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신년칼럼] 입시 경쟁 사회를 넘어, 공교육의 희망을 다시 묻다

by gyobasaNPO | 2026-01-07 14:40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제도 변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경쟁을 용인하고 어떤 사회를 향해 가려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입니다. 공교육의 희망은 바로 그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교육은 늘 희망의 언어로 시작된다. “경쟁을 줄이겠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이 반복된다. 그러나 정작 교실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입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고, 사교육 의존은 줄지 않으며, 교사와 학부모의 불안은 해마다 누적된다. 희망을 말하는 언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왜 이렇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표면을 바꾸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 왔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손보고, 평가 방식을 바꾸고, 대학 정원을 조정했지만, 경쟁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대학 서열이 삶을 규정하는 사회, 한 번의 선발에 인생이 걸리는 시스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는 그대로 두었다. 입시 방식은 바뀌었지만 경쟁을 낳는 조건은 그대로였고, 그래서 경쟁은 형태만 바뀐 채 반복되어 왔다.

 

 

경쟁적 사회 구조를 외면한 개인 책임론의 함정

 

한국의 입시 경쟁은 일부 학생이나 학부모의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 서열이 삶의 경로를 강하게 규정하고 한 번의 선발이 인생을 좌우하게 만드는 경쟁적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필연적 결과다. 그럼에도 우리는 입시 경쟁의 원인을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 찾기보다,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 문제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는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입시 경쟁은 개인이 선택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강제한 결과다. 소위 일류대로 불리는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이후의 취업, 소득, 사회적 기회를 좌우하는 한, 입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입시 폐지론의 오해와 진짜 문제

 

이 때문에 입시를 없애면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 역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경쟁을 줄이기 위한 입시 개혁은 197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시도되었지만, 입시를 완화하거나 없앤다고 해서 경쟁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경쟁은 오히려 다른 형태로—내신, 비교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더 많은 사교육으로—변형되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한 교육 선진국들 역시 대입시험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그들과의 차이는 시험의 존재가 아니라, 그 시험이 인생을 얼마나 결정하느냐에 있다. 독일의 경우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직업교육 경로가 대학 진학만큼 사회적으로 존중받으며, 대학 간 서열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시험이 통과의 관문일 뿐 삶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시험이 있어도 경쟁은 지금의 한국과 같은 양상으로 과열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벌이 취업과 소득, 사회적 기회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입시 경쟁을 없애자”는 구호는 오히려 공허해진다. 문제는 입시 그 자체가 아니라, 한 번의 입시 결과가 이후 삶을 지나치게 많이 결정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시 개혁의 방향은 폐지가 아니라 영향력의 축소여야 한다. 입시가 중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절대평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 지점에서 절대평가에 대한 기대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절대평가는 오랫동안 경쟁 완화의 해법처럼 제시돼 왔지만, 한국에서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한국의 절대평가는 제대로 된 절대평가가 아니었다.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하는 본래의 절대평가와 달리, 한국에서는 절대평가 등급과 함께 상대평가 정보를 성적표에 병기했다. 학교는 90점 이상을 1등급, 80점 이상을 2등급으로 미리 정해두고, 변별을 염두에 두고 점수를 부여했다. 절대평가라는 이름뿐, 실제로는 상대평가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반쪽짜리 제도였다.

 

더 근본적으로, 절대평가는 경쟁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경쟁의 압력이 약할 때 비로소 작동하는 제도다. 상위권 대학의 문이 좁게 유지되고, 그 대학 진학 여부가 여전히 인생의 결정적 분기점인 상황에서는 절대평가조차 다시 변별의 출발선으로 바뀐다. 1등급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최소 조건이 되고, 기준을 넘은 뒤 또 다른 경쟁—내신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비교과 활동, 자기소개서—이 시작된다. 그 빈자리는 사교육과 정보 격차가 채운다. 절대평가는 실패했다기보다, 애초에 제대로 시도되지 않았거나 경쟁 구조에 흡수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대학 서열, 원인인가 결과인가

 

대학 서열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서열을 완화하면 입시 경쟁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지방 거점 국립대 육성을 표방했지만 실제 투자는 미미했으며, 대학 평가 방식의 개편도 오히려 순위 경쟁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최근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 거점대학에 실질적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대학 경쟁력 강화만으로 서열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 대학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가, 기업들이 학벌이 아닌 역량으로 채용하는가, 사회 전반의 학벌 인식이 바뀌는가 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서열 완화 정책이 다른 구조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함께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은 단순히 문제의 원인도, 단순한 결과도 아니다. 서열은 경쟁과 불평등이 응축되어 드러난 표면이면서, 동시에 그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한다. 기업의 채용 관행, 지역 간 일자리 구조, 사회 전반의 학벌 인식이 그대로인 한 서열은 형태만 바꾼 채 반복될 것이다. 게다가 서열 구조 자체가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입시 경쟁의 본질은 특정 몇 개 대학에 몰리는 현상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겉으로는 같은 시험을 치르는 공정한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준비한 결과를 한 줄로 세우는 경쟁이라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수도권과 지방, 학교 유형에 따라 학습 환경과 정보 접근성, 지원 체계는 크게 다른데, 학생들은 이런 전혀 다른 출발선에서 같은 시험을 향해 경쟁한다. 대학 서열은 이런 조건의 격차가 누적된 결과이며, 진짜 문제는 이러한 불평등한 경쟁 조건이 구조적으로 방치되어 왔다는 점이다.

 

 

교육 밖의 문제, 교육 안의 과제

 

그래서 입시 경쟁은 교육 제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한 원인은 교육 바깥에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부족하고 지역 간 격차는 크며, 실패 이후 다시 올라설 수 있는 경로는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런 사회에서 입시는 학습의 과정이 아니라 생존의 관문이 된다. 더 나은 삶을 향한 도전이 아니라, 추락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경쟁이 벌어진다. 사회안전망이 약하고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할수록, 경쟁은 더 이른 시기부터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입시 경쟁 완화는 교육 내부와 외부의 동시 개혁을 요구한다. 대입제도 개선과 학교 교육 내실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 구조 개혁만 기다릴 수도 없다. 대학 서열 완화를 위한 실질적 투자, 학습 조건 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복지 확대, 그리고 노동시장 개혁과 사회안전망 강화가 함께 추진될 때, 비로소 입시를 둘러싼 과도한 경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희망의 출발점: 방향을 바로 잡기

 

그렇다면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희망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공교육 개혁의 희망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단번에 완성되는 해법이 아니라, 방향을 바로 잡는 데서 비롯된다.

 

첫째, 한 번의 시험, 한 시기의 성과가 인생을 좌우하지 않도록 입시의 부담을 분산하고, 재도전의 경로를 넓혀야 한다. 이는 대학 입학 이후 전과·편입 등의 교육적 경로 확대, 실패 후 재기가 가능한 사회안전망 등 구조적 변화와 함께, 채용과 승진에서 학벌보다 실력을 우선하는 노동시장 문화의 정착을 의미한다.

 

둘째, 대학 간 격차를 단순한 서열이 아니라, 교육·연구·지역 기여 등 역할과 특성의 차이로 재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 거점대학은 지역 산업과 연계한 특성화로, 교육중심대학은 우수한 학부교육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채용 관행, 지역 일자리 구조, 사회적 인식까지 함께 바뀌지 않는다면, 서열 완화는 다시 다른 서열을 만들어낼 뿐이다. 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 노동시장, 지역 정책이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 전체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를 교육의 자리로

 

무엇보다 이러한 구조 개혁과 함께 학교 수업이 다시 교육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구조가 바뀌어도 교실에서의 배움이 회복되지 않으면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교는 배움의 장이라기보다 선발을 준비하는 장소로 인식되어 왔고, 그 결과 수업은 경쟁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는 기능을 해 왔다. 이 왜곡을 바로잡지 않는 한, 어떤 제도 개편도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공교육 정상화란 경쟁의 속도를 늦추고, 모든 학생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교실 안에서 보장하는 일이다. 학생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수업, 정답을 얼마나 빨리 맞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품게 되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수업이 학교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는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기르기 위한 선택이자, 학생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주체로 존중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학교가 이런 역할을 회복할 때, 사교육은 더 이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필수 경로가 아니라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보조적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왜곡된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시 교육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입시 중심 교육을 넘어 공교육의 희망을 다시 묻는 출발점이다.

 

 

희망은 직시에서 나온다

 

한국 공교육에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있다”거나 “없다”고 답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희망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나오지 않는다. 희망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입시 경쟁은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입시 제도만 바꾸거나 대학 서열만 손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개혁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제도 변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경쟁을 용인하고 어떤 사회를 향해 가려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입시가 인생을 과도하게 결정하지 않도록 하자는 합의, 대학이 성적순 선발이 아니라 다양한 학생을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합의,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경로를 넓히자는 합의,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공교육의 책임과 역량을 강화하자는 합의가 필요하다.

 

이 합의는 정부나 교육부만의 몫이 아니다. 대학은 학생 선발의 철학부터 바꿔야 한다. 단일한 기준으로 줄 세우기식 선발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해 다양한 배경, 재능, 강점을 가진 학생들로 캠퍼스를 구성하는 것, 이것이 대학 본연의 역할이다. 지역, 계층, 교육 환경이 다른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사회로 나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시민이자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교 교육과정을 존중하되, 과도한 스펙 경쟁을 유도하지 않는 입학 전형이 필요하다.

 

기업은 학벌이 아닌 역량 중심의 채용을 확대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단기적 성적이 아닌 장기적 배움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고, 시민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지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해의 희망은 더 많은 구호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경쟁의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천천히 그러나 일관되게 실천해 나가겠다는 공동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공교육의 희망은 바로 그 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새해,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다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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