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정책이 학교로 들어오려면

by gyobasaNPO | 2026-02-04 16:35

최근 몇 년,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교원단체와 교육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교사들의 문제 제기와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방식과 실행하는 구조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2025년 경기 승률 94.80%(73승 4패), 출전한 15개의 대회 중 우승 11회. 누굴까. ‘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안세영 선수다. 그에게 2025년의 성적이 그 정도로 좋았으니, 2026년엔 탁구와 테니스에도 출전해 보라고 하면 어떨까? 둘 다 도구를 갖고 하는 네트 경기이니 배드민턴과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잘 될까? 물론, 운동신경이 뛰어날 테니 다른 유사한 종목에서 어느 정도 통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훈련과 연습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영역에 불쑥 뛰어들어 잘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런 까닭에 제아무리 대단한 운동선수라도 여러 종목에서 탁월하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극히 드물다.

 

무대를 학교로 바꿔보자. 2026년의 학교, 새로운 정책이 쏟아져 들어온다. 정책 문서 속 문장들은 선의와 이상으로 가득하다. 학생의 성장, 교육격차 해소, 진로 연계 학습이라는 목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정책이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마주할 때마다 교사들은 자문한다. 이 정책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이 정책은 학교에서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가? 이미 우리는 ‘학교폭력’의 제도화, 탈교육화가 더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 실현이라는 의도에서 벗어나, 신고와 처벌, 서로 물어뜯기로 흐르고 마는 아픔을 겪고 있다.

 

최근 몇 년,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교원단체와 교육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교사들의 문제 제기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방식과 실행하는 구조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그 한복판에는 학생맞춤통합지원, 늘봄학교, 고교학점제가 있다. 정책의 의도, 목적만 볼 것이 아니라, 방향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고, 학교의 현실을 살피며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길을 고민할 때이다. 좋은 일 하면서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우를 범할 수는 없잖은가.

 

 

‘학생맞춤통합지원’, 당연히 중요하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학맞통)’은 학생의 학습 참여를 어렵게 하는 기초학력 미달, 경제적·심리적·정서적 어려움, 학교폭력, 경계선 지능, 아동학대 등 다양한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소하고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교육받을 권리 향상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지원1이다.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여러 제도로 쪼개어 다루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가 중심이 되어 통합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학생 주변의 교육복지센터, Wee센터, 동주민센터 등 흩어져 있던 지원 체계를 하나의 틀로 묶겠다는 취지는 분명히 진일보한 면이 있다.

 

서울시교육청도 ‘학맞통’이 기존 학생 지원 사업의 업무 재구조화를 통한 학생 중심의 지원 체계 구축임을 분명히 하며, 초·중·고에 300만 원씩 예산을 지원했다. 또, 각 지역 교육지원청도 지원 체계를 만들거나 정비하면서 단위 학교의 통합지원팀과 연계할 준비가 한창이다.

 

정책이 의도대로 작동한다면, 교실에서 감지되는 작은 신호들이 맞춤통합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사가 홀로 감당하던 문제를 학교 공동체(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시범학교, 선도학교에서는 다층적 협력 체계를 통해 위기 학생 지원의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으나, 대개는 교사의 헌신과 희생에 기반한 것이어서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현장의 반응은 기대만큼 단순하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공통적으로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추가 인력과 예산 없이 시행될 경우, 교사에게 사례관리자 역할까지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며 제도 시행 유보를 요구하고 있다. 전면 시행을 앞둔 현재, 학교별 편차가 극심하고 인력·예산 확보도 부족하여 각종 협의회, 기록, 보고서 작성이 늘어나고, 학생 지원 제도가 또 하나 추가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대한초등교사협회도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의 전문가이지, 복지 행정가가 아니다”라며 “이미 과포화 상태인 학교 행정에 복지 업무까지 법제화된다면, 정작 교사가 아이들의 눈을 맞추며 가르칠 시간은 소멸하게 될 것”2이라고 경고했다.

 

이렇듯 반발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위기 학생 지원을 위한 ‘학맞통’ 체계의 현장 안착을 위해 전국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 전담 인력 141명을 확충하기로 했다. 이번 인력 확충은 기존 인력 재배치 및 신규 발령을 통해 정식 정원을 확보함으로써 전담팀 중심의 운영으로 제도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렇게 되면, 교육지원청이 위기 학생 사례를 직접 관리하고 지역 자원을 연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학교와 교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3

 

다행히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육복지 거점학교4이기에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이하 ‘지전가’)가 이미 배치되어 있다. ‘지전가’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발견 등 다양한 사례 관리, 학교와 지역사회 자원과의 연결, 학부모·가정과의 소통 지원, 학교 내 협업 및 예방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교사의 부담은 크게 줄고 학생 지원은 획기적으로 확대, 심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의 상황만 보더라도, ‘지전가’는 초등학교 64교 중 22교, 중학교 40교 중 16교, 고등학교 38교 중 1교에 배치된 데 불과하다. 나머지 학교에서는 아직까지 교사들이 역할 분담을 통해 잇몸으로 버티는 현실에 가깝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사의 헌신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전담 인력 배치와 행정 지원을 기본으로, 학교장도 조정자이자 연결자 역할을 적극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교사가 학생에 관한 교육적 판단에 집중할 수 있다. 현재, ‘학맞통’에 대한 학교의 준비와 대응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일괄 적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단계적이고 다양한 층위의 도입과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교사는 시키면 어떻게든 다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시행하면 교사를 소진시킬 뿐이며, 정책에 형식적으로 대응하게 만든다. 물론,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방과 후 돌봄, 학교의 전문성인가

 

2024학년도 2학기를 기점으로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늘봄학교는 방과 후와 돌봄을 학교 중심으로 통합하여 학생의 안전한 성장과 학부모의 돌봄 부담 완화를 목표로 삼았다. 특히, 맞벌이 가정 증가와 지역 간 돌봄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하지만 지난 윤석열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과는 달리, 인력 및 공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혼란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안정적인 돌봄 환경이 학생의 정서 안정과 학교 적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또, 초등 중심으로 시작된 늘봄학교가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를 담당해야 하는 초등 교원 대상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간 부족으로 교육과정 운영, 업무 수행에 악영향, 불안정한 인력 투입과 모호한 업무 경계 등으로 업무 이관 미흡, 방과 후 안전관리, 민원 등의 업무 과중 등의 파행 사례가 확인되었다. 게다가, 운영 재원확보를 위해 기존 기초학력 지원 예산, 다문화 교육 예산 등을 삭감하는 등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마저 나왔다. 정책 설명에서는 ‘교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하지만, 운영의 최종 책임은 당연히 교장과 교사에게 돌아온다.

 

방과 후 아이들을 공공적 방식으로 돌봐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정책 의지는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사업 성격이 무엇인지, 그 공적 해결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며,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 지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방과 후를 비롯해 아동 돌봄 문제를 공공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상당한 재정 부담과 일정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도입 단계부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임에도 학교로 밀어넣으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은 그 일을 떠맡아야 할 학교, 교육청과 제대로 된 소통과 협의 과정도 없이 돌봄교실 정책을 추진하였다.

 

국가적 정책 과제를 학교에 떠넘기는 게 바람직할까. 돌봄의 영역과 교육의 영역은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르다.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각자의 고유성, 독자성이 뚜렷하기에 마구 덧대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 일과가 끝난 후 주거지 인근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돌봄을 제공받는 것은 주민복지를 제일 임무로 하는 지자체가 풀어야 할 일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때는 학생이지만, 학교 밖에서는 지역 주민이다. 교육청과 학교가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해 줄 책임이 있다면, 지자체는 아이들 일상을 평온하게 하는 복지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5

 

늘봄학교로 인해 교육기관과 지자체의 역할과 경계가 흐려졌다. 아니, 교육과 돌봄, 행정과 안전 관리의 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면서 학교가 아동·청소년에 관한 과도한 사회적 요구를 떠안는 공간이 되어 있다. 그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일시적인 공간 부족 때문이라면, 늘봄학교는 ‘학교가 운영하되, 교사가 직접 담당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전문 돌봄 인력의 안정적 고용, 지자체와의 책임 분담, 학교급 또는 지역별 차별화된 모델이 필수적이다. 교사가 대학에서 배우고 임용을 준비한 것은 교과 전공과 교육학이지 돌봄과 사회복지가 아니다. 이쯤 되면, 교사는 도대체 못 하는 게 없는 ‘절대 반지’의 소유자라도 된 듯하다.

 

교육과 돌봄의 질을 정말 높이고 싶다면, 학교에 맡겨진 과중한 책무를 덜어내는 것이 먼저다. 교육부는 저출생의 원인이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 등 학교 밖 사회 문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치, 학교가 방과 후 돌봄을 잘하면 사회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에 불과하다. 학교 안으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사회적 돌봄 기능을 지역사회로 분산시켜, 마을 돌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지자체 이관 및 협력 체계를 구축할 때이다. 그때는 학교도 필요한 자기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더 좋은 선택이 되려면

 

2025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교육계 이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획일적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진로 맞춤형 학습을 구현하겠다는 정책이다. 학생이 스스로 흥미와 진로를 탐색하며 학습하는 경험은 학습 동기와 책임감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 교육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시범학교 운영을 거쳐, 지난해 고1부터 처음 도입된 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교사·학생·학부모 등 교육 현장의 다양한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고교학점제는 과목 개설, 시간표 운영, 평가 방식 변화 등으로 학교 규모와 여건에 따라 부담이 크다. 중·소규모 학교의 교사들은 다과목 담당 등으로 과도한 준비 부담을 호소한다. 여러 교원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준비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이유다. 특히,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을 보충 지도를 통해 성취 수준을 끌어올리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제’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이 컸다.

 

학생들 또한 과목 선택에서 진로나 관심보다는 내신 등급 받기 수월한 과목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학 입시를 제대로 손보지 않은 까닭에 내신 ‘상대평가’ 눈치 보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종전보다 등급이 완화(9등급→5등급)되긴 했으나 여전히 상대평가를 적용받는다. 높은 등급이 대입 수시 전형(교과·학생부종합)에서 훨씬 유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고교학점제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 원격수업, 지역 단위 지원은 기본이고, 특목·자사고 폐지, 절대평가 도입, 이를 반영한 대입 제도 개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3년, 그런 변화를 무엇 하나 이뤄내지 못한 까닭에 그 도입 취지가 온전히 살아나기 어려운 상황이다.6

 

그런 상황을 반영하여 이재명 정부 교육부도 지난 1월 28일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지원 대책’7을 발표했다. 그 안에는 학점 이수 기준 완화, 미이수 학생의 학점 취득 기회, 초등부터 학습결손 예방, 기초학력 지도 연계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은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의 형식화, 온라인 학교와 공동교육과정으로 인한 교육격차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근본적 해법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교육부는 늘 정책 전면화에 앞서 연구학교, 시범학교를 다년간 운영하는데, 왜 이런 문제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 걸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현실인데, 대개 교육정책 시범(연구)학교는 그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적극적인 교사가 있으며, 정책 안착을 위한 예산 지원도 충분히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최적화된 학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결국, 일부 학교의 긍정 사례와 정책 추진 의견이 과대 대표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시범(연구)학교는 안팎의 여건이 양호한 학교만이 아니라, 보통인 학교, 열악한 학교를 다양하게 표집하여 운영하는 걸 강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편향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교육적 상황을 반영한 현실 그대로의 교육현장 접근이 가능하다.

 

이렇게 정책을 내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하고, 또 문제점을 지적하는 쳇바퀴가 도는 동안, 정책의 애초 취지나 목표는 흩어지고 오로지 땜질식 처방만 남는 식이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선택권을 제공하고,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참여하여 일정한 성취에 이르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던가? ‘고교학점제’가 왜 이렇게 동네북이 되고 말았을까. 교육계 안팎의 자성 목소리가 높아야 할 때다.

 

 

학교를 살아 숨쉬게 하는 정책

 

어떤 정책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정책 제안을 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그래서 취지에 공감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 제시되면, 학교는 어떻게든 이를 교실에 끌어들여, 교사의 입을 통해 학생의 손과 눈에 닿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정책이 비로소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사들은 또 무언가가 던져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덤터기를 쓴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부를 비롯한 정책 당국이 ‘시키면 결국 하더라’라는 사고방식으로 학교 현장을 대해 온 탓이다. 헌법이 말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앞서서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묻는 정책이 필요하다. 권한은 쪼그라들었는데 책임은 마구 부푼 현실에 놓인 교사가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학교부터 만들어야 한다.

 

학급당 6~70명씩 모여 있던 수십 년 전에도 했는데, AI 세상에 20명 안팎의 애들 데리고 못할 게 뭐가 있겠냐고 하지만, 이는 숫자의 함정이다. 상명하복이 시스템이고 문화이던 시절엔 가능했다. 하지만, 수평화된 관계와 다양성, 지속가능성의 사회에서는 공존을 위한 상호 존중의 관점이 필수적이다. 그게 없으면, 손을 대면 댈수록 악화되기 십상이다. 학교폭력 접근, 현장체험학습과 같은 학생 성장 지원 정책이 갈등의 온상이 되고, 표류를 거듭하는 까닭이다.

 

당장 교원 감축부터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는 국가공무원 정원에 관한 개정안 입법을 통해 초등 2,269명, 중등 1,458명, 유치원 25명 등 총 3,752명의 교사를 감축하기로 했다.8 출생아 급감으로 학생 수가 줄고 있으니, 교사도 그에 맞추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 숫자놀음이다. 최근 10년, 다문화 학생 수는 약 4배 이상,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1.4배,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3배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 학생이 있는 줄도 몰랐고, 있어도 외면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면, ‘학생 수 감소’라는 산술에 기대어 교원 정원을 감축하는 무모한 행정을 멈추어야 한다.9

 

AI도 많은 것을 빠르게 해 주기는 하지만, 결국 판단과 선택은 사람의 몫이다. 교사는 학교에서 긴급한 일, 중요한 일, 필요한 일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견디다 못해 이직을 고민하는 교사를 붙잡을 수 있으려면, 학생들에게 좋다는 온갖 것들을 다 끌어모아 해결하라고, 책임지라고 몰아세울 일이 아니다. 교사가 숨을 쉴 수 있어야 학교가 교육 가능한 공간이 되고, 내일이 있다.

 

다음으로, 정책 생산 과정에서는 반드시 교사, 교원단체 등과 공론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숙의와 숙론을 거쳐야 한다. ‘일단 시작하면 학교가 알아서 하겠지’가 통하던 시절은 더 이상 없다. 물론, 탑다운(Top-down) 방식의 소통이 눈에 띄게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형식이 달라졌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니다. 그 안에 실제적 내용이 어떠한가가 더욱 중요하다. 전체적인 방향과 틀을 제시하되,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세분화하는 입안 집단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게 가능하려면 준비 단계에서부터 세심한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한 실질적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정책 수립이 자리잡아야 한다. 아직 우리는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상시적으로 수렴하는 패널 집단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그때그때 꾸리기보다는 지역, 급별, 성비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표본집단을 미리 정해두고 이를 수시로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끝으로, 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여, 학생, 학부모, 교직원, 지역사회가 공동체를 이루는 학교 자치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개개 학교는 대한민국 사회라는 보편성과 함께 개별적 상황과 지역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학교가 자신의 맥락과 필요에 맞게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고, 학생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더 폭넓게 부여받아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 늘봄학교, 고교학점제 그 어디에서도 권한과 책임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았고, 결국 학교 자치에 디딤돌이 되지 못했다. 지금처럼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구조에서는 그 누가 와도 제대로 일할 수가 없다. 교사들의 외침은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자’는 것이고 ‘지속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정책 안에서 교사의 행복 찾기

 

‘기-승-전-학교’ 바람이 세차다. 학교는 도무지 못하는 게 없다는 모양새다. 기대는 고맙다. 그렇게 기대와 요청을 많이 할 거라면,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주면 좋겠다.

 

최근 나오는 정책엔 거의 빠짐없이 ‘맞춤형’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은 그대로다. 결국은 사람이 맞춤형이 되는 수밖에 없는데, 인간을 조각조각 분해하여 부품 교체하며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애시당초 실현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꼴이다. 결국, 준비가 부족한 학교의 대응은 시늉만 하거나, 마음 약한 사람이 떠맡아 마른 수건 짜내며 자신을 갈아 넣는 도리밖에 없다.

 

학교가, 교사들이 일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교사 본연의 일, 학교의 본질적 사명인 ‘교육’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돌봄이나 맞춤형 지원과 같은 전문적 영역은 그 분야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세영 선수는 배드민턴을 계속할 것이다. 또, 학교와 교사도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온전히 성장하여, 이웃을 존중하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이들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함께할 것이다. 다만, 서로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숙의와 숙론의 과정을 거쳐,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임을 명심하자.

 

병오년 새해, 교사들이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지켜보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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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www.law.go.kr (국가법령정보센터)
  2. https://www.news1.kr/society/education/6050473 (뉴스1. 2026.01.27.)
  3. https://www.etoday.co.kr/news/view/2547414 (이투데이. 2026.01.20.)
  4. 서울형교육복지학교는 법정저소득학생이 36명 이상인 학교를 거점학교로 지정한다. 이때, 거점학교에 배치한 전문인력(유초중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은 법정저소득학생(국민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법정차상위대상자)만이 아니라, 경제적저소득학생(법정저소득학생을 포함한 중위소득 80% 이하) 대상으로 맞춤형 통합지원을 담당한다.
    https://gsycedu.sen.go.kr/CMS/education/education03/education0302/index.html
  5.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4 (교육언론 ‘창’. 2025.08.31.)
  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215625.html (한겨레신문. 2025.08.28.)
  7. https://www.moe.go.kr/boardCnts/viewRenew.do?boardID=294&boardSeq=104174&lev=0&m=020402
  8.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128_0003493966 (뉴시스. 2026.01.28.)
  9.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113010006007 (아시아투데이. 2026.01.13.)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6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