruitt.pdf
이상과 같이 제대로 연구나 준비된 것도 없이 성급히 추진하는 것보다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관련 선발 주자들이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는 것을 보고 한국적 특수 상황까지 감안해서 신중히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빅 아이디어 형태의 접근이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한국적 상황은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에 비해 도입 여건이 매우 좋지 않다. 이들 나라들이 시작한다고 해서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우리도 시작하자는 것은 유행을 따르는 수준이며, 절차상 정당성을 갖기도 어렵다. 빅 아이디어를 조직자(공통분모)로 한 간학문적 접근은 선진 교육의 대학, 대학원 수준에서도 많은 문제점에 부딪쳐서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우선 빅 아이디어에 의한 시범 교재를 개발해서 시범 운영을 해본 후 도입을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충분히 준비를 해서 도입해도 범교과적 접근은 단점도 적지 않고, 역량평가를 대규모로 할 수 있는 평가도 개발되지 않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가뜩이나 교육과정 개정을 하향식으로 자주 해서 지치고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현장교사들, 그리고 예상되는 현장의 혼란 등을 고려할 때 빅 아이디어를 교과 통합의 조직자로 삼는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개발하려는 생각은 상당 기간 연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나. 공통사회, 공통과학의 도입 논리가 설득력/진정성이 약하고, 도입 목적과 달성 수단의 부조화가 심하다.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추구하려고 한다. 정부는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의 도입을 통해 사회와 과학의 편식도 막고, 내용 감축을 통해 깊이 있는 학습도 가능하게 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인문•사회•과학의 기초 소양도 길러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의 진단과 해결의 수단 간에 불일치가 심하다. 사회와 과학의 편식은 수능 체제의 문제이므로 수능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내용 감축을 통한 깊이 있는 학습은 빅 아이디어를 통한 통합교재를 통해 실현할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주공통핵심 성취기준의 도입이 바른 접근일 수 있다. 내용 적정화의 한계를 인정하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침으로써 내용 과다문제를 해결하자는 접근이다. 한국도 핵심성취기준 개발을 해봤으나 미국처럼 상항식으로 하지 않고 전문가 중심의 하향식으로 개발한 결과 현장에서 전혀 작동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안다.
또, 사회와 과학에 대한 기초 소양을 키우겠다면 중학교 수준의 사회와 과학 과목부터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왜 과학의 기초소양은 고교 과정에 와서야 반드시 교과 간의 관통개념인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재구조화한 통합교과로 배워야 하는가?
21세기 인재들이 갖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내용의 적정화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교과 이기주의 앞에서는 무력했고 실효성이 없었다. 이제 내용 감축과 관련하여 최선은 다하되 한계를 인정하자. 특히 시수감축이나 과목의 감축은 이를 담당하는 교육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완전히 바꿔보자. 빅 아이디어와 같은 위험한 줄타기 곡예를 통해 내용 감축을 시도하지 말고, 그 대신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문화를 바꾸자. 가르칠 때 80/20의 법칙을 동원해서 80의 효과를 낼 수 있는 20의 내용을 집중하여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Less is more, 즉, 적은 내용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종국에는 오히려 더 많이 가르친 효과를 낳는다. 이것이 현실적일 방법일 것이다. 교과 내용은 많더라도 핵심만 추려서 가르치고 배우게 하자. 교과목이 많더라도 개인의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과 입시전형의 개선으로 해결하자.
또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도입하기 위해 고교 교육의 성격까지 왜곡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런 아이디어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고교 교육을 교양교육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이 교양교육이란 관점보다는 고교 교육의 목적을 한국도 미국처럼 대학진학 준비(college-ready)와 취업준비(workplace-ready)로 학생의 향후 진로에 따라 분명히 이원화하고, 모든 성취기준도 이에 정합시키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빅 아이디어를 반영한 통합교과의 개발은 그 자체의 목적에 충실해야지 편식해소, 내용감축 등 비본질적인 것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삼게 되면 본질은 숨고 시간이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후유증만 남기게 될 것이다. 공통사회, 공통과학의 도입 논리는 비현실적이고 솔직하지 못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진정성 있는 융합교육을 실시하려면, 획일적으로 사회교과 간의 통합, 과학교과 간의 통합만 시도할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 사회와 과학 등의 다양한 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지금 시점에서 교육부와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해보았으면 한다.
• “어설픈 범교과적 수업이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 양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 “오히려 체계적인 기초지식의 결손으로 인해 창의력 개발에 장애요인이 되지는 않을까?
• “기초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증가하게 되지 않을까?”
• “준비도 안 된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불만과 절망을 안겨주는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 “수능시험과 관련성이 낮아 수업에 집중을 덜 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 창의·융합적 사고력 향상은 교육과정이나 교과 간의 통합을 통해서 시도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교수학습 방법과 수업활동을 통한 실현이 현실적이다.
중고교 수준에서도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의 수업을 하는 나라는 적지 않다. 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사회와 과학 교과를 통째로 범교과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 중심의 교과수업을 하되 범교과적 프로젝트 수업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실시할 뿐이다.
우리의 공통사회, 공통과학의 경우도 분과 학문적 성격의 개별 교과의 지식을 충실히 학습하면서 부분적으로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을 시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관련 연구를 하는 한 학자로부터 최근 “과학이든 사회든 핵심개념만 국가수준에서 성취기준 형태로 제시하고 이를 통합하든 분과적으로 가르치든, 팀티칭을 하든, ‘교수학습, 현장의 수업’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들은 적이 있다. 매우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교과 자체를 융합형으로 개발하고 수업 모두를 범교과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관련 기초연구를 충실히 하고 증거기반으로 제반 여건까지 갖춘 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선진교육도 이제 실험단계란 점을 고려할 때, 본격적인 융합교육은 대학, 대학원 수준부터 시도한 후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융합형 교재로 개발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평가도구부터 개발하라.
미국은 주공통핵심성취기준(Common Core States Standards) 개발을 통해 공교육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의 평가전문 연구개발 기관인 ETS를 활용하여 컴퓨터 기반으로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능력까지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구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미국은 이렇게 새로운 성취기준을 개발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제반 요소를 동시에 준비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접근이다. 차세대 평가로 불리는 미국의 이 평가는 형성평가(formative assessment)적 특성도 갖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형성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이는 피드백의 귀중한 근거다 된다. 한국은 평가도구의 연구, 개발 그리고 통합적으로 접근한 사회와 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양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통합교과로 개발하겠다는 일정부터 발표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과정 개발 프로세스다. 미국은 이미 Developing Assessments for the Next Generation Science Standards(James W. Pellegrino 외, 2014)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차세대 과학교과가 실행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이에 맞추어 바로 평가도 개발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이는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프로세스인 것이다.
미국은 주공통핵심성취기준을 도입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고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살펴보자.
미국은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 개발과 함께 이와 연계된 차세대 평가를 두 개의 컨소시엄을 통해 개발했다.
① SBAC(Smarter Balanced Assessment Consortium)
② PARCC(Partnership for Assessment of Readiness for College and Careers)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평가를 통해 미국의 학교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 학업성취도 결과의 신속한 통보
• 교수학습을 지원할 정보 제공
• 학생의 학업성취도 향상(교원의 효과성 평가의 근거가 됨)
• 학습장애아동, 영어가 서툰 이민자녀들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교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절차와 자료의 개선(accommodation)
미국의 새로운 평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평가 과목 – SBAC와 PARCC 두 컨소시엄이 개발한 서로 다른 평가는 모두 주공통핵심성취기준과 연계된 평가며, 다음 3가지를 주 내용으로 한다.
• 영어(쓰기, 말하기, 듣기, 읽기, 문학)
• 21세기 새롭게 요구하는 소양(21C literacies)
• 수학
▷ 평가의 목적 – 둘 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 준비와 직업 세계로 나가기 위한 질 높은 준비를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함.
▷ 두 평가 간의 주요 차이점
• SBAC이 개발한 평가는 피험자 능력에 따라 난이도가 자동 조절되는 컴퓨터기반 CAT(computer adaptive testing: 컴퓨터 능력적응검사) 방식이고, PARCC가 개발한 평가는 전통적 지필방식의 평가를 컴퓨터로 옮겨놓은 CBT(computer-based teating) 방식이다.
• 평가를 보기 위해 1인당 지불해야 할 비용(PARCC $29,50; SBAC $22.50), 문항수, 해당 학년(PARCC 3-11학년; SBAC 3-8 & 12 학년) 등.
앞으로 과학 교과도 주공통핵심성취기준 대상과목이 될 예정이고 이미 개발된 평가도구를 이용하여 역량까지 측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컴퓨터 기반으로 실시하는 객관성, 신뢰성이 높은 평가를 개발하는 것은 학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한국에게는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시급히 필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표준화 시험이 지필고사 중심이다. 따라서 멀리 보고 평가에 대한 연구,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미국 차세대 과학 성취기준 개발 관련 발표자료2는 아래와 같이 <평가, 교육과정, 새로운 수업방법, 교원양성과 연수>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가를 가장 상위에 두고 가장 먼저 개발해야 할 과제로 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림1] 차세대 과학 교과 성취기준의 개발

한편,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범교과 중심으로 교수학습을 한다면 이에 대한 평가는 역량 평가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도 아직 역량을 학교급별 교육과정에 어떻게, 어느 정도 반영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기본적인 준비도 안 된 상태다.
역량 평가에 대해 유럽연합이 내놓은 한 연구자료(KEY COMPETENCES IN EUROPE, 2007)는 다음과 같이 4가지의 평가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 유형1: 범교과적 역량을 명시적으로 평가한다.
• 유형2: 범교과적 역량을 비명시적으로 평가한다.
• 유형3: 개별교과 별 역량을 평가한다.
• 유형4: 개별교과 별 역량보다는 지식을 평가한다.
이상의 4가지 역량 평가 유형은 한국의 학교교육이 앞으로 역량을 어떤 유형의 평가로부터 출발해서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통합적 접근의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어떻게 평가할지부터 고민하고 관련된 정책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마. 본격적인 통합교과를 활용한 범교과 수업은 고부담 표준화 시험이 있는 나라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한국의 고교 과정은 선진 교육에 비해 특별한 점이 있다. 누구를 상위권 대학에 보내고 누구를 중하위권 대학에 보내는 문제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인 것이다. 다른 나라도 고교 과정이 이런 성격을 갖는 것은 공통이다. 하지만 한국이 유난히 더 그렇다. 대입시에 직접 관련이 되지 않는 과목은 공부하지 않는 경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다. 선진 교육처럼 자신의 진로와 연관해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 점수의 유불리를 기준으로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이 범교과적 프로젝트 수행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고1 과정의 통합교과의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매우 의문이다. 범교과 수업은 ‘기초 소양’의 당위성 강조나 간학문적 성격으로 인해 비판적 사고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장점에 대한 선전만으로는 고교 수업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고1 과정에서 배울 것으로 예상되는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수능에서 평가할 것인가 내신으로만 평가할 것인가도 이의 성공과 관련이 깊다. 만일 이를 수능에서 평가한다면 범교과적으로 출제했던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지필고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되는 한 고1 과정의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의 도입 의도는 퇴색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를 내신으로만 평가하고 이를 대입에 반영한다면 이는 고려해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초기 문이과 통합형 수능시험으로 보겠다던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만일 무리를 해서라도 고1 과정의 공통사회, 공통과학을 수능에서 보겠다면 미국처럼 비판적 사고능력과 문제해결능력까지 대규모 표준화 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차세대 수능”부터 개발해야 할 것이다. 수능의 평가방식과 실제 수업의 괴리가 크면 수업을 외면하고 수능스타일로 가르치는 사교육에 의존하려고 할 것이다. 아무튼, 상식수준이긴 하지만 위키피디아의 ‘Interdisciplinary teaching’3이란 항목에서도 범교과적 접근은 고부담 표준화 시험 준비를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지적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바. 범교과 통합수업은 개별교과의 지식 습득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범교과 통합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역량을 강조하면 할수록, 수업은 개별 학과목의 기본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은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범교과 통합수업이 위주가 되면 개별 교과의 지식 습득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큰 것은 미국의 아래 7가지 차세대 과학교육의 빅 아이디어(big idea)를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① 패턴(Patterns)
② 인과관계(Cause and effect: Mechanism and explanation)
③ 규모, 비율, 양(Scale, proportion, and quantity)
④ 시스템과 시스템 모델(Systems and system models)
⑤ 에너지와 물질(Energy and matter: Flows, cycles, and conservation)
⑥ 구조와 기능(Structure and function)
⑦ 안정성과 변화(Stability and change)
이러한 주제별 범교과적 접근의 프로젝트 수업은 개별 교과 지식을 충실히 가르치고 배울 시간적 여유가 적다. 교과 지식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의 범교과적 수업은 학습자들이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초등 수준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의 과제를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통적인 지식 교육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지금 한국은 전통적인 지식교육이 입시중심 교육환경 속에서 교사의 지식 전달식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지식교육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쉽게 “한국의 학교교육은 앞으로는 지식중심 교육에서 역량중심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근거 없이 하는 교육학자, 교육리더들이 많다. 마이클 영과 같은 학자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인지과학(educational neuroscience)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지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창의성도 다양한 지식의 조합과 변형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과목이든, 그 과목에 나오는 어휘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떤 진전된 교육도 불가능함을 경험에 의해 잘 알지 않는가? 수학교과를 초등 수준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학생들이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보더라도 어휘 수준의 단편적 지식도 매우 중요하다. 단편적 지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해당 지식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의미와 가치를 학습자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지식의 활용 부분이 빠진 것이 그동안의 문제였다.
미국의 차세대 과학교육 성취기준의 상위 프레임은 아래 3가지 차원을 제공하고 있다.
• 과학과 공학의 실천
• 간학문적 통합을 위한 관통개념(Crosscutting Concepts)
• 교과별 핵심개념(Disciplinary Core Ideas)
‘교과별 핵심개념’은 개별 교과 내용의 중요성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이나 관통개념과 개별교과의 핵심개념을 어떻게 융합적으로 조화시키느냐는 매우 큰 난제이며 초기에는 어느 한 쪽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만약 이상의 3가지 차원을 잘 반영할 때 이는 고2,3과정에서 선택해서 배울 선택과목과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가 매우 궁금해진다. 마치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처럼 K-12 과학 전체를 빅 아이디어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든가 해야지 고1만 이렇게 하려는 한국의 접근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튼, 범교과적 접근은 분과학문적 교과의 지식을 깊이 있게 배우는 것의 가치를 폄하하게 되는 것이 범교과적 접근의 또 다른 단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 융합적 접근에 개별교과의 기여나 포함 정도의 차이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융합적 접근을 할 때 개별교과의 기여나 포함 정도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개별교과 내용이 빅 아이디어와 연관되는 정도가 각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과탐의 경우를 보자.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이 각 주제마다 동일하게 연관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 교사가 이를 다 가르치지 않는 한, 복수의 교사가 팀티칭을 해야 하는데 각 교사의 기여도가 다른 것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Interdisciplinary teaching’4이란 항목에서도 이런 위험성을 범교과적 접근의 또 다른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아. 범교과 통합수업을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과 교사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재구조화한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할 경우, 일부 장점도 있겠지만, 다양한 단점이 드러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너무나 오랫동안 교과 지식의 습득에 익숙한 교수학습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만일 고1 과정을 범교과적 통합수업으로만 끌고 가려할 때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만을 표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도 높다.
모든 학교에 획일적인 적용을 강요하기보다는, 미국처럼 일정기간 시범운영을 통해 확정한 다음 교육지자체별로 <1안: 분과적인 교과 + 통합교과적 활동>과 <2안: 융합교과 + 통합교과적 활동>를 선택하게 해서 일정기간 그 효과를 비교해 보고 두 가지 접근을 병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는 핀란드가 지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2015년부터 시행하는 종합학교 개정 교육과정에서 개별교과와 교과군(한국의 과탐, 사탐을 일부 인접과목끼리 묶은 것) 중에서 개인의 선택을 장려하고 있다.
획일적인 접근은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사회, 통합과학 등과 같은 통합교과 도입을 확정하기 전에 시범 운영을 통해 범교과적 통합수업을 싫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과 교사가 얼마나 많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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