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3-04-20 16:16
| “사실적 지식의 뒷받침이 없는 어떤 교수·학습도 사상누각이며 의도와 달리 역효과만 낳는다. 이것이 존재하기에 사람은 이들을 연결하면서 고등 사고도 할 수 있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어서 이에 대한 근거를 소개하겠다.” (본문 발췌) |
목차
1. 퇴치해야 할 교육 속설 1호!
2. 생각을 회피하고 기억에 의존하는 뇌
3. 뇌의 사고(thinking) 특성
4. 작업기억에서의 사고 작용과 장기기억 속 지식과의 관계
5. 비판적 사고의 이해와 지도 방법
6. 지식을 지도하는 방법
7. 맺음말
| ♣ 학습 목표 • 뇌는 생각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수고를 덜도록 디자인되었다는 점을 이해한다. • 사실적 지식(장기기억)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 비판적 사고와 같은 고등사고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가르칠 수 있는지를 안다. • “사실적 지식의 습득 대신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힘써야”가 얼마나 잘못된 통념인지 이해하고 바르게 교육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은(교육자 포함) 학교 교육이 사실적 지식의 습득보다는 비판적 사고력 과 같은 고등사고력 향상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챗GPT에게 물어보면 어떤 지식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학교가 지식 교육의 강화에 힘쓸 필요가 없고, 인터넷의 사실적 지식을 학습하기보다는 인터넷의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비판적 사고력 훈련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지식의 양이 5년마다 2배로 늘어나고 5년 후면 가진 지식의 1/2이 낡은 것이 된다는 점도 근거로 덧붙인다.
사실적 지식이 설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말은 또 있다. 교육의 목표는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하는(learning to learn) 것이기 때문에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이는 그럴듯한 말처럼 들리지만 틀린 말이다. 학습하는 방법을 학습함으로써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는 것은 좋으나 지식과 기능의 습득 그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문제이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학습의 과정과 학습 내용 그 자체 둘 다에 충실한 학습이라 할 수 있다.
기억된 지식의 뒷받침이 없이 지식이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을 검색하려 할 경우 사람의 삶에 다음과 같은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학습에 큰 장애가 발생한다. 학습은 기존의 사전지식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억이(사전지식이, 배경지식이) 없으면 새로운 정보, 기능, 개념을 학습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 타인과의 소통에 장애가 발생한다. 과거의 대화 내용이나 경험이 기억되어 있지 않을 경우 타인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없고 관계를 형성하거나 유지할 수도 없다. 토론할 때 “잠깐 기다리세요. 관련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다음 제 토론을 이어갈게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현명한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다. 결정과 선택은 순간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요한 그 순간에 인터넷을 검색할 경우 결정과 선택의 속도가 느려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바탕 지식이 없으면 필요한 지식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것뿐만 아니라 검색한 정보의 이해도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
• 감정의 조절이 어렵다. 사람은 과거 경험을 기억하고 있을 때 이를 회상해 자신의 현재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예로, 특정 상황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과거 유사한 상황에서 이를 성공적으로 대처한 경험을 소환해 현재의 감정(불안과 스트레스)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감정의 조절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
• 정체성·개성이 모호한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과거 경험과 지식은 그 사람의 자아상과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과거 경험과 지식이 머릿속에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으로 비춰지게 될 것이다.
• 작업기억의 과부하로 인해 정보처리가 어렵다. 방금 검색한 인터넷의 정보는 아직 익숙하거나 구조화되어 있지 않아 참고하고자 할 때 작업기억에 인지과부하를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이미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사실적 지식은 익숙하고 구조화되어 있어서 인지적 작업을 위해 작업기억 시스템으로 불러오더라도 인지부하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작업 공간을 별로 차지하지 않는다).
사실적 지식은 사람의 장기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사실적 지식은 천을 짤 때 필요한 실(yarn)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료이다. 사실적 지식이 존재하기에 사람은 중간에 끊김 없이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으며, 기억과 새로운 정보의 연결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고등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해 사실적 지식의 습득을 경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사실적 지식과 고등사고력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학습의 주요 목표이자 상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적 지식(conceptual knowledge)과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도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의 바탕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 이어서 사람이 생존을 위해 생각에 능한 존재인지 기억에 의존하는 존재인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학생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가르쳐 주어도 그 다음 날이면 다 잊어!”,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동기가 없어!”, “그리고 생각하기를 귀찮아 해!”
흔히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불평하지만 인간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이렇게 진화해왔다. 이런 현상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인지심리학 교수인 다니엘 윌링햄은 “뇌는 생각을 위해 디자인되지 않았다. 뇌는 생각의 수고를 덜도록 디자인되었다(The brain is not designed for thinking. It’s designed to save you from thinking.).”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호기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생각을 잘하고 즐기지는 않는다. 사람은 조건이 잘 맞지 않으면 생각을 기피하려고 한다. 다만 사람의 뇌가 생각을 위해 디자인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항상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 윌링햄에 따르면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으면 사람은 생각을 즐긴다.”고 한다. 정신적 작업을 즐기느냐 싫어하느냐는 난이도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어려우면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생각 거리가 너무 쉬우면 금방 지루해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그 많은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다 처리해낼 수 있는가? 사람들은 하루의 빡빡한 일과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일 사람들이 각 과제를 해결할 때마다 매번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반나절도 못돼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고 말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하루에 마주하고 해결하는 수많은 문제나 과제들은 이미 이전에 해결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기억에 의존해 자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라면을 끓이는 과정을 보자. 생전 처음으로 라면을 끓일 때는 물은 얼마나 필요하고 양념과 라면은 언제 넣고, 얼마 동안 끓이는지 등 절차와 방법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어떤 순서로 끓이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과거 하던 대로 손쉽게 끓인다. 매사가 다 그렇다. 처음 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럽다. 그러나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문제의 해결이 쉬워지고 자동화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적 지식이 이미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번번이 새롭게 생각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이는 분명히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다. 뇌는 이렇게 진화해 왔다. 이세돌이 바둑을 잘 두는 것은 수많은 기보를 암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읽기를 잘하는 사람은 글을 많이 읽어서 유사한 패턴을 많이 기억하고 이를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지질학자는 다양한 암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 수수께끼(1): 아래 그림처럼 가로 세로가 각각 3미터인 공터가 있다. 이 공터에 6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하나의 가로 줄에는 최대 2그루까지만 심을 수 있다. 대각선상에도 2그루까지만 심을 수 있다. 어떻게 심어야 하는가?

♦ 수수께끼(2): 아래 그림처럼 하나의 정사각형 안에 9개의 칸이 있다. 총 6개의 ×를 넣어야 한다. 단, 가로 선상에는 2개의 ×만 넣을 수 있다. 어떻게 ×를 넣어야 하는가?

수수께끼(1)을 풀어본 사람은 나중에 수수께끼(2)를 풀 때 수수께끼(1)을 풀 때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풀었던 기억을 회상해서 풀게 된다. 두 수수께끼의 심층구조가 똑같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라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보자. 사고는 느리고(slow), 노력이 많이 들고(effortful), 불확실하다(uncertain)는 3가지 속성을 지닌다. 우선 다음 수수께끼를 풀어보면서 사고의 이런 특성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 ♦ 수수께끼: 텅 빈 방에 촛불 하나, 성냥갑 하나, 작은 압핀 한 박스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촛불을 방바닥으로부터 1.5미터 높이에 켜 둘 수 있을까이다. 초를 녹여 벽에 붙여보려고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손으로 촛불을 들고 있지 않는 한 방바닥으로부터 1.5미터 높이에 촛불을 켜두는 방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가능한 방법이 있을까? |
1) 사고는 느리다.
사람의 사고는 눈으로 보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에 비해 느리다. 가령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정원에 들어서면서 ‘음~ 파란 것이 있군. 아마 잔디겠지. 어쩌면 진짜 잔디가 아닐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저기 세워져 있는 것은 뭘까? 아마 울타리겠지.’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그냥 직관적으로 정원, 잔디, 울타리를 한 눈에 알아차린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 시스템은 시각 시스템만큼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거나 답을 계산해내지 못한다.
2) 사고에는 노력이 많이 든다.
시각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데는 많은 의식적 노력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를 하려면 주의를 대상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시각을 이용해 사물을 볼 때는 동시에 다른 과제를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때는 다른 것을 동시에 생각할 수 없다.
3) 사고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사람의 시각 시스템은 좀처럼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실수를 범한다 하더라도 얼추 비슷한 것을 진짜인 것으로 착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비슷하게라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위 3가지 특성처럼 그리 믿을만하지 않다. 위 촛불 관련 수수께끼를 풀면서 직접 경험해 봤을 것이다. 좀처럼 답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결정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가능한 한 생각하기를 피하고 과거의 경험을 끌어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새로 생각하는 것보다 에너지도 덜 들고 훨씬 더 수월하다. 실제 하루에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인간의 기억시스템이 사고시스템보다 훨씬 더 믿을만하다. 노력을 덜 들이고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운전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는 신경이 쓰이는 일이 많지만 늘 다니는 출근길은 별다른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리하면 사람의 뇌는 생각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다음 2가지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① 시각의 사용(vision), 몸동작(movement) 등과 같이 가장 중요한 기능의 일부는 사고의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사물을 보고 파악한다.
② 사람은 생각(thinking)보다는 기억하고 있는 것을 사용해 자신의 행동을 안내한다. 나아가 사람의 뇌는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경우 나중에는 자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변화해간다. 사람이 어떤 과제를 처음 수행할 때는 많은 노력과 주의력이 필요하지만 반복할수록 생각하는 과정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다.
사람이 생각하는 과정이 느리고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급적 생각을 피하도록 진화해왔다면 이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어야 하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언뜻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이 심하게 생각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실은 생각에 그리 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생각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호기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기를 쉽게 포기한다. 즉 뇌가 사고에 능한 기관은 아니지만 수수께끼 풀기,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정보 밀도가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 보기 등과 같이 특정 상황에서는 생각하기를 즐기는 경우도 많다.
사람이 생각하기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문제’를 풀어 답을 맞히면 즐거움이라는 보상을 얻게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때 ‘문제’라는 것이 시험에 나오는 문제와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렵지만 의미 있는 산문(prose)을 읽는 일, 향후 대학에 진학할 때 어떤 전공을 택할지를 찬찬히 판단해 보는 일, 휴가 때 어디로 여행을 갈까를 결정하는 일 등도 ‘문제’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 성적이 향상되는 것, 또 경험하게 되는 기쁨 등은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이는 다시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게 한다. 이렇게 사람은 생각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문제가 너무 어렵지 않아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했을 때 즐거움이라는 보상을 받게 된다면 생각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고가 이처럼 느리고, 노력이 많이 들며, 결과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 배우는 것이 있고 즐거움이 수반되므로 사람은 기꺼이 생각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는 교실 수업 상황에서 어떤 함의를 가질까? 학교 수업에서 중하위권 학생들의 상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만성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문제를 마주하기 때문에 좌절만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이 사고를 기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로 학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의 과제를 제시하고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기억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쌓는 노력을 병행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기억에 배경지식을 축적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임시적 조치가 필요하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선행조직자(advance organizer)1의 제공을 통해 배경지식(사전지식)을 구축할 경우 작업기억의 인지부하를 줄일 수 있어 사고에 도움이 된다.
4. 작업기억에서의 사고 작용과 장기기억 속 지식과의 관계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등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작업이 일어나는 작업기억 시스템의 성능(예: 정보를 일시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여유 공간의 크기, 주의 집중력)이 좋아야 한다. 사람의 작업기억은 인간의 의식이 작동되고 사고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리고 작업기억 시스템이 잘 작동할 수 있기 위해는 장기기억에 충분한 배경지식(사전지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어떤 의식적 활동도 기억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장기기억 속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사는 매일 보는 똑같은 학생도 매일 새로운 학생으로 보이고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자 하면 매번 그 순간 이름을 다시 물어봐야 한다. 기억 없이는 인간의 정상적인 활동도, 예측하고 계획하는 일도, 학습도 불가능하다.
<도표 1> 인지 시스템(정보처리모델)

사람의 인지적 사고는 위 도표처럼 작업기억에서 일어난다. 위 도표를 통해 인간이 고등사고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왜 사실적 지식이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 문제해결력과 같은 사고는 특정 지식과 다른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함으로써’ 가능하다. 사람은 위 도표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처럼 외부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와 장기기억으로부터 인출한 정보 이 두 가지를 작업기억에서 ‘연결시키며(비교하고 참조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작업기억과 장기기억 사이에 양방향 화살표가 있는 것은 작업기억에서 작업한(정보 처리한) 내용은 장기기억에 다시 저장되고 이렇게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필요할 때 작업기억의 작업대로 다시 불러와 인지적 작업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통해 보자. 가령 ‘15 × 3’이라는 연산을 할 때 어떤 학생은 아래와 같은 절차를 수행할 것이다.
① 10 × 3 = 30
② 5 × 3 = 15
③ 30 + 15 = 45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 뇌의 작업기억에서는 위 <도표 1>처럼 가장 먼저 외부 환경(즉 교과서나 문제집 혹은 칠판)으로부터 ‘15 × 3’을 받아들여 작업기억에 일시적으로 유지한다. ‘10 × 3 = 30’, ‘5 × 3 = 15’라는 사실적 지식은 장기기억 속에서 작업기억의 작업대로 불러온다. 이런 절차를 통해 ‘30 + 15 = 45’라는 답을 산출한다. 이렇게 작업기억에서는 외부 환경에서 가지고 온 정보와 장기기억 속의 필요한 정보를 불러와 이를 ‘연결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한 가지 커다란 제약은 작업기억에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정보의 수가 성인의 경우라도 평균 4-5개(chunk)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성인이 아닌 아동의 경우 작업기억 용량(capacity)은 이보다 더 작다. 동시에 다루는 정보의 수가 4-5개를 초과하게 되면 초과되는 정보는 소실되고(주의를 기울일 수 없어) 이에 대한 사고는 불가능해진다. 사람의 모든 사고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핵심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와 장기기억에서 불러온 정보를 동시에 유지시키며 비판적 사고, 추론, 문제해결 등을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작업기억에서 문제해결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① 외부 환경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다(예: 문제의 설명이 정확하고 충분해야 함).
② 작업기억에 유지하는 정보의 수가 4-5개의 청크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초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게 묶어주고 처리한 정보는 신속히 장기기억으로 옮김).
③ 장기기억에 충분한 배경지식(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을 갖춘다(배경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선행조직자를 통해 수업 시작 시점에 배경지식을 구축함).
위 3가지는 사고가 일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고로 “사실적 지식의 습득 대신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힘써야”는 하루 속히 퇴치해야 할 잘못된 통념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작업기억에서의 사고와 장기기억의 지식과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다음 6개의 문자군을 읽은 다음, 이를 보이지 않게 가린 후에 몇 개나 회상할 수 있는가?
<목록 1>
XCN
NPH
DSO
SHO
TFA
QX
아마 작업기억 용량이 평균적인 사람들이라면 4-5개 정도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업기억 용량이 특별히 크거나 주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예외적으로 6개 모두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철자들은 어떤가? 한 번 주의 깊게 읽은 후 이를 가리고 몇 개나 정확히 회상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자.
<목록 2>
X
CNN
PHD
SOS
HOT
FAQ
X
아마도 <목록 1>보다 <목록 2>의 철자군이 회상하기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실제 <목록 1>과 <목록 2>를 구성하는 철자들은 숫자나 내용 모두 똑같다. 다만 어떤 철자를 어떻게 묶었는가(grouping)의 차이뿐이다. <목록 2>의 CNN, PHD, SOS, HOT, FAQ 등이 기억하기도 회상하기도 쉬웠던 이유는 이들이 익숙하고 의미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의미가 있는 정보는 익숙하지 않고 의미가 없는 정보에 비해 작업기억의 공간을 덜 차지한다. 작업기억 공간을 덜 차지하면 작업기억 공간에 여유를 제공하고 이 여유는 생각할(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그리고 익숙하고 의미가 있는 정보는 그렇지 않은 정보에 비해 기억하기 쉽다.
<목록 1>의 철자들이 주는 기억 부담이 각 철자의 합인 17개에 가깝다면 <목록 2>의 기억 부담은 6개 정도이다. C, N, N이 CNN으로 묶이게 되면 하나의 의미 단위(chunk)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장기기억 속에 CNN이 의미 있는 사실적 지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장기기억 속의 사실적 지식은 작업기억의 정보를 청크로 묶고(예: C, N, N → CNN) 그 결과 작업기억 시스템의 기억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기억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정리하면 장기기억에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과 질이 작업기억을 통한 사고력(예: 창의력, 논리적 추리력 등의 고등사고력) 발휘와 작업기억에 일시적으로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용량)을 결정한다. 따라서 사실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논리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사고는 기존의 지식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원리는 철자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렇게 장기기억 속의 사실적 지식은 사고 작용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사실적 지식의 습득 대신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힘써야”라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사실적 지식 없이는 작업기억을 통한, 사고 자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지식의 습득은 철저히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를 따른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더 빨리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다. 방대한 뇌과학 지식을 넓고 깊게 알고 계신 박문호 박사가 그렇게 많은 지식을 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분의 장기기억 속에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뇌과학에 관한 많은 사실적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는데 독자들은 이것이 틀린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그 이전에 지식의 축적이 필요하고, 상상력은 지식의 새로운 연결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지식보다 역량이 중요하다”라는 명제가 학교 사회를 지배한 적이 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역시 틀린 말이다. 지식과 역량이 마치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량(skills)은 지식이 활용될 때 그 순간 발휘되고 포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역량의 발휘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가치가 적지만 사실적 지식의 뒷받침 없이는 고등사고력과 같은 역량의 발휘도 불가능하다. 미중관계나 한미관계, 한중관계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 없이 이들 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토론하거나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지식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챗GPT에게 물어볼 수 있기 때문에 애써 습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뇌의 작동원리에 대해 무지함을 나타낼 뿐이다. 비판적 토론과 비판적 글쓰기를 일일이 인터넷을 검색해가면서 할 수 있는가? 없다. 너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나 비판적 사고는 이미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단편적 사실적 지식의 가치가 크다는 뜻은 아니다. 단편적 사실적 지식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적지만, 이를 연결하고 활용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배경지식은(장기기억 속의 사실적 지식은) 독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다음 예를 보자.
“저녁 식사를 위해 나의 상사가 올 때 나는 새로 산 바비큐를 사용하지 말아야 해.”
이 말은 2가지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새로 산 바비큐의 사용’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상사가 올 때 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말한 사람이 생략하고 있는 2가지의 배경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하나는 사람들은 새로 산 도구(여기서는 바비큐를 위한 석쇠)를 사용할 때 종종 실수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식사에 초대한 상사를 기분 좋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결국 이 말을 한 사람은 새로 구입한 바비큐 석쇠를 사용하다가 요리를 잘못할 수 있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글에서 생략해도 좋은 배경지식은 생략한다. 이렇게 정보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배경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리하면 배경지식(관련 사실적 지식)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 필자가 생략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
• 내용이 모호할 때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 작업기억 상의 정보를 묶을 수 있게(chinking) 해준다.
지식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지식은 사고의 과정에 연결시킬 수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사고의 과정과 깊이 얽혀 있는 한 덩어리인 것이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또는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는 판단하기 위하여 사실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문제의 여러 측면을 균형 있게 보고, 회의적 태도로 의문을 제기하며, 편향되지 않은 분석 혹은 이용 가능한 사실적 증거로부터 결론을 추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학교교육의 주요 목표의 하나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력 자체를 직접 지도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비판적 사고력은 자전거 타기와 같은 기능이 아니어서 배웠다고 해서 어떤 상황에든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지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비판적 사고력은 그 자체를 직접 가르치거나, 훈련할(연습할) 수 없다. 또한 비판적 사고력은 어떤 맥락과 주제에 대해서든 적용할 수 있는 기능과 전략(skills and strategies)의 집합이 아니다(Daniel Willingham, 2016). 비판적 사고력은 해당 분야의 지식(domain knowledge) 즉 관련 배경지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력의 지도는 깊이 있는 교과지식을 충실히 갖춘 상황에서 내용지식과 긴밀히 연계시키며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주제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deep knowledge)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섣불리 범교과적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것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굳이 하려면 먼저 ‘동원되는 각 교과의 배경지식을 학생들이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하는 범교과적 프로젝트 수업은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인지과부하로 인해 좌절감만 안겨줄 것이다.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의 또 다른 한계는 이를 통해 습득한 역량이 다른 상황에 전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력은 해당 교과지식이 풍부한 교과 내에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판적 사고력 향상을 위해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위인지 전략이다. 이를 잘 구사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인 비판적 사고력의 발휘도 촉진되다. 교육과정 총론에서 6가지 핵심역량을 정의하고 있는데 이들 역량이 어떻게 길러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배우면 다양한 상황에 전이 가능한 것처럼 오도할 수 있어 이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 깊이 있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면 어떤 것이 깊이 있는 지식인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령 교사가 4학년 학생들에게 “열대우림에서 사는 삶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두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고 하자.
• 학생 A: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요.”
• 학생 B: “저는 열대우림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토양 상태가 좋지 않고 항상 그늘이 지기 때문에 식단에는 고기가 포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채식주의자이거든요.”
위 대답 중 ‘학생 A’의 답변은 깊이가 부족한 피상적 답변이다. 그러나 ‘학생 B’의 답변은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는 깊이 있는 답변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인 비판적 사고력을 갖추기 위해서 풍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1) 사실적 지식을 의미 있도록 가르친다.
한국에서는 ‘기계적으로 암기한 단편적 지식’은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지식은 다른 지식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갖게 되고 쓸모가 커진다. 이 칼럼에서 말하는 ‘사실적 지식’은 가령 어떤 역사적 인물이 시대별로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자세히 암기하고 있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대기를 풍부하게 읽고 그 사람이 남긴 업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시대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아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사실적 지식을 가르칠 때는 기존의 지식과 연결을 지으며 의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단순 기계적 암기에 의한 지식의 축적은 연결과 의미를 결여하기 때문에 전이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지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피상적 지식이라도 이런 지식조차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2) 주요 교과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과학, 사회, 역사, 수학 등의 핵심 교과 학습에서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교과에 나오는 핵심 어휘와 지식을 잘 갖출 필요가 있다. 모든 지식을 다 기억할 수도 또 다 학습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교과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주요 개념을 깊이 있게 학습할 필요가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깊은 이해 즉, 개념적 이해를 강조하고 있고 현재의 교육과정이 이해중심교육과정을 지향하는 것도 지식의 홍수 시대에 어떤 지식을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교사들이 개념기반 수업지도 스킬을 익히고 개념기반 학습을 잘 안내해 줄 필요가 있다.
3) 지식이 풍부한 교과과정의 제공을 통해 지식을 부수적으로 배우게 한다.
지식은 반드시 명시적으로 가르쳐서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부수적으로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며 또 교과 내용을 배우며 많은 어휘를 부수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사실적 지식을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휘와 지식이 풍부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가 수업에서 의도적으로 어떤 사실적 지식이나 어휘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이에 노출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지식의 습득을 취학 전 일찍부터 돕도록 한다.
지식의 구축은 복리 금리의 특성을 닮았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이라도 이것이 가속적으로 증가하는 바탕이 된다. 지식이 쌓일수록 새로운 지식이 쌓이는 속도가 증가한다. 그래서 취학전 유아의 지식 축적은 특별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가 얼마나 다양한 언어나 지식에 노출시키느냐가 아동의 장기기억에 어떤 지식을 갖추어 주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리과정을 통해 명시적 지도는 않더라도 많은 어휘와 지식을 부수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풍부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초등 저학년 때 기초 어휘와 기초적인 사실적 지식이 부족하면 점점 더 뒤처지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따라잡기가 더 어려워진다. 가정에서 풍부한 언어 노출이 없었던 아동들에 대해서는 누리과정과 초등 저학년 교사들이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읽기뿐만 아니라 듣기, 시범 보여주기, 다양한 체험활동 제공하기 등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사고(思考)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며 이를 위해 장기기억 속에 사실적 지식을 잘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사실적 지식의 습득 대신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힘써야”라는 잘못된 통념은 지식과 사고를 분리해서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이 인지심리학을 비롯한 학습과학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속설을 구분해 내고 정설을 따르기 위한 데 있다. 물론 학습과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최적의 학습환경이 무엇이고 인지과부하를 일으키지 않는 수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간에 근거 없이 떠도는 교육 속설을 속설이라고 말하고 이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교사가 학습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의 하나로 신경 속설(neuro myths)이 난무하는 교육 현장에 무분별한 상업주의의 침투를 막고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방법으로만 수업을 지도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학습과학에 대해 가장 먼저 학습해야 할 사람들은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과 교육과정 학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나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자들이다. 아직도 교육과정에서는 지식과 역량과의 관계를 추상적으로만 언급할 뿐이며 비판적 사고력과 같은 고등사고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습득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현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자들이 분발해주기 바란다.
역량이 무엇인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역량의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역량은 깊이 있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다니엘 위링햄 교수가 남긴 말, “사실적 지식이 역량보다 우선이다(Factual knowledge precedes skill.)”는 모든 교육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지침이다. “사실적 지식의 습득 대신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힘써야”라는 주장은 지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지식과 역량이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과 역량도 사실적 지식 위에 구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교육계에서 더 이상 “지식은 언제든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교육이 지식의 습득에 중점을 둘 필요가 없다”는 헛말을 통해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더 이상 폄훼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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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Daniel Willingham, (2021). Why don’t Students Like School? 2nd edition.
A Cognitive Scientist Answers Questions about How the Mind Works and What it Means for the Classroom.
• Daniel Willingham, (2016). Knowledge Matters: Restoring Wonder and Excitement to the Classroom.https://knowledgematterscampaign.org/wp-content/uploads/2016/05/Willingham-brief.pdf
• Lucie Renard, (2020). How to motivate students to enjoy learning – Part 1.
https://www.bookwidgets.com/blog/2016/10/the-peculiar-brain-of-the-student-part-1
• Lucie Renard, (2020). How to motivate students to enjoy learning – Part 2.
https://www.bookwidgets.com/blog/2016/11/the-peculiar-brain-of-the-student-part-2
• Ollie Lovell. Are Facts more Important than Critical Thinking?
https://www.ollielovell.com/pedagogy/facts-important-critical-thinking/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1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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