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6-11-02 12:20
| 교육정책이 학교에 스며들지 못하는 원인으로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의 협력 부재, 그리고 장기적 정책 설계·축적·관리 기능의 부재를 꼽고,국가교육위원회에 그 기능을 맡기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국가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과 교실에서 실현되고 있을까요? 제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7차 교육과정, 2007 교육과정, 2009 교육과정, 2015 교육과정, 그리고 고교학점제로 알려진 현행 2022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내신 상대평가만이 아니라 수능 체제와도 충돌하는 고교학점제는 여전히 파행 상태에 있습니다. 교육과정 총론도, 각론도, 교과서의 머리말도 교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가 교육과정이란 게 원래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므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신과 수능 탓일 수도 있습니다. 교육부, 교육청, 교사, 학생, 학부모가 문제일 수도 있고, 이들 각자의 서로 다른 인식과 이해(利害)가 충돌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딱 부러진 하나의 대답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게 원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의 질문을 확장하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왜 학교 현장으로 스며들지 못할까요?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직관적으로는 관료주의와 정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정부 정책의 결정 주체와 실행 주체의 분리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체계에서 결정과 집행 구조는 위계 혹은 협력의 틀로 묶여 있으므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분리 그 자체보다는 결정권자 혹은 결정 기구와 집행 기관을 운영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큰 줄기의 교육정책에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지향점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급격한 출생아 감소와 인공지능 중심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환경 조건이 있고, 이에 맞춰 여러 정부가 지향해 온 큰 줄기의 정책은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 사고력을 키우는 수업과 평가로의 전환, 학교 교육과 대학입시의 연계, AI (활용) 교육 등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모든 학생에게 같은 내용을 같은 속도로 가르치고 상대적으로 순위를 내어 줄 세울까요?” 혹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수업에서 지식을 반복적으로 가르쳐 암기시키고 선다형으로 하나의 정답을 찾게 할까요?”라고 질문하면, 누구나 그런 수업과 평가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실행하겠다고 나서면 교사들은 교사 수와 전문성 부족, 대학입시 등 여러 이유를 대며 고개를 젓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거나 이해가 다른 집단도 일단 반대 논리에 동참합니다. 새로운 정책을 파훼하려는 논리는 대개 이렇습니다. 학교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단계적으로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예산, 제도, 법령이 준비되지 않아서 실현하기 어렵다. 여기에 사교육비, 학교(교사) 불신, 민원 발생, 사회적 격차를 덧붙이면 정부는 슬그머니 정책 의지를 거둬들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새 정부가 들어와서 그 정책을 없던 일로 만듭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보아왔던 상황입니다. 지난 정부의 AI 교과서도 그런 운명을 겪었습니다. 고교학점제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면 반대 측은 일단 비난합니다. 교육부가 시끄러운 일을 벌이면 대통령실은 여론이 나빠진다며 수습하라고 합니다. 수습이란 조용히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이럴 때 단계적 실시, 시범학교, 연구학교, 연수, 여건 조성, 정책 수용성과 성과 평가 등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그 정책은 시늉만 하다가 더 추진되지 않는다고. 결국 정부의 정책 의지와 준비의 완결성이 문제입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책을 실행하지 않아서 준비하지 않는 것일까요? 문서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준비를 마친 후 실행하겠다는 정책은 결국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책을 실행할 만큼 충분히 준비된 상태란 없고, 아무도 실행하지 않을 정책을 준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정책을 예고하고 준비 단계를 거쳐 예고된 때에 실행합니다. 공개 토론, 공론화, 설득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지만, 설득당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도 그렇습니다. 미래대응기금으로 갑작스러운 재정 결손을 완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조삼모사일 뿐이라서 교육감들은 설득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치니까요.
국가 정책은 누가 결정할까요? 당연히 5년마다 새로 들어오는 대통령이 결정합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법정 사무도 대통령의 의지에 맞춰서 따라갑니다. 대선이 끝나면 정부 인수위가 각 부처 관료들과 함께 공약을 모으고 새로운 정책 리스트를 만듭니다. 이 문서가 정부 운영의 기본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각 부처가 실행 계획을 세웁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의 분리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각 부처는 인수위의 모든 제안을 문서에 담지만, 그 모두를 정말로 실현하려고 들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실과 각 부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렇게 정책을 다시 선별하는 과정에서 대개 최초 제안자가 떨어져 나갑니다. 실행 계획까지 각 부처로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고, 내려온다고 해도 관료들이 기존의 방식대로 요리합니다. 정책 주도권은 대통령실-장관-관료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합니다. 이때 부처 장악력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도 세부 사항을 모르는 정무직들은 관료주의가 작동하고 실행되는 방식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정책은 문서로 남게 되고 성과는 현실의 변화가 아니라 집행된 예산액으로 대체됩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에만 매진하면, 그 정책은 학교 현장으로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동시에 같이 논의해야 합니다.
법령에 따라 국가적으로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결정하고, 교육부는 실행 계획을 세웁니다. 두 기관은 법령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의사결정도 별도로 이루어집니다. 각자 따로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실행할지는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의 협력에 달려 있고, 그래서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 국가교육위원이 됩니다. 지난달 국가교육위원회가 중장기(2028-37년)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 발표를 연기하면서 교육부와 각급 실무 차원의 협의체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협의체는 이미 봄부터 작동했어야 하고,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의 협력 체제를 작동시켜야 할 주체는 당연히 대통령실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정책이 파편적으로 흘러나왔고 그 후속 논의가 정돈되지 못했던 이유도 대통령실-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의 협력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협력 구조에 국회와 각 교육청의 논의가 덧붙여졌어야 합니다. 협력의 부재로 인해 정책 어젠다는 ‘고’와 ‘스톱’ 사이에서 모호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국가기관 간 협력 체제의 미비는 현 법령의 한계와 함께 대통령실의 정책적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협력 구조를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완성할 수 있고, 교육부가 만들 실행 계획이 진정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국가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으로 스며들 기반이 만들어집니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 설계, 축적, 관리 기능의 부재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에는 중장기적으로 지속할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축적하는 조직과 인력이 없습니다. 이 기능은 법정 사무영역 밖에 있습니다. 교육부에도 교육정책을 만들고 축적하여 실행하고 학교 현장에 안착하도록 관리하는 조직과 인력이 없습니다. 단지 5년을 감당할 뿐입니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이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5년으로 끝나는 대통령제에서 우리가 교육정책을 통해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더 나은 미래 사회를 만들려면 국가교육위원회 혹은 교육부에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 설계, 축적, 관리 기능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 두 곳 중 어디가 더 적합할까요? 저는 행정기구의 성격상 국가교육위원회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합니다.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에 스며들려면 정책 결정과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의 협력 구조를 대통령실이 만들어야 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 설계, 축적, 관리 기능을 담당하도록 국회가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 이 글로 거의 십 년간 써왔던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교육정책은 왜 학교에 스며들지 못할까’라는 질문이 그동안 저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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