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6-09-15 15:06
| 유보이음·유초이음이 다음 학교급 준비 중심으로 흐르는 현실을 비판하며, 존재론적·관계적·공동체적 이음을 통해 아이의 삶과 배움의 연속성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이음교육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아이의 삶에는 경계가 없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보낸 하루와 오늘 유치원에서 만나는 경험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이어온 놀이와 관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제도는 기관을 나누고 교육과정은 학교급을 구분하지만, 아이의 삶과 경험, 관계와 배움은 그렇게 쉽게 나뉘지 않는다. 아이는 언제나 하나의 삶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만나고 경험하고 배운다.
그런 점에서 ‘이음’은 영유아교육이 새롭게 발견한 가치라기보다, 본래 이어져 있는 아이의 삶과 배움의 연속성을 교육이 다시 발견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기관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아이가 살아온 경험과 앞으로 살아갈 경험 사이의 연속성을 어떻게 존중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최근의 전이 연구에서도 교육 단계 간 이동을 단순한 기관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와 일상, 교육적 기대가 변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 배움의 연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Olsen, 2026). 오늘날 이음교육이 중요한 교육적·정책적 화두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음교육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유보통합의 흐름 속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이의 교육·돌봄 경험을 연결하려는 ‘유보이음’이 강조되고 있으며, 유아교육과 초등교육 사이의 자연스러운 전환과 연속성을 지원하는 ‘유초이음’ 역시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서로 다른 제도와 기관, 교육과정의 경계를 넘어 아이의 삶과 배움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이음교육이 지향해야 할 기본 취지라 할 수 있다.
먼저 유보이음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는 서로 다른 제도적 배경을 넘어 영유아의 교육과 돌봄 경험을 연속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유보통합이 관리체계의 통합에 머물지 않고 아이의 삶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기관을 이용하는가보다 그곳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보이음은 기관과 제도를 연결하는 데 앞서 영유아의 삶을 중심으로 교육과 돌봄의 관계를 새롭게 엮는 과정이어야 한다.
유초이음도 본래의 취지는 다르지 않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살아온 아이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공간과 사람, 문화를 만나는 과정에서 이전까지의 경험과 배움이 갑작스럽게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전환을 돕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유초이음을 단지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준비시키는 교육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음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기준에 맞추어 변화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육의 세계가 아이를 중심에 두고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음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등학교가 서로의 교육과정과 문화를 이해하고, 교사들이 아이의 이전 경험과 이후의 삶을 함께 바라보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음이 널리 사용될수록 오히려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삶과 배움을 잇는 것인지, 교육과정과 교과의 내용을 잇는 것인지, 서로 다른 교육 문화를 만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학교급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생활방식에 아이를 미리 적응시키는 것인지에 따라 이음교육의 모습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음교육의 필요성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누구의 기준으로, 어느 방향으로 이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 글에서 이음교육은 영유아의 삶과 배움의 연속성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되, 그 가운데 유치원·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사이의 연속성을 다루는 유초이음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특히 현재의 유초이음이 과연 아이의 삶과 배움을 온전히 이어가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적응과 기초역량, 교육내용과 사전 계획 중심의 이음을 넘어, 아이의 존재와 관계, 공동체의 삶을 이어가는 교육으로 이음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유초이음,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이음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유초이음 역시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이 서로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만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유아교육은 초등교육을 이해하고, 초등교육 역시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어떻게 놀고 배우며 관계 맺어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음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향해 일방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유초이음이 구체화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 방향에 다소 우려스러운 지점이 발견된다. 최근 유초이음은 교육 단계 간 연속성을 높이고 새로운 환경으로의 원활한 전이와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유아가 갖추어야 할 다양한 기초역량과 학교생활에 필요한 능력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고 교육 단계 간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음이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역량을 중심으로 구체화되는 것은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안내자료에서는 연령별 역량과 함께 바르게 앉아 듣기, 스스로 배변하기, 연필 사용하기, 수 세기, 규칙 지키기 등을 학교생활 및 적응과 연결하여 제시한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이다. 다음 학교급에서 필요한 것을 기준으로 유아기의 교육을 조직하기 시작할 때, 이음은 삶과 배움의 연속성보다 학교 준비에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을 앞둔 아이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이 서로의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교육적 연속성을 모색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필요가 점차 ‘초등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유아교육을 바라보게 할 때 발생한다. 초등학교의 생활방식과 교육내용, 교과와 역량이 이음의 기준이 되고, 그것을 유아기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유초이음은 어느새 상호적인 연결보다 학교 준비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초이음을 교과와 교육내용의 연계로 구체화하려는 접근은 더욱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아의 삶과 놀이는 본래 교과별로 분절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놀이 안에서도 아이는 말하고, 움직이고, 수를 만나고, 상상하고, 친구와 갈등하고 협력하며 세계를 탐색한다. 이러한 통합적인 경험을 초등학교의 교과나 성취의 언어를 기준으로 다시 분류하고 연결하려 한다면, 자칫 유아의 삶을 초등교육의 문법으로 번역하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유초이음의 방향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유아기에 미리 갖추도록 하는 것이 이음인가? 아니면 유아기에 형성되어 온 삶과 놀이, 관계와 배움이 초등학교에서도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음인가? 전자를 중심에 놓는 순간 유아교육은 자신도 모르게 초등학교를 위한 준비 단계가 될 위험이 있다.
이음에는 방향이 있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힘이 작동한다. 어느 한쪽의 교육 문화와 언어가 다른 한쪽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이음은 더 이상 서로를 잇는 일이 아니라 한쪽을 다른 쪽에 편입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유초이음이라는 이름 아래 유아교육이 초등교육의 시간과 교과, 역량과 적응의 논리에 맞추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최근의 국가수준 영유아 교육과정은 영유아가 중심이 되고 놀이가 살아나는 교육과정, 교사와 영유아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지향해 왔다. 이는 정해진 내용과 계획에 영유아를 맞추는 교육에서 벗어나, 놀이와 일상에서 발현되는 관심과 경험을 존중하려는 중요한 철학적 전환이다. 유초이음 역시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이음이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이루어 온 영유아교육의 철학적 전환을 되돌려서는 안 된다.
유초이음, ‘미리 정하는 교육’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유초이음의 실행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계획’이다. 교사 간 협의와 일정한 계획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과 아이를 만나기 전에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미리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계획의 유무가 아니라, 그 계획이 아이의 경험을 열어두는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이끄는가에 있다.
특히 유초이음을 위해 먼저 교육내용을 선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활동을 계획한 뒤 영유아의 경험을 조직하려는 접근은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교사가 이미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한 상태에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의 놀이와 일상에서 무엇이 생성되고 있는지를 읽기보다, 사전에 선정한 내용이 놀이 속에서 얼마나 나타나는지를 찾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교육과정이 아이의 삶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교육내용 안으로 아이의 삶을 불러들이는 셈이다.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교육내용을 미리 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수업의 순서를 계획하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중요한 지식인지, 어떤 경험이 가치 있는지, 아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성인의 판단이 이미 들어가 있다. 특히 특정한 교과나 역량을 이음의 주요 내용으로 먼저 선정하게 되면, 그것은 아이의 다양한 경험 가운데 무엇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무엇은 주변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교육 담론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영유아의 놀이는 그렇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사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물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친구와의 만남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연한 사건 하나가 며칠 동안 이어지는 탐구가 되기도 하고, 교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한 아이에게는 세계를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우연성, 발현성, 예측 불가능성은 영유아교육이 존중해 온 중요한 교육적 가치이다.
따라서 이음교육에서 필요한 계획은 아이의 경험을 미리 결정하는 ‘닫힌 계획’이 아니라, 아이가 만들어내는 사건과 관계에 따라 수정되고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 ‘열린 계획’이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계획한 내용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데만 있지 않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놀이와 관계를 세심하게 읽고, 예상하지 못했던 배움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필요할 때 자신의 계획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음교육을 위한 준비와 계획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이 아이의 목소리와 경험을 담아낼 수 있도록 열려 있는가이다. 아이를 만나기도 전에 무엇을 이을 것인지 결정하고 그 틀 안에서 경험을 조직한다면, 이음은 아이의 삶을 따라가기보다 어른이 정한 길로 아이를 이끄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음교육, 교과가 아니라 무엇을 이어야 하는가?
이음교육의 중심에는 교육내용이나 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와 관계, 그리고 아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이 놓여야 한다. 교육 단계와 내용을 연결하는 데 머물렀던 이음의 시선을 한 아이가 살아온 삶과 배움의 연속성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이음교육의 방향으로 ‘존재론적 이음’, ‘관계적 이음’, ‘공동체적 이음’을 제안한다.
먼저, 이음의 출발점은 ‘존재론적 이음’에 있다. 존재론적 이음은 아이를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무언가를 갖추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미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영아의 몸짓과 시선, 유아의 놀이와 질문, 세계와 마주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험은 그 자체로 삶이자 배움이다. 최근 전이 연구에서도 아이가 이미 삶 속에서 형성해 온 경험과 지식, 정체성을 중요한 자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Boylan et al., 2024). 따라서 이음은 이전 단계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 다음 단계로 보내는 과정이 아니라, 한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형성해 온 경험과 정체성, 고유한 삶의 방식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존중받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음의 출발점은 미래에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다.
다음으로, 이음은 ‘관계적 이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아이의 삶과 배움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족과 교사, 또래뿐만 아니라 아이가 머무는 공간, 만지고 탐색하는 사물, 자연과 장소 등 다양한 존재와의 만남이 아이의 세계를 구성한다. 최근 유아들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 전환 경험을 살펴본 Nilsen 등(2026)의 연구에서도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기존 친구관계의 단절과 새로운 학교규범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냈다. 이는 전이가 단순한 교육 단계의 이동이 아니라 관계와 소속감, 정서가 함께 움직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새로운 교육 환경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기존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로 대체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가 새로운 만남과 연결되면서 아이의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관계적 이음은 교사 간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영유아교사와 초등교사가 단순히 아이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해왔으며 무엇에 관심을 두고 누구와 어떻게 관계 맺어왔는지를 함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유·초 연계를 생태 역동적 관점에서 살펴본 연구에서도 유아의 학교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유아교사와 초등교사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중간 체계의 중요성이 강조된 바 있다(지혜원, 채진영, 2022). 아이에 관한 기록 역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확인하는 자료가 아니라, 그 아이가 살아온 경험과 배움의 이야기를 다음 교사에게 이어주는 매개가 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음은 ‘공동체적 이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이의 삶은 어느 한 기관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정과 영유아교육기관, 학교뿐 아니라 놀이터와 도서관, 공원과 마을 등 아이가 살아가는 다양한 공간과 사람들이 아이의 삶을 함께 구성한다. 최근 전이 연구에서도 배움의 연속성은 아동 개인의 준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와 교육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Olsen, 2026). 따라서 이음의 주체도 유치원·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 아이-가족-영유아교육기관-초등학교-지역사회가 함께 연결되어 한 아이의 삶과 배움을 지지하는 교육공동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공동체적 이음의 관점에서 이음교육은 특정 시기에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나 기관 간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를 둘러싼 여러 주체가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한 아이의 삶을 함께 엮어가는 지속적인 교육의 과정이 된다. 이때 이음은 특정 기관의 과제가 아니라 아이의 삶을 함께 지지하는 공동체의 교육적 책임으로 확장된다.
결국 존재론적 이음은 아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것이고, 관계적 이음은 아이의 삶과 배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며, 공동체적 이음은 그 삶과 배움을 ‘누가 함께 지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이음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이음교육은 교육 단계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넘어, 한 아이의 삶과 배움의 연속성을 지지하는 교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음교육,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이음교육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의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다음 학교급에서 요구되는 것을 앞선 교육 단계에서 준비하도록 하는 방식보다, 아이들이 이전까지 형성해 온 경험과 배움이 이후의 교육에서도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변화가 아니라 이음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의 상호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음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를 방문하거나 학교생활을 미리 경험하고, 입학 이후 필요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지는 데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는 초등교육도 영유아교육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초등교사가 영유아의 놀이와 일상, 교육과정의 특성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이전까지 만들어 온 경험과 배움이 학교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 환경과 교수·학습 방식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이음은 아이만 다음 단계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 교육 단계 역시 아이가 살아온 삶과 배움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책의 평가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몇 개 기관이 협력했는지, 몇 차례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했는지, 어떤 활동을 실시했는지만으로 이음교육의 성과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는지, 기존의 관계와 새로운 관계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지, 영유아교육에서 형성된 호기심과 주도성이 학교에서도 존중받고 있는지와 같은 아이의 실제 경험과 삶의 변화가 이음교육의 중요한 성과가 되어야 한다.
교사에게도 보다 넓은 전문적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기관이 동일한 내용과 활동을 수행하는 표준화된 이음 프로그램보다, 각 지역과 기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이음의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교육청의 역할은 이음의 내용과 방법을 세세하게 정해 현장에 제시하는 데 있기보다, 교사들이 서로 만나 아이의 삶을 함께 이해하고 각자의 맥락에 맞는 이음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결국 이음교육의 성패는 아이가 얼마나 빨리 다음 교육 단계에 익숙해졌는가에 있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이전까지 살아온 경험과 관계, 배움의 방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음교육이 지향해야 할 것은 학교에 잘 적응하는 아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잘 맞이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이음교육은 아이를 다음 단계에 맞추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배움이 끊어지지 않도록 다음 교육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일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또한 아이가 살아온 세계와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에게 먼저 건너오라고 요구하기보다, 교육이 아이에게 다가가 다리를 놓아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이음교육의 방향이다.
참고 문헌
• 지혜원, 채진영 (2022). 유-초 연계에 대한 실태 및 교사 협력에 대한 요구 차이: 유-초 연계의 생태 역동 모델 관점에서. 한국유아교육연구, 24(1), 112–142.
• Boylan, F., Barblett, L., Lavina, L., & Ruscoe, A. (2024). Transforming transitions to primary school: Using children’s funds of knowledge and identity. European Early Childhood Education Research Journal, 32(4), 704–718.
• Nilsen, T. R., Lien, G., Vindvik, H. M. K., & Dahl, A.-L. S. (2026). Children’s perspectives on the transition from 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to school: Navigating friendships, uncertainties, and the weight of school norms. Early Childhood Education Journal, 54, 4591–4601.
• Olsen, S. (2026). Children’s continuity of learning in the transition from 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to school and after-school care: A literature review. Nordic Journal of Comparative and International Education, 10(2),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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