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4-03-20 12:09
| “한글을 배운다는 건 한글을 통한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일이다. 아이는 한글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공부란 게 이런 거구나.’하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이 옹골차고 재미나길 바란다.” (본문 발췌) |
발음 중심 vs. 의미 중심
“당신은 어떻게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사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보니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벽에 붙여 놓은 음절표를 보며 외웠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이름만 쓸 줄 알아서 학교에 가서 하나하나 배웠다는 사람, 일일 학습지를 풀며 익혔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보통은 그때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 세세하게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글 가르치는 역할을 맞닥뜨리는 순간 난감함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가 읽고 쓰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방법론의 양대 산맥은 ‘발음 중심 교수법’과 ‘의미 중심 교수법’이다. 두 가지 교수법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떠한 교육관, 인간관, 세계관을 담고 있다. 발음 중심 교수법은 행동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배우는 이보다는 가르치는 이가 우선이 되고, 체계적인 계획 하에 아이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행동주의’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자극과 반응의 연합’인데, 비슷한 맥락으로 글자 자극에 대해 정확한 소리 반응이 나오도록 연결하는 것, 낱자-소리 대응 관계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심이 된다. ‘낱자의 소릿값을 배우면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단어를 읽으면 문장을 읽고, 문장을 읽으면 글을 이해한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향식 접근법이라고도 불린다.
발음 중심 교수법의 장점은 전이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자음가 19개, 모음가 21개를 배우고 조합 원리를 터득하면 한글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발음기호를 먼저 익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낱글자와 소릿값을 반복해서 익히는 과정은 좀 고되다. 특히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은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더 많이 반복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글자는 읽게 되지만 ‘공부는 지루하고 힘든 것’이라는 인상을 얻게 된다. 또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것은 분절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맥락이 형성되진 않는다는 제한점을 갖는다. 게슈탈트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니까.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현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것이 의미 중심 교수법이다.
의미 중심 교수법(총체적 접근법, 하향식 접근법)은 진보주의1, 구성주의2와 같은 철학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아이들이 다양한 언어 활동, 책을 매개로 한 활동 등을 통해서 읽기‧쓰기를 배울 수 있다고 보았다. 말하기‧듣기를 배울 때 아이들이 각 음소를 따로 배우지 않듯이 읽기‧쓰기의 과정도 분절되지 않은 통합적인 과정,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총체적’이란 ‘의미를 담은 덩어리를 배운다’, ‘교과 구분 없이 전체적인 넘나듦의 과정에서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교수법으로 배운 아이들의 읽기‧쓰기 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당시 총체적 접근법은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요즘엔 두 가지 방법의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보완해서 아이에 맞게 적절하게 지도해야 한다는 균형적 언어교수법이 대세다.
그렇다면 읽고 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어떤 교수법이 유효할까. 난독증이 있는 아이에게는 발음 중심 교수법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그 외의 아이들-읽기 부진 요인이 경계선 지능, 가정환경에 의한 결핍 등인 아이들-에 대해서는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0년 사이 초기 문해력에 대해 현장 연구를 해 오신 분들의 교육 방법들이 확산되고 있는데, 발음 중심 교수법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 의미 중심 교수법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분들도 계신다.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교수법 모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첫째, 이 아이들이 한글을 익히는 과정은 두루뭉술하게 진행되거나 모호한 가정에 의거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과정마다 아이가 지금 실제 읽고 쓸 수 있는 글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를 토대로 배움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은 글자를 읽게 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단어와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 언어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이가 해독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배움의 과정에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이의 배워나가는 속도가 존중되고, 아이 스스로 사고하고 배움의 주체로 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글과 즐겁고 생생한 만남을 위하여
나는 우리 말글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8살 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책 『세종대왕』의 영향인지, 줄줄 외울 정도로 재미나게 읊어댔던 전래동화책 때문인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국어 시간을 참신하게 구성해 주신 덕분인지, 휘갈겨 글을 써 내려가며 마음을 달랬던 우울했던 사춘기 시절 탓인지……. 여하튼 한때 국어 교사가 꿈일 정도로 그 매력에 빠졌더랬다. ‘몸’과 ‘마음’, ‘사람’과 ‘사랑’과 ‘삶’ 같이 조음이 비슷한 단어끼리는 분명히 어떤 연결성이 있을 거라 믿으며 호기심을 키우던 날들. 친구에게 이런 글을 써주기도 했다. 지금 보면 무척 간지럽지만.
우리나라 말은 참 이쁘다.
‘네’와 ‘내’
우리가 단지 그 둘만을 말할 때 발음만으론 큰 차이가 없어 구별이 힘들다.
영어는 ‘아이(I)’와 ‘유(you)’, 불어는 ‘주(Je)’와 ‘뛰(Tu)’, 이리 확연하게 다른데
우리말은 ‘나(내)’도 ‘너(네)’인 듯 ‘너(네)’도 ‘나(내)’인 듯
서로 서로가 이 모두가 어우러져 마치 하나인 듯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모여 이루어낸 또 하나의 보배가 아니겠니?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한글을 좋아하고 한글을 배우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다. 한글을 배운다는 건 한글이라는 세계에 발을 딛는 것이고, 한글을 통한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일이다. 아이 입장에선 학교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배움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는 한글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공부란 게 이런 거구나.’하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이 옹골차고 재미나길 바란다.
난 현실적으로 제한된 조건에서 아이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에 1~3개의 자소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음가를 익히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생하게 글자를 만날 수 있게 글자의 느낌과 역동성, 생명력을 함께 느껴보려 한다. 내가 아이에게 한글을 안내하는 흐름 안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 소리와 친해지기
앞서 언급한,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오신 세종대왕 전기에는 한글 창제 과정이 이렇게 묘사돼 있었다. ‘세종대왕 임금님이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밤늦게까지 연구하시다가, 잠깐 졸다 눈을 뜨셨다. 그 찰나에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문의 문살을 바라보게 되셨다. 임금님은 그걸 유심히 보셨다. 그러다 ‘아하!’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거기에 ㄱ이 있고 ㄴ이 있었기 때문에.’ 뭐 이런 식이었다. 어린 날엔 ‘아~ 그랬구나.’ 하며 감탄했더랬다. 낭만적일 수는 있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였는데도. 아주 나중에서야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훈민정음해례본』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때 완전히 반해버렸다. 우주를 담은 철학과 오늘날 보아도 뛰어난 음성학적 이론에!
한글은 표음문자, 소리글자이다. 모음은 천지인의 철학 아래, 소리의 성질에 따라 분류된다.
∙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ㅗ는 ∙와 같으나 입이 오그라지며…
ㅏ는 ∙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ㅜ는 ㅡ와 같으나 입이 오그라지며…
ㅓ는 ㅡ와 같으나 입이 펴지며…
기본 자음은 철학적으론 오행과 관련이 있고 조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ㄱ-나무-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불-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
ㅁ-땅-입모양
ㅅ-쇠-이 모양
ㅇ-물-목구멍
거기에 획을 더하여 나머지 글자들이 생겨났다. (소리가 세게 나는 까닭으로 획을 더함/ 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ㅇ→ㅎ)
한글은 소리 속에 글자에 대한 단서가 있기에 소리와 친해지는 게 기본이 된다. 모음을 발음하면서는 소리가 주는 느낌이 어떠한지를, 자음을 소리 낼 때는 각 소리와의 연관 기관인 혀‧이‧입술‧목구멍이 어떻게 변하고 움직이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느껴보면 좋다.
♣ 글자의 생김새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글자의 생김새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핵심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방향성. 연필도, 지우개도, 그 어떤 물건도 이렇게 놓아도 저렇게 놓아도 이름이 똑같은데 글자는 방향이 달라지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이 아이들에겐 참 헷갈리는 노릇이다. 일반 사물과 달리 글자에서는 방향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이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다감각이나 기억전략의 활용.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은 기억하는 양이 보통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김새를 익히는 과정에 시각, 청각뿐 아니라 촉각 또한 활용하고, 이미지나 이야기를 연결시켜 기억을 돕는다. 세 번째는 변별. 비슷하게 생긴 여러 글자들 속에서 목표 글자를 구분해 낼 수 있다면 확실히 알았다고 할 수 있겠다.
♣ 읽기와 쓰기를 함께 하기
쓰기 이전에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될 때도 있었지만, 요즘 연구들은 읽기와 쓰기가 상호보완적이며 읽기와 유사하게 쓰기도 어린 시절부터 나름의 발달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 실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읽기가 곧 쓰기를 보장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글자더라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읽기와 쓰기는 병행해야 하지, 쓰기를 나중으로 미루는 건 좋지 않다.
아기가 태어나서 말하기 이전에 듣기 경험을 먼저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게, 읽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쓰기 작업이 아이에게 좀 더 어려울 수는 있다. 당연히 흥미도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게임 자료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쓰기 작업을 하거나 생활 속 아이의 입말을 그대로 옮기며, 쓰는 활동과 친숙해지는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롭다.
♣ 반복하기
숙달하는 단계에 이르러 반복이 필요할 땐, 즐거움의 요소가 필수적이다. 최근의 뇌 관련 연구 결과들은 기억과 정서와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인간의 뇌 속 해마는 유쾌하고 재미있을 때 익힌 것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 단계는 놀이의 형식을 빌려 구성한다. 아이가 읽는 글자는 똑같더라도, 글자 읽기 연습이 읽기 게임이 되는 순간 만남의 장의 분위기가 흥미진진하게 바뀐다.
게임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글자를 읽고 점수 따기 내기’, ‘아는 글자 찾기 게임’과 같이 아주 단순한 것이어도 그냥 아이 혼자 단어를 읽는 것보다 훨씬 즐겁게 이 과정을 밟아가게 된다. 요즈음에는 학습용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이 많이 개발돼서 상용화되기도 했다. 그런 게임들을 적절한 순간에 사용한다면 아이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흥미 유발 자체가 목적일 경우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가 그 시간에 고조된 감정을 느끼고 신나 했을지는 몰라도 실제적인 학습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게임들을 진행할 땐 게임의 특성을 숙지하고 적정한 시간 동안 교육 목표에 따라 수정을 거쳐 잘 사용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의 세밀한 변화와 성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늘 변화하고 함께 애쓴 만큼 한 발 한 발 진보한다. 하지만 아이가 지난 시간의 자기 모습과 수행 정도를 기억하거나 지금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건 쉽지 않다. 아이의 자취를 기억하는 건 대부분 선생님의 몫이다. 선생님이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갔는지를 확인하고 말해주는 건 아이의 학습 과정에 대한 자신감, 자기효능감을 증진시키는 데에도 기여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머릿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와의 순간들이 흐릿해져 사라지게 되니까, 꼼꼼한 기록이 필수다.
아기가 “엄마”라는 말 하나를 할 때까지 엄마는 아기에게 수많은 말을 들려준다. 그러다 어느 날 아기가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며 “음-마” 같은 소리를 내면 그걸 놓치지 않고 “어, 엄마, 엄마야~” 하며 반응해 준다. 이런 장면은 아이가 “엄마”라고 또렷이 말할 때까지 되풀이된다. 이처럼 배움은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와 선생님의 합이 쌓이고 쌓여 “펑!”하고 터지는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2347/
Copyright ©2026 교육을바꾸는사람들 unless otherwise no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