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5) – “학교는 있는데 교육이 없다”

by gyobasaNPO | 2026-04-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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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l Postman, 『The End of Education: Redefining the Value of School』 (Knopf, 1995) 비평

     

                                                                                                                         

『The End of Education』의 국내 번역서 소개: 『교육의 종말』 (문예출판사, 1999)

 

 

학교 건물은 있다. 교사도 있다. 교과서도 있고, 수업도 있고, 시험도 있다. 그런데 무언가가 없다. 왜 배우는지를 아는 아이가 없다. 왜 가르치는지를 말할 수 있는 교사도 드물다. 학교라는 형식은 온전히 살아있는데, 그 안을 채워야 할 무언가가 비어있다. 형식은 있되 목적이 없는 것,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이것을 교육의 위기라고 부른다.

 

『The End of Education: Redefining the Value of School』은 1995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 오히려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디지털 기기가 교실에 들어오고, AI가 숙제를 대신하며,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 목소리가 커지는 지금. 포스트먼은 30년 전에 이미 이 물음의 핵심을 짚었다. 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적이 없어서라고. 학교는 있는데 교육이 없다면, 그것은 도구는 있는데 방향이 없는 것과 같다.

 

 

‘end’의 두 가지 의미

 

이 책의 제목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end’는 종말이기도 하고 목적이기도 하다. 교육의 목적이 사라질 때 교육은 종말을 맞는다. 포스트먼은 이 언어유희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목적 없는 교육은 이미 끝난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학교 교육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학적인 문제다.” 여기서 ‘신학적’이라는 말은 종교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학생들이 왜 배우는지를 설명해 주는 거대한 서사, 즉 교육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신(god)’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신이 아니라, 삶에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로서의 ‘신’이다.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포스트먼은 이런 답들이 교육을 수단으로만 보는 시각이라고 비판한다. 수단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수단만 남은 학교에서 아이들은 의미를 찾지 못한다.

 

 

죽은 신들의 목록

 

포스트먼은 현대 교육이 기대어 온 몇 가지 서사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그것들이 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는지를 따진다.

 

첫 번째는 경제적 유용성이다. 학교는 취업을 위한 준비 기관이라는 서사. 그는 이것이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가장 위험한 서사라고 말한다.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경제가 바뀔 때마다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그 안에서 아이는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가 된다.

 

두 번째는 기술 숭배다. 컴퓨터가 교육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 포스트먼은 기술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기술이 목적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술을 쓰는가이다.” 화려한 디지털 도구로 가득 찬 교실이라도 왜 배우는지를 모른다면, 그 도구들은 방향 없는 속도에 불과하다.

 

세 번째는 다문화주의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문화를 평등하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서사. 포스트먼은 다양성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래서 우리는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학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기에 충분하지 않다. 공동체는 차이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함께 향할 수 있는 방향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다문화주의는 그 이야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포스트먼의 지적이다.

 

 

살아있는 신들을 찾아서

 

그렇다면 포스트먼이 제안하는 교육의 서사는 무엇인가. 그는 몇 가지를 제시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주선 지구(Spaceship Earth)’의 서사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작은 행성에 함께 타고 있다. 이 행성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 이야기는 국적과 인종, 계층을 넘어 학생들을 하나의 공동 목적으로 묶어줄 수 있다. 환경, 자원, 공존 등은 교과목이 아니라 우리가 왜 배워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또 하나는 포스트먼이 ‘타락한 천사(The Fallen Angel)’라고 이름 붙인 서사다. 완전한 지식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늘 틀리고 수정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제로 한 서사로, 그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과학도, 역사도, 도덕도 끊임없이 수정되어 왔다. 이 서사는 학생들에게 겸손과 비판적 사고를 교육의 핵심으로 가르친다.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질문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다.

 

포스트먼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이야기 없이는 좋은 교육도 없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이야기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

 

 

기술에 대한 선지자적 경고

 

포스트먼이 이 책을 쓴 1990년대 중반은 인터넷이 막 교육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술이 교육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무언가를 주고 무언가를 빼앗는다. 그러나 기술 옹호자들은 주는 것만 이야기하고, 빼앗기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텔레비전은 시각적 자극을 제공했지만, 긴 글을 읽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계산기는 계산의 편의를 주었지만 수의 감각을 빼앗아갔다. 인터넷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공했지만,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지금 AI를 교육에 도입하려는 논의가 뜨겁다. 포스트먼이 살아있다면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AI는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왜 AI를 교육에 쓰려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도구를 먼저 도입하는 것은, 목적 없이 수단을 채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사에게 남겨진 질문

 

포스트먼의 책은 교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가르치는가. 교과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아이들이 취업을 잘하도록 돕기 위해서? 이 답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는 단순히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이야기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어떤 이야기 안에 놓을 것인지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은 교사의 역할을 교과 전달자에서 의미 안내자로 바꿔 놓는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도구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가르치는 것.

 

 

한국 교육에서의 의미

 

한국 교육에서 포스트먼의 질문은 더욱 날카롭게 와닿는다. 수능이라는 목표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그것이 마치 교육의 목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수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수단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 수단을 통과한 이후 아이들은 방향을 잃는다. 대학에 들어간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 졸업 후 왜 일하는지를 묻는 청년들-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 이야기를 잃어버린 결과일 수 있다.

 

교사 한 명이 이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 수능이라는 목표가 교실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 그 압력을 혼자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교사 개인에게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포스트먼이 말하는 것은 구조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훨씬 작은, 그러나 다른 무언가를 말한다. 수업 중 단 한 번이라도 “이것을 왜 배우는가”를 학생들과 함께 진지하게 따져보는 순간, 그 교실에는 다른 무언가가 생긴다.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질문 앞에 잠시 멈추는 경험. 그 경험이 쌓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졸업 후 삶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순간에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포스트먼은 그것이 교사가 줄 수 있는 가장 오래 남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는 아쉬움

 

물론 이 책이 모든 물음에 답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 지구’나 ‘타락한 천사’ 같은 서사들은 깊은 울림을 주지만, 그것이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 상상의 여지를 채워야 한다. 진단의 날카로움에 비해 처방의 구체성이 다소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그의 논의가 미국의 공교육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감안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른 사회에서 그의 서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각자의 현실에 비추어 따져보아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그러나 이것이 이 책의 가치를 줄이지는 않는다. 교육 방법론을 다루는 책은 많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말하는 책도 많다. 그러나 왜 가르치는가를 정면으로 묻는 책은 드물다. 포스트먼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사이에는 학생이 배움에서 의미를 찾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차이가 생긴다.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자신의 언어로 답할 수 있는 교사가 많아질수록 교육은 조금씩 달라진다.

 

 

<교실 적용 팁>

 

이 책은 교육 방법론을 직접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스트먼이 던지는 질문들은 교실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태도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왜 배우는가”를 수업 안으로 들여오기

 

단원을 시작할 때 “오늘 우리가 이것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학생들과 함께 짧게 따져보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교사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험에 나오니까”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것을 틀렸다고 하지 말고, “그 외에 또 있을까?”를 물어보자. 이 질문이 쌓이는 교실과 그렇지 않은 교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다.

 

수단과 목적을 구별하는 언어 습관 만들기

 

“수능에 나오니까 중요하다”는 말은 수단을 목적처럼 말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알면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은 목적을 말하는 방식이다. 두 표현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가 의식적으로 후자의 언어를 쓰는 빈도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만으로도 교실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학생들은 교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말보다 태도로 먼저 읽는다.

 

기술을 쓰기 전에 목적을 먼저 묻기

 

AI, 태블릿, 동영상 강의 등과 같은 새로운 도구를 수업에 도입할 때,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이 도구가 없었다면, 이 수업에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도구가 수업의 목적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목적 없이 도구가 수업을 이끌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습관으로 삼는 것이 포스트먼이 말하는 기술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대응이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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