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03-31 09:54
|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숫자’ 놀이를 강조하며, 수학과 언어의 관계를 짚고 있습니다. 또한 수학 공부의 출발점은 아이에 대한 이해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
무엇이 많을까?

“흰 바둑돌이 많을까요, 검은 바둑돌이 많을까요?”1
이런 내 질문을 듣고, 아이(당시 1학년)가 바둑돌을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두 바둑돌의 수가 같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아차, 수를 잘못 세었다. 아이는 흰 바둑돌이 더 많다고 말했다.
아이와 나는 함께 바둑돌을 다시 세어보며, 두 바둑돌의 수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검은 바둑돌의 간격을 아래 그림처럼 벌려 보았다.

다시 물었다.
“이제 흰 바둑돌이 많을까요, 검은 바둑돌이 많을까요?”
아이는 검은 바둑돌을 짚었다. 아이는 바둑돌의 수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앞의 과정은 두 가지 수학적 원리와 관련이 있다. 첫째는 일대일대응. 사물의 수를 정확하게 세려면2 각 대상을 하나의 수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수 단어와 수 세기 대상을 하나씩 짝짓는 것이다. 대상에 두 개 이상의 수 단어를 부여하거나 수 단어를 하나도 연결시키지 않는 경우 수 세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센 것과 세지 않은 것을 분할하기’와 ‘각 물체에 맞는 수 단어를 회상하고 부여하기’, 이 두 과정의 협응이 요구된다.
두 번째는 수의 보존. ‘수의 보존’은 같은 수의 물질이 길이나 위치 등 다른 차원 변화에는 영향을 받지 않고 동일한 것임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여덟 개의 동전을 일렬로 줄을 만든 다음, 그 동전 가운데 두 개를 줄에서 빼내어 멀리 이동시키더라도 동전의 수는 여전히 여덟 개인 것을 아는 것이다. ‘줄의 길이’ 또는 ‘동전의 위치’와 같이 숫자와 상관없는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동전의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수의 보존은 보존 개념3 중 한 영역에 해당하는 것인데, 여러 가지 속성의 보존 개념은 동시가 아니라 순차적으로 발달한다. 피아제와 기타 연구에 따르면 수의 보존 개념은 5~6세4, 길이의 보존 개념은 6~7세, 무게・액체・질량・면적의 보존 개념은 7~8세, 부피의 보존 개념은 11~12세 무렵에 획득된다.
일대일대응과 수의 보존의 원리는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습득하지만, 느린 학습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아이는 일대일대응의 원리에 따라 수를 세지 못하고, 수 세기 대상을 빠뜨리거나 중복해서 헤아릴(센 것과 세지 않은 것의 분할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센 것을 다시 세는 경우, 앞서 말한 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시 말하는 경우) 수 있다. 또 앞서 예로 든 아이처럼 수 외의 다른 차원의 변화에 주목한 나머지, 수의 보존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아동의 관심이 한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어 그러하다.
1부터 10까지
최근 읽기 능력에 앞서 음운 인식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진 것처럼, 수를 다루고 다양한 계산을 하기에 앞서 갖추어야 할 능력으로 ‘수감각’이 강조되고 있다. ‘수감각’이란 수와 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직관, 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수와 관련된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수감각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면 ‘분류, 규칙, 수의 보존, 묶음, 비교 인식’ 등을 포함한다. 수감각을 가지고 7을 알고 있다면, 이후 다음과 같은 일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해내리라 예측할 수 있다.
| ▪ 그림에서 7개인 것을 찾을 수 있다.
▪ 1부터 7까지 차례대로 또는 거꾸로 셀 수 있다. ▪ 7보다 ‘1 작은 수’ 또는 ‘2 큰 수’를 말할 수 있다. ▪ 7은 10보다 3 작다는 것과 5보다 2 크다는 점을 생각해서 빈 수직선에 7을 표시할 수 있다. ▪ 7을 ‘4와 3’ 또는 ‘5와 2’로 가를 수 있음을 안다. ▪ 7을 나타내는 규칙적인 배열을 보고 7이라 할 수 있다. |
수학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저학년 아이들은 수감각 역시 더디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단 도구를 활용하거나 몇 가지 활동을 통해서 아이가 이러한 능력을 어느 수준으로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이가 수감각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면 구체물을 사용해서 수와 친숙해지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가 쓰는 수 체계는 십진법에 근거하고 있으니 1부터 10까지의 수를 담뿍 느끼고 다루어보는 것이 좋다. 자연이나 생활 속에서 1, 2, 3, 4, 5, 6, 7, 8, 9, 10, 이 열 개의 수를 찾아보고, 각각의 수가 주는 느낌이나 상징성을 확인해 보기도 하면서. 요즘 같은 초봄이면 풀꽃 천지다. 풀꽃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통으로 피는 제비꽃, 십자화인 냉이꽃, 다섯 장 꽃잎 노란 양지꽃, 여섯 장 꽃잎 하얀 애기나리, 여럿이 종종 매달리는 은방울꽃, 새콤새콤 괭이밥…… 내 몸에서도 하나인 것, 둘인 것, 열 개인 것 등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친구랑 비교해가며 숫자로 연결되는 공통점과 차이점 놀이를 할 수 있고, 개수에 맞게 모여 있는 물건을 찾아볼 수도 있다.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초를 쌓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꼼꼼히 살펴보며 세는 행위도 도움이 된다. 친구 얼굴에 점이 몇 개 있나, 내 엄지에 주름이 몇 개인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차분차분. ‘우리 모두 다 모였나’ 친구들 수도 세고, ‘내가 몇 개나 먹을 수 있나’ 간식도 세고, ‘우리 교실 여기에서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나’ 발걸음도 세고. “일, 이, 삼, 사……”로도 세고, “하나, 둘, 셋, 넷……”으로도 세고, “첫째, 둘째, 셋째, 넷째……”, ‘1호, 2호, 3호, 4호……”로도 세고. 단위를 붙여서 책을 보며 “한 권, 두 권, 세 권, 네 권……” 이렇게 세고, 꽃을 보고는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 나무 보고는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네 그루……”, 개미 보고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배추 보고는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네 포기……” 이렇게 세고. 또 거꾸로도 세어본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땡!” 건너 뛰어가며 세기도 한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시계를 보면서는 “오, 십, 십오, 이십……”. “369놀이”를 하면서도 세고, “눈치게임”을 하면서도 센다.
이에 더하여 여러 가지 구체물을 가지고 나누어도 보고 합쳐도 보고 빼어도 보고 덧붙이기도 하며 충분히 놀자. “짝짓기 놀이, 자리 뺏기 놀이, 바둑알 놀이, 주사위 말판 놀이……”. 그런데 이때 개념을 익히게 하려면 일어나는 수 변화를 말로 표현할 기회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적 언어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학과 언어
지난 1월 겨울방학 중에 명이(가명, 당시 1학년)를 만났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구 이야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조잘조잘 꺼내놓는 아이도 있지만, 명이는 말수가 적었다. 질문에만 짧게 답하는 정도. 하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끈기가 있고 뚝심이 있었다. 활동 중에 웃음을 터뜨리거나 엄청 호기심을 보이거나 뭔가 해보겠다며 나서지는 않았지만, 끝날 때 어땠는지 물으면 재밌었다고 하고 무엇이 재밌었는지 물으면 나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아이는 1학년 한 해를 보내며 한글은 웬만큼 깨쳐서 글자를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 ‘부랴부랴’와 같은 이중모음이나 겹받침이 들어가는 단어는 정확하게 발음하기 어려워하고 음운변동 규칙을 적용하지 않은 채 읽기도 했지만, 문장을 술술 읽어내는 편이었다. 짧은 그림책 한 권 읽어내는 것을 별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반면, 수학 영역에서는 어려움이 도드라졌다. 아이가 나타낸 오류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명이는 위의 그림을 보고 수모형이 얼마를 나타내는지 묻는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래서 내가 백모형, 십모형, 일모형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개수를 확인하게 했다.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니 ‘이백팔십육’이라는 값은 찾았는데, 이를 숫자로 써보자고 하니 ‘200806’이라고 썼다. 아직 자릿값 개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이다. 아이는 ‘43+29’(아래 문제)의 답을 | 6 | 12 |로 쓰기도 했다. 이 문제의 답을 72라 잘 풀어냈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아이가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사고 과정을 자기 입말로 설명해 보게 하면 그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문제를 두고 아이가 말하는 중에 내가 꼭 끼어들어 짚고 넘어가는 때가 있다.

“사하고 이를 더하면 육이 되고요~”
요렇게 말하는 순간. ‘사’가 아니라 ‘사십’, ‘이’가 아니라 ‘이십’, ‘육’이 아니라 ‘육십’이니까. 자릿수 개념을 평소에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말할 때마다 개념을 다지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가며 셈이 어려워질수록 헤매기 십상이다. 큰 수 또는 여러 수의 연산 과정에 오류가 많아진다. 숫자가 많은데 왜 하필 그 숫자와 그 숫자가 짝을 이루는 건지 몰라서, 세로 셈을 한답시고 숫자를 써놓은 게 조금만 삐딱해도 오답을 구하곤 한다.
숫자와 함께 수학에서 쓰이는 또 하나의 주요 언어는 기호다. 기호의 의미 역시 처음부터 확실하게 짚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빈번히 쓰이지만 아이들이 그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기호 중 하나가 ‘=’이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기호의 뜻을 물어보면 “는”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조사 ‘는’의 용례와 ‘=’가 본디 ‘같다’라는 뜻을 나타낸다는 것을 설명하고 다시 말하게 한다. 등호의 뜻을 강조하는 까닭은 이를 단순히 ‘는’으로 읽다 보면 수식의 풀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등호나 부등호가 좌항과 우항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인식이 없으면 훗날 방정식이나 함수를 배워나갈 때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언어가 ‘무엇끼리의 공통 특성’과 ‘무엇이 아닌 다른 것과의 차별 특성’을 개념화한 추상표현이라면(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는 색과 모양과 맛이 각기 다른 무수한 사과들 사이의 공통점, 배나 수박이나 딸기나 참외와는 다른 차이점 사이에서 만들어진 개념에 붙인 보통명사), 수학에서 쓰이는 표현들은 그걸 한 번 더 압축시킨 고도의 언어다. 일상 언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라 좀 더 까다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수학이 여전히 언어의 특징을 함유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수학적 언어나 표기체계는 그것에 대응하는 실세계나 어떤 의미가 있다. 그걸 편의에 따라 쓰거나 혼동해서 아무렇게나 쓰면, 갈수록 뒤죽박죽 짬뽕탕이 된다. 그래서 처음 배울 때부터 제대로 명확하게 배우고 또 자주 표현해 봐야 한다.
수학과 언어의 밀접성은 수학 자체의 특성에 그치지 않는다. 수감각과 언어감각을 놓고 볼 때 아이에 따라 둘 중 어느 한 쪽이 다소 우세한 경우가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둘 중 하나는 엄청 뛰어나고 하나는 바닥 수준인 사례는 드물다. 언뜻 보면 언어 부문은 특히 문학 영역으로 갈수록 감성과 관계가 깊어지고, 수학은 이성의 영역과 연관성이 커서 둘은 반대인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결국 어떤 상황에 대한 언어적인 이해력 수준이 낮으면 계산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하기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숫자나 수학 기호를 구체적인 사건으로 풀어보거나 어떤 수학적 상황을 수식으로 나타내는 변환 과정을 자주 거치면서, 두 영역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 왜 배울까?
나는 ‘수학’ 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주황색 주판알. 나는 7살 때 유치원 대신 동네 주산학원에 다녔다. “5원이요, 7원이요…….” 연이은 선생님의 목소리.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계산식을 부르면 부리나케 주판알을 튕겼던 순간들. 두 번째는 화난 엄마. 두 자리 수 곱셈을 배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학교에서 쪽지 시험을 봤는데, 거의 다 틀렸다. 곱셈 개념을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는데, 난 그 시험지를 버리고 엄마한테 보여드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얼마 후 그 사실을 아셨고 크게 꾸중하셨다. 말하지 않는 건 속이는 것하고 똑같다 하시며. 엄청 울었던 날. 세 번째, 8시간. 중학교 때 어떤 문제를 하나 받았다. 그때까지 봐온 문제가 아니라서 무지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많이 했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겨우겨우 풀었다. 학교 가서 그 풀이법을 칠판에 쓰는데, 선생님이 예상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맞았다. 뒤에 알고 보니 그런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단순한 공식이 있었다. 그래도 혼자서 열심히 궁리해서 풀었다는 게 오랫동안 자부심으로 남아 있었다. ‘몰입, 수치심, 짜릿함’, 이것들이 내가 수학에서 맛본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학을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과외 아르바이트와 초등교육과 수학교육방법론 시간이었다. 과외를 하면서는 아이보다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다. 수학 정석과 문제집들을 곱씹어 풀 수밖에 없었으니. 가르쳐 주려니까 기초 개념부터 내 말로 설명해야 했는데, 그 과정을 밟으면서 이전에 공식으로 외우기만 했던 것들의 원리가 보였다. 대학 수업에서는 미국에서 막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님이 따끈따끈한 최신 수학교육방법을 소개해 주셔서 인상적이었다. 구체적 조작기 특성에 맞게 다양한 실제 사물들을 가지고 활동하는 방법, 그것들을 수학적 표현으로 유도하는 예를 직접 보여주셔서, 그 시간은 매번 흥미로웠고 후딱 지나갔다.
교사가 됐을 때도 제일 도전적으로 임했던 시간 중 하나가 수학 시간이다. ‘재미없다’, ‘복잡하다’, ‘머리 아프다’ 같은 느낌으로 평가되는 수학을 다르게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싶었으나, 의외로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수학은 쉽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을 안고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부모님 영향이 아니더라도 유치원이나 친척들, 대중 매체로 전해지는 분위기를 느껴왔기 때문이다. 때론 직접적인 압력도 받고, 수 공부를 어릴 때부터 한 아이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이 수학을 짐스럽게 여기곤 했다. 젖먹이 시절 이유식을 급히 먹은 것처럼, 이 아이들에겐 숫자가 얹혀 있었다.
‘수학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겠어!’
이런 결의에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된 수학 수업 형태는 놀이 중심의 수학이었다. 당시 이런 식의 접근법이 유행하기도 해서 책들이 여러 권 나와 있었다. 그런 책들을 참고하기도 하고 스스로 머리를 짜내기도 하며 시간을 꾸렸다. 블록, 도미노, 보드게임, 내가 직접 만든 교재들로 놀 거리를 장만하거나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전래놀이를 하면서 숫자와 접촉하는 횟수를 늘리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형태의 수업에 헛헛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내긴 하는데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뭘 배우고 있는지 나조차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선 수학의 본질이 왜곡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참고한 책들 중 어떤 책은 ‘재미’에 치중하다 보니 개념과 무관한 우스운 억지 신조어를 만들어내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닌데’ 싶으면서도 나 역시 무리수를 둘 때가 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아이들은 몸으로 신나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머리를 요리조리 쓰는 것도 재밌어 한다. 아이들이 퍼즐이나 수수께끼 같은 것에 오랜 시간 매달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수학은 이런 아이들 본래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사실 아이들이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고 왜 해야 되냐고 따져 물을 땐, ‘왜’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이 꼭 잘 해야 하는 주요 과목으로 꼽혀 압박감이 크기에, 힘들어서 하는 감정적 호소이다. 아이들은 수학 자체보다, 수학을 공부하는 게 힘들고 수학 때문에 듣게 되는 잔소리와 억압적 상황에 힘든 것이다. ‘수학이 논리성을 비롯해 갖가지 능력을 키운다.’, ‘생활에 필요하다.’ 등 그런 얘기들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전한다 해도, 이런 순간에 실효성이 거의 없다. 아이의 물음에 교사가 할 일은 논리적인 이유를 말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아이와 수학과의 관계 또 수학으로 인해 빚어지는 여러 관계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출발점은 아이가 현재 진짜로 알고 있는 것에 두어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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