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07-16 15:00
| 뉴질랜드의 국가교육과정인 ‘엮여진 매트’라는 이름의 ‘테 파라키’를 소개하며, ‘단일화’와 ‘일원화’라는 언어에 갇혀 있는 한국의 유보통합을 비판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진정한 통합을 고민하길 바랍니다. |
유보통합, 무엇을 ‘하나’로 만들 것인가?
최근 한 연수를 준비하며 뉴질랜드의 영유아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에 대해 깊이 있게 탐색할 기회를 가졌다. 단순한 제도 설계나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들이 왜 그런 교육을 구상했으며 어떻게 정책과 연결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특히 ‘엮여진 매트’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 수준 교육과정, ‘테 파라키(Te Whāriki)’1를 마주하며, 나는 교육이란 무엇을 짜는 일인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그 매트 위에서 뉴질랜드는 유아를 단지 보호하거나 발달시키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유아를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하며, 그들의 삶을 둘러싼 관계와 맥락, 정체성과 문화까지도 교육 안에 담아내고 있었다. 이곳의 정책은 철학에서 출발했고, 교육과정은 삶의 매트처럼 다양한 관계를 엮어내는 공간이었다. 이처럼 교육의 시작점이 전혀 다른 세계를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도 익숙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하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의 유보통합 논의는 과연 이 물음들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이국의 제도를 바라보며 생긴 추상적 사유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유보통합 논의가 실제로 놓치고 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유보통합 논의는 오랜 시간 동안 행정체계의 이원화 문제를 해결하고, 기관 유형 간 불균형을 조정하려는 정책적 과제로 다루어져 왔다. 특히 교사 자격의 이중구조와 예산·재정의 이원성은 통합의 명분으로 자주 언급되어 왔고, 이미 정부가 발표한 유보통합 실행계획안도 이러한 구조적 과제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운영의 효율성과 제도 정비를 강조하지만, 무엇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주변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통합의 출발점에는 영유아라는 존재가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 흐름 속에서 영유아는 교육과 보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에 머물 뿐, 그 주체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통합이라는 거대한 담론은 영유아의 삶을 추상화시키고 있으며, 구체적인 교육적 경험과 돌봄의 맥락은 제도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영유아를 ‘가장 어린 시민’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유보통합이 기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아직 정책의 중심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열린 ‘유보통합 담론의 대전환’을 주제로 한 긴급토론회2에서도 제기되었다. 다수의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들은 “지금 통합 논의는 철학 없는 통합, 수단이 목적화된 통합”이라고 지적했다. 유보통합은 단순한 제도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교육적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과제다. 영유아를 위한 통합이 아닌, 제도를 위한 통합이 진행될 때, 가장 어린 존재의 삶은 다시 한번 주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교사 자격 일원화 역시, 형식적 평준화에 가까운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격체계의 통일이 전문성의 통합이나 교사 정체성의 재구성과 연계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현장의 혼란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교사의 자격은 단지 연수 시간이나 학점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철학 아래에서 영유아를 만나고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전문성의 문제다. 현장의 교사들은 ‘하나가 되는 것’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차이’를 존중받길 원한다.
또한 유보통합 논의는 지역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 전국 모든 기관을 하나의 기준과 틀로 정렬하려는 시도는, 지역 간, 유형 간, 실천 간 차이를 소거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유아기의 삶은 지역, 공동체, 가족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제도적 일원화가 현장의 다양성과 맥락을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통합이 아니라 획일화된 지배 구조에 불과하다. 통합은 차이를 제거하는 절차가 아니라, 차이를 품을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정책의 언어가 ‘표준’, ‘효율’, ‘정합성’이라는 용어로만 채워질 때, 교육과 보육의 본질적 가치인 ‘돌봄’, ‘관계’, ‘배움’, ‘상호성’은 사라지게 된다. 유보통합은 교육과 보육을 서비스로서 정비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한다. 행정의 언어가 아닌 교육의 언어로, 제도의 구조가 아닌 영유아의 삶으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통합은 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나로 만들고 있는가? 단지 행정체계를 조정하고, 교사 자격을 통일하며, 예산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통합이라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를 조립하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가치를 짜는 윤리적 실천이다. 유보통합은 교육의 공동선을 새롭게 직조하는 과정이며, 이는 영유아와 교사,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엮이는 매트’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이 글은 뉴질랜드의 영유아 교육과정과 철학을 통해, 한국 유보통합 논의에 놓인 질문들을 다시 꺼내고자 한다.
‘테 파리키(Te Whāriki)’라는 이름의 약속
뉴질랜드는 유보통합을 단숨에 추진하지 않았다. 약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준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교육과 보육을 질적으로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먼저 구축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힘은 단지 행정 구조의 조정이 아니라, 영유아를 하나의 시민으로 존중하는 관점과 이를 실현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 철학의 공유였다. 뉴질랜드의 유보통합은 구조가 아닌 사고방식의 전환에서 출발했으며, 그 중심에 바로 테 파리키(Te Whāriki)가 있었다.
테 파리키는 뉴질랜드 영유아교육의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다. 그 이름이 ‘엮여진 매트(woven mat)’를 뜻하듯, 이 교육과정은 단일한 틀이나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관계성과 맥락 속에서 배움이 생성되는 열린 구조를 상징한다. 영유아와 교사, 가족과 공동체, 문화와 정체성, 놀이와 배움이 그물처럼 얽히고 짜이며, 각각의 기관은 자신들의 교육철학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이 매트를 엮어나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엮일 것인가’에 있다.
이 교육과정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유아의 능동적인 참여와 삶의 맥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량 강화, 총체적 발달, 가족과 공동체, 인간관계라는 네 가지 교육 원리와 웰빙, 소속감, 기여, 의사소통, 탐구의 다섯 가지 학습 영역은 모두 영유아의 실제 삶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다(ministry of Education, 2017). 또한 테 파리키는 마오리 문화를 포함한 다문화적 관점을 통합하며, 뉴질랜드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해 진화해 왔다. 국가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면, 그 틀 안에서 각 기관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뉴질랜드 교육학자 마거릿 셀러스(Margaret Sellers)3는 테 파리키의 교육과정을 들뢰즈(Deleuze)4의 인식론에 기반하여 해석하며, 이를 유아의 ‘되기(becoming)’로 개념화하였다. 유아의 교육과정은 외부에서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아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생성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셀러스는 테 파리키를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그물이나 세밀하게 홈파인 체계가 아니라, 느슨하게 엮인 매트에 비유하며, 이는 철학자 들뢰즈가 말한 ‘매끄러운 공간(smooth space)’에 가깝다고 보았다. 기존의 유아교육과정이 표준화되고 계량화된 ‘홈파인 공간(striated space)’이었다면, 테 파리키는 예측 불가능하고 유동적이며 관계 속에서 열린 생성의 장인 셈이다(Sellers, 2015/2018).
이와 같은 교육과정은 통제와 일관성의 논리가 아닌,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인 공간으로 이해된다. 배움은 미리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상호적으로 발생하는 삶의 일부다. 그러므로 테 파리키는 국가가 정한 규격이라기보다, 공동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관계적 실천의 틀이며, 유아의 존재를 고유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겠다는 국가의 공적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육과정 속 철학은 자연스럽게 각 기관의 자율성과 현장의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기반이 된다. 뉴질랜드에서는 각 기관이 지역사회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해석하고 실행하도록 장려되며, 국가는 이를 표준화하거나 서열화하기보다는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통합 이후에도 교육이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삶의 양태가 존중받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결국 테 파리키는 교육의 내용을 단순히 나열한 문서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는 윤리적 틀이다. 그것은 단일한 모델을 강요하지 않되, 모두가 존중받고 배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엮어낸 공적 기준이다. 뉴질랜드는 행정의 통합이 아닌 교육과정의 공유를 중심축으로 삼아, 제도 조정 이상의 의미 있는 통합을 실현했다. 그들의 유보통합은 제도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와 신념을 함께 직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지금의 한국 유보통합 논의에 깊은 함의를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통합을 행정체계의 정비나 자격 일원화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뉴질랜드는 교육과정이라는 철학적 틀을 통해 다양한 기관과 공동체가 함께 ‘엮이도록’ 설계했다. 통합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약속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유보통합 역시 어떤 구조를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철학과 사회적 약속을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제도보다 앞서는 철학, 통합의 시작점
뉴질랜드의 유보통합은 단지 제도를 맞추는 작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과 돌봄을 분리되지 않는 삶의 일부로 이해하고, 이를 영유아의 권리와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재정립하는 작업이었다. 제도를 설계하기 이전에 철학을 공유하고, 철학을 제도화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쳤기 때문에, 행정체계의 통합은 오히려 그 결과로 따라왔다. ‘제도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가치를 하나로 엮는 일’이 통합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은 교사 양성과 자격체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뉴질랜드는 교사 자격을 영유아교육 중심의 학위과정으로 일원화함으로써, 보육과 교육을 분리하는 관점을 넘어서고자 했다. 자격 통일은 곧 전문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실천적 재구성을 동반했다. 교사는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존재도,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도 아니다. 뉴질랜드의 접근은 교사를 돌봄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는 통합적 실천의 주체로 정의한다. 교사는 관계 안에서 영유아의 삶에 동행하며, 배움의 순간을 함께 짓는 존재로 재개념화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교사의 자격을 일원화하는 것 이상으로, 전문성과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재구성을 수반한다. 이는 돌봄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교육과 분리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한국의 통합 논의와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교육과정 역시 역량 중심과 과정 중심으로 설계되며, 영유아의 삶과 경험의 맥락을 중심에 두고 있다. 발달 단계별 표준을 기준으로 삼는 대신, 영유아의 문화적 배경과 지역적 특성, 관계 속 경험을 통해 배움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정해진 목표 달성을 위한 경로가 아니라, 영유아와 교사,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철학이다. 통합이 교육과정의 전면적 재사유와 함께 이루어졌기에, 제도적 조정은 단지 외형이 아니라 실천의 본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한국의 유보통합 정책은 아직도 ‘단일화’와 ‘일원화’라는 언어에 갇혀 있다. 교사 자격, 기관 기준, 평가 체계 등 대부분의 항목이 ‘어떻게 같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접근은 통합을 ‘조정해야 할 차이의 목록’으로 축소하며, 그 이면의 철학적 질문을 외면한다.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가, 우리는 영유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며 통합을 추진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여전히 부재하다.
한국의 유보통합은 이제 제도의 외형을 논하는 수준을 넘어, 교육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수반해야 한다. 통합은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재구성의 문제이며, 이는 곧 새로운 사회계약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나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우리는 무엇을 함께 나누고, 어떤 삶을 엮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제도보다 앞서야 할 것이 바로 ‘철학’ 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다름을 품는 통합, 공공성의 새로운 이름
유보통합을 추진하며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모든 영유아 교육기관을 하나의 모델로 정렬하려는 유혹이다. 통합이 곧 ‘동일한 체제’로의 편입을 의미하게 될 때, 교육과 보육의 다양성과 현장의 자율성은 오히려 제도 아래에 억눌릴 수 있다. 통합은 동일함을 강제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관과 실천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보통합은 ‘하나의 방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들이 존중받는 하나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뉴질랜드는 유보통합 이후에도 각 기관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며, 제도적 균질화 대신 다양성의 인정과 지원을 선택했다. 실제로 뉴질랜드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영유아 교육기관이 존재한다. 마오리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 마오리어 유치원(Kōhanga Reo), 퍼시픽계 이민자 가정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Pacific ECE, 부모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Playcentre), 공공적 전통이 강한 유치원(Kindergartens),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 등은 서로 다른 철학과 운영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모두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테 파리키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설계·운영하고 있다(류미향 외, 2023).
이러한 다양한 기관들은 단순히 제도적 분화가 아니라, 각 공동체의 삶과 가치를 반영한 실천의 장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들을 획일화하지 않고, 오히려 제도적 틀 안에서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자율성과 공공성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유형에 관계없이 대등한 수준의 재정지원을 제공하고, 기관이 자체 정체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장려한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공정한 조건’이다.
한국 역시 유보통합을 추진하며 공공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 정부는 통합 이후 기관 유형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교사 자격 및 인건비 지원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 기반 강화와 제도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논의는 제도를 하나로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으며, ‘다름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구상은 부족해 보인다. 뉴질랜드의 경험은 단순한 제도 통합을 넘어, 통합된 구조 속에서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공적 틀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유보통합이 지향해야 할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모두가 공평하게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뉴질랜드처럼 국가가 모든 기관에 대해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기관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때 비로소 통합은 수평적 연대의 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통합의 속도보다 훨씬 중요한 ‘방향’의 문제이다.
공공성은 획일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존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유보통합을 통해 거대한 통일 체제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보육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공적 구조를 어떻게 마련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기관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뉴질랜드의 경험은 제도적 통합 이후에도 ‘다름을 품는 통합’이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무엇을 엮고 있는가?
뉴질랜드의 테 파리키는 단순한 교육과정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영유아에게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는지, 그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실천의 틀이다. ‘엮여진 매트’라는 은유는 교육과정이 고정된 틀이나 일률적인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얽히며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적 공간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매트는 영유아, 교사, 가족, 공동체, 국가가 함께 직조하는 공동의 삶이자 토대이기도 하다.
유보통합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통합이 단지 행정의 효율성과 제도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라면 교육과 보육의 본질은 다시 제도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나’로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 ‘하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유아의 삶을 존중하고, 교사의 실천을 지지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통합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진정한 통합은 ‘어떻게 합칠 것인가’의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라는 공동의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통합은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제도는 하나가 되어도, 실천은 다를 수 있고, 그 다름 속에서 교육의 생명력은 더욱 빛난다. 뉴질랜드는 이러한 철학을 교육과정과 재정 구조, 질 관리 체제 전반에 녹여냈다. 우리는 그 방향성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통합을 위한 통합’을 넘어, 영유아 중심의 통합을 다시 상상해야 한다. 영유아는 누군가의 보호 대상이자 관리의 주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통합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교육과 돌봄이 단절되지 않도록 연결하며, 영유아가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윤리적 약속이어야 한다. 단일한 체제보다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사회적 매트다.
그 매트는 저절로 짜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방향을 세우고, 누군가는 엮는 실을 고르며, 누군가는 천천히 그물망을 완성해 간다. 정책은 그 엮임의 조건을 마련해야 하며, 현장은 그 엮임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를 조립하는 손기술이 아니라, 공동의 삶을 엮는 감각과 책임, 그리고 상호성을 회복하는 사회적 상상력이다.
유보통합은 단지 교육과 보육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실천과 가치, 문화를 엮어내는 작업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매트를 짜고 있는가? 그 매트는 누구의 삶을 품고 있으며,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다시 묻고 성찰할 때, 유보통합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과 공동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류미향, 박선미, 안혜령 (2023). 뉴질랜드 유보통합 추진 과정과 영유아교육 체제 탐구. 유아교육연구, 43(2), 277-323.
• Sellers, M. (2018). 어린이의 교육과정 되기: 들뢰즈, 테 파라키와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Young children becoming curriculum: Deleuze, Te Whariki and curricular understanding]. (손유진, 안효진, 유혜령, 윤은주, 이경화, 이연선, 이진희, 임부연, 전가일, 한선아 역). 서울: 창지사. (원전은 2015년에 출판)
• Ministry of Education (2017). Te Whariki: He Whariki Maatauranga: Early childhood curriculum. Retrieved December, 11, 2022 from https://assets.education.govt.nz/public/Documents/Early-Childhood/Te-Whariki-Early-Childhood-Curriculum-ENG-Web.pdf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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