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5-01-22 12:22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이야기와 학습: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뭐 하고 싶어요? 연습문제를 좀 더 풀까요, 아니면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렇게 묻는다면 학생들이 뭐라고 답할까? 보나마나 답은 ‘이야기 듣기’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우리 마음속에 ‘연습문제는 진지한 학습, 이야기는 그냥 재미’라는 선입견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 어쩌면 대부분의 교사가 연습문제와 이야기에 대해 위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특히,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냥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클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과학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지만, 그것이 시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힘은 분명하다. 고차원적 사고로 가득한 학술적인 책을 읽을 때조차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이야기이다. 우연한 발견, 개인적 일화, 실패한 실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단순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하고, 학습을 심화하고, 복잡한 개념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 도구 중 하나를 간과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는 이야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 점을 꼭 기억하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야기라는 학습 방식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야기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설명이나 연습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훨씬 쉽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연습은 진지한 학습처럼 보이고, 이야기는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두 접근 방식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는데도 이야기가 지닌 가치는 너무 자주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의 강력한 학습 효과: 다독 사례 연구
이 점을 생각해 보자. 다독(多讀, extensive reading)이 왜 그렇게 효과적일까? 전문가들은 ‘이해 가능한 입력(comprehensible input)’과 ‘광범위한 언어 노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문법 연습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어 학습 방식에도 해당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 다독이 효과적인 이유는 결국 ‘이야기’를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동적인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오랫동안 신경과학을 연구해오면서 이야기는 언어를 뇌에 전달하는 고속도로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언어를 오래 기억하게 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다루기 전에 먼저 다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살펴보자.
다독이 읽기 속도, 독해력, 문법, 어휘력 등을 향상시킨다는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구는 4년 동안 다독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본 고등학생들의 토익 점수를 분석한 것이다(Nishizawa, Yoshioka, & Fukada, 2010). 이 연구에 참여한 고등학생들 중 대략 76만 6천 단어(해리포터 다섯 권 분량)를 읽은 학생들의 토익 점수는 평균적으로 대학교 4학년 학생 수준이었다. 이 자체로도 상당히 놀라운 결과이다. 그런데 평균적으로 180만 단어를 읽은 학생들의 성과는 더 놀라웠다. 이들은 1년간 해외에서 생활한 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토익 점수를 기록했다. 다독 프로그램에 참여해 4년 동안 꾸준히 이야기를 읽은 결과, 해외에서 1년간 생활한 것과 같은 영어 실력 향상의 효과를 낸 것이다!
이야기와 학습에 관한 다른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서사(narrative, 내러티브,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된 텍스트)’가 대세였던 1960~1990년대에 수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 정보가 강의나 설명문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된 정보보다 더 빨리 학습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단어 목록을 외우게 한 연구에서 그 단어 목록을 이야기로 만들어 외운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무려 6~7배나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Bower & Clark, 1969).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이야기 텍스트를 읽는 속도가 설명문 텍스트를 읽는 속도보다 약 2배 더 빠르고, 내용도 2배나 더 많이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Graesser et al., 1980).
이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야기 전달은 ‘강의-시험 교수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모든 교육의 기본이었다. 이야기에는 축적된 경험이 담겨 있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환경을 제대로 활용하고, 사회적 기술을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물학자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은 이야기를 “우리의 생존 매뉴얼”이라고 표현했다(2002).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집단적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이야기를 통해 학습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패턴 그리고 이야기: 뇌의 언어
하지만 내 동료 스티븐(Stephen)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가 이야기에 최적화된 게 아니라 어쩌면 이야기가 뇌에 적합한 형식으로 발전해 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과 마찬가지로 나도 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새로운 관점, 즉 예측 처리(predictive processing)1에는 동의한다. 우리의 뇌는 경험을 토대로 세상에 대한 ‘인과관계 모델’을 형성하여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예측 능력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번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인지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여기서 ‘예측’이란 단순히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매 순간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끊임없이 예측한다. 이것이 바로 뇌가 패턴을 잘 인식하는 이유이다. 뇌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패턴도 인식한다. 패턴은 뇌의 언어이다. 패턴은 인과관계의 문법이기 때문에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이야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작은 인과관계의 패턴들(예: 그녀가 이렇게 말해서 그가 저렇게 했다)을 모아 서사 구조(narrative arc)2라는 더 큰 패턴으로 묶은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잘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야기 역시 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학습을 촉진하는 열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즉, 수백만 개의 내부 인과관계 모델이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예측한 결과가 우리의 안전과 번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지도(map)를 통합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조종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감정(emotion)이다.
감정은 우리를 벼랑 끝에서 멀어지게 하고 피자가게로 이끌어주는 조종 시스템이다. 모든 인과관계 모델에는 감정가(感情價, emotional valence)3가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총을 든 채 제복을 입은 남성은 위험하다거나, 명품 옷을 입은 여성은 매력적이라는 식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요점은, 감정이 우리의 인과관계 모델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를 부여해서 벼랑 끝이든 피자가게든 어떤 상황을 어포던스(affordance, 행동 유도성)4, 즉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 기회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 학습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이다. 사실, 감정 없이는 학습이 불가능하다. 뇌와 감정 연구자인 이모르디노-양(Immordino-Yang)은 이렇게 말한다.
“감정 없이 기억을 형성하거나, 복잡한 사고를 하거나,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신경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뇌는 신진대사가 매우 활발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와 산소를 낭비하지 않도록 진화되어 왔다. 즉, 뇌는 중요한 것만을 생각한다.”(Immordino-Yang in McCrickerd, 2016, p. 2)
다시 말해, 감정은 경험에 ‘중요함’ 또는 ‘중요하지 않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기억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다. 예컨대, 우리는 처음으로 계단에서 넘어졌던 순간은 기억해도 집 현관문을 오천 번째로 통과한 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야기 속 언어와 정보는 더 잘 기억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즉 세상에 막 진출한 새내기들에게 지극히 복잡한 사회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을 더 잘 이해한다고 한다.
뇌가 원하는 최적의 학습 도구, 이야기
학습자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갈망’한다. 이야기는 학습자들이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인과관계 모델을 수립하도록 도와주며,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 요컨대, 우리는 이야기가 강력한 학습 도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야기는 뇌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즉 패턴을 제공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진지한 학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을 확실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이야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Autumn 2021 Volume 25, Issue 3)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Bower, G. H. & Clark, M. C. (1969). Narrative stories as mediators for serial learning. Psychonomic Science, 14(4), 181-182.
• Graesser, A. C., Hoffman, N. L. & Clark, L. F. (1980). Structural components of reading time.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19(2), 135-151.
• McCrickerd, J. (2016). Emotions, Learning, and the Brain: Exploring the Educational Implications of Affective Neuroscience, by Mary Helen Immordino-Yang. Teaching Philosophy, 39(4), 547-552.
• Nishizawa, H., Yoshioka, T. & Fukada, M. (2010). The impact of a 4-year extensive reading program. In JALT2009 conference Proceedings (pp. 632-640).
• Wilson, E. O. (2002). The power of story. American Educator, 26(1), 8-11.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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