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교육: ‘죽임의 사회’를 넘어 상생의 미래로

by gyobasaNPO | 2025-12-16 16:49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지혜로운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생태계 전체의 상생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사회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혐오와 피상적인 문제의식이라는 치명적인 병폐를 극복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극단적인 경쟁과 대립의 늪에 빠져 있다. 유정길 작가는 《거룩한 불편》에서 이 상황을 “인간과 지역과 나라를 서로 파괴하는 ‘죽임의 사회’”로 규정한다. 이는 경쟁에서 밀린 이를 배제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을 착취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인간과 인간을 살리고, 인간이 자연을 살리며 인간 내면을 살리는 ‘살림의 사회’”라고 역설한다. 즉, 경쟁보다 협력을, 배제보다 포용을, 착취보다 공생을 추구하는 사회다.

 

우리가 이 ‘죽임의 사회’를 넘어 ‘살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혐오와 피상적인 문제의식이라는 두 가지 치명적인 병폐를 진단하고 교육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파괴하는 혐오와 피상성의 독(毒)

 

현재 우리 사회는 세대, 성별, 계층, 이념 등 모든 영역에서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으며, 이 간극을 메우는 대신 더욱 벌리는 혐오 표현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혐오 정서는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까지 침투했다. 저학년 학생들은 외모 비하, 성별 고정관념 강화, 경제적 차별 등을 ‘놀이’의 형태로 위장하여 사용하며 특정 학생에게 ‘낙인’을 찍고 집단적으로 배제하는 풍습을 형성하고 있다.

 

아동기의 혐오는 성인의 혐오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이 시기에 배제와 차별의 언어를 학습하면, 혐오가 사회적 상호작용의 ‘당연한 방식’으로 고착화된다. 초기 인지 필터가 왜곡되어 타인을 오직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되며,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가치관을 바꾸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아동 혐오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나 가정 교육의 부재를 넘어, 아동을 둘러싼 모든 환경(가정, 학교, 또래집단, 미디어, 사회 전반)의 복합적인 결함에서 비롯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 학교 내 경쟁 문화, 그리고 사회 전반의 구조적 차별과 갈등이 아이들에게 혐오 코드를 ‘당연한 규칙’으로 내면화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독은 피상성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단편적이어서, 모든 교육과 사회 활동이 ‘경쟁력 강화’나 ‘기능주의적 목표’에만 치중되어 인간-인간, 인간-자연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있다. 초·중·고 교육은 과도한 입시 경쟁과 획일화된 지식 전달 시스템에 갇혀, 학생들은 심리적 고립과 학습 흥미 상실을 겪고 있다. 성적 향상이라는 단편적인 목표에 갇혀 ‘삶의 총체적인 성장’이라는 교육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성인 평생교육 역시 단편적인 직업 기술 습득이나 학위 보완에 치중되어,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성찰하거나 공동체에 기여하는 ‘살림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혐오가 분열을 심화시키고, 피상적인 접근이 문제의 근원을 외면하는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죽임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림의 교육’을 통한 생태적 전환

 

우리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생태적 관점에서 교육의 근본적인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살림의 교육’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생태계 모든 존재가 서로를 살리는 평등한 관계임을 인식하고, 교육을 통해 상생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두 가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전략으로는 아동 혐오 문제의 해결은 아동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한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개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감정 문해력 교육(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필수화하고,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의 고통을 인식하고 스스로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회복적 갈등 중재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다양성 교육’과 ‘미디어 해독 능력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통합하여, 혐오 표현의 사회적 맥락과 파급 효과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와 가정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와 가정이 공동으로 훈육 및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학부모 대상 존중 언어 교육을 의무화하여, 아동에게 일관된 존중의 가치관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를 통해 혐오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명확히 하는 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전 부처가 협력하는 범국민적 ‘존중 문화 캠페인’을 상시 운영하여, 사회 전반의 가치관을 평등과 포용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피상성을 깨는 ‘모두가 교사, 모두가 학생’ 배움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나는 오랜 기간 공교육에 몸을 담고 있었다가 퇴임 후 함양 온배움터(옛 녹색대학교) 생태교육연구소에서 경쟁과 피상적 지식 습득 중심의 교육을 ‘협력적이고 성찰적인 배움’으로 혁신하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명은 ‘함께배움’으로, 이는 ‘살림의 교육’을 구현하는 획기적인 실험이다. 이 프로젝트는 ‘함께읽기(공통 텍스트를 읽고 문제의식 공유)’, ‘함께배움(토론과 질문을 통한 지식 재구성)’, ‘함께나눔(학습 내용을 실천으로 연결)’ 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함께배움’ 단계는 다시 ‘생각키우기(질문 던지기)-생각다지기(토론으로 심화하기)-생각펼치기(실천 방안 모색하기)’로 진행된다.

 

지식의 수직적 전달이 아닌, 경험과 성찰의 수평적 공유를 핵심으로 하며, ‘이끄미(교사 역할을 하는 안내자)’가 아닌 ‘배움벗들(함께 배우는 학습 동료들)의 상호작용’에 중심을 두어, 질문과 토론을 통해 지식을 재구성하고 생성하는 능동적인 학습 주체를 길러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함께하는 배움벗들은 서로를 이겨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촉진자로 인식한다. 배움의 마지막 단계인 ‘생각펼치기’를 통해 그동안 학습한 이론적 지식을 실제 삶의 현장과 융합한다. 예컨대 생태적 농업 실천 공동체나 친환경 건축 실험 공간 등 지역의 다양한 생태 실천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경험하며, 지식을 실제 삶의 문제와 연결하고 실천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획일적인 지식 전달과 삶의 괴리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학습과 실천의 단계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모두가 교사, 모두가 학생’ 시스템을 유지한다.

 

이 실험은 초·중·고는 물론이고 나이와 학력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 학습자가 ‘배움벗’이라는 동등한 자격으로 만나, 세대 간 지혜와 다양한 경험을 수평적으로 공유하여, 평생교육의 목적을 ‘경쟁력 강화’에서 ‘삶의 질 향상 및 공동체 기여’로 전환하고,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성찰하는 인문학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분들께

 

초등학교 저학년의 ‘혐오 중독’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의 경쟁과 대립은 가장 순수한 미래 세대의 인권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혐오 없는 학교를 만들고, 경쟁 없는 배움터를 조성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정책이 아니라, 민주 사회의 기반을 지키고 미래 세대를 건강하고 포용적인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한 국가적 의무이다.

 

내년 6월이면 광역지자체의 교육을 책임질 교육감 선거가 있다. 후보자들은 경쟁을 위한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살림의 교육’이라는 비전을 핵심 가치로 삼기를 바란다. 경쟁의 덫을 벗어나 협력과 융합을 추구하는 교육 생태계를 조성하고, 모든 세대가 나이와 학력의 벽 없이 성찰하며 연대하는 ‘평생 살림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이러한 생태적 전환, 즉 인간 중심에서 생태계 전체의 상생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 소외,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혐오라는 ‘죽임의 문화’를 공동체의 지혜와 ‘살림의 실천’으로 극복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지혜로운 미래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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