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6-07-14 14:00
| 교육과정은 교사가 아이의 삶에 귀 기울이고 배움을 읽어 내며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과정이기에, 변화는 교사 개인을 넘어 동료·부모·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가는 교육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
교육과정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최근 국제적인 교육과정 개혁의 흐름은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나 학습자의 주도성과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사의 역할 역시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학습자의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배움을 이해하며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개정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통해 유아의 주도성과 교사의 자율성을 강조하였고, 2022 개정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은 학생 주도성과 교육과정 자율화를 더욱 분명히 하였다. 이어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은 영아를 놀이와 일상 속에서 능동적으로 경험하고 배우는 ‘어린 학습자’로 바라보며, 학습자의 삶과 배움을 중심에 두는 교육과정 변화의 흐름을 영유아교육 전반으로 이어 가고 있다(교육부, 2025).
돌이켜 보면 교육과정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 왔다. 계절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옷을 입듯, 교육과정도 사회의 변화와 교육적 요구에 따라 목표와 내용, 체계를 바꾸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교육과정은 옷을 바꾸는 것을 넘어 체질을 바꾸고 있다(김선옥 외, 2020).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학습자가 어떻게 경험하고 배우는가로, 정해진 교육과정을 충실히 실행하는 것에서 교사가 학습자의 배움을 읽고 해석하며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교육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변화에 가깝다. 잉골드(2020/2024)1는 ‘조응(correspondence)’을 통해 세계를 이미 완성된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리며 서로의 삶에 응답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교사가 미리 정해 둔 방향으로 아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누구와 관계 맺으며 어떤 경험을 만들어 가는지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에 응답하며 함께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체질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교육을 다시 아이의 삶 가까이로 돌려놓고, 가르침에 앞서 귀 기울이며, 이끌기에 앞서 함께 살아가는 교육으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2에 참여하며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교사들을 만났다. 배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놀이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평가는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과정이 체질을 바꾸고 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교사가 아이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 배움에 응답하며 아이와 함께 교육과정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이번 연수와 컨설팅에서 만난 교사들의 고민과 질문, 그리고 그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다시 바라본 경험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영유아교육과정 다시 바라보기
교육과정은 교사가 따라야 할 문서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지난 연수와 컨설팅에 참여하면서 가장 자주 만난 것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보다 고민이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배움 읽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놀이를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지, 기록과 평가는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새로운 보육과정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어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고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교실에서 잘 살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교육과정이 ‘대강화’3되고 교사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교사는 주어진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나는 영유아와 교실의 맥락 속에서 교육과정을 읽고 해석하며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었다. 자율성은 교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더 깊은 이해와 교육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과정을 국가가 만들고 교사가 실행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교육과정은 문서에 있었고, 교사는 그것을 교실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일도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실제 교실의 삶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의 관심은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고, 예상하지 못했던 놀이가 시작되며, 교사의 작은 개입 하나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 어제 의미 없게 보였던 행동이 오늘의 놀이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배움으로 읽히기도 한다. 교육과정은 계획한 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교사가 만나고 관계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생성된다.
따라서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교사가 충실하게 적용해야 할 완성된 문서라기보다, 각자의 교실에서 다시 읽고 해석해야 할 살아 있는 텍스트에 가깝다. 교사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실 수준의 교육과정 실행 ‘사이(between)의 존재자’4이다(손연주, 임부연, 2020). 교육과정의 철학과 내용을 이해하면서도 눈앞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지금 이 교실에서 무엇이 의미 있는 경험이며 어떤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바로 이 사이에서 교육과정은 교사의 해석과 실천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교사의 존재 방식은 ‘교사의 행위성(teacher agency)’5과도 연결된다. 교사는 주어진 교육과정을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교실의 상황에 귀 기울이고 교육적으로 판단하며 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교육과정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행위적 주체이다(손유진, 정혜영, 2023). 결국 교사의 행위성은 아이와 세계의 움직임에 응답하며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교육과정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교육과정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앞의 질문이 교육과정의 충실한 실행과 결과를 확인하는 질문이라면, 뒤의 질문은 아이와 교사가 만들어 가는 경험의 과정과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계획대로 했는가를 묻기보다 아이의 경험에 충분히 귀 기울였는지, 그 경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교사는 어떤 판단을 했으며 그 판단이 다시 아이의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묻게 한다.
물론 교육과정을 이렇게 바라보는 일은 교사에게 결코 쉽지 않다. 정답이 줄어들수록 판단해야 할 것은 많아지고, 자율성이 커질수록 자신의 실천에 대한 책임도 커진다. 때로 교사는 자신이 아이의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지금의 지원이 적절한지, 교육과정을 잘 실행하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과 고민을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의 부족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불확실한 교실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실천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교육과정을 살아가는 교사의 중요한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은 필자에게 새로운 교육과정을 교사들에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사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해 왔던 실천을 다시 질문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었던 아이의 경험과 배움을 발견하며, 자신의 교육과정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했다.
좋은 교육과정은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익숙한 아이의 놀이를 다시 보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자신이 해 온 교육적 판단을 다시 질문하는 데서 시작된다. 결국 교육과정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문서를 새롭게 읽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과 자신의 실천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을 함께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이의 삶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귀 기울이고 기록하기
기록은 많이 쓰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삶에 귀 기울이고 무엇을 의미 있게 바라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우리는 관찰과 기록을 교사의 중요한 전문적 업무로 강조해 왔다. 교사는 아이를 관찰하고, 놀이를 기록하며, 그 기록을 바탕으로 다음 교육 활동을 계획하고 평가해 왔다. 관찰일지, 놀이 기록, 보육일지와 같은 다양한 기록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현장의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록은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로 남아 있다.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얼마나 자세히 써야 하는지, 어떤 장면이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끊이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고민의 원인이 교사들이 기록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했지만, 기록에 앞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와 ‘왜 바라보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질문하지 못했다. 기록의 형식과 방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면서 정작 기록의 출발점이 되는 교사의 시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이야기해 온 것이다.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에서 ‘귀 기울이기’가 중요한 언어로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귀 기울이기는 단순히 아이의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의 일상생활과 놀이를 배움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며 머무는 교사의 태도이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사물과 만나며 자신의 경험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바라보는 일이다(교육부, 2025). 결국 귀 기울이기는 아이의 경험을 쉽게 판단하거나 설명하기에 앞서 그 삶과 배움에 머무는 일이며, 기록하기와 배움 읽기, 배움 지원으로 이어지는 교사의 교육과정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귀 기울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교실에는 수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교사는 안전을 살피고 일과를 운영하며 여러 아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더욱이 교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알고 있는 발달 지식이나 교육적 기준을 통해 아이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 아이는 아직 부족하다”, “이 놀이는 단순한 반복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확장해 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아이의 경험을 충분히 바라보기도 전에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 귀 기울이기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의 행동을 빠르게 설명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교사가 이미 알고 있는 언어로 아이의 경험을 규정하기보다, 아이가 무엇을 만나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따라가 보는 일이다. 때로는 아무런 교육적 의미가 없어 보이는 반복적인 행동에도 머물러 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몸짓이나 표정, 사물과의 만남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이다.
베르그송6은 시간을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동일하고 연속적인 단위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스며들고 새로운 경험과 만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속(durée)’으로 바라보았다(Bergson, 1889/2001).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배움 역시 미리 정해진 단계와 속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이전의 경험이 축적되고 새로운 관계와 만남이 더해지면서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 생성되고 있다. 교사가 아이의 삶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를 정해진 교육과정의 시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고 배우는 고유한 시간의 흐름에 머물며 그 변화와 생성을 함께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사의 전문성은 아이를 얼마나 빨리 이해하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쉽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의 경험 앞에 오래 머물며 계속 질문할 수 있는 힘에 가깝다. 지금 아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교사 자신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기준이 아이의 경험을 너무 빨리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귀 기울이기는 아이를 향한 질문인 동시에 교사 자신의 시선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때 기록은 귀 기울이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다시 귀 기울이게 하는 매개가 된다. 교사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다. 수많은 장면 가운데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멈추며,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기록이 시작된다. 따라서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었던 일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는지를 드러내는 교사의 선택이자 첫 번째 교육적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얼마나 길게 썼는지, 얼마나 많은 장면을 남겼는지, 정해진 형식을 얼마나 충실하게 채웠는지가 기록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이다.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도 평가를 위한 교사의 기록을 살펴볼 때 ‘기록의 완성도’보다 ‘기록의 시선’을 보아야 하며, 문장의 형식보다 교사가 무엇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는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에서 교사들의 기록을 함께 살펴볼 때 가능한 한 먼저 잘못된 표현을 찾거나 기록의 형식을 수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왜 이 장면을 기록했는지, 이 장면에서 무엇이 가장 궁금했는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보인 것은 무엇인지 등을…
이러한 질문을 나누다 보면 평범해 보였던 기록 속에서 교사의 관심과 고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를 궁금해했던 교사, 친구와의 갈등 이후 다시 놀이에 참여하는 과정을 오래 지켜본 교사, 매일 지나쳤던 공간과 자료가 아이의 놀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새롭게 발견한 교사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교사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기록은 아이의 삶을 교사의 언어로 완성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경험을 쉽게 규정하지 않고 다시 바라보기 위해 남겨 두는 흔적에 가깝다. 기록을 통해 교사는 지나간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관계와 변화, 아이의 시도와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사는 자신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귀 기울이기와 기록하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귀 기울였기 때문에 기록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다시 귀 기울이게 된다. 교사는 아이의 경험에 머물러 기록하고, 기록을 다시 읽으며 새로운 질문을 만나고, 그 질문을 가지고 다시 아이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기록은 업무를 위한 문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교사의 전문적 실천이 된다.
좋은 기록은 많은 것을 남기는 기록이 아니다. 아이의 경험을 쉽게 판단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다시 바라보게 하며,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기록이다. 결국 기록의 가치는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가보다 교사가 아이의 경험을 다시 보고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아이의 삶에 오래 머물러 귀 기울이고 기록할 때, 평범하게 지나쳤던 놀이와 일상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교사는 아이의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배움을 발견하게 된다.
배움을 읽고 지원하기
교사는 교육과정을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에서 배움을 읽고 해석하며 공간·자료·상호작용·활동·시간을 배움의 조건으로 재구성하는 사람이다.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에서 교사들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배움 읽기’였다. 무엇을 배움으로 보아야 하는지, 놀이에서 발견한 경험을 5개 영역과 내용으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배움을 읽은 뒤에는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필자는 배움 읽기가 단순히 새로운 용어를 이해하거나 기록의 방법을 익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움 읽기는 교사가 아이의 놀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놀이를 존중하고 충분한 놀이시간을 보장하며 놀이의 흐름을 이어 주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때로는 놀이를 지원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진 나머지, 정작 그 놀이 속에서 아이가 무엇을 경험하며 배우고 있는지를 놓치기도 했다. 놀이를 어떻게 이어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지금 아이의 경험에서 어떤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읽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교사가 놀이 속 배움을 읽기 시작할 때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개입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비로소 분명해진다. 결국 배움 읽기는 교사의 지원을 더 많이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의 지원을 더 교육적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다.
배움을 ‘읽기(literacy)’로 표현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읽는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쉽게 보이지 않는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경험과 관계를 연결하며,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해석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아이가 블록을 반복해서 쌓고 무너뜨리는 장면, 같은 길을 오가며 사물을 옮기는 행동, 친구의 놀이를 바라보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겉으로 보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일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그 경험에 귀 기울이고 오래 바라볼 때 그 안에서는 몸의 조절, 사물의 성질에 대한 탐색, 문제 해결의 시도, 또래와 관계 맺는 방식과 같은 다양한 배움이 드러난다.
따라서 배움 읽기는 아이의 놀이에 교육적 의미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이미 아이의 경험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 배움을 발견하고 이해하려는 교사의 노력이다. 그리고 이때 국가 수준 보육과정의 5개 영역과 내용은 아이의 경험을 분류하거나 점검하는 기준이 아니라, 교사가 보지 못했던 배움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 해석의 언어가 된다(임부연, 2025).
필자는 이 지점에서 ‘보육과정 리터러시’7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육과정 리터러시는 국가 수준 보육과정의 내용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경험에서 교육적 의미를 발견하고, 그 경험을 보육과정의 내용과 연결하여 해석하며, 다시 다음 배움의 가능성으로 이어 갈 수 있는 힘이다. 같은 놀이를 바라보더라도 교육과정을 읽고 해석하는 힘을 가진 교사는 아이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교육과정을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아이의 경험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움을 읽는 것만으로 교육과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배움 읽기는 자연스럽게 교사의 교육적 판단으로 이어진다. 교사는 아이의 배움을 읽고 공간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며, 기다리거나 질문하고, 때로는 함께 놀이한다. 활동을 제안할 수도 있고,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다.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 실행자료에서는 이러한 교사의 실천을 공간·자료·상호작용·활동·시간을 통한 ‘배움 지원’으로 구체화한다(교육부, 2025). 이는 교사의 실천을 다섯 가지 방법으로 분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게 해 오던 실천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더욱 의미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배움 읽기와 배움 지원이 순서대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사는 아이의 배움을 읽고 지원하지만,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시 아이에게 귀 기울인다. 새롭게 나타난 경험을 기록하고, 또 다른 배움을 읽으며, 자신의 지원이 적절했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계획한 활동도 아이의 반응과 놀이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제공한 자료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교육과정은 바로 이러한 순환 속에서 만들어진다.
좋은 교사는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읽고 해석한 배움을 공간과 자료, 상호작용과 활동, 시간으로 다시 돌려주며 아이와 함께 다음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배움과 이어지는 평가
평가는 아이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배움을 다시 읽고 교사의 실천을 다시 묻는 일이다.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에서 교사들이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평가였다. 놀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는 익숙해졌지만, 기록한 내용을 어떻게 평가로 이어 가야 하는지, 배움 읽기와 평가는 무엇이 다른지, 교육과정 운영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러한 고민의 바탕에는 평가를 교육과정의 마지막 단계이자, 아이의 배움과 교사의 실천을 결과로 정리하는 일로 바라보는 익숙한 관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아이의 경험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면 평가 역시 모든 활동이 끝난 뒤 이루어지는 별도의 일이 될 수 없다. 교사가 아이의 일상과 놀이에 귀 기울이고 기록하며, 그 경험에서 배움을 읽는 순간 이미 평가는 시작된다. 무엇을 의미 있는 변화로 보았는지, 아이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을 지원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 곧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유아 평가는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일상과 놀이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특성과 의미 있는 변화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특정한 장면을 5개 영역으로 나누어 확인하거나 교육내용이 나타났는지를 점검하기보다, 기록 속에 이어져 온 아이의 경험을 다시 바라보며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배움이 지속되고 있는지를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평가는 아이의 배움을 하나의 결과로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을 다시 읽으며 다음 배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정혜영, 2025).
교육과정 운영 평가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배움을 이해했다면 교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실천을 돌아보게 된다. 충분히 귀 기울였는지, 필요한 시간을 보장했는지, 제공한 공간과 자료는 적절했는지, 교사의 개입이 아이의 배움을 이어 주었는지 다시 묻게 된다. 이때 평가의 대상은 아이만이 아니다. 아이의 경험을 둘러싼 교육과정과 교사의 실천도 함께 평가의 대상이 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평가가 교사의 전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실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능한 교사는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읽은 배움과 제공한 지원을 다시 바라보고, 아이의 반응과 경험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계획을 변경하고, 공간을 다시 구성하며, 자료를 바꾸거나 기다리는 것 역시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적 실천이다.
따라서 배움 읽기, 배움 지원, 평가는 서로 분리된 일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의 경험에 귀 기울이고 기록하며 배움을 읽는다. 읽은 배움을 바탕으로 지원하고, 지원 이후 나타나는 새로운 경험을 다시 바라보며 아이의 배움과 자신의 실천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다시 새로운 질문과 지원으로 이어진다. ‘교육과정-실행-평가’는 순서대로 진행되는 세 단계가 아니라, ‘여기-지금-우리’의 교실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되돌아오는 하나의 살아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좋은 평가를 위해 더 많은 기록과 새로운 평가 양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무엇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는지, 기록 속에서 어떤 변화의 흐름을 읽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실천을 어떻게 다시 질문하고 있는가이다. 기록의 완성도보다 기록에 담긴 교사의 ‘시선’이 중요하고, 평가 결과보다 그 평가가 다음 교육적 판단과 실천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중요하다.
교육과정과 함께 살아가기
교사는 교육과정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배우고 성찰하며 교육과정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 찾아가는 연수와 컨설팅에 참여하면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점은 이 사업이 새로운 교육과정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개정된 보육과정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새로운 용어와 실행 방법을 안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장의 변화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가 자신이 만나는 아이들의 경험과 놀이를 다시 바라보고, 지금까지 해 온 기록과 지원, 평가를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의 교육과정을 새롭게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교육과정의 변화는 교실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교육부·한국보육진흥원, 2026).
그런 점에서 이번 연수와 컨설팅의 방향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국가 수준 보육과정의 철학과 내용을 현장에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교사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고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놀이를 존중하면서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움을 어떻게 읽고 지원해야 하는지, 기록과 평가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교사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된다. 이번 연수와 컨설팅은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교사가 자신의 실천을 다시 바라보고 교육적 판단의 근거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무엇보다 필자에게도 이번 연수와 컨설팅은 교사들에게 새로운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교사들이 남긴 기록을 함께 바라보고, 그들이 아이의 놀이와 일상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귀 기울이며, 서로 다른 생각과 해석을 나누는 과정에서 필자 역시 교육과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누군가가 답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며 함께 교육과정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다. 교육과정의 변화는 어쩌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실천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면서 함께 변화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서 아이의 배움을 읽고 교육과정을 만들어 간다는 뜻이 아니다. 교사 역시 다른 교사와 만나고,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사회와 관계 맺는 교육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아이의 배움이 다양한 존재와 물질, 관계와 만남 속에서 생성되듯, 교사의 배움과 성장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교사 개인의 역량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질문을 나누고, 각자의 실천에 귀 기울이며, 함께 배우고 변화하는 교육공동체 속에서 더욱 풍부해진다(김병만, 2026).
잉골드(2020/2024)의 말처럼, 삶은 서로 분리된 존재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응답하며 함께 나아가는 조응의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공동체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와 교사, 동료 교사와 부모, 지역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의 삶과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면서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역동적인 과정에 가깝다(정혜영, 손유진, 서보순, 2025). 교육과정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각자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고 응답하며 함께 길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교육과정에는 좋은 교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 귀 기울이는 교사, 교사의 고민과 질문에 응답하는 동료, 아이의 삶과 배움을 함께 바라보는 부모와 지역사회, 그리고 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기다리고 지원하는 교육공동체가 필요하다. 좋은 교육공동체는 누군가가 정답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이 따라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함께 발견하며, 서로의 배움에 응답하면서 함께 변화하는 공동체이다.
결국 교육과정의 변화는 문서의 개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과정의 철학이 교사의 언어로 이해되고, 아이들의 삶과 연결되며, 교사가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변화시킬 때 비로소 교육과정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한 사람의 교실에 머물지 않고 동료 교사와 부모, 지역사회로 이어질 때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함께 지지하는 교육공동체의 실천이 된다. 교육과정은 교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교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의 삶과 교사의 삶, 부모와 지역사회의 삶이 서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할 때, 교육과정은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 된다.
교육과정은 멀리 있지 않다. 아이의 작은 몸짓에 귀 기울이는 순간에도, 평범한 놀이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배움을 발견하는 순간에도, 기록을 다시 읽으며 자신의 판단을 질문하는 순간에도, 동료 교사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실천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에도 교육과정은 살아 움직인다. 필자는 이번 연수와 컨설팅을 통해 교육과정의 변화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알고 더 잘 실행하는 데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배움을 읽으며,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서로의 삶과 질문에 응답하면서 함께 변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교육과정은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좋은 교사는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교육과정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서로의 곁을 지키며 때로는 이끌고 때로는 기대어 함께 나아가는 동행 속에서 교사 역시 배우고 성장한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품고 함께 걸어가는 시간은, 교육과정을 살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여정으로 남을 것이다.
참고 문헌
• 교육부 (2025). 2024 개정 표준보육과정(0~2세): 0~1세 실행자료. 세종: 교육부.
• 교육부, 한국보육진흥원 (2026). 개정 표준보육과정 찾아가는 연수 및 컨설팅. 서울: 한국보육진흥원.
• 김병만 (2026). 유보통합 정책의 비평적 고찰 및 재구성. 영유아교육실천연구, 4(1), 187-212.
• 김선옥, 정명숙, 홍승미, 박지영, 김예지, 김혜령, 권나리, 박혜원 (2020). 놀이와 기록이 만나다. 경기: 공동체.
• 손유진, 정혜영 (2023). 유아교육현장에서 교사의 실천 이해: Bhaskar의 비판적 실재론을 중심으로. 교육혁신연구, 33(4), 1-23.
• 임부연 (2025). 유보통합시대에 영유아의 배움 읽기. 육아정책포럼: 집중조명. 서울: 육아정책연구소.
• 임부연, 손연주 (2020). 「2019 개정 누리과정」교육내용과 관련한 유아 교사의 역할 탐구: 국가와 유아‘사이 존재자’를 중심으로. 교육혁신연구, 30(3), 127-148
• 정혜영 (2025). 다시-돌아가기를 통해 유아교육평가의 두터운-지금 탐구하기. 교육과 문화, 7(1), 226-253.
• Bergson, H. (2001).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최화 역). 서울: 아카넷. (원전은 1889년에 출판).
• Ingold, T. (2024). 조응: 주의 기울임, 알아차림, 어우러져 살아감에 관하여. (김현우 역). 서울: 가망서사. (원전은 2020년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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