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6-09-03 13:54
| ‘현장 토론’과 ‘국민참여위원회 숙의’ 등을 통해 드러난 국가교육위원회의 대입 개편 아이디어를 비판한다. 평가 체제와 시험 양식을 바꾸려는 데 초점을 두는 시도 자체를 재고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현장 토론’과 ‘국민참여위원회 숙의’를 마쳤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대입제도”라는 구호를 내걸고 벌인 ‘공론화’ 행사들이다. 토론과 숙의가 충실히 되었다고 박수하긴 어렵다. 으레 그래왔듯 ‘형식’에 가까웠다. 그러나 토론이나 숙의 과정을 공개해 주어서, 국교위가 어떤 생각으로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늦게나마 이견을 낼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국교위가 드러낸 ‘생각’은 놀랍고 걱정스럽다. 내놓기엔 설익은 논리를 버젓이 펼치고 있어서 놀랍고, 반(反) 교육적이라고밖에 달리 평가할 길 없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있다는(그래서 개편이 바르게 이루어지기는 이미 글렀다는) 점에서 무척 걱정스럽다. 국교위 쪽의 발표를 하나하나 꼼꼼히 짚으려면 무척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여지가 없어서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따져보겠다.1 국교위의 노력을 왜 얕고 가볍다고 비판하는지 뜻은 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국교위는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출제’를 개편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평가가 바뀌어야 수업이 바뀐다”고 믿는 데 있다. 국교위 주장은 아래와 같이 압축할 수 있다.
미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창의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내신 ‘상대평가’와 ‘오지선다형’ 시험(특히, 수능)의 구속 때문에 현재 학교 수업은 그런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출제를 도입하면 해결된다. 이 ‘전환적’ 대입 개편이 이전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AI 기반 평가’로 가능해졌다.
위와 같은 주장은 인과(因果) 논리로 엮여 있지만 그 인과 전제들은 통속적이거나 자기확증적이다. 미래 사회가 창의적 사고력을 요구한다, 선다형 출제가 수업을 망친다, 서·논술형 시험으로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서·논술형 채점의 ‘공정성’ 난제는 AI가 해결한다. 이런 사실적 명제들은 시중의 대입제도 논란에서 흔히 떠도는 것이다. 국교위는 이런 ‘통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국교위 의도와 맞아서인지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국교위가 의심 없이 수용한 전제들은 숱한 의문을 낳는다. 과연 창의적 사고는 미래(‘AI 시대’)를 위해서만 필요한가? 대략 20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출현은 그 이전에 이미 인류에게 창의적 사고가 필요했다는 점을 ‘자연선택’이 보여준 증거가 아닐까? 선다형은 나쁘기만 한가? 타당하게 출제된다면, 그리고 정직하게 공부해서 고지식하게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학생에게라면 매우 유용한 문항 형식이지 않을까? 서·논술형은 항상 사고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부담 시험’에서 서·논술형 문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시험의 역사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나? ‘AI 기반 채점’은 교육상 바람직한가? 그 채점은 결국 답안의 질이 아닌 ‘패턴’을 확률로 가늠하는 알고리즘의 계산 아닌가? 설사 그런 계산이 확률상 ‘용납할 범위’ 안에 들더라도, 궁극적으로 ‘정답’(루브릭 또는 알고리즘)에 수업과 학습을 종속시킨다는 비교육성을 못 벗지 않는가? 이를테면 이런 이의 제기들에 국교위는 답을 갖고 있지 못할 듯하다.
두말할 나위 없지만, 수업이나 학습이 평가(시험)에 끌려가는 것은 ‘점수’가(특히 대입이) 인생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부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교육정책은 시험(대입) 준비를 학교가 시키도록(특히, 사교육 부담을 덜라는 명분으로) 강요해 왔다. 이런 조건이 없다면 평가 방식이나 문항 양식이 독자적으로 영향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인생이 대입에 휘둘리는 정도가 우리보다 덜한 나라에서는 평가가 수업을 그다지 구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는 서·논술형 시험도 흔히 채택하지만, ‘공정성’을 이유로 ‘AI 기반 채점’ 같은 수단을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토론회나 숙의 행사에서 국교위 발제자는 “OECD 국가 중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자괴했다.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을 보라고도 했다. 그 나라들처럼 우리도 절대평가를 시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논리인가? 그 나라들이 절대평가의 수업/학습 구속성을 간파하고 그런 평가체제를 도입했고, 그 결과로 사고력이나 ‘협력적 문제 해결력’을 키웠다는 뜻인가?2 흥미롭게도, 이 ‘선진국’들에선 서·논술형 시험이 일반적이다. 부담이 큰 입시에서도 그렇다. 그 나라들의 학교 수업이 그래서 바람직해졌다는 뜻인가?
‘선진국’들 얘기를 달리 봐 보자. 그 나라들에선 대체로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권을 존중한다. 수업이나 평가는 대폭 교사 재량에 맡겨져 있다. ‘내신’을 입시(졸업 시험)에 얹어 합산하듯 반영하지만, 내신 평가에 대한 ‘악성 민원’이 골칫거리라는 이야기도 없다. 그 나라들에서 평가와 출제가 다양하고 주관적일 수 있는 것은 교권을 인정하는 사회 문화적 바탕이 있어서일 것이다. 결국, 그런 평가(시험) 관행이나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췄고 또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신뢰받는 교사가 필요하다. 수업을 개량하려면, 부담을 크게 느껴야 할 제도(시험)로 교사를 옥죄지 말고 그런 제도에서 벗어나게 지원해야 한다. 요컨대 교육의 질을 위해서라면 정책 초점을 궁극적으로 교원에 두어야 마땅하다.
이와 같은 비판의 논리 역시 엄밀히 검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교위보다 문제를 더 근원적으로 살펴야 세울 수 있고, 학구적으로도 더 수용되고 있는 논점일 것이다. 시험이 수업(학습)에 미치는 영향력은 시험의 부담 크기에 달리기 마련이다. 국교위 계산대로 수업의 방향을 평가로 좌우하려면 그 고부담 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처럼 교육이 온통 ‘대입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상태를 놓아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고부담 사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평가의 부패와 타락이다. ‘정직한 공부’를 우회해서 요령껏 높은 점수를 노리는 행태는 더욱 만연하고 또 영악해져 갈 것이다. 대입제도를 개편해 얻으려는 효과가 이런 것일 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 교육부는, 이를테면,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에 대해 글자 수까지 제한해서 교사들을 속박한다. 학생부가 대입에 엮여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고부담인 기록(평가)과 관련해서 교사를 믿을 수 없는 형국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는 놓아두고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출제를 요구하는 ‘교육부령’ 같은 것만 갖추면, 과연 “미래 사회를 대비한 역량 함양”이 이루어질까? 평가의 고부담 속성은 학생부를 대입에 코 꿰 두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면 교육이 왜곡되리라는 건 이제 충분히 입증된 사실 아닌가?3 핀란드와 같은 나라 정책을 본받는다면, 고부담 평가로 수업을 장악하려는 쪽보다 교사들의 역량과 재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는가? 절대평가나 서·논술형 출제 대안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그리고 선다형이든 서·논술형이든, ‘절대로’ 타당하거나 부당한 평가 양식은 없다. 그 가치는 맥락에 따르는 것이다. 어떤 교육 내용에 대해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여건에서 채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이때 맥락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일은 결국 교사에 달리지 않았는가?
평가나 시험을 개편한다면 대안은 궁극적으로 어디로 모색해야 하는가? 평가나 시험이 지닌 힘의 크기나 성질이 어떻든, 그 힘과 가치(효력)는 교사의 수행을 거치지 않고 발생할 수 있을까? 평가를 절대적으로 하라, 서·논술형 문항을 시험에 포함하라고 전국적인 지시를 내리면, 그 지시를 따르는 평가나 시험이 독자적으로 좋은 수업과 학습을 불러올까? 그런 지시를 교사가 로봇처럼 따르면 수업이나 평가 효력은 바람직해질까? ‘강력한’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포함하고 절대평가 점수 체제를 도입한다면, 그리고 교사들이 그런 수능 대비 수업에 박차를 가한다면, 사고력 키우는 과업은 이루어질까? 수업과 학습의 성질이 문제라면 평가나 시험(특히, 대입)의 개편을 만지작거릴 일이 아니잖을까? 시험을 의식해서 수업하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할 게 아니라, 교사 스스로 평가(시험)를 교육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고, 상응해서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도 회복시킬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길이지만, 국교위가 늘 외치듯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더욱 그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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