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3-04-04 16:31
| “암묵적 교육과정은 의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나, 그것의 교육적 영향력의 존재 자체가 간과되고, 영향력의 교육적 속성이 파악되지 않은 채 방기되기 쉽다.” (본문 발췌) |
A: 심리학 같은 교양과목은 교사자격증만 있으면 가르칠 수 있어요.
B: 아…. 그래도 저는 심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요…. 교육과정을 보니 상식을 갖고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던데요….
A: 그렇긴 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학교 심리학 수업은 네 분의 선생님이 한 반씩 맡아서 하실 테니까요.
B: 저희 과목군의 평균 시수가 적으니 어쩔 수 없네요….
위의 대화는 가상의 대화이지만, 많은 고등학교 선생님들께서 익숙해할 만한 대화 내용이다. 해마다 2월이 되면 각 학교에서는 누가 몇 학년의 무슨 과목을 가르칠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비교적 담당 수업 시수가 적은 교과군에서 다른 교과군 교사들의 수업시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교양수업 시수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A 학교의 3학년 학생들을 위해서 교양과목인 심리학이 개설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과학 교사가 4명이고, 과학 교사의 평균 시수가 다른 교과군 선생님들의 평균 시수보다 1시간 작다면, 그리고 한 학기에 한 시간짜리 심리학 수업이 네 개 반을 대상으로 개설되었다면, A 학교의 과학 선생님들은 각각 심리학 수업을 한 반씩 맡으실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 수업 시수를 쪼개 나누어 가짐으로써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시수의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심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은 선생님이 심리학 수업을 맡는 것이 아니다.
A 학교 과학 선생님인 B의 입장에서 상황을 정리해 보자. B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경지식도 거의 없으며, 고교학점제 덕분에 본인의 원래 전공 수업도 2개 이상의 과목을 맡고 있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수업을 준비한다고 해도 한 반만 가르치니 준비한 것을 반복해서 활용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번 한 해 열심히 준비해서 심리학 수업을 한다고 할지라도 B가 내년에 또 심리학 수업을 할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그렇다면, B는 심리학 수업을 제대로 준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심리학은 시수 조정을 위해 맡은 것이 아닌가. 심리학이 고3 수업으로 개설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입시와 관련 없는 과목인데다가 2학기에는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과에서 맡게 된 심리학 수업 시간의 많은 부분은 자습 시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1
암묵적 교육과정(implicit curriculum)
심리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과목을 선택한 아이들이 심리학을 제대로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2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심리학에 관한 관심만 유지하고 있다면,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서 심리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과 관련해 더 중요한 우려의 지점은 ‘아이들이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닌 ‘아이들이 이 상황을 통해서 배운 것’과 관련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이와 유사한 상황을 매우 빈번하게 경험한다. 주로 3학년에 개설되는 교양과목의 파행적 운영은 심리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3학년 2학기에는 다른 많은 수업도 파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수능 이후에는 거의 모든 수업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매일 수 없이 반복되는 유사한 현상을 통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나는 아이들이 ‘했다 치고 안 하는 것의 정당성’을 배울까 봐 매우 두렵다. 공식적으로는 수업을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정당성’을 내면화할까 우려된다.
아이들은 명시적, 공식적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습할 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기술된 공식적 교육과정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암묵적 교육과정3을 통해서 배운다. 학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역동적으로 기능하는 복잡계이다.45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다양한 교육적 변수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여러 전문가의 연구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지만, 복잡계를 구성하는 모든 변수를 다룰 수 없고, 따라서 학교라는 복잡계 내에서 공식적 교육과정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학습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즉 암묵적 교육과정의 존재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암묵적 교육과정은 의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나, 그 ‘암묵적’ 속성에 의해서 그것의 교육적 영향력의 존재 자체가 간과되고, 영향력의 교육적 속성이 파악되지 않은 채 방기되기 쉽다.6
이야기를 더 전개하기 전에, 교육과정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반복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암묵적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사례를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암묵적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제일 먼저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지필고사의 점수 배점 방식이다.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지필고사 문항에 소수점 배점을 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예를 들어, 난이도 ‘상’의 문제는 4.4점, 4.5점, 4.6점, 4.7점 등을 주고, 난이도 ‘중’의 문제는 3.5점, 3.7점, 3.9점 등을 주는 식이다. 점수의 배점은 보통 난이도를 반영하므로, 4.4점짜리 문제가 4.5점짜리 문제보다 약간 더 쉽다는 논리가 성립된다.7 그러나 정말 그럴까? 4.4점짜리 문제가 4.5점짜리 문제보다 0.1점만큼 더 쉬워서 그렇게 배점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지필고사에서 소수점 배점은 1등급을 받는 학생의 숫자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동점자가 많으면 1등급을 받는 아이들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동점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소수점 배점을 하는 것이다.8
고등학교의 소수점 배점과 관련된 암묵적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학생들은 ‘평가의 목적은 서열을 매기기 위한 것이다’, ‘학교의 평가는 1등급을 받아야 하는(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학생을 위주로 진행된다’, ‘평가의 목적은 학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소수점 배점의 암묵적 교육과정으로서의 함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줄 세우기를 위해 도입된 소수점 배점의 기능이 절대평가 실행을 위해 도입된 성취평가제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점 배점이라는 기이한 도구로 줄 세우기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취평가제라는 절대평가제도를 통해 학생의 안녕을 도모하고 있다는 대국민 홍보가 병행되고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학생에게 전달하고 있는 암묵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혹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일반성 혹은 정상(定常)성’아닐까. 다시 말해, ‘모두 그렇게들 해. 그러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큰 문제될 건 없지’와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림 출처: 학생평가지원포털. 학생평가지원포털의 안내자료는 성취평가제의 도입배경으로 ‘근소한 차이로 석차나 등급이 달라지는 기존의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상대평가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소수점 배점에 의해 근소한 차이로 석차와 등급이 달라지는 일은 여전히 많은 고등학교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암묵적 교육과정, 암묵적 학습, 그리고 암묵적 지식의 전이
부적절한 암묵적 교육과정에 의한 학습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을 갖는 이유는, 많은 경우 암묵적 교육과정이 암묵적 학습(implicit learning)과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암묵적 지식은 지식의 소유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력하게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9 암묵적 학습이란 복잡한 현상에 대한 ‘깊고 추상적인 지식’을 의식적 통제 없이 습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로 모국어 습득과 사회화과정이 있다.10 암묵적 학습은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을 생성할 수 있는데, 암묵적 지식이 ‘암묵적’ ‘지식’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학습자가 실제 소유하고 활용하고 있는 지식이지만, 학습자 자신은 자신이 해당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1 암묵적 지식은 자동화된 지식이며 의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처리되어 사고와 행동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것은 해당 지식을 활용하는 사람이 자신이 소유하고 활용하고 있는 지식의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교양과목 수업과 소수점 배점 등을 통해서 학생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일반성 및 정상성’을 학습하게 된다면, 이러한 지식은 학습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학습자에 의해서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암묵적 학습은 복잡한 현상에 대하여 ‘깊고 추상적인 지식’을 의식적 통제 없이 습득하게 하는 것이며 ‘깊고 추상적인 지식’은 높은 전이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12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일반성과 정상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 지식으로 습득하게 된 학습자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부적절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이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다양한 새로운 맥락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암묵적 교육과정에 대한 명시적 검토의 필요성
암묵적 교육과정은 교육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고, 부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이때 교육적으로 적절하다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13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의 일상성과 정당성’을 내면화하게 하는 것은 부적절한 암묵적 교육과정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암묵적 교육과정이 교육적으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내면화하게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적절한 암묵적 지식이 학습자의 생각과 행동에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식의 암묵적 특성에 의해 학습자가 자기 행동과 사고에 대한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 다양한 맥락에 자동화된 정보처리를 거쳐 강력하게 전이되는 것이라면, 암묵적 교육과정의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부적절한 암묵적 교육과정의 메시지를 파악하여 더 이상 그러한 메시지를 학습자가 내면화하지 않도록 조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매우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영국 버밍엄대학의 제인 마틴 교수는 암묵적 교육과정에 대한 교육적 통제를 위하여, 우선 암묵적 교육과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14 암묵적 교육과정의 ‘암묵적’ 속성상 그 교육과정이 주는 메시지는 교사나 학생이 쉽게 의식하기 어려운 형태로 제공되고 있으므로 보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하여 우리가 속한 교육 현장에 어떤 암묵적 교육과정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암묵적 교육과정의 메시지가 파악된 이후에는, 실제로 어떤 구체적 접근과 활동으로 그러한 메시지가 구현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학습자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피며, 파악된 메시지가 비교육적인 경우에는 그 메시지의 부정적 영향력을 어떤 방식으로 감소시킬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암묵적 교육과정을 수면 위로 떠올려 객관화시키고 그 교육적 적절성을 명시적으로 분석하여 분석 결과에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암묵적 교육과정을 수면 위로 떠올려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육적’이라는 것 자체가 ‘습득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도덕적으로 정당한 방식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고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은 명시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암묵적 교육과정의 도덕적 정당성과 가치를 논의하는 그것이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극단적 갈등과 폭력적 행위가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인정을 중심으로 발생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암묵적 교육과정을 논하는 것과 관련된 숨겨진 위험은 암묵적 교육과정을 더욱더 암묵적으로 만든다. 허심탄회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교육적 행위에 대한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을 논의하고 타인의 의견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구성원에게도 매우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지식을 학습하게 할 수 있는 암묵적 교육과정을 명시적으로 논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그것은 방치된 ‘방 안의 코끼리’가 방 안의 가구를 모두 부수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것처럼 교육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암묵적 교육과정을 논하는 것이 가치와 도덕적 정당성을 논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쉽고 이로 인해 격렬한 갈등을 가져올 수 있으며 교육생태계의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기 쉽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바로 공교육이 고립되고 폐쇄된 생태계가 아니며 공교육이 속한 사회적 문화적 가치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되 구조적인 문제를 핑계 삼지 않으며, 교육이라는 복잡계 안의 각 구성원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암묵적 교육과정을 수면 위로 떠올려 명시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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