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죽음으로 호소한 교사의 교육권,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by gyobasaNPO | 2023-07-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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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젊은 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제시한 해결 방안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 보고, 최근에 교사의 교육권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배경, 그리고 해결 방안 마련에 있어 적용해야 할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문 발췌)

 

 

1. 충격적인 교육 현장 상황

 

최근 일어난 서이초 젊은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우리 교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외에도 양천구 모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교사를 구타하여 상처를 입혔고, 모 지역의 학생이 교사의 외모를 촬영하여 SNS에 유포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이렇게 학생들의 도를 넘는 일탈행동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지도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교사를 상대로 수시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아 소송을 제기하여, 교사들이 교육권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를 계기로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교사들이 연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수천 명의 교사들이 서이초 앞이나 소속 교육청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교육 활동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대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해당 교사는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힘 있는 학부모의 집요한 개입과 압력에 시달렸고, 관계 당국의 조사(책임 추궁)를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낀 가운데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어, 홀로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지 죽은 한 교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뉴스가 언론의 주요 기사가 되면서,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책임을 갖는 위치의 사람들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긍이 가는 안들도 있는 반면, 또 원인을 잘못 짚고 엉뚱한 처방을 내려 교육 현장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안들도 보인다.

 

이에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제시한 해결 방안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 보고, 최근에 교사의 교육권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배경, 그리고 교사의 교육권 행사와 관련된 해결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적용해야 할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잘못된 원인 진단과 처방, 그리고 공허한 교사의 교육권 확보 방안

 

이 사건이 터지자 교육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호 장관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지적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후 대통령도 “교권 강화를 위해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고,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즉,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 학생 인권만 강조함으로써 과도한 학생의 자유가 이러한 일탈 행동을 조장했다고 보고, 학생 인권을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교사의 교육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집권당이나 보수 학부모들도 그와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마치 진보교육감이나 야당이 학생 인권만 강조하여 평등 교육이란 이름하에 학생들을 방임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교사도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다. 교사들도 자연권으로서 보편적인 인권을 누려야 한다. 교사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참정권 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교권이 학생 인권과 대립적인 개념인가? 교권 확보를 위해서 학생의 인권을 제한해야 하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인권은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자연권이며 교사든 학생이든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어느 집단의 인권을 위해 다른 집단의 인권을 제약하는 것은 올바른 답이 될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요구하는 교육권은 자연권으로 교사들이 누려야 할 권리라기보다는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교육과정, 교재, 교육 내용 등을 결정할 권리와 성적 평가와 학생 지도 징계권 등을 의미한다.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정당한 교육을 할 권리를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학생 인권을 강조했기 때문에 교권이 실추되었다고 원인을 짚은 것은 인과 관계를 잘못 본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원인을 진보교육감이나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정쟁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문제까지도 정치적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교육권이 실추된 것은 학생 인권을 강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힘 있는 학부모나 권력 기관의 횡포를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교사들이 요구하는 교육권은 교사의 전문성을 보장해 달라는 것으로, 권력과 힘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소수 학생들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들이 문제 삼는 것은 학생 인권 조례가 아니라, 잘못된 법과 제도, 예컨대 아동학대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이나 학교 폭력 예방 특별법, 학생 인권 관련 법규 등이다. 그런 법들이 원래 취지와 달리 교사들의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방해하고 있고, 걸핏하면 교사들을 차별이나 폭력 교사로 몰아 오히려 교사의 교육권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위에서 거론한 법들에서 교사의 교육권을 옥죄는 독소 조항을 손보는 것이고,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인권 조례가 완벽하거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봐도 학생 인권 조례가 있는 지역에서 이런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또 학생 인권 조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생인권을 제대로 누린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고, 교육부 장관이나 보수 학부모들이 진정으로 이런 국정 기조를 수용하고 따른다면 교권 보호라는 미명하에 학생 인권을 걸고넘어져서는 안 된다.

 

둘째, 교사의 교육권 확보라는 명목하에 학생에 대한 처벌의 강화만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문제가 일어나면 그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징계하고, 격리하고, 학교 밖으로 내보내거나, 심지어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여 두고두고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을 해결 방안이라고 제시한다. 얼마 전 있었던 국가수사위원장 학부모 갑질 사건에서도 정부는 이와 같은 방안을 해법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의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을 다루는 문제, 특히 교육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도 아니다.

 

예컨대 처벌 강화가 교육적 목적까지 상실하면서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교육적 목적을 위한 처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제 학생을 공교육 대상에서 배제하면서까지 처벌만을 강화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심한 일탈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을 처벌하지 말라거나 현재의 공교육 기관에서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탈 행동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정의에도 부합하고 교육적이기도 하다.

 

또 현실적으로 공교육 기관에서 감당하기 곤란한 학생도 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또 다른 대체 교육 기관을 세운다거나, 그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적 처방을 내리는 것이어야지 그들을 배제하고, 현 질서에 순응하고 현재의 교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학생들만 교육 대상으로 삼겠다는 주장은 공교육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정신이나 공교육 취지에도 맞지 않다. 또한 이는 교육 실패의 책임을 너무 쉽게 문제 학생에게만 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구체적인 내용이나 이해관계 조정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교사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소신껏 교육활동하도록 하겠다’ 등의 언급만 하는 것이다.

 

교사들의 요구나 학생 지도 사안(학폭 문제), 성적 관련(시험 문제 정답 시비) 갈등 등은 모든 사람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대부분 학생들이나 학부모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여 해결할 것인지, 구성원들이 대화하고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고민이 별로 없다. 교육권을 확보하겠다고 하는데, 기껏해야 학생 지도 매뉴얼 작성, 법과 제도 정비(교사들의 신중하고, 효율적인 사안 처리 등), 생활지도나 인성 교육 강화 등 상투적인 언급만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현 상황의 문제에 대한 원인이 교사에게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법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인지 애매해진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해법이라고 제시하는 것들이 진정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생기거나 교사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학부모의 학교 개입을 축소하고(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학부모 활동), 학부모와 교사 간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부모의 어떤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것인지,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가 있는데 그런 측면과의 조정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현재의 법과 제도가 문제가 있다면 어느 부분을 고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안의 발표가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는다.

 

넷째, 교사 및 국민들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기보다는 동문서답하고, 교사 탓을 하며, 정략적인 목적을 앞세우는 행태로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들부터 교육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여 엉뚱한 원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다 보니 책임 선상에 있는 관리자들 역시 그러한 행태를 따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서이초 교장이 발표한 입장문을 보면, 수많은 동료 교사들이 분노하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왜 젊은 교사가 죽음을 선택했나?’, ‘어떤 요인이 젊고 열정적인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느냐?’ 등인데, 그에 대한 답변은 외면하고, 온통 가짜 뉴스에 대한 해명 일색이다. 즉 모든 일은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선택한 것이지, 학부모와 관련된 문제나 학교나 교육청의 무리한 조치는 없었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관리자가 그 역할을 하기는커녕 모든 책임을 해당 교사에게 돌리고, 문제를 무마하기에 급급한 모습에서, 이것이 교육 행정을 책임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된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다. 이로 인해 가짜 뉴스가 해소되기는커녕 또 다른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구성원의 위기의식을 부추겨 ‘사실을 숨기고 정보를 조작한 것 같다’는 소문 등이 그 예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 중심의 관행적인 접근이 아니라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문제의 근원을 살피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 나가는 방법을 강구했으면 좋겠다.

 

 

3. 문제 발생 배경과 미비점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과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왜 최근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가? 왜 교육이 오늘날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교육 현장에는 분명 교사 존중 문화가 있었다. 학생들은 어떤 처벌과 어떤 교육을 받더라도 교사에게 감사하는 문화가 있었다. 졸업식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은 교사를 믿고 따르기는커녕 툭하면 교사의 교육 활동을 문제 삼으며 학부모가 갑질을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이렇게 된 주요 요인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된 소비자 중심의 시장 중심주의 교육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관이고 교사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교육관이 지배하는 속에서, 학부모들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교육 내용과 교사를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학부모들은 힘을 갖게 되고, 학교나 교사는 힘 있는 학부모에게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관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학교는 더 이상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신에 학교는 학원과 비교되면서, 대입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측면만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부모의 참여나 관심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학교 운영 과정에서 학부모의 참여와 협력은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소비자 중심의 교육은 학교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소비자 중심 교육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힘없는 다수의 학생 및 학부모에게는 입시 경쟁 교육 속에서 차별을 당해도 속수무책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 교사의 교육 활동 과정에서 그 권리와 책임은 어디까지이고, 발생한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가. 또 학부모는 어떤 요구를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엔 제지를 받아야 하는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학생 사안 모두에 대해 학교나 교사가 책임을 지거나, 학생 지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모두 교사의 지도력의 한계로 몰아가는 것도 잘못이다. 그렇다고 교사의 모든 교육 활동이 정당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교사의 잘못을 모두 감싸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교사, 학부모 및 교육기관의 교육권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고, 그 기준에 맞게 역할을 하고 평가하면 된다. 이것은 단지 교사의 사안 처리 매뉴얼을 정교화하는 차원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및 한계에 대한 규정이고, 교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이런 권리 의무 관계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제 법규와 규정들은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고, 다른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자치법을 제정해야 하고, 그 바탕에서 교사들이 문제 삼은 아동학대법, 학교 폭력 특별법, 그리고 유아교육법이나 초중등교육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

 

셋째, 신세대 교사들의 특성과 평등주의적 교직 문화 간의 조화 문제를 살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자주 듣는 얘기가 요즘 교사들은 과거 교사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신세대 교사의 특성과 관련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 교사들의 특성과 관계되는가? 신세대 교사(소위 MZ세대 교사- 능력, 긍지, 자부심이 강함)가 더 예민한가? 관행적으로 묻어갈 수 있는 사안도 문제가 되는가? 업무가 힘없는 젊은 교사들에게 몰려 있는가? 특히 학교 폭력, 나이스 업무 등이 힘없는 젊은 교사나 기간제 교사에게 집중되는 불평등한 문화가 학교를 지배하는가? 등의 측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신세대 교사들은 그 어떤 세대의 교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고, 능력이 있으며,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물론 교직 경험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생활지도 면에서나 교과 지도 면에서 정보화 세대의 학생들과 공감하며 가장 잘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런 측면을 있는 그대로 장점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소신을 펼칠 수 있도록 물적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주는 방향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좀 힘들고 불합리하더라고 참고 견디는 것을 바람직한 교사로 보는 것은 사회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구시대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직 문화는 다른 어떤 직장보다도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평등하고 민주적이다. 수업 시수든, 업무든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일부 학교에 여전히 권위주의적 문화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여 교직 사회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교직 문화에 외적 수술을 가해 개혁하겠다는 생각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4. 교사 교육권 확보 방안의 원칙과 방향

 

다음과 같은 올바른 해결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그 방안을 제시하면 먼저,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 문제는 교육적으로 접근해야지, 정략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학교의 존립 이유랄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의 행복이나 인간다운 삶, 더 나아가서는 민주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민주적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교사의 교육권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신뢰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교사를 믿지 못하면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소수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요구를 없애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안이 처리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호 대화와 협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는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현하여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런 차원에서 학교나 교사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를 단지 학원처럼 입시 준비나 취업 준비 기관으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소비자 중심주의 교육, 입시 경쟁 교육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이나 정상적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사의 교육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둘째 공교육 이념에 충실한 학교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은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모두를 위한 교육, 성숙한 교육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공교육의 발전이다. 물적 여건을 개선한다거나, 새로운 정보화 기기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공교육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지식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고력·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자기 주도적 학습, 탐구와 토론이 가능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나, 개별화 수업이 가능한 여건을 만드는 것, 그리고 수업과 생활지도 이외의 행정 업무에 교사들이 매달리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셋째, 학생, 교사 및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 역할과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해 주었으면 한다. 교사에게 교육을 맡기되 교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교사는 만능인이 아니다. 교사가 가진 힘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60~70명이 들어가는 교실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지도할 수는 없다.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에 그것이 두드러진 학생이 나타나는 것은 정상이며 그것을 사회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우리 교육은 양적인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 학급당 학생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과거와 달리 공교육 기관에서도 특수학교, 특수 교사, Wee센터, 진로 전담 교사 등을 두고 다양성을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선진국에 걸맞게, 성숙된 사회에 걸맞은 교육을 위해 더 투자해야 한다. 올바른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를 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학생과 같다.

 

넷째, 학교 자치 실현과 행정적 지원 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서이초 사안은 초1 학생 간에 발생한 문제가 발단이 되었고, 가장 실력 있고,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 교사가 좌절한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어린 아이들 사이의 문제가 학교 폭력으로 규정되고, 전문성을 발휘하는 교사의 교육 행위가 학부모의 민원 대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교사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교육 관료나 기관이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 정도의 문제는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고, 일단은 교사의 교육 행위를 인정하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서로 협력하는 교육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교사들은 전문성을 갖고 교육 활동을 하고, 학교 구성원은 상호 존중하면서 상호 협의하에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것을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제 규정과 법률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학교 내부를 들여다보면 학교를 민주적인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그동안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학교 규정도 일방적으로 제정하지 않고, 교사, 학생, 학부모 3주체가 합의하여 만들고, 보편적 인권 규범에 어긋나는 학생 생활규정도 인권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고치는 중이다. 그렇지만 민주적인 학교 공동체와 학교 자치는 학교 구성원들만의 노력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고쳐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다.

 

 

5.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기 위한 노력

 

우리 교육이 양적으로는 많이 발전했고, 일부 측면에서는 최고라는 소리를 듣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학생과 교사, 심지어 학부모까지 모두가 힘들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요즘 학생들은 옛날 같지 않고 교사의 지시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당당히 하며, 이들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학부모들도 교사들을 믿고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교원 평가 같은 것이 있어서 여러 측면에서 교사들을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도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만 버텨낼 수 있다.

 

지금의 교사들은 과거처럼 획일적인 지식 교육을 교사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펼치지 않는다. 그런 구시대적인 교사는 학교에서 견뎌낼 수 없다. 그런데 외부의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교육과 교사를 과거 자신이 학교 다닐 때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부모와 시민들은 지금의 우리 교육과 교사들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교사에 대한 요구를 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함께 공부를 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 문제라는 것이 대부분 학생이나 학부모, 교육부나 교육청 관료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발생하고 있다. 경쟁 교육의 문제만 하더라도 경쟁 만능주의, 불평등 심화라는 토양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도 학교라는 틀 내에서만 교육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사회 속에서 교육 문제를 바라보고, 교사의 교육권 문제도 학부모 탓, 교육 기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 문제와 함께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능력이 없으면 직업을 구하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직업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학교에서 지도하고 있는 학생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회 개혁을 위해 다른 직업인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교사의 교육권도 근본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교사의 전문성 보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우일지는 모르지만) 소위 사회적 특권 집단이 누리는 권리를 교사도 누려야 한다거나, 비정규직 문제,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에 무관심하면서 교사의 권리만 주장하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도록 교사들 스스로도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