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살리기’ 논의의 출발점

by slowalk | 2014-07-16 16:22

제2기 민선교육감시대가 시작되면서 ‘일반고 살리기’ 논의가 활발하다. 논의의 시작은 일반고가 위기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언론과 일부 교사들은 이러한 일반고의 위기를 ‘일반고 슬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고 위기의 핵심은, 일반고에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수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특목고와 자사고가 성적 상위권 및 중상위권 학생 상당수를 우선선발하고 나서 나머지 학생들을 일반고에 배정하는 현행 고입제도로 말미암아, 결국 일반고에는 중하위권 학생들이 주로 오게 되고 그래서 교사들이 교실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 해법은 무엇일까? 앞서의 진단에 의하면,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논리 필연적으로 특목고는 몰라도 최소한 자사고는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학교 간 성적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교선택제를 개선하여 균형배정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진학을 원하지 않거나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는 직업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의 일반고 위기 진단과 해법 제시가 모두 ‘성적’을 기준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적’이라는 프리즘만을 가지고 일반고의 위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접근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다시금 우리의 현행 고교체제를 살펴보도록 한다.

 

우리의 현행 고교체제에는 전기모집에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가 있고, 후기모집에 과학중점고와 자공고를 포함한 일반고가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보면 특목고가 일류, 자사고가 2류, 일반고가 3류로 되고, 특성화고는 그 아래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행 고교체제를 ‘진로’를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전기모집에 있는 특목고부터 보자. 특목고에는 과학고, 외국어고 외에 국제고, 예체고, 마이스터고가 있다. ‘진로’를 기준으로 보면 특목고에는 인문계, 자연계, 예체능계, 직업계가 다 있는 셈이다. 또 전기모집에서 이러한 특목고 외에 자사고는 인문계와 자연계 진로를 포괄하고 있고, 특성화고는 직업계 진로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후기모집에 있는 일반고의 ‘진로’ 구성도 분명해진다. 후기 일반고에 전기모집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과 전기 학교에 지원해서 떨어진 학생들 모두가 포함된다고 할 때, 일반고에서의 ‘진로’는 대학진학을 위한 인문·자연계 및 예체능계와 취업을 위한 직업계로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일반고는 제도적으로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 ‘성적’이 뒤떨어지는 학교라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로’가 서로 다른 학생들이 ‘섞여’ 있는 학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로 ‘진로’가 다른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니 몇몇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학습 ‘동기’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렇게 억지로 하는 공부이다 보니 수업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예체능계 학생들과 직업계 학생들은 일반고에서 자신의 진로과정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 채, 그저 내신이나 ‘깔아주는’ 들러리가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일반고를 돌아볼 때 ‘예체능과정’이 따로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예체능계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주로 사교육에 의존해야만 했다. 문제이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한 관심은 너무 적다.

 

언제부턴가 ‘일반고’라는 이름이 아무런 ‘진로’ 표시를 안 하는 이름이 돼버렸다. 원래 이름은 ‘실업계고’에 대응하여 대학진학을 진로로 하는 ‘인문계고’라고 했는데, 실업계고가 ‘전문계고’로 이름이 바뀌면서 인문계고는 ‘일반계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현재의 ‘일반고’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진로’를 뜻하는 ‘-계’라는 말이 빠졌다. 물론 ‘-계’라는 말이 있든 없든 일반고가 일단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학교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다른 특목고, 자율고, 특성화고, 중점고 등을 비교해볼 때, 일반고는 ‘목적’도 없고, ‘자율’도 없고, ‘특성’도 없고, ‘중점’도 없는 ‘막연한’ 무색무취의 학교처럼 보인다. 현실에서도 일반고는 어떠한 진로·진학과정에 대해서도 ‘무력한’ 학교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고’ 이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름에서 시사된 일반고 현실이 문제이다.

 

이렇게 ‘진로’의 관점에서 일반고의 위기를 본다면, ‘일반고 슬럼화’라는 말은 그 표현 자체가 틀렸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해서 그 학교를 ‘슬럼화’된 학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일반고 슬럼화’ 진단은 비교육적인 진단이다. 더욱이 이러한 잘못된 진단은 그 해법에서도 문제가 된다. ‘진로’에 관계없이 ‘성적’을 기준으로 모든 학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최초의 고교평준화체제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고교평준화체제가 어떻게 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과거로의 회귀만 주장한다면 그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득력도 없다. 자사고 폐지도 중요하고, 균형배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반고를 ‘진로’를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대학진학이든 취업이든, 그리고 그것이 인문·자연계이든 예체능계이든 학생들이 자기 진로에 따라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학교가 각 진로과정을 설정하고 혼신을 다해 가르친다면, 그 과정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반고 살리기’ 논의의 출발점은 ‘성적’이 아니라 ‘진로’여야 한다.

 

※ ‘일반고 살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 글에서 밝히기로 한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