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09-03 13:58
|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극심해진 사회적 갈등은 정치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세계 동향을 먼저 살펴보고, 대한민국 현실을 돌아보며 보다 포괄적인 정치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살펴봅니다. |
근대 민주주의 도입 이후 보편 선거권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 성인, 남성이라는 초기 선거권 요건은 점차 완화 및 철폐되었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으로 무산 계급의 참정권이 보장되었고, 1893년에는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의 보통 선거권이 인정되었으며, 미국에서는 흑인민권운동이 꾸준히 전개되어 1965년 인종에 따른 참정권 차별이 철폐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소비에트 혁명으로 남녀 및 모든 인종의 보통 선거권이 보장되었다.
이처럼 보통 선거권이 확대되어 온 민주주의 역사에서 이제는 참정의 연령 기준이 조정되는 추세이다. 현대 사회에서 생활과 교육 수준이 향상되면서, 투표 연령 하향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졌으며, 세계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만 20~21세를 기준으로 부여되던 투표권은 21세기 이후 만 18~19세 수준으로 하향되었다. 미국은 1971년에, 인도는 1989년에, 일본은 2015년에 만 18세 투표권을 도입했다. 나아가 만 16세 투표권을 인정하는 국가들도 있다. 오스트리아는 2007년 유럽 최초로 만 16세 투표권을 도입했으며, 스코틀랜드는 2015년에 만 16세 투표권을 보장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만 16세 투표권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이 다음 총선부터 만 16세 투표권을 전면 도입하기로 하면서 캐나다 등에서도 만 16세 투표권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1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만 21세 이상 성인 남녀 모두의 투표권을 인정하였고, 2020년에 만 18세로 투표 연령을 하향 조정하였다. 그 이후로도 투표 연령 하향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2
투표 연령 하향의 주된 논지는 청소년도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경우 납세의 의무도 생긴다. 따라서 시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쟁은 학생과 학교의 정치화와 결부되어 교육 현장에서의 정치성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세계적으로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극심하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반복된 정권 교체 경험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했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간 목격했듯이,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확산과 통신 기술의 발전이 맞물려 약자를 조롱하고 피해자를 희화화하는 인터넷상의 혐오 문화가 갈등 재생산으로 이어져 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로 발전했다. 특히 청소년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확산된 특정 사이트의 영향력은 민주주의 자체를 조롱하고,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언행을 여과 없이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 해당 사이트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의 공무원 임용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3 2024년 12월 3일에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며 민주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책임 있는 이들이 혼란을 부추기면서, 극심한 혼란이 몇 달에 걸쳐 이어졌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양극화와 극심해진 사회 갈등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모습이 두드러지며, 정치학계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이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실제로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측정하는 전 세계 민주주의 지수는 2015년 10점 만점 중 5.55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퇴보하고 있으며, 2024년 5.17점으로 2006년 최초 발표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4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인도의 힌두우선주의와 일본 자민당의 극우화 등 다수 국가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배타주의, 대중영합적 분열과 같은 비슷한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대한민국 역시 극단적인 정권 교체와 뒤이은 정치 보복, 반복된 탄핵으로 정치권 내 상호 존중과 합의의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이며, 유권자들의 행태 역시 극단화되어 왔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넘어 정치 제도 전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이 팽배하며, 서부지법 난동 사태처럼 법원의 중립성과 권위에 대한 의심도 뚜렷해졌다. 극단적 견해를 표출하는 개인 방송 등 대안 미디어가 활발해지며 가짜뉴스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고, 진영을 가리지 않고 소수 인사들이 실제 정치 지형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커졌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정치적 환경 속에서,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나아가 청소년 정치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논의로 발전했다. 만 18세 투표권이 보장되면서 학교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었던 만큼, 오늘날 한층 더 심해진 정치 갈등과 대중영합적 정치 행태, 파편화되고 교조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고 이에 입각해 정치적 견해를 건전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의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이 갖는 중요성 또한 그만큼 커졌다. 따라서 관련한 세계 동향을 먼저 살펴보고, 대한민국 현실을 돌아보며 보다 포괄적인 정치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정치교육, 민주시민교육, 정치 리터러시 교육은 같은 개념인가? 몇 가지 용례를 살펴보면, 교육부에서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민주시민자질의 함양’으로 표현하며, 교육기본법에서도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교육’으로 적시하고 있다.5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학생이 자기 자신과 공동체적 삶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상호 연대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으로 정의하며, 이와 연계해 평화, 인성교육, 인문학적 소양 교육을 내실화하겠다는 계획이다.6 실제로 교실이나 지역사회 같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형 활동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치교육은 흔히 정치와 관련된 지식을 아는 교육으로 한정되는 것에 반해,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치와 태도, 참여 역량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한편 정치 리터러시 교육은 정치와 관련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며, 가치나 태도보다도 실질적인 해석과 판단, 참여 능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곧, 뉴스 기사나 정치 콘텐츠를 읽고 그 진실성과 적확성을 판별하는 능력, 선거 공약을 분석하고 여론조사 통계를 해석하는 능력과 관계된다.
대만에서는 교과서에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내용을 적극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아시아 최초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법제화하였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 등과 연결하여 디지털 환경에서의 민주주의 교육까지 신경 쓰고 있다.7 덴마크, 포르투갈, 스웨덴 등 유럽 각국에서도 사회과 교육과 연계된 학교 선거 프로그램이 정례화되어 있으며, 교내 투표와 토론을 통해 정치 리터러시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전 교과목에 걸쳐 비판적 사고,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성 교육이 통합되어 있는데, 소셜미디어 정보 해석 및 가짜뉴스 식별 능력, 미디어 윤리 등을 학교생활 내에서 익히게 된다. 또한 학교뿐 아니라 도서관과 시민단체, 지역사회 등과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 해석과 판별, 표현 능력을 포함한 시민 역량 교육을 체계화하였는데, 이는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8 OECD와 유네스코에서도 정치 리터러시를 중시하여 회원국의 정책 틀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체험 및 참여형 교육 사례도 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서 모의 체험을 하거나, 학생들의 삶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선출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We the People’ 프로그램은 헌법 이해와 모의 청문회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실제 법조인, 교수, 지역 정치인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학생들의 모의 청문회 활동을 평가한다. 주 단위 예선을 거쳐 전국 결선 대회가 진행되는데, 1987년 처음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약 2,800만 명의 학생들과 7만 5천 명 이상의 교사가 참여했다.9 유럽의회에서 주관하는 ‘European Youth Event’에도 유럽 각국의 청소년들이 참여해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럽의 정치 구조 및 정책 형성 과정, 청년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유럽의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받는다. 행사가 끝나면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EYE 보고서로 정리하여 유럽의회 의원 전원에게 배포하는데, 2021년에는 1,500개 이상의 아이디어와 제안이 수집되었다.10 호주에서는 각 주 및 준주별로 YMCA 청소년 의회가 설립되어, 대표 청소년들이 지역 의제를 바탕으로 청소년 법안을 입안하고 토론하며, 최종적으로 주 의회에 제출한다.11
이렇듯 세계적으로 정치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관심은 크다. AI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양산되고, AI 알고리즘에 갇혀 같은 의견만 공명하는 반향실 효과로 인한 확증편향과 극단화가 문제시되고 있다. 이는 다시 대중영합주의, 대중 정치와 맞물려 여론 형성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을 우선시하는 정치 행태를 공고화한다. 이러한 ‘탈진실 시대(post-truth era)’에 정치 리터러시 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에 대해, 정치적 논란이 되거나 정치 편향을 의심케 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2022년 3월 제정된 ‘부모의교육권법(Parental Rights in Education Act)’은 학교 내 성소수자 관련 주제의 교육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법안 지지자들은 부모의 교육권을 강화하는 합당한 조치라고 옹호했지만, 법안 반대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침묵과 낙인을 조장하는 차별 조치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전국적으로 청소년의 등교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으며, 다수 단체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2024년에 이 법 일부를 뒤집는 합의가 이루어졌다.12 교육현장에서의 정치적 논란을 촉발한 이 사건은 한편으로 청소년이 공적 담론에 접근할 권리, 자기 정체성에 대해 언급하고 토론할 자유가 어떻게 통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조건을 강화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원전 반대 시위, 평화운동, 노동조합 등을 다룬 교과서를 편향되었다며 검정에서 탈락시키는 등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2015년에 만 18세 선거권을 도입하고도, 문부과학성에서는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자제시키라는 지도 요령을 내리는 등 청소년을 주체적인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계속되고 있다.13
대한민국에서도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나, 2025년 대선 과정에서 밝혀진 리박스쿨 파문처럼 교육 현장을 정치적 의도로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정치 리터러시 교육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구태적인 정치 집단의 속셈과 철저히 분리되어 편향되지 않고 누구나 독립된 민주시민으로 건강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제도적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듯, 단순히 투표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권리 확보 이후에도 정치 참여 수준이 낮고, 고착된 정치 구조 속에서 청년의 대표성이 낮은 편에 속하는 일본과 만 17세 투표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는 북한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질적인 청소년 정치 참여는 제도적 개방과 함께 온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청소년의 권리가 충분히 대표되고,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온전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역할로 바라볼 때 비로소 실질적인 참정이 이뤄진다.
오늘날 만 18세 투표권 도입과 만 16세 정당 가입 허용으로 제도적 개방이 이루어졌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어떤 교육을 통해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할 것인가, 정치 편향과 갈등을 최소화하며 독립된 개인으로서 청소년들 각각이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더 많은 정치 참여 경험과 보다 개방된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 리터러시 교육을 더 폭넓게 정규 교과과정에 체계적으로 담고, 학교뿐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도 포함한 참여 경험이 확대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와 결합해 실제 참여형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청소년들이 학교 안팎으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삶에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에 맞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결합되어야 한다. 가짜뉴스 판별, 알고리즘 이해, 온라인 혐오 문화 대응 같은 구체적 역량을 키워야만 나날이 심해지는 정치 양극화와 갈등 속에서 올바른 방식의 정치 참여가 가능하다.
나아가 시민사회, 지자체, 언론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해 균형 잡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소수의 주체가 교육을 장악할 때 편향성 논란이 생긴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참여한다면 편향을 최소화하면서 더 다양한 경험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가 뒷받침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과 행태에도 변화가 생길 때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더욱 안전해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가 굳건해질 것이다. 양극화와 갈등으로 치닫는 세계 정세 속에서 평화와 화합, 민주적 토론과 합의의 정신을 되살릴 길은 바로 시민 각 주체의 협력과 교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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