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톺아보기① – ‘사교육’은 어떤 교육인가?

by gyobasaNPO | 2024-03-20 15:15

사교육 논란은 불티가 생기기만 하면 늘 활활 타오르고, 사교육을 넘어 학교 교육을 통째로 흔든다. 그러나 대책은 물론 논란부터 답보(踏步)이고, 문제 해결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사교육이란 문제를 다루는 우리 이야기 자체가 잘못됐음에 틀림없다. 새롭게 이야기해야 한다. 물꼬를 트기 위해 이야기 몇 토막을 내놓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은 고질적이라 여겨지는 데다 교육 정책의 골간을 때리는 문제이다. 대책은 거듭 강구되며 교육의 지형 전체를 흔든다. 여파는 어마어마한데, 정작 겨냥한 문제는 흔들리지도 않는다. 효과라고는 부작용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제를 잘못 짚었다는 징후이다. 언젠가부터 사교육 이야기는 잘못 돌아가기 시작했고 정책 역시 길을 잘못 들었지만, 헛된 쳇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 글에서 사교육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정리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사교육을 둘러싼 논란과 정책을 짚어가며 전철을 성찰하고자 한다.

 

 

사교육 이야기를 시작하며

 

한 주 전 3월 14일, 정부는 연례행사이듯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또한 늘 그래왔듯 언론은 “역대 최고치 경신”이라는 합창 보도를 쏟아냈다. “사교육비 27조 역대 최고”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었다.

 

교육부는 물론 그런 보도를 피해 보려고 나름 애썼다. 보도자료에 “주요 특징”이라는 ‘별첨’을 붙여, 긍정적인 인상의 통계치들을 가공해 나열했다. 사교육비 지출 절대액이 늘어난 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증가세 현격히 둔화”라는 표제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가공이나 주장에는 불순한 데가 있다. 사교육비나 사교육 참여의 증가율은 지출 액수나 참여율이 ‘천장’에 다가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비용 지출이나 사교육 참여가 상한(上限)에 가까이 갈수록 더 증가할 여지는 좁아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증가세는(증가 비율은) 둔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교육부가 내세우는 ‘증가세 둔화’는 반색할 변화가 아닐지 모른다. 사교육비 지출이나 사교육 참여가 이제는 극한에 이르러서, 더 이상 늘 여지도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사태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살펴보지도 않으면서, 교육부 별첨 자료는 마치 정책이 효과를 내서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반면, 언론은 교육부가 신경 써서 작업한 자료에는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정부나 언론이 사교육비 이야기에서 서로 엇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들 자체가 피상적이고 상투적이란 점에서는 도긴개긴이다. 사교육비 조사 자체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는지, 사교육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수십 년 ‘대책’을 굴렸는데도 왜 문제가 심해지기만 하는지, 엄밀하게 그리고 깊이 짚어볼 염도 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그저 대입 타령만 하고 있다.

 

한 신문의 사설에서처럼, 과연 “사교육은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이라 볼 만하다. 그런 사회악을 해결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업부터 제대로 마쳐야 할 터이다. 정부가 통계치를 발표하면 그 숫자가 ‘악’(사교육)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듯이 그 크기나 변화에 대해서만 한바탕 떠들고 넘어가는 의식(儀式)만으로는 해결의 근처도 갈 수 없다.

 

사교육에 대한 우리의 담론은 매우 부박할 뿐만 아니라 크게 왜곡되어 있다. 교육(또는 사교육)에서 무엇을 왜 문제 삼아야 하는지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실태’ 조사부터 해놓고 왈가왈부하는 꼴이다. 정부의 조사(통계)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또 뒤틀려 있으므로, 그런 조사 결과를 놓고 언론이나 학계가 벌이는 논란은 이미 문제의 초점을 벗어난 것일 수밖에 없다. 의미(가치) 없는 이야기를 쳇바퀴 돌리듯 되풀이하고 있는 꼴이다. ‘대입제도의 실패’와 ‘공교육의 무능’을 외치는, 이제는 식상하고도 남을 성토 외에 달리 들리는 얘기가 없다. 대입제도나 공교육은 과연 사교육비만 줄일 수 있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해지는 것인가?

 

심각한 문제일수록 그것을 다루는 이야기는 신중하고 심오하며 엄밀해져야 할 터이다. 이런 필요를 새삼 느끼면서, 사교육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사교육을 어떻게 이야기해 왔고, 그런 이야기로 사교육 문제를 전혀 풀지 못했다면, 어떤 이야기가 새롭게 필요할지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리의 상투적인 이야기 그리고 상식이라 여기던 생각들을 비판적으로 톺아야 하는 만큼 제법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고,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글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며 나누어 연재해 보려고 한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사교육’

 

사교육이란 어떤 교육인가? 평소 교육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모두 사교육이 어떤 행위인지 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상식은 매우 막연하고 사람마다 꽤 다르기 십상이다. ‘사교육’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쓰고 있느냐고 질문하면, 누구나 답하는 데 곤혹스러워할 듯하고, 어느 두 사람도 같은 답을 내놓지 않을 듯하다.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더 중시해서 사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교육부는 과연 사교육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교육부가 가진 대답은 아마도 어디에서도 명료하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는 막연히 해오던 이야기와 해오던 정책들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어지는’ 역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도 확연히는 의식하고 있지 못하다. 그때그때 여론이나 선거 캠페인이 미는 대로 떠밀려 갈 뿐이다.

 

그나마 ‘사교육비 조사’는, 꾸준히 그리고 제법 일관되게 해를 거듭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교육비’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조사 항목을 들여다본다면, 사교육비에 대한 정부의 정의를 ‘조작적인’ 수준에서나마 파악할 수 있다.

 

사교육비 조사에서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사교육비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 이외에 사적인 수요에 의해서 학교 밖에서 받는 보충 교육을 위해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 이 공식적인 정의는 사교육에 대한 정부의 해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정부가 생각하는 사교육의 뜻을 그것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사하는 정부 행위에 비추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확인하게 되는 정부의 ‘사교육’ 정의를 굳이 적는다면 이럴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 이외에 사적인 수요에 의해서 학교 밖에서 받는 보충 교육.”

 

기계적으로 분석한다면, 정부가 말하는(사교육비 조사에 함축된) 사교육에는 두 가지 조건이 들어있다. 즉, 사교육이란, ① 학교 정규 수업 외에 더 받아야 할 ‘사적인 수요’가 생겨서 받게 되는 것이고, ② ‘학교 밖’에서 받는 것이다. 그러나 ①조건(“사적인 수요에 의해”)은 ②조건(“학교 밖에서 받는”)에 포섭되어 있다. ‘사적인 수요’에 따라 ‘학교 안에서 받는 보충 교육’이 없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교육’이 아니다. 사적인 수요라는 조건은 학교 밖 보충 교육에만 적용되도록 정의되어 있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사교육은 “학교 밖에서 받는 보충 교육”이라 간추려도 무방하다. 바꾸어 말하면, 정규 수업 외에 교육을 더 받으려는 수요가 생기더라도, ‘사적인 수요’에 따른 공급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사교육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과외’ 문제로 시작된 사교육 이야기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얹어 ‘학교 밖’에서 더 ‘교육받는’ 현상은 어제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런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져 온 지는 수백 년도 넘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당연히, 사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이나 정서는 작지 않게 변화해 왔다. 근대적인 학교 교육이 운행됐던 지난 100년여의 역사만 되돌아보더라도 그 변화를 뚜렷하게 그려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그런 교육이 문제라고 여겼고 또 그런 현상을 해소하려고 애써왔는데,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나 그것의 문제성을 지적하는 시각 등은 꾸준히 달라져 왔다.

 

‘사교육’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으며, 현재 정부가 ‘초중고사교육비조사’에서 채택한 조작적인 정의가 생겨난 것은 더욱 최근의 일이다.1 말하자면, ‘정규 학교 수업 외에 학생들이 교육을 더 받는 현상’에 대하여, 그 범위가 어떻게 구획되며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지적하는 통념이나 문제 해결의 정책 경향은, 긴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바뀌어 왔다.

 

지금은 ‘사교육’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 문제 현상은 오랫동안 ‘과외’라는 말로 논란되었다. 때로는 ‘입학 준비 학습(또는 교육)’과 같은 말로도 쓰였다. 이런 말들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일제 식민지기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매일신보는 “경남 각 보교(普校) 과외지도 단축 부군(府郡)에 통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930년에 싣고 있다. 보통학교(초등학교)에 ‘과외지도’를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내용이다. 지시 속에는 “규정 외의 복습을 매일 1시간을 초과치 안케 할 것” 같은 항목이 들어있다.2 정규 수업이 끝난 후에 꽤 긴 시간 ‘복습’(과외지도)이 일어나고 있어서 단속하는 것이었다. 기사는 또 그런 과외가 만연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교육 당국도 과외를 아예 금지할 엄두를 못 내고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는 데 그치는 소극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과외가 문제는 되지만 그것을 아예 금지하는 대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체념하는 속내가 보인다.

 

학교 밖에 과외 선생님이 거의 있을 수 없었던, 그래서 과외라는 서비스의 시장이 생겨날 수 없었던 근대교육 초기에는(일제 식민지기부터) 과외가 학교 밖 문제가 아니라 ‘학교 안’ 문제였다. ‘제자를 아끼는’ 교사들이,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학부모의 지극한 요청에 못 이겨서, 과외로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로 학교 안에서 방과 후에 가르쳤고,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 사교육(‘과외’) 문제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인 것도 아니었고, 가계 부담(말하자면, 사교육비)이 지나쳐서 문제인 것도 아니었다.3 과외를 정책상 문제 삼은 초점은 기본적으로 그런 수업의 비교육적 성질과 부작용에 있었다. 1938년의 한 기사는 “아동에게 오직 상급학교 입학만을 목표로 십이삼 세 아동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과중한 과외를 부담시켜 도리혀 교육의 본지에 억으러지는 일”이 많다는 당국의 지적을 전하고 있다. 광복 후(식민지기를 벗어난) 1949년의 기사에서도 과외 문제를 이야기하는 기조는 광복 전과 다르지 않았다. 과외가 “보건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적지 않은 폐해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금지를 하달하고 있다.

 

요컨대, 과외는 ‘시험 준비 위주’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오랜 시간 공부에 붙잡아 두어 학생들의 육체와 정신 건강도 해칠 터이므로 문제라고 보았다. 수업이 단편적이고 시험 과목에 치우쳐 교육과정이 온전히 다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으며,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육체적 성장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 압박이나 놀이(운동) 부족 등이 정상적인 발육을 막는다고도 우려했다.

 

 

‘중학교 무시험 입학’과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서 다뤘던 과외 문제

 

과외(사교육)를 교육의 측면에서 문제 삼았던(전인교육의 방기나 단편적 암기 위주 교육을 질타했던) 담론과 정책 경향은 1960년대까지도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밖의 과외 시장은 빠르게 커지며 활기를 띠어 갔다. 1960년대 말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가 도입되고 1970년대 전반부터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까지 시행되면서, 취학률이 급격히 높아졌고 경쟁의 판도 역시 넓게 일반화되었다. 학교 다니는 학생이 많아지고 경쟁자 수가 증가하면서 과외 수요도 팽창했다.

 

공급의 측면에서도 자원과 역량이 넉넉해지기 시작했다. 중등 수준만큼은 아니었지만 고등 교육도 팽창하여 대학생들이 많아졌다.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과외 시장에 들어섰다. 학습 참고서 출판도 기회를 잡았다. ‘히트’하는 참고서들의 판매 부수는 기록적이었고, 그런 참고서를 기반으로 ‘사설 학관’들도 생겨나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이가 거세지게 되자, 과외 이야기는 ‘과열’을 거론하는 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해열제’라도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1960년대 말의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와 1970년대 초중반의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도입은 우리나라 학교 정책에서 분수령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들 제도는 무엇보다도 ‘교육 경쟁 심화’(‘병목현상’)에 대한 대책이었다. 곧, 과외 문제에 대한 대책이었던 셈이다. 당시 제도를 도입하는 취지문에서도 과외 문제를 핵심으로 거론하였다.

 

1968년의 정책 발표에 따르면,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는 다섯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동의 정상적 발달 촉진, 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과열된 과외 공부의 해소, 극단적인 학교차 해소, 가정의 교육비 부담 감소와 일류 중학교 관념 불식”을 도모했다. 이런 취지(즉, 과외에 대한 문제 인식)는 1973년 발표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의 경우에서도 사실상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입시제도를 바꾸어야 할 이유로, 당시 발표문은 학생들의 ‘과중한 학습 부담’, ‘정서적 불안감과 이기적 행동’,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교육 외적 교육비 부담’,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 풍조’, ‘학관의 발호’ 등을 나열하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며 이루어졌던 교육개혁에서는, 진학제도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진학에 연루된 과외 문제를 보는 시각에서도 새로운 ‘턴’이 이루어졌다. 위에서 보듯, 교육부(‘문교부’)는 과외에 대한 ‘교육적인’ 문제의식과 함께 ‘비용 부담’에 대한 현실 고려를 드러내고 있다. 과외가 교육상 폐해를 낳고 있어서 문제라는 당시까지의 의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문제 삼고 ‘교육의 정상화’ 필요를 우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뒷부분에서는 ‘교육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과외가 과열되면서 초래하는 ‘비용’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따라붙었다.

 

 

1980년 ‘7.30 교육개혁’으로 근절하려 했던 과외

 

과외를 이야기하는 기조에 비용 부담에 대한 고려가 가미되면서, 정책 논의는 유화적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과외가 억누른다고 눌러질 현상이 아니라는 ‘현실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보충수업을 금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양성화’해서 비용 부담을 완화해 가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1970년대 과외 이야기에서는 그런 현실론이 지배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지형은 1980년 ‘7.30 교육개혁’으로 급격하게 뒤집혔다. 잘 알려져 있듯이, 7.30 조치는 10·26사태 후 새로운 군부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과단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일련의 급진적 사회정책들을 주도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교육 분야에서 ‘과열 과외’에 주목했다. 7.30 조치의 제목 자체가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이었다. 이때 ‘교육 정상화’라 함은 “입시 준비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탈피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을 추구한다는 것이었고, ‘과열 과외 해소’라 함은 “어떤 형태의 과외 공부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비상’ 조치는 과외에 대한 정책 기조를 단숨에 1960년대 이전 ‘금지론’으로 되돌려 놓았다. 과외는 ‘비정상’의 교육 행태이며, 학교 안은 물론 밖에서도 뿌리를 내려선 안 되는 행태로 규정했다. ‘입시 준비 중심의 교육’에 대한 현실론의 유화책들을 단호하게 물리치면서, 학교에 대해서는 ‘인격 형성의 교육’을 회복하도록 촉구했다.

 

‘7.30 교육개혁’은, 막강하고 ‘무서웠던’ 군부 권력을 바탕으로라야 가능했을 만큼, 과격하고도 극단적이었다.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전제적’이었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화끈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어떤 평가가 합당한지 따질 여유는 없다. 당시 ‘개혁’에서 과외(사교육)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만 정리해 보자. 1980년 현재로, 우리 사회가(물론 정부에서도) 과외(사교육)를 내심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위에서 보듯, 요컨대, 당시에 우리는 과외를 학교 교육의 정상성을 해치는 현상으로 보았다.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과외는 그 사명 이행을 훼방하는 못된 행태이자 풍조였다. 학교 교육이나 학생들의 공부를 ‘입시 위주의 주입식’으로 흐르도록 하고, 학생들의 건강까지 해치면서 ‘이기적’으로 자라게 만드는, 비교육적 원흉이었다. ‘근절’해야 할 대상이었다.

 

 

‘과외’에서 ‘사교육’으로 용어가 바뀌고 이야기도 바뀌는데…

 

지금 우리는 과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 행태의 이름을 ‘사교육’이라고 바꾸었고, 무엇보다도(그것의 비교육적 성질 등에 대해서는 눈감고), 그것에 들어가는 비용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다시, 사교육비 조사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의에 따르면, ‘사교육비’란 ‘학교 외 보충 교육비’이며, “개인과외, 그룹과외, 학원 수강, 방문학습지, 인터넷 및 통신강좌 등의 수강료(교재비 포함)를 의미”한다. 이런 비용의 전국 수준 총액을 줄일 수만 있으면 교육 정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고, 정부도 언론도 입을 모으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이제 학교는 ‘학교 밖’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것은 정책적인 정의상(定義上) ‘문제가 되는’ ‘사교육’이 아니다. 말하자면 학교는 사교육을 사교육 아닌 것으로 바꾸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학교에서 ‘입시 준비 위주 수업’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시험이나 면접의 고득점 전략이나 대학 지원의 ‘눈치’ 전략까지 ‘컨설팅’한다. 이런 행태는, 앞에서 보았듯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학교 안에서는 물론 학교 밖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안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그것을 권장하며 지원까지 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입시 준비 중심의 교육은 이제 중핵(中核) 활동이다. 지난 4반세기 정도의 시간에 변질된 사교육 이야기는 학교 교육의 사명 자체까지 뒤집었다.

 

다음 호에 게재할 글로 이어가기 위해 2004년의 신문 기사 하나를 보자. 신문 기사로는 꽤 긴 것이지만 주요 골격만 추려 옮긴다.4

 

교육방송 활용의 선구자인 ○○학교가 일선 학교의 주목을 받고 있다. … ‘학력향상’과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학교이다. … 교육방송 프로그램[이] … 성공 신화의 비결이다. … 1,2학년은 국어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하고, 3학년은 수능 전과목을 방송하고 있다. …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문제의 30% 정도를 시청한 방송교재에서 출제, 학생들의 주목도를 높였다. … ○○○ 교감은 교육방송 수업을 도입하고 성공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그는] 학력향상 공로로 교육부문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학교는 이제 학원과 구분되지 않는다. 학교나 교사도 이렇게 된 현실을 이상히 여기지도 않는다. 시험 준비 위주로 가르쳐 학생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정부도 그런 학교와 교사를 상찬한다.

 

위 기사가 나온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사에 들어있는 학교 이야기는 오늘날 학교 모습과 다르지 않고, 그 이야기에 함축된 ‘교육관’ 역시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부의 정책 관념을 완강하게 장악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가 견지했던 교육관, 즉, 입시 위주 사교육(과외)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우리의 사교육 이야기에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학교에서 하면 안 된다고 여겨졌던 과외를 학교가 앞장서서 하게 되는 전도(顚倒)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결과를 두고 보면, 그동안 사교육 대책은 거듭 바뀌며 돌아갔고, 문제의 용어도 ‘과외’에서 ‘사교육’으로 바뀌며 새로운 정의로 갈아탔다.

 

다음 글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사교육 이야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정부의 사교육 정책이 학교 교육의 목표마저 뒤집어 버린 경위도 짚게 될 것이다.

 

각주

  1.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번 글에서 다루지는 못한다. 이야기가 길어질 터여서 그렇다.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하게 얘기하게 될 것이다.
  2. 이 글에서 옛 신문 기사는 가능한 한 원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여겨질 때만 오늘날의 단어나 어법으로 조금 바꾸었다.
  3. 물론, 비용 부담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정책 담론에서 비용 이야기는 뚜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4. 학교와 교사 이름은 지웠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2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