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3-05-04 10:18
| ‘교육개혁’에 다시 박차가 가해질 참이다. 정부는 모든 학생에게 ‘맞춤’이 되는 ‘다닐 만한 학교’를 만들어 주겠다고 떠벌릴 셈인 듯하다. 그러나 개혁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왜 그런지 얘기하고, 지금 필요한 작업은 구태의 개혁이 아니라 새삼스러운 성찰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성공을 지원하겠다는 개혁이 아니라, 학교 제도가 생겨난 사회적 이유를 되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전략적 자퇴’ 이야기들
학교는 무엇인가? 학교는 어떤 곳인가?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최근 교육방송(EBS)이 ‘교육격차’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그 시리즈 가운데 2부 ‘나의 자퇴기(記)’에는 ‘자퇴’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학교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고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인터뷰한 청소년들에게 ‘학교란?’ 하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대답들이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학교를 적시해 언표한 것들을 골라 옮겨 보면 이렇다.
▷ “그냥 가야 되는 곳? 의무적으로. 근데 뭐 무언가를 배우려고 가는 것보다는 그냥 어쩔 수 없이 가야 [되는 곳]”
▷ “… [학교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제가 하고 싶은 분야도 정말 많은데, 학교에 있으면 그걸 할 기회들을 … 놓치[게 된다.]”
▷ “학교 안에서는 공부를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학교에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되게. … 학교는 정말 다 공정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어야 되는데, 저는 가정 형편이든 뭐든 다 부족하고 뒤처져 있다 생각을 해서, … 학교에 갔을 때 매번 저 혼자… 무인도에 있었던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소수의 ‘자퇴생’을 인터뷰한 결과이다. 진학 전략에 부심하는 청소년들이고, 학교를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청소년들이다. 학교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생각과 다름없으리라 가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답에 들어 있는 ‘학교관’이 우리 사회에(아마도 세계적으로) 만연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할 듯하다. 대학 진학 또는 다른 ‘미래’를 염두에 둘 때, ‘학교에 계속 다닐(보낼) 이유가 있나?’ 하고 회의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많은 듯하다.1 그런 생각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학교에 다닐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잘 때 보통은 진학이나 취업과 관련지어 ‘이유’를 찾게 된다. 그런 맥락의 이유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학교 다니는 일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보면, 학교 다니는 일에 대해 회의하게 되는 원인이 학생들의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르다. 여유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사교육’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데 ‘학교 체류’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겠는데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학원 다니는 학생’ 위주로 진도를 ‘빼버려’ 허송하게 된다고 하는 학생이 있다. 학생들이 말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학교가 학생들을 떠나게 하는 요인은 사실상 같다.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이런 ‘비효율성’, 그리고 가정 배경에 따른 ‘차별’의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고, 이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격차’ 문제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이전에, 어떤 형편에 있는 학생(학부모)이건 대체로(사실상 우리 사회 전체가), 학교에 다녀야(보내야) 할지 고심한다면, 개인의 진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학교가 유효한지 따진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다닐 만한 학교’는 나의 ‘진로 전략’에 부응해 주는 학교라는 인식에 대해 짚어보려고 한다. 다시 인터뷰 내용을 빌려오면, 그런 인식은 아래 옮긴 한 자퇴생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 지금의 입시 체계에서는 학교만 다니고는 절대 수능이나 내신에서 고득점을 받지 못하잖아요. … 사설 인강이나 학원 … 같은 게 무조건 필요하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이 긴 시간을 날릴 바에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학교를 다니는 게 저한테는 조금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어요. 왜냐면 지금 당장 필요가 없는 교과목들이라든가 그런 활동들을 좀 많이 하잖아요, 학교는.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쏟는 에너지가 너무 컸어요. 신체적인 활동도 있고. 내신이나 수행평가 그런 걸 대비해야 하는 그런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도 있고. 그런데 학교를 나오면 일단 그런 잡다한 게 없으니까 저는 확실히 편했어요.
학교 제도는 당초에 개인이 다니든지 말든지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에는 개혁적인 아이디어까지도 봉건적인 구속의 영향을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었다고 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학교 제도가 본디 개인보다 국가(사회)를 우선시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그런 제도의 ‘초심’에 비추어 보면, 위에서 본 대로, 학교에 대한 오늘날의 생각들은 매우 멀리 온 것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인 거리 또는 괴리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학교 제도는 어떻게 우리에게 왔나?
이른바 ‘근대’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가? 효시의 학교를 따지는 데 여러 주장이 있지만, 국가가 관장하는 학교의 제도가 조선에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고 정리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의 흐름 안에서 교육을 맡을 관청으로 학무아문이 생겨났다. 학무아문은 교육개혁을 위해 설치되었고,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1894년 9월 2일) 곧 ‘학교’를 세운다는 고시를 발표했다. 내용은 이랬다.
돌이켜 보건대 시국은 크게 바뀌었다. 모든 제도가 다 함께 새로워져야 하지만 영재의 교육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그러므로 본 아문에서 소학교와 사범학교를 세워 먼저 서울에 행하려 하니, 위로 공경대부의 아들로부터 아래로 서민의 준수한 자제에 이르기까지 다 이 학교에 들어와 경서(經書)・자전(子傳)・육예(六藝)・백가(百家)의 학문을 배워 아침에 외고 저녁에 익히도록 하라. 그리하여 장차 일을 알아 시대를 구하고 내수(內修)와 외교에 각각 크게 쓰고자 하니, 진실로 좋은 기회이다. 앞으로 대학교와 전문학교도 차례로 세우려 한다. 무릇 사방의 학자들은 책을 가지고 달려와 전심으로 가르침을 받들어 성세(聖世)를 이루려는 뜻을 버리지 말라.
나라의 위기를 맞아 ‘교육’에서 대책을 찾고 있다. 더 이상 신분을 가리지 않고, 국민(‘신민’) 모두에 대해 학교 교육 기회를 열겠다고 포고하고 있다.
1895년 2월에는 고종이 직접 ‘교육조서’를 내렸다. 학무아문을 ‘학부’(學部)로 개편하기 직전의 일이다. 조서나 부처 개편 모두, 교육이 나라의 중대사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조서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라를 굳건히 하기가 매우 어렵다. 세상 형편을 돌아보면 부유하고 강성하여 독립하여 웅시(雄視)하는 여러 나라는 모두 그 나라 백성의 지식이 개명(開明)했다. 지식이 개명함은 교육이 잘됨으로써 말미암은 것이니, 교육은 실로 나라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 교육에는 또한 그 방도가 있으니, 허명(虛名)과 실용(實用)의 분별을 먼저 세워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글자를 익히어 고인(古人)의 찌꺼기만 주워 모으고 시대의 큰 형국에 어두운 자는 문장이 고금보다 뛰어나더라도 쓸모가 전혀 없는 서생(書生)이다.
…
짐이 정부(政府)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학식으로 나라를 중흥(中興)시키는 큰 공로를 이룩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심정으로 너의 덕성, 너의 체력, 너의 지혜를 기르라. 왕실의 안전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교육에 달려 있고 나라의 부강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교육에 달려 있다. … 나라의 한에 대적할 사람은 오직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요, 나라의 모욕을 막을 사람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며, 나라의 정치 제도를 닦아 나갈 사람도 너희들 신하와 백성이다. 이것은 다 너희들 신하와 백성의 당연한 직분이지만 학식의 등급에 따라 그 효과의 크기가 결정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서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있으면 너희들 신하와 백성도 오직 우리의 교육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상하가 마음 합치기에 힘쓰라.
학무아문 고시와 고종의 교육조서에 우리나라가 근대 학교 제도를 도입하게 된 ‘공식적인’ 이유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국강병을 위해서였고, 국가 존립을 위해서였다. 당시 구미 열강의 제국주의적 개방 요구에 직면하여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여겨졌다. 조선을 위협해 오는 열강들의 강성함은 그들의 국민 교육 제도에서 왔다고 해석됐다. 이런 해석은 개항 이후 외교 관계나 열강 시찰 등을 통해 얻게 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일본과 미국 등을 체험했던 박영효는 1888년 고종에게 이른바 ‘개화상소’(또는 ‘건백서’)를 올렸다. 그는 “소학교와 중학교를 세워 남녀 6세 이상의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학교에 나아가 수업을 받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2
학교 제도의 아이디어는 본디 어디에서 왔나?
국가가 주도해서 국민 모두에게 의무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특히 독일(당시 프러시아)과 미국의 역사에서 뚜렷하게 부각했다. 교육사가들은 대체로 근대 학교 제도가 프러시아에서 비롯됐다고 얘기한다. 공교육 사상의 흐름을 추적한다면 종교개혁의 시기 또는 그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국민교육’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법령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프러시아에서였다.
수 세기를 내려오던 국민교육의 생각은, 19세기 초(1806년) 프러시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치욕적으로 패배하여 민족적인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민족 재건’의 아이디어로 부상했다. 피히테(Fichte)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은 그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대중을 상대로 이루어졌던 강연의 성격상 특정한 생각을 명료하게 담을 수 없었겠지만, 피히테의 강연은 기본적으로 국민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이 추릴 수 있다.
독일 국민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한 마디로 나는, 기존 교육체제를 완전히 변혁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
독일인은 개명된 민족이었다. … 독일인은 좀체 개인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한마음이었으며, 공동의 번영을 위해 함께 희생했다. … 이기주의는 모든 부패의 근원이다. …
독일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자아를 키워내야 하며, … 국민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을 통해서 모든 독일인을 하나의 공동체로 주조해야 한다.
피히테의 강연에서 당시 프러시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고, 근대의 학교 제도를 촉발한 사회적 배경을 더듬을 수 있다. 그는 국가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의무 교육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제도는 국민(시민)의 양성에 초점을 두어야 하고, 가정(사회)과 분리된 학생들만의 독립적인 ‘학교 사회’ 생활을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고는 독일 민족이 외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강연에 대한 사회적 호응은 뜨거웠으며, 그의 주장은 실질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프러시아 정부는 교육행정 부처를 바로 설치했고 학교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교육사에서는 이때 움직임을 ‘근대’ 학교 교육 제도의 출발로 간주한다.
유럽과 사정이 좀 달랐던 미국의 경우, 공교육의 필요성은 민족의 존립보다는 사회의 질서 유지에 관련해서 얘기됐다. ‘공립보통학교 운동’(Common School Movement)을 이끌어 미국 공교육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만(Horace Mann)은 미국의 존립, 즉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조화가 시민교육에 달렸다고 호소했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매우 이질적인 이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되던 미국에서는 국가적 연대와 정체성을 구축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게 당시 절박한 과제로 느껴졌다. 그는 국민 모두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추고 사회적 이념을 공유하도록 교육하지 않고는 미국이란 나라가 지탱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을 그는 1837년부터 매사추세츠 교육위원회의 장관(Secretary)으로 일하면서 구체적인 제도로 옮겼다. 그의 선구적인 시도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이전까지 사적이고 시혜적이었던 학교는 공공 재원으로 뒷받침되는 공교육 기관으로 변혁됐다. 훗날 한 역사가(E. P. Cubberley)는 만의 업적을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미국민의 마음에 교육이 어때야 하는지, 그만큼 확고하게 인식시켜준 인물은 없다. 교육은 보편적이고 종파를 초월해야 하며, 그것의 목적은 사회적 효율, 시민의 덕목 그리고 인성에 두어야 한다는, 단순한 학습이나 종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그는 분명하게 심어주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면 유럽의 주요 국가나 미국에서 국민 의무 교육제도가 제법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유럽에서는 1871년 독일이 ‘보불전쟁’(the Franco-Prussian War)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격했고, 그것은 “프러시아 교사들의 승리”였다는 ‘신화’가 떠돌았다. 독일의 융성은 선구적인 학교 교육제도 덕분이었다는 대중적인 해석이 유럽 사회에 만연했다. 민족국가들이 형성되던 시기에, 유럽 전역에서 학교 교육은 국가 구축에 필수인 제도로 간주되었다. 미국의 공교육 팽창은 유럽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조선은 바로 이런 시기에 ‘근대교육’ 아이디어를 접하고 수용했다.
학교의 제도적 본연, ‘성공’을 위한 ‘맞춤형’ 교육개혁으로 퇴색시켜
세계사로 보나 국사로 보나, 적어도 공식적으로, 학교는 국가(민족, 사회)의 생존을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학교 자퇴 청소년들의 얘기에서 본 것처럼, 오늘날 학교는 사적인 필요에 종사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학교가 제도상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기관임에는 예전과 다름없지만, ‘나’에게 갈 만하지 않다고 계산된다면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지고 있다. 미래 진로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학교에서 자퇴하는 선택은 이제 합리적이고도 윤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학교의 가치를 개인의 필요에 맞춰 가늠하는 경향은 국가의 교육정책이 초래한 바가 크다. 정부가 사용하는 교육개혁의 언어에서 학교 교육이 학생 개개인의 필요에 맞춰져야 한다는 말은 상용구이다. 올해 교육부의 업무보고만 보아도, ‘핵심 정책’ 10개를 ‘맞춤’ 시리즈로 나열하면서 ‘학생 맞춤 교육개혁’을 으뜸 자리에 두었다. 그 안의 첫째 세부 과제는 “개별 학생에게 최적화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다. 정책상의 우선순위가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 물론 합당한 데가 있다. 다분히 획일적일 마련인 공교육이 개인의 차이를 넘어 보편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맞춤형’의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 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정책이 목표로 학생 개개인의 ‘성공’을 암암리에 약속한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어떤 학생도 뒤처지지 않게 하는 교육’을 공약하는 것인데, 학교 교육에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경쟁이 전제된 맥락에서 그런 약속은 지켜질 수 없다. 학교 교육이 ‘제로섬 게임’이 되어버린 마당에, 모두 성공하는 효과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정책은 모든 학생의 성공을 보장하겠다고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굵직한 교육정책들이 내놓았던 약속을 잠깐 되돌아보자.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겠다. 학교 밖의 비싼 ‘사교육’을 이용하지 못해 경쟁에서 불리하다면, 학교가 나서서 값싼 사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주겠다. 원하는 학교를 골라 갈 수 있게 학교를 다양화하겠다. 교육개혁의 약속이란 게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학생 모두에게 기대를 걸게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늘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패배와 좌절감을 안기는 ‘개혁’이었다. 그렇게 해서 교육개혁은 거듭 실패하는 정책이 되었다.
개인의 이익(성공)을 앞세우는 정책의 문제는 모두에게 약속한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그런 정책이 학교 교육을 개인의 ‘비즈니스’로 변질시키고, 학교가 품고 있을지 모르는 ‘성소’(聖所)의 가치를 망각시키는 데 있다. 학교를 ‘내가 필요하면 다니고 불필요하면 그만둬도 되는 기관’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학생들이 ‘오프라인’의 ‘학교 사회’에 속하여 서로 부대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전자의 인식에 대해서는 이미 자퇴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 들었다. 그들은 학교가 더 이상 자신의 성공(생존)을 지원해 주지 않겠기에 전략상 학교를 그만두었고, 그런 결정은 나무랄 게 아니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생각 연장에서는 ‘학교 사회’의 교육적 가치를 헤아려 볼 여지가 전혀 없다. 모든 학생을 등교하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학교 제도의 중핵적인 요소일지 모른다는 점을 궁구해 볼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피히테가 주장했던 것처럼,3 근대 학교 교육은 애초에 학생들을 가정과 사회에서 분리해 놓는 체제로 구안됐다. 학교 교육이 디지털 전환 등을 통해서 ‘온라인’의 개별학습으로 대체되어도 그만이라는, 오늘날과 같은 발상은 당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을 터이다. 기술 발전을 상상할 수 없었으리라는 뜻이 아니라, 집합적이지 않은 교육체제를 상상할 수 없었으리라는 뜻이다.
근대 학교 제도가 생겨나던 초기 학교가 지녔던 의미 또는 가치가 이제는 매우 흐릿해졌다. 국가(사회) 구성원을 기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학교의 책무는 오늘날 교육정책 담론에서 거의 잊혀 있다. 200년이 넘는 제도의 역사가 낳은 역설 가운데 하나이다. 학교 교육은 공익과 사익의 갈등 안에서 큰 변질을 겪어 왔고, 이제 공익을 향한 속성은 거의 고갈되고 있다. 이점은 말을 해놓고 보면 매우 분명해 보이는데, 그동안 교육개혁에서는 그 사실을 흔히 간과해 왔다.
오늘날 교육개혁은 개인의 계층 상향 이동을 보장하겠다고 경쟁하는 듯한 양상을 띤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른바 OECD라는 국제기구가 어떤 교육을 주동하고 어떤 개혁을 미는지 살펴보면 쉽게 그 편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OECD는 늘 ‘국가(경제) 발전’을 이야기한다. 성공 요소인 ‘역량’을 모든 학생에게 장착시켜줌으로써 그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국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식이다. OECD의 ‘역량론’ 자체도 문제이거니와(여기서 논급하지 못하고 넘어가지만), OECD가 주창하는 개혁으로 설령 개인들이 역량을 갖추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집합이 결속과 조화를 이룬 사회가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서 오는지 의문이다. 파편화된 개인을 모아놓는다고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근대 민족국가의 성립 초기에 학교 제도가 각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대체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면 사실상 모든 나라에서 학교 교육의 가치는 의심받기 시작했다. 국가가 안정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확장되고, 교육제도는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이런 역사가 부조리하다고 볼 수는 결코 없다. 전근대의 봉건적 구속에서 개인을 해방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바로 세운 역사를 비판할 이유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에 관하여 성찰해야 할 점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장’을 표방하는 교육정책이 사회를 지탱할 연대(solidarity)를 위협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른다는 데 있다. 학교 교육을 개인의 일(사적 성공 추구)로 치환해버릴 때, 그렇게 교육받은 개인들이 모여서 공공의 복리를 추구하는 유기적인 사회를 이루리라 보장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교육은 결국 ‘사회가 존립할 수 있는 조건을 항구히 재창조해가는 일’이라는 뒤르켐(Durkheim)의 통찰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을 결속시킬 ‘문화적 아교(阿膠)’가 필요하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아교는 어쩌면 집합적인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개인을 파편화해서는 불가능할 일일 수 있다.
다시 교육개혁?
정부는 다시 ‘3대 개혁’ 부문의 하나로 ‘교육’을 집었다. 개혁 프로그램의 면모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개혁 움직임 자체에 비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필경 개인을 위한 ‘맞춤’을 표방할 터이기 때문이고, 모든 학생의 ‘성공’을 약속할 테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개혁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고, 사회의 ‘원자화’만 부추길 것이다. 교육으로 개인의 ‘역량’을 평균적으로 더 키운다고 해서, 그런 개인이 모인 사회가 더 살 만해지지는 않는다.
학교는 본디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를 지지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지난 200년여의 역사에서 그 본연은 흐려져 왔다. 교육개혁을 외치는 정부의 움직임은 그 역사 그대로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개혁보다는, 이제라도, 근대학교 제도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문제의식을 되살리는 것이 학교 교육의 본연을 추구하는 길일 것이다. 학교 교육의 요체는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회’의 오묘함에 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가능성은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다. 학교 교육의 맥락에서 교과 수업보다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습이 오히려 깊고 견고하다는 사실들은 흔히 경험해왔다. 그러나 그런 ‘문화’ 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연구는 미미하다. 기껏해야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이름만 붙여놓고 내팽개쳐둔 형국이다. 더 나아가, 교과(지식) 수업과 문화 학습이 어떻게 관련을 맺으며 ‘인격’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더욱 미흡하다. ‘인지-사회-정서’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면서도(뇌과학이 입증해 보이는데도), 정책이나 학교의 프로그램에서는 ‘인지’와 ‘정서’ 그리고 ‘사회’를 각각 별도로 ‘교육’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교육정책과 연구의 역사적 소홀과 결함이 오늘날 학교 교육이 목적을 잃고 흔들리는 원인일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일은 구태의 교육개혁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멈추고 오래 묻어두고 잊어버렸던 문제를 되짚는 것일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0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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