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3-10-16 15:26
|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
정식 교사로 임용이 되고 교단에 선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선배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1년의 하루하루는 고통스럽고 신선한 성장의 연속이었다. 사실 사회의 일원이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현명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교사, 모범이 될 수 있는 교사일 것이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교단에 섰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몸만 자란 아이에 불과하고 인간의 성장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실은 학생과 교사가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고, 그 속에서 구성원 모두가 성장을 이루어 내는 곳이라는 것을 나는 교사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교사 임용 공부를 하면서 입에 버릇처럼 붙은 단어들이 몇 개 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친구의 발표를 경청해야 합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친구의 말을 잘 경청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의 부재는 듣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임용 공부를 하면서 속성으로 쌓아 올린 얄팍한 교육 철학 중에 그나마 내가 강조한 것이 바로 경청의 중요성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평소에 경청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그런 마음으로 나는 6학년 학생들과 1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겨울방학 동안 학급 긍정 훈육법, 회복적 생활 교육 등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아이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는 교사가 되어 보자고 다짐을 했다. 겨울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 스스로 학급 규칙 만들기, 학급 회의 활성화하기 등 나름대로 다양한 학급 활동을 꾸려 나가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6학년답게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자주 발생했지만 배운 대로 회복적 대화를 시도하면서 ‘아이들을 화해시켰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뿌듯하게 퇴근한 적도 많았다. 2학기 중반 즈음, 학급에서 아픈 손가락에 속하는 여학생이 설문조사에 다음과 같이 적기 전까진 말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문장을 보고 제법 충격을 받았다. 학급 운영은 서툴러도 아이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게 내 최대 장점 아니었나?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학생들에게 나는, 내가 원하는 말만 듣는 그런 교사였던 것인가? 만감이 교차하였다. 글귀를 본 첫날에는 아픈 손가락인 친구니까,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하고 착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퇴근을 했다.
학생 간의 갈등을 풀 때 회복적 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핵심이 되는 요소가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한다. 회복적 대화를 할 때 가장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잡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 이야기를 편견 없이 일단 들어주는 거야. 네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어.”라고 지도한다. 돌이켜 보면 이를 가장 실천하지 않았던 사람은 교사인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해 수업 중간에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을 잘 기다리지 못한다. 매번 내가 물은 질문에 내가 답하는 자문자답을 하고 있다. 성격이 급한 것도 있지만 이 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은 일명 ‘답정너’이다. 마음속으로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놓고, 그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되묻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아이들의 생각보다는 내가 정해 놓은 생각만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진정한 ‘경청’을, 정작 교사인 나 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한없이 부끄러웠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학생만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임과 동시에 또 한 명의 학생 자아가 생성된다. 스스로 가르치고 성장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배워야 하는 내용보다 더 깊이 있고 많은 내용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당연하다. 남들은 단순히 ‘경청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할 때 교사는 진정한 경청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경청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을 깊이 있게 사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 하나가 교사인 나를 학생으로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미 사회인이 되었는데 아직도 성장할 것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암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제는 한계만 남았다고 생 각한 나의 인생이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서로 주고받는 성장의 기회들을 발판 삼아 나와 아이들은 함께 쑥쑥 자라고 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1557/
Copyright ©2026 교육을바꾸는사람들 unless otherwise no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