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일곱 가지 치명적 변이

by gyobasaNPO | 2026-05-04 16:02

역자 주: 이 글은 2026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교육·평가 전문 플랫폼인 De Toetsrevolutie에 “자기결정 이론의 일곱 가지 치명적 변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게재된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본 번역은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이후 폴 커슈너(Paul A. Kirschner)가 영어로 번역·소개한 글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원 저자인 발렌티나 데비드와 사무엘 더르크서(Valentina David & Samuel Dercksen)는 교육 현장에서의 실천과 이론 적용 사이의 간극을 탐구해 온 연구자들로, 이 글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커슈너는 인지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과 교수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학습과학자로, 연구와 실천을 연결해 온 대표적인 연구자입니다.

 

이 글은 자기결정이론을 중심으로, 정교하고 풍부한 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슬로건화되고, 그 결과 이론이 설명하고자 했던 학습 메커니즘과는 어긋난 방식으로 단순화되어 적용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제는 자기결정이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AI 기반 에듀테크의 도입 역시, 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슬로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습자 맞춤화, 자기주도성, 몰입과 같은 개념들이 기술적 기능이나 사용 방식으로 곧바로 치환되면서, 해당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인지적·동기적 조건과 작동 메커니즘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적용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빠른 적용과 확산을 특징으로 하는 에듀테크 환경에서는 이러한 단순화와 변이가 더욱 가속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묘사되는 자기결정이론의 변이 양상은 한국 교육의 맥락에서도 익숙하게 관찰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고교학점제, 자유학기제, 그리고 활동 중심 수업 등 다양한 시도 속에서 학습자의 선택과 참여, 동기가 강조되어 왔지만, 그러한 접근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 없이 확산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이론의 변이 양상은 특정 이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교육적 담론과 기술적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자기결정이론의 창시자인 데시와 라이언(Deci & Ryan)조차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왜곡되는 일곱 가지 변이를 살펴봅니다. 이들 변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결정이론처럼 보이지만, 이론의 겉모습만 유지하고 핵심 작동 기제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어 해당 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을 약화시키는 ‘치명적 변이’입니다.

 

 

1970년대 이후, 데시와 라이언으로 더 잘 알려진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무엇이 사람을 학습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꾸준히 탐구해 왔습니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입니다. 동기는 성적, 보상, 처벌과 같은 외적 자극에 의해 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심리적 기본 욕구가 충족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욕구,1 즉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이 서로 분리되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고(자율성),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느끼며(유능성),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관계성), 보다 지속적이고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동기를 갖게 됩니다.2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이론이 언제나 적절한 형태로 교육 현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풍부하고 정교한 이론이 교육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이론은 충분히 이해되기도 전에 단순화됩니다. 그 결과, 풍부한 개념은 슬로건으로 축소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들은 개별적인 실행 전략으로 분절되며, 이론 자체는 점차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자율성은 ‘선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능성은 ‘긍정적 피드백’으로, 관계성은 ‘학생과의 좋은 관계’로 단순화되어 이해되곤 합니다. 이러한 해석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론이 실제로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상당 부분 축소하며, 그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도 함께 만들어냅니다.3

 

또 한 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교는 시간적 압박 속에서 운영되며, 빠른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늘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긴박성은 이론이 기존의 신념과 관행에 맞게 조정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이론을 다듬고 변형하여 이미 하고 있던 방식에 자연스럽게 맞추게 됩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과도한 단순화와 기존 방식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재구성된 이론은, 그것이 지니고 있던 본래의 미묘한 차이를 잃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론을 구성하는 개념 간의 정합적 관계는 흐려지고, 이론은 설명력을 잃게 됩니다. 전문 용어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왜곡된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원래의 이론과 유사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적 정합성을 잃은 이론은 더 이상 이론으로서 기능하지 못합니다. 교육 현장은 이제 원래의 이론이 아니라, 단순화되고 변형된 파생물을 기반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는 복잡한 이론이 흔히 겪는 전개 양상입니다.

 

 

치명적 변이

 

복잡한 과학적 개념이 단순한 실행 규칙으로 축소되는 경향은 교육 변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오래전부터 확인되어 왔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지닌 추상성은 현장의 긴박성과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미묘한 차이가 쉽게 사라집니다.4 동시에 사람들은 복잡한 개념을 다루기 쉬운 규칙으로 단순화하려는 인지적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은 빠른 판단을 돕는 일종의 정신적 지름길로 기능합니다.5 또한 교육 혁신의 실행에 관한 연구들은 도입 과정의 복잡성이 과소평가되거나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교육 혁신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6 이와 같은 조건에서 이론은 그 원형을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된 채 현장에 적용되곤 합니다.

 

자기결정이론 역시 교육 현장에서, 그 주창자인 데시와 라이언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왜곡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왜곡은 최소 일곱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겉모습은 유지되어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론의 본질을 훼손하고 그 작동을 약화시키는 ‘일곱 가지 치명적 변이’가 존재합니다.

 

 

치명적 변이 1. 선택의 자유 = 자율성 경험

 

◼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학교에서는 자율성이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7 이에 따라 학생들은 과제, 학습 방식, 학습 속도, 주제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때로는 프로그램이나 선택 수업 자체가 학생의 자율적 결정에 맡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접근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자율성은 선택을 의미하므로, 선택이 많을수록 더 큰 자율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원래 이론에서 ‘자율성(autonomy)’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그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그것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8 이는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주인의식을 느끼는 경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학생은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자율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제가 왜 중요한지 이해하고 그것을 실제로 의미 있게 받아들일 때 자율성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9 반대로 선택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으면 오히려 자율성 경험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선택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거나, 의미가 부족하거나,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형식적 선택’에 불과할 때 이러한 문제는 더욱 두드러집니다.10

 

 

치명적 변이 2. 선택의 자유 = 자율성 경험 = 동기 증가

 

◼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자율성이 선택과 동일시되기 시작하면, 선택이 많을수록 학생들의 동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됩니다. 그 결과, 학교는 선택의 폭을 끊임없이 확대할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선택은 특정한 조건에서만 동기부여 효과를 갖습니다. 선택지는 명확하고 의미 있어야 하며, 학생의 기존 지식과도 부합해야 합니다.11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선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커지고, 학습 참여는 감소합니다.12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많다고 해서 동기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은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하나의 변수에 불과합니다.13

 

 

치명적 변이 3.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자기주도성

 

◼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자기주도성과 학습자의 선택이 하나의 도그마(비판 없이 받아들여지는 믿음)처럼 받아들여지며, 모든 학습자와 모든 학습 단계에서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그 결과, 학습 내용을 거의 숙지하지 못한 학생들조차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접근 방식이나 전략, 학습 경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자신의 학습에 주체성을 지닌 사람이 더 잘 배운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인지부하 이론에 관한 연구는 초보자와 숙련자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방식의 안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14 선행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명확한 설명, 예제 제시, 구조화된 연습에서 더 큰 도움을 받습니다. 이는 이 단계의 학생들이 의미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모형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5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자기주도성이 강조되면, 학생의 인지부하는 오히려 증가합니다. 학생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 더해, 그 과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무엇을 할지,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할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6 이는 초보자에게 아직 형성되지 않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학습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이론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기본 욕구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성이나 자율성은 적절한 시점에, 그리고 학습자의 숙달 수준에 맞게 적용될 때에만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17 그러나 초보자와 숙련자를 구분하지 않을 경우, 숙련자에게 효과적인 원리가 초보자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낳습니다. 지식 없이 주어진 자유는 자율성이 아니라, 길을 잃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치명적 변이 4. 구조 제공과 자율성의 허구적 대립

 

◼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자율성의 의미가 자유와 선택으로 축소될 때, 자율성과 구조(structure) 사이에 허구적 대립이 형성됩니다. 이때 구조는 제한적이고 강요된 것이며, 교사 주도적이어서 결과적으로 의욕을 꺾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 결과, 명확한 설명과 체계적인 안내가 제공되는 수업은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 즉 학생에게서 길러내고자 하는 능력이 그것을 학습하는 방식으로 치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문제 해결 학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학생들이 능숙한 문제 해결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 하더라도, 초보자에게 아무런 안내 없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방식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자기결정이론은 오히려 구조가 유능성(competence)을 지원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명확한 목표, 분명한 기대치, 그리고 적절한 피드백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장을 체감하도록 돕고, 이러한 경험은 그 자체로 강력한 동기 요인이 됩니다.18 따라서 구조와 자율성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자율성 지원의 반대는 구조가 아니라 통제적인 지도 방식입니다. 오히려 적절한 구조는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19

 

 

치명적 변이 5. 자율성에 의해 압도된 유능성

 

◼ 현장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학교 현장에서는 자율성이 압도적인 주목을 받습니다. 그 결과, 이론에서 제시하는 다른 두 가지 기본 욕구인 유능성과 관계성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납니다.20 논의는 거의 항상 선택과 주인의식에 집중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일정 부분 문화적 맥락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자율성에 대한 강조가 더욱 강화되기 쉽습니다.21 동시에 여기에는 성인의 관점이 투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학생의 주요 욕구로 자연스럽게 전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유능성에 대한 욕구, 즉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은 많은 연구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요인 중 하나로 확인됩니다.22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내용을 이해하고 있고, 실제로 발전하고 있으며, 성공을 경험하고 있다고 느낄 때 동기를 갖게 됩니다. 자율성에 거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면, 동기 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개념 간의 연결이 약화되면서 이론의 내적 정합성 또한 함께 무너집니다.23

 

 

치명적 변이 6. 동기부여가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문제

 

◼ 현장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많은 학교에서 겉보기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먼저 동기를 부여하고, 그 다음에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와 참여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며, 일단 동기가 형성되면 학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 결과, 동기부여는 교육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자기결정이론에서 동기는 먼저 ‘활성화’되어야 하는 독립적인 구동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기는 학습 과정에서, 즉 학생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체감하며, 성공 경험을 쌓을 때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24

 

동기를 학습의 선행 조건으로 간주하게 되면, 이론은 암묵적으로 ‘먼저 동기, 그 다음에 학습’이라는 선형적 모델로 단순화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기와 학습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습니다.25 잘 설계된 수업은 학생들이 이해하고 숙달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하며, 이러한 경험은 다시 동기를 강화합니다.

 

요컨대, 동기는 학습의 전제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이기도 합니다.

 

 

치명적 변이 7. 동기가 학습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

 

◼ 현장에서 나타나는 왜곡의 양상

 

동기가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흔히 한 단계 더 나아간 해석이 뒤따릅니다. 동기가 높은 학생일수록 학습을 더 잘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따라 수업에서의 참여도와 열의, 활동성은 곧 학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간주됩니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동기와 학습의 관계는 이러한 단순한 추론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자율성 중심의 교수 방식은 학생의 동기와 정서적 안녕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학습 성취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며 일관되지 않습니다.26

 

따라서 수업이 매우 동기를 유발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실제로는 내용적으로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는 이러한 눈에 띄는 참여 신호를 ‘학습의 대리지표(poor proxies for learning)’라고 부릅니다. 이는 학습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학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27

 

의욕이 학습의 증거로 간주되는 순간, 교육의 초점은 무엇을 이해하고 얼마나 숙달했는가에서 무엇을 했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가로 쉽게 이동합니다. 그 결과, 정교한 동기 이론은 단순하지만 오해를 낳기 쉬운 전제로 축소됩니다. 즉,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보이면 학습도 잘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정교한 교육 설계와 신중한 실행

 

이 글의 결론은 자기결정이론이 잘못되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이론은 동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어떻게 서로를 강화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28

 

문제는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교육 현장에 들어오면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풍부한 동기 이론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 선택과 주체성, 동기를 강조하는 여러 슬로건이 뒤섞인 교육적 혼합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기결정이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육 변화에 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복잡한 과학적 개념이 현장에서 거의 불가피하게 단순한 실행 규칙으로 축소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의도적인 거부 때문이 아니라, 현장이 속도와 실행의 용이성, 그리고 즉각적인 적용 가능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29 이러한 전이 과정에서 개념의 뉘앙스와 개념 간의 연결이 사라지면서, 이론의 내적 정합성 역시 약화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율성이 무제한적인 선택으로 해석되고, 동기가 학습의 전제 조건으로 취급되며, 구조가 자율성의 반대로 간주될 때, 원래의 이론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론이 설명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 즉 지속 가능한 동기는 오히려 더 형성되기 어려워집니다. 동기는 선택을 극대화하거나 열정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형성되기보다는, 이해와 진전, 그리고 성공 경험과 같은 훨씬 눈에 덜 띄는 요소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30

 

따라서 핵심은 선택의 자유라는 형태로 자율성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신중한 수업 설계에 있습니다. 목표가 명확하고,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지며, 학생들이 경험을 통해 성장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구조가 제공되고, 학습 내용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이러한 학습 환경에서는 종종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발전하고 있음을,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 학습의 한가운데에서, 학교가 그토록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 형성됩니다. 바로 동기입니다.

 

동기는 학습을 시작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아니라, 학습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다시 학습을 강화하는 요소입니다.31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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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Deci, E. L., & Ryan, R. M. (1985). Intrinsic motivation and self-determination in human behavior. Plenum Press.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doi.org/10.1037/0003-066X.55.1.68
  2.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11(4), 227–268. https://doi.org/10.1207/S15327965PLI1104_01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doi.org/10.1037/0003-066X.55.1.68
  3. Niemiec, C. P., & Ryan, R. M. (2009). Autonomy, competence, and relatedness in the classroom: Applying self-determination theory to educational practice. Theory and Research in Education, 7(2), 133–144. https://doi.org/10.1177/1477878509104318
  4. Pfeffer, J., & Sutton, R. I. (2000). The knowing-doing gap: How smart companies turn knowledge into action.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5.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6. Fixsen, D. L., Naoom, S. F., Blase, K. A., Friedman, R. M., & Wallace, F. (2005). Implementation research: A synthesis of the literature. University of South Florida, National Implementation Research Network.
  7. Katz, I., & Assor, A. (2007). When choice motivates and when it does not.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19(4), 429–442. https://doi.org/10.1007/s10648-006-9027-y
    Patall, E. A., Cooper, H., & Robinson, J. C. (2008). The effects of choice on intrinsic motivation and related outcomes: A meta-analysis of research findings. Psychological Bulletin, 134(2), 270–300. https://doi.org/10.1037/0033-2909.134.2.270
  8.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11(4), 227–268. https://doi.org/10.1207/S15327965PLI1104_01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doi.org/10.1037/0003-066X.55.1.68
  9. Niemiec, C. P., & Ryan, R. M. (2009). Autonomy, competence, and relatedness in the classroom: Applying self-determination theory to educational practice. Theory and Research in Education, 7(2), 133–144. https://doi.org/10.1177/1477878509104318
    Reeve, J. (2009). Why teachers adopt a controlling motivating style toward students and how they can become more autonomy supportive. Educational Psychologist, 44(3), 159–175. https://doi.org/10.1080/00461520903028990
  10. Iyengar, S. S., & Lepper, M. R. (1999). Rethinking the value of choice: A cultural perspective on intrinsic moti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6(3), 349–366. https://doi.org/10.1037/0022-3514.76.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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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Patall, E. A., Cooper, H., & Robinson, J. C. (2008). The effects of choice on intrinsic motivation and related outcomes: A meta-analysis of research findings. Psychological Bulletin, 134(2), 270–300. https://doi.org/10.1037/0033-2909.134.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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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Iyengar, S. S., & Lepper, M. R. (2000).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6), 995–1006. https://doi.org/10.1037/0022-3514.79.6.995
  13. Patall, E. A., Cooper, H., & Robinson, J. C. (2008). The effects of choice on intrinsic motivation and related outcomes: A meta-analysis of research findings. Psychological Bulletin, 134(2), 270–300. https://doi.org/10.1037/0033-2909.134.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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