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 어떻게 변해야 하나?

by slowalk | 2013-07-31 10:26

Views: 683

지난 30년간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대입시 제도를 여러 차례 바꾸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늘 기대를 빗나갔다. 새로운 대입 전형의 결함 때문인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좋은 직장의 부족, 직업의 귀천 의식, 대학의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대입시 제도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8월 중으로 정부가 대입전형 간소화 정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어떤 내용이 담길까? 명칭을 비롯하여 전형요소의 간소화 등이 주된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될 뿐, 별다른 기대는 되지 않는다. 공교육에서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외적 조건들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1/3은 잠자고, 1/3은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일상화된 교실 상황을 그대로 덮어두고 갈 수밖에 없는가? 교육의 최대 목적과 가치를 대입 전형에 필요한 성적을 올리는 것에 두고, 이를 돕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며, 공·사교육에 수십 조 원을 써도 좋은가? 미래 사회를 이끌고 갈 아동들에게 이렇게 5지선다형 수능시험 문제 풀이나 시키고, 실수하지 않는 법, 정답 찾는 요령을 가르치는 학교 교육을 이대로 유지해도 좋은가?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수업에서 배제되는 이 심각한 교육 불평등에 대해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눈감고 있을 것인가? 사회적 계층 이동을 도와야 할 교육이 오히려 계층 고착화의 주범이 된 상황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교육 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어 사회통합이 불가능하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암담한 미래가 다가오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 사회개혁 비전과 교육개혁 비전은 어디에 있는가? 언제쯤 정치가, 정책결정자들은 현재의 심각한 교육 문제를 그저 유권자의 불만 수준에 따라 찔끔찔끔 수선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수준을 넘어 제대로 된 중장기 국가 교육비전과 실행 로드맵을 만들 것인가?

 

오늘날의 병든 한국 공교육에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위기를 가져온 요인은 사회경제적 요인, 정치적 요인, 문화적 요인, 교육적 요인, 또 제도 요인, 운영 요인 등 수없이 많지만, 본 칼럼에서는 공교육의 정상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입전형’의 개선의 방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입전형은 아래와 같이 다양한 관점에서 개선안을 논할 수가 있다. 어떤 관점에서 해법을 찾느냐에 따라 그 내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1. 대학의 선발의 자율성 중시 관점 vs. 공교육 정상화 중시 관점
2. 우수 적격자 선점 관점 vs.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우선 관점
3. 평가의 공정성/객관성 중시 관점 vs. 타당성 중시 관점
4. 학습자 수험준비 부담 완화 관점
5. 사교육 유발 최소화 관점


 

이상과 같이 대입전형은 다양한 관점에서 개선안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어떤 관점에서 논하느냐에 따라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전형이 무엇인지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해당사자 입장에서 각기 다른 주장과 해법이 난무했었다. 아마 서로 다른 각자의 관점에서 말하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입전형의 개선안을 논할 때는 이런 수많은 관점 중에서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할 것인지 그 원칙을 먼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현재의 한국적 상황을 감안하면 다음의 5가지 관점에서 바람직한 대입전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공교육 정상화 중시 관점

 

대학교육도 위기지만 공교육은 더욱 위기다. 그 이유는 학교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이 되어 버린 점, 그렇다 보니 학교의 기능이 사교육 쪽으로 이동한 면이 많아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잠을 자거나 떠드는 공간이 되어버린 점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학은 지금까지 성적 우수자 선점 경쟁을 벌였지, 공교육의 정상화를 우선 고려하면서 대입전형을 시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대학은 공교육의 위기상황을 감안하여 공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대입전형을 운영해야 한다. 이는 대학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의 하나다. 국가 역시 수학능력시험이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2.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우선 관점

 

지금까지 대학들은 수험생을 시험 성적 중심으로 줄을 세운 뒤 앞줄에 선 지원자를 선점하는 경쟁을 벌여왔다. 학생의 성적과 부모의 소득수준이 비례한다는 점은 이미 국내외 많은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따라서 좋은 대학은 집안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이 좋은 집안 자녀들이 입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학습 환경이 비교적 열악한 농산어촌이나 도시 저소득층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또 이는 대입시가 계층을 구분 짓고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대입전형은 재고되어야 한다. 잠재적 가능성은 있더라도 집안 환경 때문에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잃고, 평생을 가난하게 낮은 계층에 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공동체와 공공선의 추구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대입전형이 필요한 시기다.

 

3. 타당성 중시 관점

 

대입전형의 주요 자료 중 하나인 수능시험은 그동안 타당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이 시험을 존속시키려면 지금보다 타당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폭 개선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능시험이 그 명칭처럼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등학교 과정에 대한 성취도평가인지, 혹은 둘 다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목적이 모호한 시험은 타당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객관식 표준화시험의 한계와 폐해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둔감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타당성(validity)이란 테스트 항목의 내용이 측정하고자 하는 능력의 영역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는가, 아닌가를 말한다. 예를 들면, 표준화된 영어 시험성적이 높아도 실제 영어 실력은 낮은 경우, 또, 수학능력시험 성적은 높아도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은 낮은 경우 등의 현상은 수학능력시험이 수학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는 수학능력시험이 영어 사용능력과 고등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서 타당성이 낮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대입전형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서 좀 더 타당한 평가의 개발이 필요하다.

 

4. 학습자 수험준비 부담 완화 관점

 

대입전형 요소를 결정할 때 국가와 대학은 늘 수험준비생들의 부담에 대해 신경을 써왔다. 지금 대학은 내신, 수능, 논술, 면접 등의 다양한 조합으로 입학생을 뽑고 있다. 여기서 수험준비생의 부담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는 서로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책을 많이 읽었는지 그래서 사고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위권 대학일수록 논술을 전형 요소에 포함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논술은 학교가 충분히 지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논술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인다. 과탐, 사탐도 이중에서 몇 과목을 선택하게 하느냐에 따라 수험준비생들의 부담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이때 국가나 대학의 고민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논술은 물론 과탐, 사탐의 대부분의 과목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수험생의 부담이 늘어난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적절한 조화와 균형의 추구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부담이 되어도 교육적으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배우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수험준비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배우는 과목수를 너무 줄이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세계 교육 개혁 분야에서 세계적 명망이 있는 학자들은 표준화시험의 대표적인 폐해로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이 너무 협소해진 점(narrowed curriculum)을 들고 있다.

 

다만, 특별히 추가적인 공부 없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능과 논술이 측정하고자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내신을 통해 측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큰 원칙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5. 사교육 유발 최소화 관점

 

사교육 유발의 근본 원인은 좋은 직장의 부족, 직업의 귀천 의식, 대학의 서열이 존재, 고졸대졸 간의 큰 임금 차이, 높은 교육열 등이다. 하지만 대입 전형에 따라 사교육은 더 증가할 수 있다. 가령, 대학의 문과 계열에서도 어려운 수학의 높은 성적을 요구한다면 이는 사교육을 증가시킬 것이다. 대학에서 어려운 논술 문제를 낸다면 이 역시 사교육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교육을 줄이는 것을 공교육 정상화나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시한 사례들이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EBS 수능 연계 70%’와 같은 발상이다. 이 자체도 매우 문제가 있는 말이지만(EBS 교재에 수록된 많은 문제가 다른 참고서에도 중복되어 있다), 이런 정책이 교육과정을 무력화시킨다. 이는 EBS 교재에게 교육과정보다, 교과서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교육철학의 부재이기도 하고 어떤 가치가 더 소중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책결정이기도 하다.

 

즉 사교육 최소화를 위한 전형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조치들 간에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충돌이 일어날 때는 어떤 것을 더 우선시할 것인가? 원칙적으로 사교육 유발의 최소화보다는 공교육 정상화나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소하지 않고 누르려고만 하면 실효성도 적고 다양한 왜곡만 일어난다.

 

이상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대입전형은 다음의 7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나아갈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 공교육 정상화를 도모하는 대입전형 7가지 요건

 

• 요건1: 교육의 공공성과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에 충실한 대입전형

– 사회계층간, 지역 간 공정한 고등교육기회 제공을 고려한다. 계층별, 지역별 할당도 적극 고려한다.
– 학업성취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임을 고려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전형 비중을 단계적으로 30~50%까지 높인다.

 

• 요건2: 중등교육에서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대입전형
–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학교내 비교과 영역의 활동을 도모하는 전형을 실시한다.
– 표준화 시험의 많은 한계를 지닌 수능을 최소자격의 기준으로 삼다가 중기적으로는 폐지한다.
– 대입시험에 반영하는 과목 수를 지나치게 좁히지 않는다(대입전형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은 교수학습을 하지 않기 때문).

 

• 요건3: 현재능력과 잠재능력을 동시에 고려하는 대입전형
– 자격고사화 내지 폐지 이전이라도 수능을 현 9등급을 4~5등급으로 조정한다.
이를 통해 잠재력은 풍부하나 가정환경 배경 때문에 고교 재학시절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학생들을 고려하여 현재의 ‘선발경쟁’에서 입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한 ‘교육경쟁’으로 전환한다.
– 고교별 학력 수준차를 고려하지 않고, 시골의 점수 A가 도시의 점수 A와 대등한 잠재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본다.

 

• 요건4: 개인적 성공보다 공동체 지향적 인재 양성을 도모하는 대입전형
– 협력과 상생의 가치관으로 사회를 위한 희생과 봉사를 미덕으로 삼는 지원자를 높이 평가한다.
– 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인재를 선발한다.
– 책임있는 민주시민의식을 잘 갖추도록 도모하는 전형을 실시한다.

 

• 요건5: 중등교육에서 고등사고능력과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개발을 도모하는 대입전형
– 자격고사화/폐지 이전까지만이라도 수능에 낮은 단계의 서술형, 논술형 평가를 포함시킨다.
– 간단한 논술을 내신/수능에 반영하여 모든 학생의 사고력 신장을 도모한다.
– 논술/토론 수업, 협동에 의한 문제해결 프로젝트 수업을 도모하는 전형을 실시한다.

 

• 요건6: 사교육 유발요인을 최소화하는 대입전형
– 진단평가, 형성평가를 강화하고 내신의 질과 신뢰도를 높여 내신의 반영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논술고사의 난이도를 대폭 낮추거나 내신으로 흡수한다.
– 내신과 수능의 연계성을 높이는 전형을 실시한다.

 

• 요건7: 모집단위별 특성을 고려한 대입전형
– 대학이나 모집 단위별 특성에 맞는 학생 선발을 위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질과 신뢰도를 높인다.
– 모집단위에서 불요불급한 것에 대한 요구를 줄인다. 예를 들어, 인문계 학과에서 수학 성적에 가중치를 주는 것을 금지한다.


 

이상과 같은 대입전형이 실현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선 대학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 여론으로 지속적인 압력을 넣어, 대학이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이는 부당한 요구가 아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이 대학이다.

 

대입전형에서 공교육의 정상화,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도모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게 하자.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져야 하고, 국가는 개인의 성장이나 성공 외에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목적을 잊지 말고 이를 대입전형에 반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