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12-03 14:09
|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입국의 길은 무엇인가?”, “위기의 한국 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라는 화두를 가지고,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한편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교육혁신의 길을 모색합니다. |
1. 서론
2026년은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유 독립국가로서 재탄생한지 81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독립지사 안창호 선생은 망국의 원인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교육이야 말로 민족의 힘을 기르는 근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교육입국’은 국민 교육을 통해 나라의 힘을 기르고 독립을 이루자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한을 풀고 바라던 교육입국의 이상을 이룩했는가? 물론 이미 자주독립을 이루었고 세계 경제와 문화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분단으로 인해서 여전히 통일의 과업을 이루지 못한 미완의 국가로 남아있다. 또한 민주화와 사회복지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불신과 대립의 정치문화, 불공정 경쟁 및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해서 국민의 사회적 신뢰도와 행복도 지수는 바닥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인구 소멸과 지방 쇠퇴의 내부적 위기와 더불어, 인류사회가 함께 겪고 있는 기후 변화, 전쟁, 식량난 등 글로벌 환경과 생태계 변화의 위협,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AI 시대에 요구되는 기술혁신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즉 국가적 도약의 길이냐, 아니면 도태의 길이냐, 그 시대적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대한민국이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이겨온 바탕에는 모든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모든 학교,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공동체적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저출산율로 인한 학령인구감소, 교권의 추락과 학부모의 과잉 간섭,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사교육 만능주의, 불공정 입시와 아빠 찬스, 입시 의대 쏠림과 이공계 인재 유출 현상 등 교육공동체의 위기가 심각하다. 이러한 교육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교육입국’이란 말은 장미빛 환상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슨 만델라가 말했듯이,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희망이다. 학생들의 꿈과 재능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받는 나라. 사교육 걱정 없이 부모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은 나라.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행정가와 교사를 믿고 존경하는 나라. 교사가 보람을 느끼면서 학생을 마음껏 지도할 수 있는 나라.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나라. 가정환경이나 학연, 지연 등에 관계 없이 기회의 사다리가 공평하게 제공되는 나라. 여러 다른 집단 간에 반목과 대결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으로 함께 발전하는 나라. 이러한 나라를 만드는 일은 시대적 소명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필자는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입국의 길은 무엇인가?”, “위기의 한국 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라는 화두를 가지고,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한편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는 교육혁신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20년, 즉 해방 100주년이 되는 해까지 새로운 코리아의 미래를 꿈꾸며 교육입국의 비전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필자는 이 글을 쓴다. 재미 한인 교육학자로서 그동안 한국의 교육문제를 미국과 비교해서 연구해 왔고, 또 한국에서 과거 18년간 공교육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한국 교육의 강점과 약점, 문제점과 개선책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고자 한다. 필자가 그동안 국제비교 교육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과 더불어, 미국 풀브라이트 글로벌 스칼라십의 지원을 받아서 한국 및 여러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수집한 교육현장 관찰 및 면담 자료를 참고로 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 특별기고문은 대한민국 교육의 특정 기관이나 집단이 아니라 교육체제 전반과 모든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집필한다는 점을 알린다.
2. 한강의 기적과 인공지능 시대 교육의 역할
6.25 전쟁 이후 한국 교육의 성장과 학력의 신장은 대한민국의 사회경제 발전에 직접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천막 교실에서 교육하고, 다시 일어난 대한민국의 저력은 교육열에서 나왔다. 전쟁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5불, 현재는 3만 5천 불로 500배 이상이 증가하였다. 문해율은 47%에서 99%로 두 배 이상 늘었고, 평균 교육연수는 4년에서 12년으로 세 배 증가하였다. UN에서 발표하는 국가 인적자원개발 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를 보면 지난 30년간 0.73에서 0.93으로 성장했고, 현재 세계에서 20위에 속한다. 이 변화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예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고, 더 건강해졌고, 그리고 더 많은 교육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국제학생평가 TIMSS와 PISA 자료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언어, 수리, 과학 등 중요 교과영역에서의 학업성취도는 우수하며 세계 최상위권이다. 예를 들어 근래에 실시된 TIMSS 8학년(중학교 2학년) 수학 평가에서는 싱가폴과 대만에 이어서 3위를, 과학의 경우에는 싱가폴, 대만, 그리고 일본에 이어서 참여 국가들 중에서 4위를 각각 차지하였다.
이러한 지난 70년간의 변화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울 만큼 경이적이다. 압축 고도성장, 빠른 취학률 증가 및 학업성취도 성장 이면에는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정부의 교육투자 등 제도적 지원이 결합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교육의 발전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많은 과제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 시험 성적이 좋은 반면에 학생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학업성취도, 즉 학업에 대한 자신감은 아주 낮다. 예를 들어 TIMSS 8학년(중학교 2학년) 설문조사에서 수학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비율 추세를 보면 1995년 38퍼센트에서 2023년 52퍼센트로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절반의 학생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느끼지 못하고 이러한 수치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열악하다. PISA 15세 학생들의 설문조사 또한 한국 학생들의 학교 소속감과 만족도, 그리고 삶에 대한 행복감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반면에 학교의 교육풍토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가 된다. 한국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 추세를 보면 수업 시간이 시끄럽고 무질서하다고 응답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지난 20여 년간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가 학생부 평가를 의식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비자발적 행동 변화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수업 분위기 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한편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시급하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 최고의 한국인 기사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AlphaGo) 충격에 이어서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지피트’(ChatGPT) 파장이 교육계를 흔든다. 과연 이러한 외부적 충격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교육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인공지능을 인간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나 오남용과 오류를 방지하고 윤리적인 사용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AI는 분명 인간으로부터 과거 경험의 자료를 받아서 학습하였고 진화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또한 기계와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서 진화하고, 새롭게 혁신하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기계를 따라잡는 단순 기술 중심의 교육(예: 코딩)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 데이타의 한계를 이해하고 차별화를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 하나는 기계가 갖지 못하는 가치관과 감성의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목표와 정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창의성의 개발이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미래 사회의 도전에 가장 필수적인 고민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문제이다. 지구촌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번영은 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이다. 미래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당장 극복해야 하는 공통 과제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전쟁과 테러 위협, 난민과 이민자 급증, 인구 고령화와 다변화, 지구 온난화, 생태계 파괴, 식량과 식수 부족, 빈곤과 사회계층의 양극화 문제 등은 국가라는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세계적 및 지역적 인재의 양성을 요구한다. 하나의 정답이 없는 복잡하게 얽힌 사회경제적 난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학문 영역별, 교과별 교육과정과 강의 중심 수업방식이 아니라 학제적, 문제 중심적 교육과정과 비판적이고 열린 토론 중심 수업방식을 요구한다. 특히 대학은 학생들을 한 특정 전공영역 전문가가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과도 의사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넓이와 깊이를 겸비한 ‘T자형 리더’를 길러야 한다.
단순히 학교나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훈련 내용의 변화만으로는 AI 대응이 불가능하다. 물고기를 잡아서 아이에게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런데 만약 수질이 나빠져서 물고기가 죽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예 강을 옮겨서 낚시를 하거나 아니면 강을 더 깨끗이 해서 물고기가 다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기술혁명과 함께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학생들이 잘 적응하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문제 해결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정 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식 교육처럼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체득해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K팝 같은 한류의 세계화 성공에서 보았듯이, K-교육에서도 외국 교육과 기술의 장점을 조화롭게 한국적 맥락에서 수용하여 추구하는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 접근법과,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가 융합된 온고지신 접근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 교사와 멘토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맞춤형으로 학생에게 지식기술을 전수하고, 가정 및 지역사회 등 학교 밖 인성교육과 멘토링에도 인공지능을 보조도구로 잘 활용해서 교육의 효과성을 높이는 한국형 AI 교육 모델을 만들어서 보급하면 좋겠다.
3. 교육 불평등 해소와 사회정의의 추구
교육을 통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은 교육의 기회와 결과가 얼마나 평등하고 공정한가이다. 대한민국이 앞서 언급한 국가 HDI 지수가 평균은 높지만, 국민들 간의 소득, 교육, 건강의 불평등을 고려하면 한국은 0.93에서 0.81로 지수 값이 떨어진다. 학교가 상위 10퍼센트를 위한 교육을 하고 나머지 90퍼센트 학생들은 방치된다는 세간의 우려가 현실이라면 커다란 문제이다. TIMSS 8학년(중학교 2학년) 수학 성취도의 상위권 집단(90퍼센타일)과 하위권 집단(10퍼센타일) 간의 점수 격차 추세를 보면, 지난 10여 년간 학력격차가 확대되는 현상을 보인다. 따라서 기초학력 미달 집단을 중심으로 학력격차의 확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은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선 첫째로 학교교육의 역할이 단순히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정서적 및 육체적 건강과 전인적 발달을 위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교육, 보건, 복지 같은 분야가 분리되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둘째로 비대면 원격교육을 위한 교육 인프라 및 수업방법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 이후 다시 악화되고 있는 교육불평등 및 학력격차에 대한 대책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전인 발달, 특히 정신 및 육체 건강, 인간관계, 진로지도 등 학생 삶 전반의 향상을 위해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교육, 지역사회 교육 프로그램 등 보다 폭넓고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저소득층 이외에도 다문화 가정 및 탈북자 가정 자녀들, 학교 밖 청소년, 농산어촌 소외지역 학생들,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적 배려가 필요하다. 필자는 연구 기간 중에 탈북민 자녀를 위해 설립된 학교와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해 설립된 교육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러한 학교들은 학교의 지속과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였다. 취약계층 학생 집단들에 대한 별도의 정책적 및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시민들의 편견과 님비 현상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는 장애인 학생들 역시 자기의 자녀 문제라고 생각하고 포용한다면 그들의 부모가 무릎 꿇고 지역사회에 학교 설립을 애원하는 것 같은 불행한 사태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키워낸 원동력은 전 국민의 높은 교육열이지만, 지나친 사교육 열풍으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가 공교육의 정상화와 사회계층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과외교습이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한 심화 학습 목적인 반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경우는 과외가 주로 학습결손을 보충하기 위한 교정학습 요구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한국의 사교육은 지나친 학습 경쟁을 유발하여 학생들의 삶의 질을 저하하고, 사회계층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따라서 공교육이 사교육을 능가하려면, 학교가 전인교육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수호하고, 학생의 미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의 개별화를 통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교육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공교육이 잘해서 교육의 균형적 발전과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교육학 연구와 교육과정 및 교수법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교평준화 정책, 학생부 중심 대학입시제도 개선, 고교학점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교육개혁 정책들은 한결같이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과외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정부주도의 ‘탑다운’(top-down) 정책집행이 갖는 문제와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간 학력격차가 지속되고, 학생 간 교육 기회 불평등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자사고나 외고 등을 폐지한다는 발상은 근본적인 학력격차와 사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 선택권과 사립학교들의 교육적 자율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지원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대안이 있다. 민족사관고와 같은 우수한 자사고를 보다 많이 만들고 동시에 보다 많은 취약계층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고, 그럼으로써 교육의 질도 높이고 기회균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권층과 부유층의 ‘스카이 캐슬’, 소위 교육 기회 사재기를 없애는 방안은 스카이 대학을 더 많이 만들고, IB 프로그램 같은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많이 쉽게 제공하는 것이다.
중산층을 늘리고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높이려면 취약계층 학생들과 청년들을 위한 보다 많은 다양한 기회의 길이 필요하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지만, 보다 많은 다양한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려면 학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사회와 기업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운영하는 ‘드림렉처’와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등이 좋은 사례이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에 연사로 참여해 왔는데, 학생들에게 장래의 꿈을 물었을 때 다양한 답이 돌아왔다. 그중에는 ‘건물주’, ‘유튜버’ 등도 있었다. 학생들이 허황된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고, SNS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의 ‘캄포트 존’(comfort zone)에서 나와 보다 넓은 세상과 미래로 도전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교환학생, 해외연수, 인턴십, 봉사활동 등 경험의 기회를 넓혀야 하는데, 이러한 기회의 사다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멘토링 지원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 본받고 싶은 인물을 물었을 때 유명인도 있었지만, 의외로 엄마, 할머니 같이 가족이나 선생님 등 주변 인물을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으로 솔선수범할 때, 그들은 이미 멘토나 롤 모델이 되어 있다.
4. 교육 민주화와 교육정책의 변화
한국 사회는 산업화에 이어서 민주화, 그리고 복지사회로의 급격한 이전으로 인해서 거기에 따른 불균형과 부작용이 많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간 한국 교육의 변화는 크게 보면 교육의 분권화, 다양화, 학생 중심화로 요약될 수 있다. 기존의 중앙집권적 정책결정, 획일적인 교육과정 및 대학입시 중심의 학생지도와 평가는 다양한 교육의 수요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교사 중심, 교과지식 중심, 지필형 객관식 시험 평가 중심에서 학생 중심, 문제 해결 역량 중심, 프로젝트 수행평가 중심으로의 변화가 있었다. 정권에 따라서 정책의 방점에 차이는 있었지만 변화의 커다란 방향과 물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방문했던 학교들은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행하였고, 효과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보았다. 다만 변화를 이루는 과정이 여전히 상명하달식 비민주적이거나 반짝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인 것에 대한 반감, 그리고 변화에 필요한 자원과 역량개발 훈련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한국교육정책은 그동안 제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왔고, 제도가 바뀌면 행동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면 결과가 바뀐다는 행동주의적 효율성의 논리에 기반을 한다.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서 워크숍 같은 훈련을 하고, 동기부여를 위해서 상벌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인드셋, 특히 정책을 집행하는 조직 구성원들, 예컨대 학교장과 교사의 교육에 대한 가치, 믿음, 가정들이다. ‘변화 이론’(theory of change)은 정책이 목표에 따라서 어떻게 작동해서 실행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지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이론으로, 정책결정, 집행과 결과에 이르는 로드맵이라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공식적 발표나 혹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정책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사실상 무늬만 바뀌었을 뿐 실제 현장의 깊은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게 된다. 즉 이상과 실천의 괴리로 인해 정책이 실패하게 된다. 개혁의 이상과 실천의 괴리를 메우려면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진정한 변화를 위한 가치 공감대 형성과 의식 및 행동 변화가 수반된 변화이어야 한다.
시대정신에 맞는 국민교육과 인재 양성을 통해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결코 과거의 정부 주도형 전체주의식 개발 모델이나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법 제정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다. 소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따라오기만 해)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필자는 미국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의 지원을 받아서 국제교육 비교연구를 하는 동안 한국을 비롯해서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개도국과 남아프리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과거 식민 지배나 독재정부 하에서 억압을 받은 아픈 과거가 있음에도, 정부 주도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서 학생 중심 역량개발 위주의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요구되는 정부 주도 개혁과 정책의 변화에 따른 현장의 피로감과 더불어 교육부의 규제와 제재 등의 위협으로 인한 교육 조직 구성원들의 보여주기식 대응과 실패에 대한 공포가 개혁의 걸림돌이었다. 충분한 준비와 논의 과정 없이 단기간에 서둘러서 정책을 이행하려다 보니 변화에 대한 공감대와 준비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 현재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과 신뢰의 회복이다. 정파 간, 계층 간, 남녀 간, 세대 간의 갈등은 무조건 자기편은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오만과 반지성적 대립의 이분법을 낳았다. 이제 역지사지와 선공후사 정신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정부와 집권 여당이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은 정권이나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 기구로서 교육부의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취지는 좋으나, 과연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극복하고 나라와 미래세대의 이익을 위하는 정책을 도출하고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행정기관인지 위원회인지가 불분명하여 권한과 책임의 소재 면에서 교육부와의 관계가 우려되고, 자원과 역량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전을 수립하고,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 가정에 대한 열린 비판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 문제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다. 다수결 의사결정 원칙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제도가 아니라 상호 존중의 토론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제도적 장치임에도,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무기로 전락했다.
이제는 새로운 시민교육을 통해서 다시금 국민들의 의식과 정신문화에 대한 재무장과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자유와 권리가 신장된 만큼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의 균형을 이루는지, 학생의 인권 신장이 교권 보호와 균형을 이루는지, 교사의 전문가적 자율성과 교사 평가의 책무성이 균형을 갖는지, 자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이기적 관심과 지원이 다른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공익을 해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교육사회의 공동체적 신뢰가 무너져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낼 뿐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상대의 말도 경청하지 않는다. 제도적, 즉 행정 및 재정 변화와 더불어 문화적 및 심리적 변화가 동반되는 교육전략이 필요하다. 교육학자 정범모 교수가 역설했듯이, “교육이 나라의 운명이다”라는 인식 하에 국가 전체의 교육력 향상을 위한 개혁에 모두가 앞장서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국민의 의식 변화와 자발적 참여, 공동체적 신뢰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의 아이만 챙기는 이기적 교육 풍토에서는 모든 아이와 사회 전체를 위한 공교육이 설자리가 없다.
5. 교육연구의 개선과 대학의 개혁
교육연구의 질과 효용성에 대한 비판은 학계뿐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많이 제기되어 왔고, 이에 대응하여 보다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산출된 시의적절하고 엄격한 증거를 기반으로 교육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증거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 연구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고, 따라서 정책 도입과 학생 학습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실험연구나 준실험연구와 관련된 양적연구 방법론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법이 근본적으로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내는지 혹은 못 내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문제에는 답을 잘 못한다. 특히 평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통해서 심층적 조사를 하고,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연구 결과물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기여도를 중요시하는 연구 문화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 교육학은 다양한 학문적 시각에서 교육문제를 연구하고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여 왔다. 물론 학술적 연구가 실제로 정책과 실천으로 잘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항상 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학 연구는 응용적 혹은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특히 연구의 기여도와 영향을 평가할 때 단순히 SSI/SSCI 학술지 연구물의 숫자나 피인용도를 가지고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책임 있고 영향력 있는 연구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보면, 교육학은 여전히 상아탑 연구가 갖는 현장과의 괴리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학 연구는 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현장의 문제를 탐구하고 해법을 찾아서 개선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정책 결정자, 행정가의 책임과 함께, 그 뒤에서 증거에 기반한 정책결정을 이끄는 교육학자와 연구자의 책무 또한 매우 크다.
한국교육개발원 같은 국책연구기관에서 실시한 교육정책 연구 보고서들을 보면 대부분 설문조사 등을 기초로 한 기술적 분석 방법을 사용한 양적연구가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분석은 응답자의 주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설사 바람직한 변화를 발견했어도 그 결과가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없는 방법론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거나 기대되는 반응을 거짓으로 하는 현상은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정책연구에서 특정 교육정책의 성과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학교 행정가나 교사들이 정책 실패에 따른 처벌이나 불이익을 회피하려고 거짓으로 성과를 포장해서 응답한다면 그 연구결과는 믿을 수 없게 된다. 연구조사의 익명성을 보장한다고 해도 학교와 교사는 평가나 시험처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에 따라 정책집행자의 동기와 역량, 그리고 성과에 대한 보고 결과가 왜곡되고 부풀려질 우려가 있다. 나아가서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교수들 역시 정부 발주 정책 프로젝트의 경우 충분한 연구 시간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성과 보여주기에 편승하다 보니 연구결과를 왜곡하거나 과대 포장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의 자율적 연구와 교육을 위한 풍토가 마련되야 한다. 내가 방문한 한국 대학들의 현실은 암울했다. 교육의 수월성을 책임져야 할 세계 일류 명문사학을 자랑하는 대학의 총장이 교육부의 기초 교육역량 평가 미달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대학들은 정부 규제에 손발이 묶여 세계 일류 대학으로 도약하려고 애처롭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백발의 지방대학 총장이 대학 평가의 칼자루를 쥔 젊은 교육부 관리를 영접하러 뛰어나가는 현실. 중하위권 지방대학들은 인구감소와 재정위기로 인한 소멸의 위협 속에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지푸라기를 찾고 있었다. 교육부 관료는 과잉규제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교육부가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고, 정부의 등록금 인상 규제가 시작된 후 대학재정지원이 평가와 연계되면서 대학의 생명줄로 상황이 바뀐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한 교육부 관료는 대학이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육부만 쳐다보고 있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지적 불구 상태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일부 교수들은 스스로 교육부의 깃발 밑에 모여서 자기검열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죽이고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학문과 지식의 통제를 무비판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정책이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으로 바뀌고 동시에 대학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냄비 속에서 서서히 달구어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가 될 것이다.
6. 맺음말
해방 이후 지난 80년간의 대한민국의 발전은 교육입국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이제는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 재외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복지화로 이어지는 변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변화, 중앙집권 관료주의적 행정에서 지방분권 민주주의적 행정으로의 변화, 엘리트 위주의 수월성을 위한 교사 중심 교육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포용적 학생 중심 교육으로의 변화 등은 괄목상대하다. 그러나 바람직한 변화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여러 면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기후변화 등에 따른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내적으로는 인구감소에 따른 교육 구조조정, 교권 회복, 학생 맞춤형 교육, 사교육 해소와 공교육의 내실화, 입시제도의 개선 등 교육개혁이 시급하다.
교육이 변해야 대한민국이 산다. 그 변화는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미래와 세계를 향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할 때 이루어 진다. 대한민국 교육이 처한 안팎의 동시적 위기는 대응 방식에 따라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육입국으로 가는 길에는 크게 두 가지 기회의 다리가 필요하다. 하나는 수직적 상승 기회의 사다리를 보다 많이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 교류 기회의 징검다리를 보다 많이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리더십과 재정 지원뿐만 아니라, 학교와 대학의 자발적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교사와 교수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역시 변화의 팔로우어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입국은 모든 교육주체의 사고 및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는 현재의 대립과 불신을 끝내고 미래를 위한 상생 협력을 시작할 때 가능하다. 교육을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육입국의 꿈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새롭게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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