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을 읽다》를 읽고 : 다르게 배우는 뇌, 우리 모두의 뇌

by gyobasaNPO | 2025-04-30 15:18

‘교실에서 난독인 학생을 만나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난독증을 읽다》를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내 안의 난독’이었다.                                                                                                 

 

 

‘난독’이란 말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읽지 못한다니 살아가기 힘들겠다’, ‘지능이 낮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간혹 난독이어도 성공한 CEO가 되었다거나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작가가 자신의 난독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작가인데 난독이라니 놀라웠고 글자들이 3차원의 공간에서 보였다는 말도 새로웠다. 여전히 난독은 신기한 세상이었다.

 

‘교실에서 난독인 학생을 만나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난독증을 읽다》를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은 ‘내 안의 난독’이었다. 저자는 난독증을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패턴으로 사고하는 뇌’로 설명하며 난독을 스펙트럼으로 보았다. 스펙트럼 안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부터 이미지로 사고하는 사람, 전체 계획이나 아이디어는 잘 내는데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힘든 사람, 오른쪽과 왼쪽이 헷갈리는 사람,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는데 글로 쓰는 것이 어려운 사람 등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보니 어떤 것은 나의 모습과 비슷했고 이런 특성을 지닌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오르며 몇몇 행동들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획일화된 학습 방법은 다른 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을 ‘집중하지 못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 노력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판단을 해왔다. 부정적인 자아상은 ‘강점을 약점’으로 만들게 된다.

 

그럼 난독증을 지닌 사람은 왜 글자를 읽는 것이 어려울까? 글자를 평면에서 본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글자를 3차원의 입체 공간에서 그림으로 본다면 알파벳 b,d,p,q처럼 어떤 글자는 방향이 바뀌면서 비슷한 글자로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난독증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글자를 읽을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고 읽는 것이 힘들어진다. 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경우가 외국어 학습과 관련된 부분으로,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쓰는 한글이 투명한 언어인데 비해 영어는 불투명한 언어라서 한글은 잘 읽지만 영어를 배우면서 난독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난독증의 뇌를 가진 사람에게 영어 단어를 순서대로 외우게 하고 못 외우면 열심히 안 외웠다고 나무랄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난독증이 있는 사람의 뇌는 공감각이 뛰어나고 좀더 논리적, 예술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혁신적인 생각을 잘하고 인간관계가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다채로운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지능이 낮은 난독’이라는 범주로 묶어두어야 할까. 저자는 이런 특성을 ‘신경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난독증은 다른 신경다양성인 자폐스펙트럼, ADHD, 난서증, 운동협응의 어려움 등과 일부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 고쳐서 치료해야 할 문제들이 아닌 것이다. 사실 ‘나’라는 한 사람 안에도 다양함이 있고 사람마다 잘하는 것, 쉽게 하는 일들이 다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 ‘어? 이것은 내 모습인데?’라고 생각하면서 과연 전형적인 정상인은 무엇인가 되묻게 되었다.

 

자신에게 난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해방감이었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나갔다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획일화된 학습과 평가 방법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전통적인 공부법에 매달려 자기의 다채로운 색을 점점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아이들이 다르게 사고하고 학습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교육 환경에서 배운다면 그 교실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은 다른 학습 방법을 익히며 서로 돕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함께 성장할 것이다. 소수의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해 자신감을 잃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지쳐가는 아이들이 줄어들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의 학습이 빛나는 순간은 성적이 올랐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배움을 지지해 주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공교육에서부터 신경다양성을 공론화하여 ‘사람은 다르게 학습한다’는 것을 널리 공유하고, 그에 맞는 교수 방법과 평가 방법을 지원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글자로 학습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세상은 이미지, 음성, 영상을 통해 학습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난독증의 뇌를 가진 사람에게 더 익숙한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공부 방법만을 유지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떠오른다. 난독증을 장애로 보는 순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신경다양성도 마찬가지다. 극복해야 할 역경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게 배우는 부분이 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난독증을 지닌 사람이 아닌, 서로 다르게 배우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과 사회였다.

 

오랜 시간 외국에 거주하며 언어를 가르치며 수많은 언어를 공부한 저자의 이력이 독특했다. 저자가 한 강연에서 남긴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 “다양하게 섞이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외국에 살며 여행하면서 문화다양성을 느끼다가 신경다양성을 접하게 되었고 그 모두를 ‘다양성’ 관점에서 바라보니 결국은 그 차이가 고만고만했다. 결국은 다 같았다.”라는 말씀이었다. 다양성에만 무게중심을 두고 책을 읽었던 차에 이 말을 듣고 나니 다양성의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저자의 다음 책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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