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5-03-18 11:26
한강하구 탐사를 13년째 해 오신 ‘환생교’ 선생님들을 따라 지난 주말에 파주시 교하면을 다녀왔다. 탐사가 두어 시간 진행되고 이런저런 설명을 접하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모든 생명들에 다 이름이 있었으며 그 이름을 불러주자 어느새 이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흰꼬리수리, 말똥가리, 왜가리, 개리, 박새, 노랑부리저어새, 오색딱따구리 등등을 마주칠 때마다 가벼운 탄성과 함께 정겨운 우리말 이름을 불러줬다. 그러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탐사활동 서너 시간 만에 주변의 자연과 생태가 비로소 살아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거의 전적으로 이미 한강하구의 생태계 친구와 지킴이로 거듭난 ‘환생교’ 선생님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분들의 실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는 모습만으로 어떤 새인지 구별했다. 선생님들은 하구와 모래톱, 습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이날 임진강 하구변의 조류생태와 주변 환경은 물론 지구과학과 지리의 기본원리까지 웬만큼 배울 수 있었다.
100% 살아있는 학습, 생태체험학습이었다. 60세가 넘은 나도 흥미진진할진대 아이들은 오죽 재밌어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까. 파주시 아이들은 임진강변 몇 군데만 돌아다니며 습지와 새를 관찰해도 지역사랑과 생태감수성이 크게 늘어날 게 틀림없다. 나는 순간 파주의 아이들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파주를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만약 파주교육장이라면 반드시 교육과정안에 필요한 시간을 넣고 아이들이 내실 있게 임진강 생태체험학습을 하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같다. 파주시장의 협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과정은 국가공통기본교육과정으로서 파주시나 경기도가 아니라 국가가 짜주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역사문화나 생태환경을 배울 수 있는 지역교육과정으로는 아직까지 초등학교 3학년의 지역탐구생활이 유일하다. 12년 교육과정 중에 초3교육과정에만 시군구 단위 지역사회를 탐구할 수 있는 교과와 교재가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은 이런 탐구활동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현장교사들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체계적이고 심화된 지역사회 탐구활동이 중등교육과정에는 독립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국 어디서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선 학교소재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 인물과 생태를 심화 학습하는 데 필요한 교육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그 결과, 예를 들자면 파주시에서 초중고를 나온 평균적인 사람이라도 막상 임진강과 그 주변의 사철 생태에 대해서는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설령 글로벌한 지식을 갖고 있어도 산지식이 아니기 쉽다. 오랫동안 몸담고 살아온 지역사회의 문물과 생태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세상 어느 곳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로컬에 뿌리내리지 않은 채 글로벌을 외치면 뿌리 없이 붕 떠있기 십상이다. 이것이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터다.
나는 지역사회 탐구가 특히 중등교육과정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역사회 탐구만큼 통·융합적인 교육과정은 없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정치와 역사, 산업과 경제, 문화와 예술, 과학과 생태를 제대로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영수사과를 비롯한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필수다. 이들 추상적인 과목에서는 다소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학생도 지역사회의 구체적 모습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관심과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지역사회 탐구는 지역사회를 매개로 교육과정 전반을 학습하는 훌륭한 응용학습이자 체험학습, 프로젝트학습의 성격을 가진다.
지역사회 탐구를 반드시 별도의 교과목으로 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과목을 가르칠 때 지역사회에 관한 단원을 따로 마련하거나 지역사회와 관련된 내용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지역사회 탐구와 이해를 교과공통 통합주제로 잡고 학년마다 프로젝트수업을 몇 차례씩 조직해도 무방하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이 직접 현장까지 샅샅이 찾아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치며 산지식을 배우는 것이 최고다. 각자가 자신의 문제의식과 체험활동을 바탕으로 탐구한 결과를 여러 사람과 함께 토론하며 다른 사람들의 지성과 경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중고등학생들이 지역사회를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학교선생님만으로는 어렵다. 일반교사들은 지역사회 탐구활동의 코디네이터로 자리매김하면 좋을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도 교육적으로 재조직되어야만 지역사회 탐구학생을 교육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교육적 내포를 갖고 있는 지역사회의 모든 영역과 기관은 학생교육지원 전담인력이나 부서를 둬야 할 것이다. 이른바, 향토사학자, 향토예술인, 향토서지학자, 향토지리학자, 향토생태학자, 향토기업인들은 지역의 초중등교육을 위해, 특히 교육과정의 지역화와 토착화를 위해, 지역교육계와 협력할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전문성과 교육자원을 흡수하여 학생교육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는 학교를 통해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어나갈 후속세대를 길러낼 것이다.
초중등교육과정의 내용은 최대한 사는 지역과 가깝게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학교소재 시군구 단위의 지역사회를 샅샅이 알 수 있게 교육과정이 짜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국에서 학생이 모일 때 이야기꺼리가 얼마나 다채로울까. 획일적인 국가공동체가 아니라 다양성을 품은 국가공동체가 되어야 바람직하다. 그 출발점은 초중등교육과정의 지역화다. 아이들이 적어도 자기지역의 대표적인 역사와 인물, 생태와 환경에 대해서는 꿰고 있으면 좋겠다. 먼 나라 이웃나라에 대한 관심 이전에, 마음만 먹으면 두발로 걸어 나가 눈으로 보고 이웃에게 확인할 수 있는 우리고장, 우리지역에 대한 관심을 학교에서 길러주면 좋겠다. 나는 임진강변을 따라 올라가며 교육과정 지역화의 꿈을 꿨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이 알고 보면 ‘임진강변’일 것이다. 중등교육과정의 지역화는 진보교육감 2기와 혁신학교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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