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3-04-04 16:02

| “잠자는 아이들의 주요 원인이 다른 쪽이거나 IBO(국제 바칼로레아 기구)에 적지 않은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서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높이는 다른 교수학습 방식이 병존한다면 굳이 IB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 (본문 발췌) |
잠자는 아이들은 학습된 무기력을 보여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학교 붕괴, 혹은 교실 붕괴라는 교육 담론이 확대되었고, 2010년 이후에는 교권 침해도 두드러짐에 따라 교육문제는 점점 더 깊어졌다. 이런 현상을 여러 키워드로 설명하지만, ‘무기력’은 제외할 수 없는 코드이다. 무기력은 교사나 학생에게 단순한 피로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인간이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실제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아예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듯이 교실에 학습된 무기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수록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는 일어나지 않으며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의식이 희미해지며 교직을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으로만 받아들인다. 물론 교육당국이나 교사들이 그동안 이런 문제에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다양한 진단과 이에 따른 구조적인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지난 10년 전만 보더라도 다수 교육청은 배움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했으며, 지금은 AI를 활용하는 디지털 디바이스 수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현재의 처방이 학습된 무기력을 벗어나게 해줄지 의문스러우며 오히려 교육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학습된 무기력을 보여주는 전형적 현상이 ‘졸린 아이들’, ‘잠자는 교실’이다. 즉 수업에서 잠자는 아이는 어느새 학교가 공교육의 근간으로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역할을 상실해버렸다는 사회적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잠자는 학생의 수는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에서 더 많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학생)는 수학과 영어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을 표현하는 별칭(別稱)이다. 나아가 2020년 EBS 다큐 ‘다시 공부, 다시 학교’에서의 현직 교사나 고등학생 인터뷰에서 보듯이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0%, 20%는 그냥 자죠, 습관화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 이 선생님 시간에는 자도 내버려 두시더라.’ 이런 게 고착화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선생님 수업이 기다려진다. 선생님 수업은 들어야 한다.’ 그런 수업이 됐으면 좋겠는데…”
강도렬 고등학교 교사 <EBS 다시 공부, 다시 학교>
“별로 안 좋아하거나 관심 없는 과목들은 거의 자요. 솔직히 조금 많이 죄송하죠. 자니까. 수업에 대한 예의는 아니잖아요. (중략) 어쩔 수가 없죠. 너무 졸려서요. 참을 수가 없어요. 현실적으로 중요 과목을 더 해야 하거든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 인터뷰 <EBS 다시 공부, 다시 학교>
모든 인간이 적정한 수면시간으로 알려진 8시간의 수면을 하지는 않는다. 6시간만 자도 충분한 나폴레옹형, 10시간을 자야 하는 아인슈타인형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리듬과 맞지 않는 수면시간이나 수면의 질은 본능적으로 낮에 잠이 오게 한다. 수면 과학에 따르면 학생은 성인에 비해 통상 1∼2시간 정도 더 잠을 자야 하며, 그것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성인을 기준으로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을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는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자신의 신체리듬에 맞게 잠을 잤으며, 휴식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깨어있던 학생들이 수업만 시작하면 왜 잠자기 시작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 점에서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장의 “IB 교육과정의 도입으로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깨울 수 있다”라는 주장은 공교육에 긍정적일 수 있다.
“IB를 도입하려는 단기 목적은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IB는 교과서의 정답, 교사의 생각이 아니라, 개별 학생 각자의 관점과 시대가 요구하는 정교한 평가 패러다임이므로 학생 각자마다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
2023.2.7. 국회 토론회 <IBDP 도입이 공교육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8∼9쪽>
게다가 이혜정 소장이 지적했듯이 현재 학교 수업이 학생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였고, IB가 정교하게 구성된 평가 패러다임으로서 그 기회를 복원하는 최적의 유일한 교육과정이라면 응당 IB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잠자는 아이들의 주요 원인이 다른 쪽이거나 IBO(국제 바칼로레아 기구)에 적지 않은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서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를 높이는 다른 교수학습 방식이 병존한다면 굳이 IB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수면시간과 수면 질이 학습 수준을 결정한다
수면이 배움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뇌는 배움의 중추이며 부위에 따라 발달 시기는 다르지만, 수면 중에 가장 잘 발달한다. 또한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수면 중에 가장 소비량이 많은데서 알 수 있듯이 잠잘 때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므로 뇌는 수면 중에 활동을 쉬거나 멈춘다는 속설은 거짓이다. 특히 뇌는 초·중·고 시기에 매우 빠르게 발달하므로 이 시기에의 적절한 수면은 필수적이다.
수면은 램수면인 얕은 수면과 비램수면인 깊은 수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단계 모두 기억을 강화한다. 잠을 자게 되면 먼저 램수면에 이르는데 이때 측두엽(관자엽) 안쪽 변연계에 있는 해마의 작용이 두드러진다. 해마는 낮에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정보 대부분을 수면 중에 작업하거나, 낮에 처리하여 단기기억 상태로 유지한 정보를 정리·정돈함으로써 비램수면 단계에서 대뇌 피질 여기저기로 분산, 저장되도록 사전 준비를 마친다. 따라서 수면이 부족하면 외부 정보는 작업되지 않고 없어지거나, 뇌의 한 편에서 뒤죽박죽 상태로 있다가 묵시적인 기억으로 남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작업된 정보라도 명시지가 아닌 암묵지의 영역인 무의식으로 들어간다. 흔히 숙면으로 불리는 비램수면도 중요하다. 감정이 실린 기억은 램수면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지만 국어, 영어, 사회, 수학 등과 관련된 지적 정보는 깊은 잠인 비램수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학습 시간이나 학습량이 많더라도 수면의 양과 질이 좋아야만 학습한 내용이 온전히 장기기억으로 전환될 수 있다. 요컨대 수면시간이 부족하거나 그 질이 떨어지면 수업에 적극 참여한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기억하는 정보가 매우 적은 탓에 비효율적인 학습을 할 뿐이다.
그러면 뇌는 왜 낮보다도 수면시간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인간 뇌의 용량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인간 뇌는 입력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작업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에는 처리 용량이 충분치 않으므로 신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한다. 그 방법이 바로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즉 수면시간에) 기억할 정보와 버릴 정보를 구분하고 기억할 정보만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뇌는 기억할 정보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처리하는 장소가 다르다. 긍정적인 기억은 주로 해마가, 부정적인 기억은 주로 편도체가 처리하는데 수면이 부족하면 해마의 기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수면이 부족하거나 그 질이 낮으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제대로 전환되지 못한다. 결국 수면 부족이나 수면 질의 저하는 편도체에 의해 부정적인 기억만 처리되도록 하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기억을 잘 만들어지지 않게 한다.
잠자는 아이들 문제에 대한 처방은 복합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버릴 정보와 기억할 정보를 구분하여 수용하는가?” 그 기준은 뇌의 쾌락이며 이 과정에서 장기기억으로 형성된 지식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즉 우리 뇌는 속성상 장기기억인 정보와 비슷한 정보를 수용하려고 하며, 동떨어진 정보를 잘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컨대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에서의 배움이 더딘 학생들이 상위 학년이나 상위 학교에 올라갈수록 점점 더 학력 저하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든 까닭도 이런 뇌의 속성 탓이다. 즉 휴대폰 게임 등에 빠진 학생들이 어느 순간 마음을 고쳐잡고 학습 시간을 늘리더라도 학업성취도는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업 중에 잠자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면의 양, 수면의 질, 학생의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의 양과 종류, 편도체와 관련된 정서기억, 교사의 교수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즉 학교에 IB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돌려주더라도 교과지식이 충분치 않거나 정서기억이 부정적인 학생들은 잠자는 교실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요컨대, 적절한 수면시간이 보장되고, 교과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많고 질적으로 우수한 학생, 수업에 대한 긍정적 정서기억을 갖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잘 확률은 낮다. 그러므로 교사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 지식이 장기기억에 잘 저장되도록 뇌 친화적인 수업방식으로 수업을 전환하고, 학생의 정서기억이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폭을 넓히며, 교육부나 교육청은 제도적으로 학교 등교시간이 지나치게 이르지 않도록 하는 교육 방향이 오히려 IB 교육과정의 도입보다 더 나을 수 있다.
국가 재정은 국민 참여도와 재정지출의 성과를 고려해야
지금 대부분의 교육청은 과거 교육정책이 불러온 정책 실수로 인하여 기초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런데 그 성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지식은 위계가 있으며 학생들의 배움 수준에 따라 지식 학습이 이루어질 때 효과적이다. 그런데 기초학력 수준이거나 기초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 상당수는 가장 낮은 단계인 사실적 지식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수이다. 그런 아이들이 다수 존재하는데도 사실적 지식보다 고차적인 개념적 지식 위주로 운영되는 IB를 공교육 일반에 도입하겠다는 것은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예측은 과대하지 않다. 2019년에 상영되었으며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가제(임시 제목)는 <데칼코마니>였다. 그런데 한국 교육방송(EBS)에 따르면 교사가 수업에서 학생에게 “기생충의 가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학생들은 ‘가제’를 랍스터(lobster)인 바닷가재로 이해했다. 또한 한국교육방송(EBS)이 2021년 중학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문해력 수준을 조사한 결과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27%,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보이는 학생들이 11%나 되었다. 2018년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을 보더라도 평균 미만인 2수준 미만의 학생이 34.7%였으며 그중 기초학력 미달 수준인 1수준 미만 학생은 15.1%나 되었다. 이처럼 문해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명시한 ‘모든 학생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를 고려하면 ‘교육과정에서 IB를 우선 도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은 학습과 신체적, 정신적 발달에 결정적이다. 그런데 2020년 한국 청소년 정책연구원이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교생 8천201명(남학생 4천261명·여학생 3천940명)과 교사 3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학생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18분으로, 초등학생 8시간 41분, 중학생 7시간 21분, 고등학생 6시간 3분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청소년 평균 수면시간(8시간 22분)과 비교하면 한국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그리고 잠이 부족한 이유로는 62.9%가 ‘공부’를 꼽았으며 실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2%가 수면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IB는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한 대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대안이 현실적으로 기본적이면서 더 중요한 원인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실효적이지 않거나 잠자는 아이 중에 다른 원인을 갖지 않는 학생들에게만 제한적인 효과를 줄 뿐이다. 초·중등교육은 기본교육으로서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 재정을 운용할 때 국민 참여도와 재정지출의 성과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IB 도입이 절대 선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자명하다. 무엇보다 교육청은 공적 교육을 책임지는 핵심 기관으로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보편적인 다른 여건을 먼저 갖추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이 국가를 만들고 대표자를 선발하여 국정을 운영하게 했던 근대 국가가 출발한 맥락이었다. 그리고 헌법 제 10조에서 규정하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며, 국가는 국민이 존엄한 존재로서 살 수 있도록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법적 취지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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