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4-08-14 13:28
| “유아교사가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더불어 현대철학을 배우고 철학한다는 것은 현존재인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와 함께 어린이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노력임을 강조하며 원고를 마무리한다.” (본문 발췌) |
현대철학(contemporary philosophy)이란 무엇인가?
개념사적으로 볼 때 ‘현대’ 혹은 ‘현대적’이라는 말은 시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이라는 용어는 ‘이전 시대와 다른’, ‘발전된’, ‘진보된’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로 사용된다(이하준 외, 2023). 지바 마사야(2023)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를 중심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미셀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등을 중심으로 한 후기구조주의 사조를 현대철학으로 분류하였다. 현대철학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하며 연대와 해방을 추구했던 프랑스 68운동(5월 혁명) 이후의 프랑스 철학을 중심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에서 ‘현대’라는 용어는 ‘이전 시대와 다른 시대정신과 내용의 고유성이 반영된’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유아교육 분야에서 소개되고 있는 대안 담론(Moss, 2021) 역시도 현대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전선에 있는 인본주의에 대한 실천적 성찰인 포스트휴머니즘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내용의 고유성에 따라 스스로 역할을 변화시켜왔다.

(출처: 이연선(2024). 철학하며, 나의 교육현장 변화시키기. 2024 현장교원 소모임 1차 강의 자료(7.18). 한국영유아교육과정학회.)
위의 자료는 철학사의 흐름에서 본 철학의 역할 및 정체성 변화에 대해 일부를 기술한 것이다.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일성과 본질(진리)을 추구하던 고전철학과 근대철학을 넘어 현대철학은 재현과 전수(고정된 주체와 고정된 지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차이와 생성(유목적 주체와 발현적 지식)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내용의 고유성을 확대해가고 있다. 이를테면, 이데아를 절대적 진리로 보고 실체를 추구하던 고전철학에서, 신으로 향하던 중세시대를 거쳐, 데카르트 이후 인간 의식에 집중하여, 개체에서 주체로, 타자에서 자아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감성에서 이성으로 향하던 근대철학의 역할과 정체성을 비판하며 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니체와 베르그송 이후 생명과 변화를 중심으로 철학을 전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철학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의 전환 혹은 확장(교육학은 인본주의를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전철학에서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이성이 지배하는 인간 주체 중심 사회를 경험한 후 현대철학이 던지는 존재의 물음은 다르다. 고전철학이 형이상학을 토대로 하는 존재(죽음)에 대한 물음이었다면, 이성에서 감성으로, 자아에서 타자로, 정신에서 물질로 향하는 현대철학은 존재자에서 존재로, 즉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향하며, 그 출발점에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 물음과 어린이 세계
하이데거(Heidegger, 1989-1976)의 존재론은 어린이 세계를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과 가장 가까운 철학이다. 생기가 넘치는 살아있는 욕망들로 가득 찬 영유아 교육기관의 아이들의 생활세계를 눈앞에 형상화시켜 놓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존재자가 아닌 존재에 대해 묻는다. 하이데거는 서구철학에서의 존재론이 존재 자체는 내버려 둔 채 존재자의 문제에만 매달려 왔음을 비판하며, 우리가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로 존재의 고유한 실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어린이들은 다른 존재자들과 더불어 거기에 있음으로 실존을 드러내는데, 현존재(Dasein)란 Da(그곳에)+ Sein(있음, 존재)으로 세계 내에 수많은 존재자들과 관계 맺으며 그곳에 어우려져 있는 세계가 바로 현존재인 어린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 어린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건은 자신의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 현상으로, 자신의 고유성이 드러나는 사건이다(이연선, 2024d). 이를 반영하여, 예컨대, 유아 다문화교육은 개별 존재자의 다름에서 출발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존중하는 교육을 넘어 일상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혹은 실존적 존재 현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
(출처:이연선(2024c). 다문화 담당 보육교직원 교육 강의 자료(8.7). 한국보육진흥원.)
또한 전통문화를 맹목적으로 고수하고 소개하며 이를 놀이로 유형화하여 가르치거나 경험하게 하는 피상적 문화 이해 교육에서 벗어나 어린이 삶을 통칭하는 포괄적 용어인 놀이에서 드러나는 문화성에 귀 기울임으로써 어린이가 자신과 타자의 문화적 현상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기꺼이 참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어린이를 교육해야 할 대상(존재자)으로 구분하고, 교육내용과 목표를 세분화시켜 미리 정해 놓고, 교사가 준비하고 활동을 이끄는 예언적 페다고지 패러다임 내의 인성교육이나 다문화교육과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접근에서 오는 차이로, 유아교육학 전반이 학습자를 대상화하여 분석하는 심리학적 이해라는 인식론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존재론으로의 접근 자체가 새롭고 어려운 과제가 되어 버렸다.
관찰과 분석을 포함하는 이성을 도구로 하여 어린이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린이라는 존재자를 인식하려는 것으로,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존재자는 인식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존재는 그 자체로 대상화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를 알 수 없다. 결국 인간 주체 의식의 주관성의 작용이 강조되기 때문에 관념론적 해석으로 이어져 어린이 세계는 연구자나 교사의 인식론에 의해 축소된다. 존재는 세계이자 소우주로 교사가 지각하거나 귀 기울이기 전에 이미 그 곳에 있다. 후설의 현상학과 달리 의식 현상보다 존재 현상이 앞선다고 보았던 하이데거는 의식 현상을 인간의 수많은 실존 현상들 중의 하나라고 보며 드러남이 선행한다고 보았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바라보는 어린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동국대 불교철학자 김동욱 교수는 한 강의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누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해 설명하였다. 첫째는 존재의 드러남에 경이로움과 놀라움으로 이해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존재를 원래 있음으로 여기며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는 유아교실에서 아이들이 블록을 와락 쏟는 순간, 눈빛을 반짝이며 필요한 재료를 찾아나서는 순간, 야구장에 다녀온 후 예상치 못했던 전광판을 심사숙고해서 그리기 시작하는 순간, 선생님께 큰 전지를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순간 등 무엇을 드러낼지,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모르는 A에서 B로의 잠재성을 품고 있는 되기(becoming)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기대감에 흥분하고 설레했다. 블록은 경주장과 자동차가 되어 흥분되는 시합을 생산했고, 반짝이는 눈빛과 망설임 이후 어김없이 진지한 몰입의 시간이 따라왔고, 전광판 4개를 생각해 내고 그리는 데 20분이 더 소요되어 동화를 듣지 못했지만 보근이는 소름 돋는 그림을 완성했다.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그때도 필자에게서 나오는 발화는 “보근아! 너! 우와, 너!”였을 것이다. 스스로의 만족감과 교사의 흥분된 목소리 외에 다른 인지적 상호작용이나 피드백은 순간의 즉시성을 방해했을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의 세계는 사례가 아닌 경이로운 사건이자 강도 높은 만남이다.
동질성과 본질을 추구하는 고전철학의 인식론이 작동할 경우, 존재자를 가정하고 개별 존재자를 분석하는 방향을 통해 존재에 다가가려 하기 때문에, “놀이”, “개별 어린이”, 혹은 “배움”을 중심으로 특성을 분석하고 분류한다. 놀이를 통한 어린이의 배움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파악하고, 놀이를 기록하며 특성을 ‘유의미한’, ‘적극적 참여’, ‘반복적’,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 ‘즐거운’ 등으로 규정하기도 한다(Murris, 2023). 혹은 절대적인 진리가 되는 참조 체계의 부재로 교사는 어떤 것이 놀이 속 배움인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불안과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볼 때 존재는 어떤 개체의 사태가 아니라 개체는 얽힌 내부-관계하기의 일부로 출현한다. 어린이 세계를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다시 읽을 때, 현존재인 어린이에게서 시작하는 존재 현상과 사건화된 배움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계에 이미 내던져 있지만(피투;被投), 또한 세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기투;企投) 존재로 세계에 열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계 맺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교사는 교실에서 의식적으로 역할을 찾기 전에 이미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사 역시 세계-내-존재로서 이미 실존하며, 존재는 스스로 길을 트고, 어린이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 보이며, 유목적 주체로서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유아교사가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더불어 현대철학을 배우고 철학한다는 것은 현존재인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와 함께 어린이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노력임을 강조하며 원고를 마무리한다.
| ∎ 철학함은 어린이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철학함이란 교육현장에서 만나는 어린이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이며 그들의 경험 세계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교사는 이미 온전한 존재인 어린이와 그 시기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으로 교육현장에서 어린이에 대한 철학을 형성시켜 간다. 어린이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와 만나고 배워나가기 때문에 획일화된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발달연령, 성별, 문화, 사회 규칙, 지배담론 등 견고한 선이 어린이에게 많이 적용되면 될수록 오히려 어린이의 세계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이연선, 2024a). 아동기는 어른으로 향해 가는 중간단계가 아니라 성인 또한 여전히 어린이이며 성인 또한 어린이로부터 세계와 만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배운다(Murris, 2021). 성인의 시선에서 구성해 놓은 대상화된 어린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에 귀 기울임으로써 어린이에게 다가갈 수 있다.
(출처: 경기도 교육청(2024). 유아 2024 -교사, 철학함으로교육과정을 넘나들다. 유치원 자율장학지원자료발간 예정.)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경기도 교육청 (2024). 유아 2024 -교사, 철학함으로교육과정을 넘나들다. 유치원 자율장학지원자료발간 예정
• 김종욱 (2020).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21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존재의 두 방식 (youtube.com)
• 이연선 (2024a).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실재하는 어린이 만나기 |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erick.org). (5.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 이연선 (2024b). 철학하며, 나의 교육현장 변화시키기. 2024 현장교원 소모임 1차 강의 자료(7.18). 한국영유아교육과정학회.
• 이연선 (2024c). 다문화 담당 보육교직원 교육 강의 자료(8.7). 한국보육진흥원.
• 이연선 (2024d). 철학하며, 나의 교육현장 변화시키기. 2024 현장교원 소모임 2차 강의 자료(8.8). 한국영유아교육과정학회.
• 이하준 외 (2023). 현대철학 매뉴얼. 서울: 그린비
• 지바마사야 (2023). 현대사상입문. 김상운 역. 서울: arte (원저 2022년)
• Moss, P. (2021). 유아교육과 대안적 내러티브[Alternative narratives in early childhood: An introduction for students and practitoners]. (이연선, 손유진, 신은미, 이경화, 이진희, 정혜영 역). 살림터. (원저 2018년 출판)
• Murris, K. (2021). 포스트휴먼 어린이: 그림책과 철학하기를 통한 교육적 변화 [The posthuman child: Educational transformation through philosophy with picturebooks]. (이연선, 변윤희, 손유진, 신은미, 이경화, 한선화 역). 살림터. (원저 2016년).
• Murris, K. (2023). ‘This is Not a Photograph of Zuko’: how agential realism disrupts child-centred notions of agency in digital play research.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3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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