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10-16 14:24
| 논란 와중에 있는 고교학점제는 ‘맞춤형 교육’이란 구호로 합리화됐다. 이때 맞춤형은 결국 학교 교육을 개인의 성공에 결박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한다. 교육의 본령은 ‘사회’와 사람됨의 발양(發揚)에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 시도가 근본부터 문제라고 비판한다. 교육 본연을 거스른다고 비판한다. |
‘맞춤형 교육’을 표방한 고교학점제
‘학점제’는 때에(정권에) 따라 다른 구호와 이유를 달고 부각했다. “수월성 교육 강화”를 위해 ‘속진’의 길을 터야 하므로 필요하다고도 했고, ‘교육 선진화’를 위해 “학생의 흥미 적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면 필요하다고도 했다. 최근에는 인구 감소로 “모든 학생의 잠재력과 역량을 키워야” 하므로 도입해야 한다는 언설이 유행이다. ‘고교학점제 종합 계획’(2021년)에서는 그 ‘정책 방향’을 ‘진로 맞춤형 교육 추진’이라고 적었다.
형식 논리로만 읽으면, 고교학점제는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한 대안이라 집약할 수 있겠다. 도대체 학생 맞춤형 교육은 어떤 교육인가? 정부 문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 알지 않느냐는 식이다. 정책 토론 자리들에서도 특별히 분석하거나 논란하지 않는다. ‘상식’으로 해석해도 무리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말하자면, 기성복에 대해서 맞춤옷이 지니는 이점을 떠올리듯, ‘기성 교육’에 대해 학생 맞춤형 교육을 이해하면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실 교육사에서 ‘학생 맞춤’ 식의 주장은 종종 부상했다. ‘진보주의’ 사조에서 ‘학생 중심’을 주창했다거나, ‘5.31 교육개혁’에서 ‘수요자 중심’을 선언했던 사례가 그런 유들이다. 사례마다 초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요컨대, 학교 교육이 ‘공장 모형’이기에 (‘표준적인/공급자 위주 대량 생산’이어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 개개인에 맞추는 ‘개별화’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을 추종하는 데서 고교학점제가 나왔다.
어디에 맞춤?
개인별 ‘맞춤’의 표적은 어디에 있는가? ‘학생 중심’ 사상의 역사가 길고 그 가지 또한 여러 갈래여서 경우마다 이야기는 분분하다. 흔히, 흥미니 적성이니 하며 심리 경향, 수준이니 위계니 하며 학업 준비도, 꿈이니 진로니 하며 희망 직업 등을 맞춤 표적으로 언급한다.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홍보하며 외쳐 왔듯이, 학교 교육에서 학생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준다면 그 모든 표적(흥미, 적성, 성적, 진로 등)에 대해 맞춤이 동시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고교학점제가 표방한 맞춤이 실현된다면 학교 교육은 과연 바람직해질까? 물론, 맞춤 자체부터 실현되기 어렵다.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해서 선택을 바르게 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선택에 맞춰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해도 그것의 질이 선택의 뜻을 충족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려움은 무수하지만, 맞춤이 실지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현실은 이상(理想)에 접근하게 되는가?
고교학점제의 ‘맞춤형’에서는 교육을 철저하게 개인 수준에서 이야기한다. ‘개인’의 흥미와 적성,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 전제한다. 교육이 본디 그래야 하는가? 그런 맞춤형에서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개인의 선택에 교육을 맞춘다고 할 때, 맞춰진(선택대로 과정을 이수한) 결과만으로 학교 교육의 의미(가치)가 구현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맞춘 결과로 생겨나는 어떤 ‘소득’으로 그 가치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개인의 성공에 교육을 결박하는 ‘맞춤’
고교학점제에 달린 ‘진로 맞춤형 교육’이라는 구호에서 그것이 전제하는 교육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학생의 ‘진로’를 겨냥하고 있다. 개개인의 흥미나 적성 또는 필요(결국, 선택)에 교육을 맞춰주면 ‘진로 대비’란 소득을 얻게 되리라는 게 맞춤형의 요체이다. ‘진로’의 뜻이 아직 모호한 만큼, 그것에 대비시킨다는 ‘교육’이 어떤 양상일지 명료하게 그려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교육이 개인의 생애 진로에 도움이 되어야 하리라 여긴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를 제의하고 합리화하는 발언들에 비추어 보면, ‘진로’는 졸업 후의 진학이나 취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직업에서의 ‘성공’에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성공’의 의미가 분명하진 않다.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인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인지, 그 모두인지 등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맞춤 교육의 의미가 아직도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학생이 ‘선택’하는 진학이나 취업을 성공시키려는 ‘단기적’인 표적을 노린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요컨대, 교육이 맞춤형이어야 한다는 구호는 개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원한다. 이때 필요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어떤 목표에 연결되어서라야 비로소 뜻을 지닌다. 요즘 우리가 겪는 일상에 미루어 보면, ‘의사(醫師)가 되는 것’과 같은 목표이다. 고교학점제로 추구하려는 학교 교육은 말하자면 학생이 선택하는 그런 목표(‘진로’)를 실속있게 지원하는 ‘공공사업’이다. 학교 교육은 결국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가치를 지닌다.
교육을 개인의 성공에 결박하는 고교학점제 같은 정책은 교육이 사회 수준에서 지니는 의미를 버리고 있다. 무슨 소리냐 반박할지 모른다. 정부의 정책 문서들만 보더라도, 인구 감소, 국가 경쟁력 쇠락, 사회 격차 등 사회 차원의 문제들을 염려해서 고교학점제를 내놓고 있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맥락에서 ‘사회 문제’는 해결의 ‘희망 사항’들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맞춤 교육을 제공하면 어찌저찌 사회(‘미래’)도 좋아지리라는 소박한 바람들일 뿐이다. 더욱이, 그런 바람이 우연히(!) 이루어진대도 교육의 사회적 의미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맞춤형이란 시도들은 교육의 본연 뭉개
교육이 사회 차원에서 지니는 의미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근원적이다. 인류에게 교육이 생겨난 게 사회적인(종족적인) 이유에서였고, 그 ‘이유’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구현되어야 할 가치라는 뜻이다. 다 알듯이, 인류는 다른 모든 생물과 다른 양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그 생존력은 어디에서 올까? 협력하기 때문이라는 게 다방면 연구의 결론이다. 사회(집단)로 결속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인과의 구도가 모두 밝혀지진 않았지만, 인류 문명의 바탕에는 ‘사회’가 있다.
교육은 인류 사회의 핵이다. 인류 문명이 생겨나 이어져 오는 흐름의 바탕인 지식과 기술 그리고 제도 등은 인류 전사(全史)를 통해 축적되고 다듬어져 왔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으로 인류 문명은 이룩됐다. 교육에는, 공장 모형이라고 비난 받아온 ‘근대’의 학교 교육에서마저도, 문화 전승의 노릇은 본디 사명으로 살아있을 터이다. ‘수요자’의 이기적인 선택을 후원하고 그 ‘소비’에서의 개인 만족을 보장함으로써, 그 본뜻이 저절로 이루어지진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교육은 자손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는 일로 여겨 왔다. 사람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생각은 사뭇 달랐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였건, 그런 생각을 품은 교육이 인류 진화를 지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 점은 현재에도 진행 중일 터이다. 교육이 무너졌다는 탄식이 만연한 오늘날에도 그러할 테지만, 맞춤형의 구호 아래 그 교육의 본연 가치는 뭉개지고 있다.
근원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면 ‘선택’이나 ‘맞춤’이 아니라 ‘필수’와 ‘공통’에 주력해야 한다. 각인각양(各人各樣)의 교육을 외치기보다, 모두에게 바탕일 사람됨의 요체를 발양(發揚)하는 데 우선 힘써야 하리라는 뜻이다. 학생의 선택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선택을 존중하더라도, 필수의 바탕 위에서라야 그 선택이 산다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는 방종의 ‘자유주의’와 이기(利己)의 ‘인간 존엄’ 요구로 넘실댄다. ‘국가’들도 그런 요구(선택)에 부응하는 것을 ‘복지 실현’이라 혼동한다. 이런 세태는 ‘학생 중심’, ‘수요자 중심’, ‘선택권 확대’, ‘개별화’, ‘맞춤형 교육’ 등등의 기치를 휘날리며, 고교학점제와 같은 공약을 낳고 있다. 그렇게 거듭 변색하는 교육 정책의 환칠로 학교 교육은 지금 혼탁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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