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교육위원회, 파당적 행태 멈추고 진정한 공론의 장을 열어야

by gyobasaNPO | 2024-09-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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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육위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막이 살짝 들춰졌다. 사소한 ‘유출’ 소동이라 넘기기엔 심각하다. 교육 문제를 다루는 안목이 밭은 데다가 정치적 파당성까지 요동인 행태가 드러났다. 교육 발전의 장기적인 계획 과업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맡겨둘 수 없겠다. 과업 자체가 위원회의 분수에 넘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일은 원초적인 공론의 장을 열어 계획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그쳐야 마땅하다.

 

 

듣기에 민망한 국가교육위원회 ‘해프닝’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막이 살짝 들춰졌다. ‘해프닝’ 하나가 밖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의제들을 어떻게들 논의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다. 듣기에 민망하고, 교육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다.

 

국교위는 ‘중장기 국가교육 발전 계획’을 내년 3월에 발표할 일정으로 일하고 있다. 이 계획에 올릴 대안들을 지금 논의하고 있는 모양이다. 밖으로 흘러나온 이야기는 이 관련 전문위원회에서 일어났던 일의 한 토막이다. 한 ‘보수 성향’ 전문위원이 ‘짬짜미’를 시도했단다. 보도에 따르면, 계획안들을 검토할 회의가 열리기 1시간 30분 전에, 문제의 전문위원이 단체 채팅방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고 한다.

 

전문위원장과 사전 조율을 했다… 외부 평가를 도입해 내신 산출, 진로형 수능(수능 1,2로 이원화), 고등학교 학교장 전형 확대(고교평준화 폐지) … 등 우리 측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말씀했다. 적극 지지를 부탁드린다.

 

누설된 내용 가운데, 세상의 관심은 수능이나 내신이 어떻게 바뀔지에 쏠렸다. 수능을 Ⅰ과 Ⅱ로 ‘이원화’하고, 고등학교 내신은 ‘외부 평가제’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안들이다. ‘고등학교 평준화’ 체제에 균열을 내고, ‘사학의 자주성’도 확보하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간다는 사실도 구설에 올랐다.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옥신각신해 온 사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 쪽으로 기우는 데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보도된 대로라면, 수능 이원화나 내신 외부 평가제 그리고 고교평준화 정책 폐지 등과 같은 대안들은 궁색하고 어설프다. 현실성도 없지만, 밀어붙인다면 교육을 해칠 아이디어들이다. 내신 외부 평가제 같은 대안은, 예컨대, ‘내신’과 ‘외부 평가’가 모순이란 일차적인 사실마저도 무시하는(감지 못한) 무모함을 안고 있다. 어쨌거나, 흘러나온 일부 이야기만 가지고 대안들을 가타부타 논의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다만, 섣부른 구상들이 제대로 걸러지고 다듬어지도록, 앞으로 지켜보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점을 확인한다.

 

 

의제부터 정치적으로 범벅

 

국교위가 검토하고 있는 대안들, 특히 대입에 관련된 것들에 관심이 먼저 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번 해프닝을 두고 짚어야 할 점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계획(정책)을 모색하는 틀과 논의 양태에서부터, 국교위가 심각하게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하겠다. 국교위는 파당적이고 근시안적인 교육 정책 타성을 극복하고자 세워진 기구이다. 오랜 진통 끝에 겨우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번 비어져 나온 행태를 보면 제 몫을 하긴 틀린 듯하다. 사고의 틀이 매우 편협하고 근시적일 뿐만 아니라, 의제를 선택해 논의하는 과정도 매우 당파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국교위를 설립한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은 물론, 국교위 탓으로 우리 교육이 더욱 암담해지겠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국교위가 당파성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는 사실 구성되기 전부터 나왔었다. 위원회 자체가 ‘정치적 안배’로 구성되는 마당에, 의안들을 어떻게 중립적이며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 있었다. 정치적 ‘성분’을 기준으로 발탁된 위원들이 각자의 파벌 정체성에 충실하게 기능할 게 뻔하다고 예상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일로 들춰진 국교위 행태는 비관적인 짐작대로였다. 전문위원이 채팅방에 올렸다는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측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서로 갈려서(‘진보’네 ‘보수’네 하며) 다투고 있다. 선거판이나 국회에서 보게 되는 정치 난장답다. 국교위에서도 ‘여야’의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형국에서 ‘장기 발전’ 계획이 곧게 세워질 리 만무하다.

 

관심이 쏠린 대입제도 대안들만 보아도 짐작하고 남는다. 전국 획일의 잣대를 강화하려는(학생부 전형을 실속 없게 만드는) 경향이 보인다. 수능을 이원화하여(‘기초’<Ⅰ>와 ‘고급’<Ⅱ>의 수준을 나누어) 모든 대학 수준(모집 단위)에서 쓸만한 전형(변별) 자료가 되도록 만들면서, 내신 평가까지 전국 학력평가와 다름없게 만들어, 고등학교 차이가 공공연하게 전형에 반영되도록 길을 트겠다는 심산이 작용하는 듯하다. 의식해 고안한 것인지 의식 없이 우러나온 것인지는 알 길 없다. 어쨌거나 이런 생각의 흐름에는 ‘대입 공정성’ 이야기에 함축된 대립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정시냐 수시냐를 두고 다퉈온 전적(戰績)이 스며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평준화 사안에서는 정치색이 더욱 두드러진다. ‘고등학교 학교장 전형 확대’라는 표제로 평준화 해체의 ‘발톱’을 숨겼지만, 이 대안은 ‘자사고/특목고’를 일반화하려는 것이다. 자사고/특목고의 존폐가 꾸준히 논란되어 온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런 학교들의 명운(命運)을 안정시키려는 계산이 들어 있는 셈이다. 학교장 전형으로 생겨날 고등학교들은, 학생들을 골라 입학시키게 되는 이점을 바탕으로, 대입에서 이원화되는 수능은 물론이고 내신 외부 평가제로도 득을 얻게 될 것이다. ‘우수’ 학교로 쉽게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유추되는 대안의 구도에는 ‘일반 대 특목’ 또는 ‘평등 대 수월’이라는 해묵은 대립이 좀비처럼 붙어 있다.

 

 

다양한 의견 수렴하겠다는 해명의 상투성

 

정치적 대립에 매몰된 상태에서는 계획(정책)이 장기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적인 싸움은, 속성 자체가, 파벌로 나뉘어 각각의 ‘목전(目前) 셈법’으로 바로 챙길 이익을 노리는 다툼이다. 멀리 내다볼 안목이나 이유가 거기에 개입할 리 없고, 그럴 겨를도 없다. 이번에 흘러나온 국교위의 의제에서 교육성이나 참신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교육을 생각하면 절망적인데 국교위는 태연하다. 무슨 큰 문제이냐는 듯 천연덕스럽다. 앞으로 일을 더욱 열심히 하면 될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번에 조치한 게 있다면 사달을 낸 전문위원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해촉한 것이 전부였다. 국교위가 내놓은 해명은 틀에 박힌 것이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이 추릴 수 있다.

 

“…[유출된 방안들은] 확정된 바 없습니다. … 전문위원회의 논의 내용은 참고 자료로서, … [앞으로] 전문위원회뿐만 아니라 특별위원회 및 국민참여위원회 논의 내용과 관련 정책연구, 전문가 간담회 및 대국민 토론회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마련해 나갈 예정입니다. … 내용이 중도에 유출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 앞으로도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국교위 해명에서 정부의 전형적인 행태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치는 ‘형식’ 말이다. 결국 모두 만족할 만한 좋은 정책 대안을 얻게 될 테니 그저 믿고 기다리라는 식이다. 이번에도, 말하자면, 유출된 안들이 아직 어설프고 갈등의 소지를 지니고 있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동안 바람직하게 다듬어질 테고 이해 충돌도 말끔히 해소되리라 해명한 셈이다. 굳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이런 해명은 일단 곤경에서 벗어나고 보려는 형식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고 어이없어 헛웃음치고 말 일은 아니다.

 

국교위의 해명은, 상투적이고 가식적인 만큼, 사회의 피상적인 통념에 의지하고 있다. 정책 과정에서 정부가 궁지에 몰렸을 때마다 흔히 내놓는 변명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궁색해진 정책 결정자들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종종 말을 돌린다. 과반수가 동의하는 대안으로 결정을 보면 곧 바람직한 방안을 얻게 되는 것이잖으냐는 식이다.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만큼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강변이기도 하다.

 

국민 의견수렴은 거치기만 하면 언제나 ‘정답’을 주는 절차가 아니다. 의견이 모이는 방향은 의견을 표시할 선택지들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달리게 된다. 대책에 대한 이견 조정은 결국 복수 대안을 열거하고 찬성하는 선택지를 고르라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선다형 문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견 표시가 선택지의 구획을 벗어날 수 없다. 요컨대 의견수렴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견을 듣는 과정이 되지 못한다. 의견수렴의 결과는 어떤 선택지로 ‘조사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국교위는 이미 모종의 계획안들을 논의하며 의견수렴의 구도를 그려가고 있다. 안의 내용이 상세히 알려지지도 않았고 아직 결정되지도 않았지만, 결국 지금 논의하고 있는(이번에 유출된 것들을 포함한) 대안들을 다듬어 선택지로 내놓고 국민의 의견을 물을 것이다.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내년 3월에 발표될 최종 국가교육 발전 계획은 이번 누설되어 논란을 빚었던 대안(계획)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의견수렴을 위해 내놓을 선택지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국교위의 생각 틀이나 논의 방식에 변화가 없을 텐데 그 질에 변화가 생길 리 없다. 국교위는 여전히 파당 짓고 갈려서 목전의 계산으로 다투며 타협해 선택지를 마련할 것이다. 그런 선택지를 두고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수렴’ 결과는 멀리 보지 못한 것이고 설된 것이라는 원천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의견수렴의 구태에 이미 실패의 그림자 드리워져

 

의견수렴이라는 기약으로 당장 어수선한 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정책 과정의 끝은 실패일 게 뻔하다. 의견수렴의 구도가 진정(眞正)하지 못하면 의견수렴으로 정책이 나아질 수 없다. 거듭 말하건대, 의견을 묻기 위한 선택지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 그것은 편견이나 통념 또는 여론 영합적인 의견으로 몰아가는 데 불과한 과정이 된다. 이런 사례를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대입제도에 관련된 것으로 최근 두 경우만 보자.

 

먼저, 2018년에 이루어졌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경우이다. ‘대입 공정성 강화’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결국 공론화를 통한 ‘숙의’는 정시(수능)냐 수시(학생부종합전형)냐 결판 짓는 여론 싸움으로 귀착되었었다. 당시 교육부는 공정성의 관건이 ‘선발 방법의 균형’에 있다고 판단하여 ‘수시 대 정시’의 비중 문제를 숙의에 부치도록 결정했다. 순전히 여론에 밀린 결정이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이(수시가) ‘특권층 대물림 수단’이 되었다는 비난이 들끓는 와중에 빚어진 여론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교육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대입 공정성’이란 말을 거듭 되뇌었지만, 근본적으로 그 공정성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 깊이 고심해 보지도 않았다. 교육부에 그럴 예지나 생각(공론)의 틀이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교육부는 의견수렴(‘공론화’)이란 절차를 방패 삼아 여론의 화살을 막는 데 급급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좋은 방안을 내놓겠다는 진부한 수법을 ‘관행대로’ 동원했다.

 

의견수렴 결과로 내놓은 방안은 ‘주요 대학’ 정시모집 비중을 4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이 결과는 지금도 유효한 상태인데, 과연 대입제도를 공정하게 만들었는가? 그렇다고 우길지 모르지만, 교육부는(대통령실도 가담해서) 여전히 대입의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특히, 요즘은 수능으로 관심을 돌려 ‘공정 수능’을 논란하며 씨름하고 있다. 이런 논법과 정책으로 공정성을 확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에 관련해서, 작년 말에 이루어졌던 ‘국민참여위원회 의견수렴’은 또 어떤가? 이때 수렴에 올린 주요 의제는 ‘수능 통합과목 체계’, ‘내신 등급 개편’, ‘심화 수학 선택 과목 도입’ 등이었다. 교육부가 요청하고 현재의 국교위가 의견수렴 과정을 주도했다. 구태에서 벗어난 점은 역시 볼 수 없었다. ‘다양하게’ 구성된 국민참여위원회가 세 차례 토의를 거치며 의제를 좁히고 깊이 있게 논의했다지만, 결국 그 의제들은 당시 ‘문•이과 유불리’ 이슈에서 빚어진 선택 과목 문제나 고교학점제에서 비롯된 내신 평가 논란에 고착된 것이었다.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한 상태로 의견수렴 ‘선택지’를 만드는 근시성이나 옹색함이 여전했다. 그렇게 ‘수렴된’ 방안의 실패를 우리는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내년부터 2028학년도 대입제도가 효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후과(後果)가 드러날 터이다.

 

의견수렴은 으레 목전(目前)에 고정된 시야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교육부건 국교위건, 피상적 통념이나 즉흥적 여론에 매이지 않는 대안을 마련할 안목이나 토대를 갖추고 있질 못하기 때문이다. ‘조삼모사’나 ‘조령모개’라 비아냥거려졌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정부(‘공무원’)는 어떤 기조(‘영혼’)를 유지하며 안목을 세련시킬 수도 없었고, 실패를 통해 성공적인 대안을 모색해 올 수도 없었다. 정책의 과정은 늘 문제(사건)가 터져서 모면책을 찾는 데 정신없었던 형국에서 일어났다. 의견수렴은 말하자면 그런 모면의 방편으로 늘 남용되었다. 이번에 본 일련의 국교위 행태는 바로 그 여전한 모습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할 일은 공론의 장 마련해 돌보는 것

 

국교위는 장기 국가교육 발전 계획을 세울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번 해프닝이 한 전문위원의 ‘짬짜미 시도’라는 정도로 취급되고 지나갔지만, 그 단편적인 내막만으로도 국교위의 한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옹졸한 졸보기로 패를 갈라 다투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게 번연히 보였다. 이런 형국은 국교위 안의 개인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조직이자 기구로서 문제이다. 국교위가 장기 발전 계획을 좌우하도록 놓아두어선 안 될 일이다. 이대로 갈 때 세워질 계획은 교육을 발전시키기보다 퇴보시킬 게 뻔하다.

 

국교위의 한계는 국교위 밖 자원을 동원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지금 지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교육 연구 기관들도 달려들어 보완해 줄 깜냥이 되지 못한다. 그런 기관들마저도 필요한 혜안을 키워오지 못했다. 정책 의제나 담론을 정부가 늘 지배하거나 독점해 왔기 때문에, 연구 기관은 물론 일반 연구자들마저 그 ‘패러다임’에 예속되어, 안목과 문제의식을 독자적으로 정련시킬 수 없었다.

 

요컨대 우리 교육 문제는 난맥상을 이루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그 난맥의 지형을 살필 기본적인 지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툭하면 건드리는 입시제도와 사교육 문제에 대해서 보더라도, 100년 넘게 그것과 씨름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아직도 이 문제를 풀어갈 관념적 실마리나 사회적 합의마저 갖추지 못했다.

 

어떤 교육 문제든, 그 해결은 교육의 정의(定義)에 합의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터이다. 교육의 의미에 대해 이견을 지닌 채로는 교육의 발전을 함께 이야기할 수 없다. 교육을 ‘인격 함양’이라 본다면, ‘수능 점수가 곧 교육 성과’라 여기는 오늘날 지배적인 통념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다. 그러나 교육을 ‘계층 사다리 오르기’라고 본다면, 요즘 통념은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교위가 만지작거리고 있대서 이번에 구설에 오른 ‘수능 이원화’나 ‘내신 외부 평가제’ 같은 대안은 교육을 계층 사다리 오르기라 정의(전제)할 때라야 용납되는 것들이다. 교육 정책의 긴 실패 역사를 이어가며, 아직도 우리는 정치 이념을 두고 다투듯 교육 정의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 쟁투가 정리되지 못한다면, 국가교육의 계획이나 정책은 늘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교위는 계속 우왕좌왕할 게 뻔한 미래를 엮고 있다. 당장 수확도 없을 테고 앞으로도 해롭기만 할 이런 행태는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국교위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계획(정책)을 확정하는 게 아니다. 국교위가 그나마 존재 이유를 수긍시키려면, ‘계획 작업’을 바로 멈추고, 범국민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도모해야 할 교육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 원초적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해 이야기할 멍석을 깔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공론이 순조롭게 펼쳐지도록 돌보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임기 안에 마치지 못하더라도, 이 과업은 지속되어야 할 터이다. 지금 형편에서 국교위가 할 일은 달리 없다.

 

공론의 장을 열면 국민 만장일치의 교육 정의(定義)를 얻게 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장을 열면 이번엔 ‘공론화’ 실패를 거듭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는 것도 아니다. 낙관보다 비관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국교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면, 달리 대안이 없잖으냐고 제안하는 것이다. ‘교육 문제’는 ‘교육’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것으로, 우리 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부터 거치자는 것이다. 진부한 제안이다. 그러나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실마리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교위의 지금 행태는, 실마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파당마다 서로 실마리를 찾았다고 외치며 싸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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