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12-16 16:34
| 고교학점제의 실패를 단순히 하나의 실패 사례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실패를 인정하고 제도를 정리해 나가되, 고교학점제의 실패는 한국 교육정책의 전형적인(고질적인) 속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앞으로 교육정책 과정에서는 그 전형성을 벗기 위해 애써야 하리라는 것이다. |
실패 전철(前轍) 위의 고교학점제
현행 고교학점제는 정리해야 할 제도이다. 물론, 바로 폐기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행 교육과정 그리고 ‘2028 대입제도’와 엮여 있다. 부작용을 줄여 그 얽힘을 해체하는 데만도 꽤 긴 과도(過渡)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처분하는 일은 그만큼 복잡하고 시끄럽겠지만, 그 과정을 성가시게 여겨 지금대로 끌고 간다면 학교 교육은 더욱 비틀려 말릴 것이다. 피폐해 가는 교육이 일상에서는 감각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고교학점제의 실패 궤적은 ‘전형적’이다. 이제까지 많은 개혁 시도가 보였던 실패의 행적을 빼닮았다. 이 사실은 두 개의 상반된 전망을 시사한다. 하나는, 반복해 나타나는 고질적인 결함들을 무시하고 고교학점제를 계속 끌고 간다면, 필경 우리는 이제까지와 같은 정책 실패를 거듭 겪게 되리라는 것이다. 반면, 고교학점제 실패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정책의 ‘전형성’을 벗기로 한다면, 교육을 빈사 상태로 몰아온 오랜 정책 적폐까지 마침내 해소해 갈 희망도 지니게 되리라는 것이다.
정책 과정에서 고교학점제에 정치색이 입혀져
고교학점제가 교육정책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것이 입안된 경위를 짧게 되돌아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모든 정책 출발이 그러하듯, 고교학점제도 어떤 ‘문제’를 상정하며 정책 의제로 부상했다. 이 점 자체가 잘못됐다 할 수는 없다. 정책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행위라는 점에서, 어떤 정책이든 문제를 겨냥할 마련이다. 사단은(실패하는 정책의 ‘전형성’은) ‘문제’를 집어 올리는 과정과 논리(정당화)의 성질에 있다.
고교학점제는, 다른 많은 실패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의제 선정에서 제도 시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이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이미 정리했듯이,1 ‘학점제’라는 정책 아이디어는 특정한 단체나 정당 또는 정부가 독점했던 의제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30년 이상 부침하며, 진보네 보수네 일컬어지는 색깔 경계를 넘나들었던 아이디어이다. 그만큼 제도 자체로는 정치성을 품었다 보기 어렵다. 정치성은 말하자면 고교학점제의 쓸모를 이야기할 때 입혀졌던 셈이다.
과정 이수를 학점 단위로 운영한다는 데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이 차이를 빚을 여지는 없다. 실지로 고교학점제는 ‘보수’ 정부에서도 종종 들먹거렸던 대책 목록의 하나였고, 주로 ‘특권 학교’들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활용하려 했다. 이를테면, 특목고와 자사고 등이 고교 서열의 윗자리를 차지해 우수 학생을 ‘추려가는’ 바람에 생겨나는 ‘일반고 황폐화’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라고 했다. 과정(課程) 선택의 갈래와 폭을 넓혀주기 위한 ‘다양화’ 대안이라고도 했다. 2
노리는 바가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고교학점제를 기술적으로 이해하는 데서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학년제’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학교 교육의 경직성을 깬다고 여겨졌고, 교과 선택의 여지를 넓혀줌으로써 ‘수요자 중심의 맞춤 교육’에 필수 제도가 된다고 생각됐다. 요컨대 고교학점제는 ‘교육 정상화’(내실화)의 대안으로 추켜졌고, 그 추진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계산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고교학점제에는 ‘진보’라는 정치색이 입혀져 있다.
현재 논란 중인 고교학점제만 보면 ‘진보’ 정부에서 발단하기는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로서 고교학점제를 ‘1호 교육 공약’으로 내걸었었고, 그 공약은 뒤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과제로 위상을 바꾸었다. 이때 고교학점제에 걸린 기치는 “진로 맞춤형 고교체제”였고, 당시 국정 계획 문건에서는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란 부연도 달았다. 고교학점제는 일차적으로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는 체제 변화를 지지할 제도로 궁리했던 듯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특목고나 자사고를 일반고로 되돌리려는 것은 이른바 진보적 의제이다. ‘보수’ 정부에서 ‘자율화·다양화·선진화’ 등의 구호를 붙이며 ‘고교 서열’ 체제를 고착시키려 하는 데 대응하여, 진보 진영에서는 ‘특권 학교’ 또는 ‘고교 서열화’ 폐지를 외쳐왔다. 고교학점제는 이와 같은 ‘진보적’ 대응과 맞물리면서 ‘파란색’의 시도라 여겨지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정치적 격동 속에서 고교학점제 정치화
문재인 정부에서 고교학점제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기에 이른 데는 ‘진보 진영’에서 그 제도를 밀어 온 내력이 작용했으리라고 짐작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인 계기를 이룬다. 그 사건은 사회 전 부문에 각성을 불러일으켰지만, 특히 교육 부문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보수 정부는 파문을 가라앉히려는 데 급급했었기에 미래 지향의 정책적 대처를 기대할 수 없었다. 많은 학생을 희생시킨 학교 교육을 성찰하고 새로운 교육체제를 구축하자는 외침은 자연스럽게 ‘반정부’(‘진보’) 진영에서 나왔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이른바 진보적인 교육 의제가 압도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대부분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돼 교육정책을 이끌게 되면서, 세월호 참사를 학교 교육의 전환 계기로 삼자는 움직임은 구체적인 대안 모색으로 이어졌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이 그 움직임을 이끌었는데, 참사의 날짜를 담은 ‘4.16 교육체제’라는 이름으로 “모든 학생이 주체가 되고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가꾸어 갈 수 있는 교육체제”를 제의했다.3
경기도교육청의 움직임에는 정치권에서도 호응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꾸린 ‘국회 혁신교육 포럼’(‘교육을 바꾸는 새힘’)은 “5.31 경쟁교육 체제에서 4.16 협력교육 체제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한민국 교육 문제 심층 진단 및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4 여기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제안을 토의했는데, 그것은 “전통적이고 경직된 학교 개념을 넘어서는 학교상”을 주창하는 것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연구5를 통하여 “4.16 교육체제 구현을 위한 정책과제”를 꽤 포괄적으로 정리했는데, 여기에 고교학점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구체적인 요소로 첫째 둘째로 올려진 것은 “학생들에게 교과 및 교과목 개설 요청권 보장”과 “단위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진로 트랙 운영”이다. ‘학생 선택’과 ‘진로 맞춤’을 내세우는 제도의 대강이 이미 거론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상은 경기도교육청의 포부에 머물지 않고 곧 거국적 교육 의제로 떠올랐다. 2016년 4월에 14개 시·도 교육감이 ‘새로운 교육 전환’을 선포하며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는데, 고교학점제를 포함하는 206개 혁신과제도 함께 내놓았다. 과제 중에는 “외국어고·국제고, 자사고, 과학고의 일반고 전환”도 들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차게 일었던 교육 혁신의 요구가 적어도 진보 교육 진영에서는 구체적인 결실을 이루어가고 있었다.6
주지하듯이, 교육감들의 선언이 이루어진 후 1년 여는 정치적 격동의 시간이었다. 보수 정부의 대통령이 파면되었고 진보 정부가 들어섰다. 대선 과정에서 고교학점제가 주요 공약에 포함되었고 마침내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어떤 고려와 판단들이 그 일련의 결정을 낳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고교학점제에 정치적 색깔이 입혀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교학점제’는 더 이상 고교 과정 이수 체제의 이름만일 수는 없게 되었다.
고교학점제는 ‘진보적 의제’를 전제한 제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특히 고교학점제 도입은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를 위한 기도로 으레 넘겨짚어지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고교학점제가 교육 부문의 핵심 정책 과제로 부상하는 배경에서는 암암리에 이런 ‘교육의 정치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정책이 정치화되면 교육의 본연은 도외시되기 마련
정치의 흐름이 교육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일반적인 만큼, 고교학점제가 그런 사례라는 점이 이례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교육정책 과정이 정치적으로 채색될 때 그 정책이 올바로 서기는 어렵다. 과거 많은 정책 실패가 예증한다. 그런 전형적인 실패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정치적인 계산이 개입하는 경우, 무엇보다도 정책 안목 또는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또 근시안적으로 제한된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정치적 계산은 눈앞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실지로는, 해결한 듯 보일 수 있는) ‘대책’으로 귀착하기 십상이다.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이미 익숙해졌다는(새로운 민원 거리가 아니란) 점에서 오히려 문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정치적인 공약에서 비롯되는 정책은 대중영합적이기 마련이다. 근원적이고 교육 내적인(안으로 곪은)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시늉만의 정책에 그치게 된다. 현행 고교학점제도 결국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고교학점제가 ‘선택 보장’과 ‘맞춤 교육’을 내세웠다는 점만 되짚어보아도 정책 과정의 편협한 근시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근본적인 질문이나 검토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리 없을 듯하다. 학생의 선택을 보장한다는 정책은 교육을 어느 방향으로 몰아갈까? 교육의 본연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학교 교육은 왜 하는가? 학생(수요자) 만족이 최우선 요건인가? ‘최소 성취 수준 보장’은 ‘학점제’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등.
고교학점제의 정당화에는 온갖 교육 문제와 그 해결의 기대가 기정사실로 상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학년제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교육의 원흉이며, 학점제는 그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처방이다. 모든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밟아야 할 수업 과정을 잘 헤아리고 있을 터이며, 학교나 교사는 학생이 선택하는 과정을 충실히 제공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의 성패는 오직 수요자(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에 달렸다.
이런 서술이 비아냥거리는 과장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 홍보 문건들의 이면 또는 행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고교학점제 정당화의 논리는 총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학교 교육이 권위적이고 경직되었더라도 학년제 탓만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학점제만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학생은 자기 교육의 앞길을 모르기 때문에 학생이다. 그런 수요자의 만족도가 성패의 지표가 된다면 교육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이 개인보다 사회를 우선시해야 할 사업이라면 그런 지표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교육 의제의 정치화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열의와 관심을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삼는 데서 초래된다. ‘지금 여기’ 대중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지지 세력 규합에 엮는 데 몰두할 때 교육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정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정책 과정에서 문제는 ‘득표’로 연결될 수 있는 한에서만 ‘문제’가 된다. 유권자가 직접 부딪거나 인지할 수 없다면 문제시되기 어렵다. ‘교육의 본질’처럼 일상의 직감 너머에 있는 사안이 정책 의제로 부상한다면 그야말로 예외적인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사교육’ 사태를 보자. 이제까지 수많은 공약과 정책에서 보아 왔듯이, 정치의 맥락에서 사교육 문제는 으레 ‘비용’에 있다고 전제된다. 다수의 원성(怨聲)이 그 부담을 거론하기 때문이다. 민원 해결이 곧 ‘교육 문제’ 해결이란 논리이다. 정책은 결국 ‘양질의 사교육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데로 쏠려 왔다.7 그런 서비스가 교육이기나 한지 사전에 검토할 엄두는 생겨나지 않는다. ‘비용’ 문제가 교육(!) 문제일 리 없으며, 비용 해결이 교육 발전이 아님이 자명한데도, 교육을 버리고 비용을 챙기는 명백한 교육 부조리가 정치화된 정책 과정에서는 부조리가 아니라 국정 논리가 된다.
정치화는 정책 흐름 전반을 맹목적으로 만들어
정치화는 공공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되는 ‘문제’를 규정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는 정책 초기 단계만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입안된 정책을 추진하고 그 성패를 평가하는 과정까지도 뒤튼다.
이번의 고교학점제 경우도 되돌아보면, 말로는 10년에 걸쳐 추진해 왔다고 외쳤지만, 그 과정은 허술하고 형식적이었던 듯하다. 교육부는 수년에 걸쳐 거의 모든 학교를 ‘선도학교’니 ‘연구학교’니 하며 지정하여 사전에 제도 현실성을 충분히 다졌다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제도를 일반고에 도입하자마자, 출석 확인이나 학생부 기록 그리고 ‘최소 성취 수준 보장’ 등 기초 사안에서 하자가 드러났다. 준비 과정이 길고 신중했다는 홍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졌다.
정치적인 공약 과제를 추진하는 데서는 ‘임기 내 이행’에 몰두한다. 약속을 지켰다는 외면적인 실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요체는 제도가 들어앉았다는 사실에 있다. 제도가 어떤 교육을 빚을지는 크게 신경 쓸 사안에 들지 못한다. 불만이나 사건만 터지지 않는다면 제도 도입은 성공으로 간주될 형국이 된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던 준비 과정은 말하자면 ‘대민 설득용’ 절차였을 뿐, 그 과정에서 면밀한 제도 점검과 보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치화된 정책은 정권 변화를 넘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한계를 지닌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완성을 노렸던 것이지만 결국 다음 윤석열 정부로 이관되었다. 보수 정부가 진보의 표지인 고교학점제를 ‘찬밥’ 취급했던 것은 쉽게 예상될 일이었다. 전면적인 도입 전 마지막 3년의 촘촘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였지만, 보수 정부는 ‘고교학점제 점검 TF’를 꾸리는 등의 제스처를 쓰면서 뭉그댔다. 제도는 더욱 파국으로 다가갔다.
올해 고교학점제는 다시 진보 정부를 맞았다. 정치적으로는 회생할 수 있을 토양으로 옮겨진 셈이다. 실지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지난 9월 이래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를 살린다고 그것이 학교 교육을 개선해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학교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할지 살피지도 않은 채, 학생이 선택해서 과정을 이수하게 한다면 교육이 좋아지리라고 가정하고 밀어붙이는 정책으로는 가 닿을 곳이 없다. 무턱대고 걸으면 목적지에 다다르리라는 생각처럼 턱없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개선책’을 살펴보면, 정책이 정치화했을 때 정책 추진의 이유나 성패 준거까지도 부패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테면, 고교학점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모든 학생의 최소 성취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현장 반발과 부딪쳐서는 그 과제 자체를 버리려 궁리하고 있다. 또, 고교학점제를 살릴 이유가 없다는 ‘폐기론’에 대응해서는 많은 학생이 과목 선택에 만족한다는 의견 조사 결과를 ‘유지의 이유’로 내놓았다.8 학생이 만족한다면 제도는 성공이라는 강변이다. 교육은 안중에 없고 오직 제도를 지키는 데 혈안인 모습이다.
고교학점제의 실패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정책이 정치화되어 야기되는 문제는 고교학점제에만 독특한 게 아니다. 고교학점제 문제를 정치화된 측면에서 지적한 이유는 그 정책 시도 하나만을 꼬집으려 했던 데 있지 않다. 교육정책의 전형성을 짚으려는 것이었고, 고교학점제 역시 그 전형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정치화 문제는 교육정책에만 국한되어 있지도 않다. 느슨하게 말한다면, 민주주의의 타락이나 대중영합적인 정치(정책)의 행태로 오늘날 그 문제는 공공 정책에 만연해 있다.
교육 부문에서 정치화 문제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련다고 표방하는 정책들이 교육을 훼손하고 해결 표적의 문제를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을 낳는다. 눈앞의 즉물적 득실만을 계산하는 정치적 야합에서 교육의 본연은 실속 없는 조건일 뿐이다. 자금이 모이고 표가 모이는 모사(謀事)이면 그 자체로 정당한(‘국민을 위한’) 프로젝트가 된다. 교육 공약이나 정책을 본연에 비추어 검토할 이유는 증발한다. 결국 정책은(그리고 정책이 초래한 ‘교육’은), ‘유력한’ 국민에게 만족스럽고 여론에서마저 호응을 얻을지 모르나, 교육 본연이나 공동선에서는 멀어져 간다.
정치화라는 정책 일탈이 세대를 넘어 누적되면 교육에서는 본말이 영영 전도될 수 있다. 교육정책의 정치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면 어느새 국민 다수가 정치화된 정책관(교육관)을 일상에 담아 살아가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만 거슬러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아도 이 점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입시 위주 교육’은 몹쓸 것이었다. 학교에선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지적은 들어볼 수 없다. 요즘 듣게 되는 것은 오히려 ‘학교 교육이 더 입시 위주이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입시 위주 교육은 몹쓸 것’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 현재 추진되고 있는 많은 교육정책이나 제도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적어도 1980년대 교육관을 준거로 삼는다면 오늘날 교육은 뒤집혀 있다. 그만큼,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교육정책은 교육 실제를 본연에서 꾸준히 멀어지도록 별리(別離) 시켜왔을지 모른다.
고교학점제의 문제는 그것 하나만 ‘핀셋 제거’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고교학점제는 때마침 우리에게 주어진 유용한 징후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에 함축된 교육정책의 전형적 악성(惡性)을 간파하고 근원적으로 조치할 방도를 찾는 데 재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글머리에 그래서 적었다. “고교학점제 실패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정책의 ‘전형성’을 벗는 길을 선택한다면, 오랫동안 교육을 빈사 상태로 몰아온 정책 적폐까지 마침내 해소해 갈 희망도 지니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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