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학교는 학부모에게도 좋아야

by gyobasaNPO | 2025-03-0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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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를 맞아, 학부모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학교를 지적합니다. 더불어 학부모들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학교를 대하고 교육 활동에 참여할 방법은 없을지를 고민합니다.                                                                                                    

 

 

3월이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교문에 들어선다. 설렌다, 반갑다. 아이들만 그럴 것인가. 당연히, 새 학기 학생들을 만나는 첫날의 교사들도, 자녀를 새 학교, 새 학년에 보내는 학부모1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드나드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일주일 전부터 입맛이 없다. 다만, 아이 때문에 부르면 갈 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으려 한다. 이게 평범한 학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학부모만 되면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곳, 학교. 학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오가며 학교 교육의 한 축, 교육 활동에 긍정적 에너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학부모 민원’으로 교육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더 나은 관계는 분명 가능하다.

 

 

학교 주변에서만 맴돌던 학부모

 

학부모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교육은 무엇일까? 여러 말들이 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표현에 ‘복불복(福不福)’이 있다. 작게는 어떤 학교, 어떤 담임 또는 교과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생이 확 달라지는 경험이 담긴 말이다. 그만큼 학교는 교사 개개인의 개인차, 편차가 심한 곳이다. 모든 교육 활동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2과 학교 교육과정이 그 바탕이 되긴 하지만, 그 구체적 설계자요 실행자인 교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적지 않다. 더 크게 보면, 수시로 바뀌는 교육 방향과 정책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자녀 교육을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딱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 교육이 아직도 대세요, 주류라는 사실 정도.

 

이런 현실에서 학부모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발령 초인 1980년대 말, 학교 운영의 주체, 중심은 늘 교사였고, 학부모는 교육 활동의 주변에 머물렀다. 기껏해야 학교에 촌지(현금)를 들고 드나들며 ‘치맛바람’을 일으키거나 좀 더 영향력 있는 육성회 임원이 되어 교장실을 출입하고, 자녀의 학급 임원 임명이나 심지어는 성적 변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였다. 대부분은 자녀가 저지른 잘못으로 원치 않게 학교에 불려 오거나 생계에만 전념하느라 공부는 학교나 학원에 맡겨 놓는 형편이었다. 학부모는 학교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는 존재였고, 그 틈바구니에서 떡고물처럼 사적 이익을 챙기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활동이 공개적 장이 아니라, 뒷전에서 암암리에 진행되었다. 교사와 학부모는 극단적으로 멀리하거나, 너무 가까이하다 문제가 되는, 이른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

 

 

학운위만 제대로 운영해도 좋은 학교

 

학교 민주화, 교육 민주화의 물결과 촌지 거부 운동의 흐름 속에서 부적절한 거래, 관계는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사회 전반에 공공성이 자리를 잡고, 투명성이 높아진 것이 한몫을 했다. 학교 운영, 학교 공동체를 말할 때 흔히 3주체3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다.

 

그 흐름이 학부모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면서 1996년에는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라는 기구 출범으로 이어졌다. 학교에 학부모, 교사, 지역 인사가 함께 참여하는 학운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써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졌다.

 

학운위는 학교 운영에 관한 최고의 심의 기관으로서 위원을 선출(무투표 당선이 훨씬 많긴 했지만)하기 위한 학부모 총회를 열기 때문에, 총회 날이면 수업 참관과 학교 설명회, 담임과의 대화 시간 등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학부모 위원은 학부모를 대표하여 학교와 소통하고, 다른 학부모들은 위원을 통해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학교 운영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학운위의 주요 심의 사항4을 살펴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먼저, 학교의 각종 규칙 및 학칙을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 상·벌점제를 운영할 것인지, 휴대전화 소지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과 같은 예민한 문제를 학칙에 반영하는 것도 학운위의 결정 사항이다.

 

각 교과의 수업과 평가, 학년 특색 교육과정 운영 등과 같은 모든 교육활동, 그것이 담긴 문서인 교육계획서도 학기 초에 학운위의 심의를 거친다.

 

교육 활동에 쓰이는 학교의 예산안 및 결산도 학운위에서 심의한다. 어디에 예산을 더 쓰고, 덜 쓸 것인지 정하는 과정은 교육 활동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와도 관계가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학교와 협의하는 과정이 바로 학부모의 교육 활동 참여의 일부이다.

 

교과서 및 교육 자료의 선정에 관한 사항도 심의한다. 올해 초까지 학습 효과, 예산 낭비, 준비 부족 등의 문제로 학교 안팎에서 떠들썩했던 AI 교과서의 채택 문제도 학운위에서 결정하는 사항이다.

 

이외에도 학교 발전 기금, 학생 지도, 교복 및 체육복 선정, 수련 활동, 학교 급식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니, 학교 교육에 관한 것치고 학운위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운영해도 ‘좋은 학교’의 절반 이상은 이루어진 셈이다. 학운위야말로 학부모 학교 참여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제도화의 너머,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몇 프로

 

학운위가 뿌리내린 지도 30년이 되어간다. 조례 제정으로 학부모회도 공식 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이것으로 학부모의 교육 활동 참여가 충분해졌을까? 그렇다고 말하긴 아직 섣부르다. 학부모가 교육 3주체로 제자리를 잡아나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법도 인간 생활의 최소한에 그치듯, 학운위 같은 공식적 활동 또한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학교엔 제도와 규정, 지침만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데서 일어나는 배움과 성장, 무 자르듯 할 수 없는 일들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역은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온도차가 제법 있고,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역량과 노력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다.

 

최근 몇 년, 학교 문제를 교육 공동체 내 협의나 중재보다는 사법적 절차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바로 그런 영역이다. 대표적인 3가지 사례를 꼽아보면, 가장 빈번한 유형은 학생 간의 소규모 폭력 사건이 곧바로 법적 대응으로 이어지는 일이다. 학교의 중재나 교육적 해결을 미더워하지 못하고, 최강수를 두는 것이다. 시원한 분풀이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교실에서 제지한 것을 두고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녀에게 수치심을 주었다며 해당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형사 고소 및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또한, 대학 입시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을 둘러싸고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5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교사들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의 기초 자료를 학생들에게 요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웃지 못할 일조차 벌어지곤 한다.

 

‘갑질 학부모’로 표현되는 사례의 증가에 학교도 자구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교사들은 학생, 학부모에게 개인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고, 방과 후에는 연락을 받지 않으려 한다. 또, 필수적인 만남 이외에는 학부모와의 소통을 가급적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평소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문제가 터졌을 때만 소통을 시도하다 보니, 거친 감정이 앞서고 날 선 언어가 오가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소통의 악순환이다.

 

 

대한민국 학부모를 위한 교사의 변명

 

우리나라 학부모는 왜 그런 행동을 할까? 교사와 학부모 모두 원치 않았을 상황인데, 현실은 이쪽으로 왔다. 그게 교육적으로 가장 바람직해서 그랬을까? 보호자마다 행동의 근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학부모는 각자도생과 복불복의 한국에선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거기엔 우리나라만이 겪는 독특한 사회적·교육적 현실이 얽혀 있음을 놓쳐선 안된다.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 확연히 있다.

 

최근 개그맨 이수지 씨가 유튜브에 올려 화제가 된 ‘대치맘’6 영상이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유치원 이전부터 사교육 전선에 뛰어드는 부모를 패러디하여 이른바 ‘강남 엄마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누군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느냐는 것이다. 남들 다 똑같이 받는 공교육, 거기다 복불복을 감수하고서 어떻게 각자도생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는 것이다. 없으니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꼬집는 것은 심각한 방향 착오라는 항변이다.

 

실제, 경기는 가라앉고 학생 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총 사교육비는 2023년 27조 원으로, 2020년(19조 원)보다 약 40% 늘었다. 그중 절반쯤은 초등학생 부모가 쓴 돈이라 한다. KBS ‘추적 60분’에서도 유치원 사교육의 현실7을 짚기도 했다. 유명 유치원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내용이다. 이런 현실에서 불평등 심화, ‘각자도생’에 내몰린 학부모가 맘 편히 지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아니 무리를 해서라도 영어 조기교육으로 기반을 쌓고, 장차 수학, 과학에만 집중하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소질, 적성, 장래 희망은 제쳐두고 의대 입시로 달려가는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외면하면 뜬구름 잡기가 되고 만다. 가치와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고(思考) 실험 하나 해 보자. 가로축엔 뛰어난 성적과 변변찮은 성적, 세로축엔 따스한 인성(人性)과 매몰찬 인성이 있다. 각각을 교차하면 4가지 조합이 나온다. 최상과 최악의 조합을 뺀 나머지 둘이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무얼 택하려 할까? 딜레마 상황인가? 내가 보기엔 전혀 딜레마에 빠질 일이 없다. 열에 아홉 이상이 ‘따스한 인성과 변변찮은 성적’보다는 ‘뛰어난 성적과 매몰찬 인성’을 선택8할 테니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이 그쪽으로 쏠리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강풀 작가가 [송곳]에서 그러지 않았는가.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고. 우리나라 학부모가 선 자리는 아직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풍경과는 거리가 먼 까닭이다.

 

일부 학부모의 ‘갑질’, 교육의 사법화(司法化)는 분명 객관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침소봉대하거나 냉소적으로 대할 것도 아니요, 결국은 우리가 뛰어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학부모나 사회 탓만으로 풀릴 문제였다면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해결의 주체를 생각할 때, 굳이 우선순위를 둔다면, 더 많은 경험과 정보, 방법론을 갖고 있고, 객관적인 접근이 쉬운 학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순서일 테다.

 

 

내가 만나온 학부모들

 

평교사일 땐, 교과 교사보다는 학급 담임의 자격으로 만나게 된다. 가장 공식적인 자리는 학기 초의 학부모 총회일 가능성이 높고, 학부모 상담 주간이나 수업 공개의 날도 만남이 이루어지기 좋은 날이다.

 

하지만 꼭 직접, 방문을 통해 만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소통하겠다는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때와 장소, 소통의 방식은 다양하면 할수록 좋다. 양쪽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껄끄러운 상황 탓에, 요즘 담임 교사들은 학부모와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는 일도 있다. 학부모가 학기 초에 학교에 개인정보(학부모 연락처)를 필수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대비가 된다.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는 담임 교사도 할 말이 있다. 꼭 필요한 일만 일과 중에 학교로 연락해 달라는 것이고, 방과 후엔 교사도 교육 활동으로부터 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고, 아직은 과거의 관행과 새로운 시대적 상황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율하며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학교장의 역할도 결코 작지 않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 총회와 같은 공식적인 통로는 물론이요, 입학식과 졸업식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열린 학교의 모습, 소통의 노력을 가장 폭넓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다.

 

이에 더하여 가벼운 일상적 소통을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나는 평교사 때 사용하던 페이스북과 인스타, 인터넷 카페를 여전히 그대로 사용한다. 개인정보 노출의 부담이 있긴 하지만, 상시적 소통으로 얻는 교육적 효과에 비길 일이 아니다. 서로가 SNS 친구라는 사실은 소통의 친밀도를 높이고 눈높이를 맞추는 데 커다란 효과를 발휘한다.

 

미리 정해지지 않은 갑작스런 만남도 종종 있다. 대개는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나는 교장실 전화와 개인 휴대전화를 공개하는 편이다. 국민신문고나 교육(지원)청에 민원 제기를 선택하는 학부모는 대개 학교에 대한 신뢰가 낮다. 학교장과의 소통은 모두에게 알렸다는 생각과 더 책임 있는 답변과 대응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민원의 수준을 누그러뜨려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부모의 자리매김을 위한 다양한 시도

 

학부모에 의한 교육의 사법화, 학교와의 거리두기, 사교육 의존 등에는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 대증요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체력을 길러야 한다. 몇몇 학교에서 시도하여 학부모를 교육 활동의 한 축으로 세운 사례9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학교가 ‘열려 있다’,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협력적 소통이 중요하다. 활동하시라고 보챈다고 해서 활동이 되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부터 효과적으로 활용하자. 학부모 총회, 학부모 대상 수업 공개를 통해 교육계획, 교육 활동을 공유하고, 학년 교육과정 설명회, 학교 소식지 등으로 학교 비전과 교육 방향을 다각도로 주고받아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 스스로 의욕적으로 활동할 공간이 열리기 시작한다.

 

특히, 3월 시작과 함께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학부모회에 넉넉한 시간을 할애하고,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그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 활동을 바탕으로 학부모 스스로 하고 싶은 활동을 준비하면 경험 축적을 통한 심화와 활동의 이어짐을 통한 지속 가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학부모 독서동아리에 학교장이나 원하는 교사가 함께하는 것도 모임의 밀도를 높이는 한 방법이다. 그렇게 하여 쌓은 힘은 학교의 어려운 일(예: 교원 정원 감축, 민원 처리)에 대한 협력이나, 학교 축제와 체육대회의 동참 같은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부모들과 함께 구성하는 각종 위원회에도 다양한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해 보자. 학부모 시험감독이나 급식 모니터링단으로 방문한 학부모들과 활동 전후에 교장실 등에서 만나 작은 이야기라도 귀를 기울이면 소통의 밀도가 크게 개선될 것이다.

 

아직까지 학부모 모임은 주로 여성 보호자가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성별을 따질 필요는 없지만, 남성 보호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 문화에도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남성 보호자와 함께 하는 캠프, 동반 게임, 삼겹살 파티나 운동장 야영 등은 직접적인 교육 활동은 아니지만, 이후 교육 활동의 밀도를 높여줄 수 있다.

 

앞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말한 바 있다. 가까워지면 지나친 요구에 힘이 들고, 멀어지면 오해와 불신이 또 문제가 된다. 그럼 또 ‘절충’으로 가야 하나. 난 출발선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한둘이라도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여태 그 ‘어정쩡’을 취하여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말았음을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3주체, 4주체라고 입버릇을 삼으면서도 실제는 학교가 필요할 때만 불러대지 않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은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 ‘필가근불가원(必可近不可遠)’을 말해야 할 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1. 학생의 보호자(후견인)가 ‘부모’가 아닌 경우 등의 다양한 현실을 고려할 때, ‘보호자’가 좀 더 객관적이고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아직까지 법령 등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호칭은 ‘학부모’ 쪽이다.
  2. ‘2022 개정 교육과정’이 2024학년 초1, 2, 2025년 중1, 고1부터 적용된다.
  3. ‘유네스코 교육2030 프로젝트’에서는 이 3주체에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4주체라고 보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4. 자세한 내용은 초·중등교육법 제31조, 동법 시행령 제58조~제64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5. ‘과세특’이 초래한 암묵적 교육과정(김새로나) http://21erick.org/column/14659/
  6. Jamie맘 이소담 씨의 별난 하루 https://www.youtube.com/watch?v=1XpyBBHTRhk
  7.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1400회, 2025.02.14. 방영)
    https://program.kbs.co.kr/2tv/culture/chu60/pc/index.html
  8. 기대에 어긋나게도 뒷받침할 만한 통계 자료는 없다. 학교에 기대어 살아온 50여 년과 학부모로 살아온 20년의 세월에서 얻은 경험칙을 바탕으로 가늠했을 뿐이다.
  9. https://sites.google.com/naegok.ms.kr/2025seoulmirae (내곡중, 서울)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4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