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마음의 뜀틀을 넘어

by gyobasaNPO | 2023-08-16 13:37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나는 성장이가 지난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을 훌쩍 넘을 수 있는 마음의 디딤판이 되어 주고 싶었다”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봄날. 학교 입구에서부터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다문화 학생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성장이(가명)와 만날 수 있 는 시간을 주셨다. 유난히 큰 눈을 가진 아이는 나의 시선을 회피하며 45도 방향으로 몸을 돌려 삐딱하게 서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 전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를 보는 그 눈빛이 한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 성장이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라크에 살던 성장이는 7살 때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와서도 아랍 전통의 라마단 기간에는 학교도 올 수 없고, 늦잠을 자거나 하면 결석을 하는 날이 종종 있다고 했다. 기초학력 수준은 한글 쓰기,읽기가 초1 정도라고 하니, 중학교 1학년인 성장이와 일주일에 한 번의 만남으로 한글 이해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염려가 앞섰다.

 

수업 진행을 위해 자모음, 낱말 찾기, 찬찬 한글, 초등 독해, 즐거운 한글 공부 등… 한글의 기초가 되는 모든 자료를 가방 두 개에 넣어 준비하고, 첫 시간을 맞았다. ‘학교에는 왔을까, 수업을 마치면 교실에 바로 올까’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성장이는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반가움에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크게 하니, 성장이는 움찔 놀라며 인사를 했다.

 

“나는 홍당무 선생님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끄럽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양 볼이 빨개지거든요. 친구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홍당무라고 불렀어요. 별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홍당무는 영양가가 많아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니 제 별명이 좋아 이름처럼 말합니다.”

 

내 소개를 듣고 성장이는 자신은 별명 같은 거 없다, 피곤하다며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사춘기의 색깔이 짙어 보였지만 처음 만남과는 다르게 성장이의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다.

 

어느 날, 수업에서 만난 성장이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교내 체육대회를 앞두고 체육 시간에 공 넘기기 연습을 하던 중 친구와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난 것이었다. 분명히 옆 친구가 패스를 못해서 공을 놓쳤는데, 그것이 성장이의 실수라고 친구들이 몰아갔다고 한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오히려 친구들은 뭐라고 하니 억울함과 속상함이 커졌다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고여 있던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고 아이는 소리 내며 울었다. 성장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에도 친구들은 저를 따돌리고 많이 놀렸어요. 그런데 중학교 와서도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대하니, 그때 생각도 나고,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게 무서워요.”

 

두 손으로 눈물을 닦는 성장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대화가 안 되고, 학교에서도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벅차서 한글을 배우는 데 힘들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멀어져 혼자가 되었던 성장이가 그날 어린 시절 마음속 서랍을 열어 이야기를 꺼내 보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성장이가 지난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을 훌쩍 넘을 수 있는 마음의 디딤판이 되어 주고 싶었다.

 

한글 문장 읽기 중 낱말의 의미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것을 바탕으로 학습을 진행했다. 성장이는 내가 두 가방에 나눠 들고 왔던 한글 자료들을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면서 한글 낱말, 특히 단어 맞추기에 관심을 보였다. 글자에 받침이 들어가면 읽기를 거부하던 성장이가 오늘은 자기가 먼저 읽겠다고 손까지 들어가며 말한다. 더듬더듬 읽다가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말이 빨라지면서 대충 읽고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1학기를 마칠 무렵엔 초성 게임, 숨은 글자 찾기, 받아쓰기, 빈칸글자 넣기 등을 하며, 낱말을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어 발표도 했다. 한글 사후 검사를 진행했던 다문화 담당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성장이가 25문제 중 14문제를 맞추었다고 한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고 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성장이의 발전을 보고 놀라워 하셨다. 성장이의 한글을 익히는 속도는 ‘빛의 속도’라고 표현할 정도로 빨라졌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한 번도 결석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장이와의 만남은 여름 방학 특강으로 이어졌다. 이중 모음, 연음, 겹받침을 배우는 등 수업의 난이도는 지난 번보다 높아졌지만, 성장이는 한 단계 더 높은 뜀틀을 향해 달려가며 디딤판을 디뎠다. 성장이는 한글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서도 많은 부담을 느꼈지만 그래도 뜀틀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물론 넘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지만, 그 모습 자체가 대견하다. 성장이가 나의 디딤판을 딛고 날아오르면 어떤 문제도 멋지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뜀틀을 넘은 성장이는 오늘도 디딤판을 딛고 또 다른 뜀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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