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면 교육은 더 나아지는가?

by gyobasaNPO | 2026-11-02 12:18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면 교육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미국의 학교 책무성 정책은 학교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육 격차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성과를 측정하고 공개하는 것만으로 학교가 개선되거나 불평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측정 가능한 지표가 교육의 목표를 대신하고, 학교가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까지 학교에 책임을 지울 위험도 존재한다. 이 글은 미국의 경험을 통해 학교 평가의 목적이 단순한 서열화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모든 학교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진단과 지원을 연결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학교에도 성적표가 있다. 학생이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기록하듯, 학교 역시 학생을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지 평가받는다. 미국에서는 학교별 학업 성취도와 졸업률 등을 공개해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학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발전해 왔다. 학교가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교육 당국도 개선이 필요한 학교를 찾아 지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학교 성과 공개는 교육의 투명성을 높이고 학교가 자신의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접근의 배경에는 공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같은 공교육 체계에 속해 있더라도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의 질은 다를 수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업 성취를 높이고 졸업 후 진로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받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기초학력 향상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학교 내부의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학부모에게 학교 성과를 공개하는 일은 이러한 차이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특히 학교의 교육적 성과가 학생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 학교가 어떤 교육 환경과 지원을 제공하는지도 사회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학교 성과 공개가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한 것은 교육의 질을 학교와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공교육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이며, 학교는 학생과 지역사회에 교육적 책임을 진다. 따라서 학교가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는지 공개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공교육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학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없다면 교육의 실패를 발견하기 어렵고,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개선을 요구할 근거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학교의 성과를 측정하고 공개하면 학교의 문제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정보가 학교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이 기대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제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고, 성과가 낮은 학교를 확인해야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는 일과 학교의 교육을 실제로 개선하는 일은 과연 같은 과정일까?

 

학생의 성적표가 학업 상태를 보여 주는 것처럼, 학교 성과 지표도 교육의 일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성적표에 나타난 점수가 학생의 모든 능력을 설명하지 못하듯, 몇 가지 지표가 학교 교육의 모든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학교마다 학생의 출발점과 지역 여건이 다르고, 교육의 결과 역시 시험 점수나 졸업률만으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개된 숫자가 학교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기준이 되면, 측정하기 쉬운 성과가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학교 성과 공개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있지 않다. 공교육의 성과를 사회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정당하다. 다만 공개된 정보가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놓치는지, 그리고 그 정보가 학교의 행동과 교육의 목적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학교의 성적표는 학교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일 수도 있고, 학교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도록 돕는 출발점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중 어느 역할을 하게 될지는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뿐 아니라, 그 결과를 사회가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숫자가 학교를 바꿀 수 있을까?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교육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학교가 성과에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미국의 교육정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학교 성과의 측정과 공개를 교육 책무성(accountability) 체계와 연결해 왔다. 학교가 학생을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가 나타났을 때 학교와 교육 당국이 개선을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업 성취도와 졸업률 같은 지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학교의 성과를 판단하고 정책적 대응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제정된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 NCLB)」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추진된 이 법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며,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의 학업 기준에 도달하도록 요구했다. 특히 인종, 소득, 장애 여부 등 학생 집단별 성과를 구분해 살펴보도록 함으로써 전체 평균 뒤에 가려질 수 있는 집단 간 격차를 드러내려 했다. 학교 전체의 평균 성적이 높더라도 특정 집단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낮은 성취를 보인다면, 그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었다.

 

NCLB가 추구한 방향은 분명했다. 측정과 공개를 통해 교육의 문제를 드러내고, 성과가 낮은 학교에 개선 압력을 가하면 학교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모든 학교가 동일한 기준에 따라 성과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장에서 여러 긴장을 낳았다. 학생의 학업 성취는 학교의 교육뿐 아니라 가정환경, 지역사회의 자원, 학생이 입학하기 전까지의 학습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학교가 정해진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받으면, 학교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성과를 높이라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학교는 학생의 폭넓은 학습 경험보다 평가에 직접 반영되는 과목과 지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2015년 「모든 학생 성공법(Every Student Succeeds Act, ESSA)」이 제정됐다. ESSA는 NCLB를 대체하면서 연방정부가 전국의 학교에 일률적으로 성과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州)정부의 재량을 확대했다. 그러나 학업 성취도 평가와 학교 성과 공개의 기본 틀 자체를 없애지는 않았다. ESSA는 각 주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졸업률 등을 포함한 평가 체계를 운영하고, 성과가 낮거나 특정 학생 집단의 결과가 우려되는 학교를 식별해 개선을 추진하도록 했다. 즉, 미국은 학교 성과를 측정하고 공개하는 체계를 포기하기보다, 그 체계를 운영하는 방식과 책임의 배분을 조정하는 방향을 택했다.

 

NCLB와 ESSA의 차이는 교육 책무성을 둘러싼 중요한 딜레마를 보여 준다. 학교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으면 교육적 격차가 가려질 수 있지만, 측정 결과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면 학교가 교육의 목적보다 평가 기준을 우선시할 수 있다. 연방정부가 강한 기준을 제시하면 학교 간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지역과 학생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주정부와 지역에 더 많은 재량을 부여하면 상황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지만, 지역에 따라 교육의 기준과 개선 노력에 차이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미국의 경험은 학교 성과를 측정하고 공개하는 제도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어떤 성과를 측정할지, 누가 기준을 정할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교에 어떤 책임을 요구할지에 따라 학교의 행동과 교육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성과 지표는 학교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유용하지만, 동시에 학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힘도 갖는다. 그렇다면 학교가 평가받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노력은 언제나 학생의 배움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질까? 이 질문은 성과 공개 정책이 의도한 목표와 실제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결과 사이의 간극을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교육의 전부가 될 때

 

학교의 성과를 측정하고 공개하는 정책에는 하나의 역설이 존재한다. 학교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성과를 측정하지만, 측정 결과가 학교 평가와 책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 학교는 교육을 개선하는 일보다 평가받는 지표를 높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학생의 학업 성취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학교의 관심을 특정한 성과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가 반드시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숫자가 정확하더라도 그것이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모두 보여 주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미국의 학교 책무성 정책에서 표준화 시험은 학생의 학업 성취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시험은 학생들이 특정한 학업 기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비교하고, 학교 간 성취 격차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특히 학생 인종별·가계소득별 성취도를 구분해 살펴보면 전체 평균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교육적 불평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시험 점수가 학교 교육의 질을 대표하는 지표로 자리 잡으면, 학교는 시험에서 측정되는 지식과 기술을 우선적으로 가르칠 유인을 갖게 된다. 시험에 포함된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예술, 토론, 탐구 활동이나 학생의 사회적·정서적 발달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시험 성적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험 성적이 교육의 모든 목표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과 지표가 학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교육학자와 정책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쟁점이기도 하다. 영국의 교육학자 스티븐 볼(Stephen Ball)은 성과 관리와 평가 체계가 학교 구성원에게 특정한 성과를 입증하도록 요구하면서, 교육 활동의 우선순위와 전문적 판단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Ball, 2003). 학교가 학생의 배움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기보다 외부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면, 평가 체계는 교육 개선의 도구인 동시에 교육 활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은 학교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가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길지까지 좌우한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의 성과를 비교할 때 학생들이 처한 서로 다른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의 시험 점수는 학교가 제공한 교육의 영향을 받지만, 학생의 가정환경과 이전 학습 경험, 지역사회의 자원 등 여러 요인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성과가 높은 학교가 반드시 더 효과적으로 가르친 학교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성과가 낮은 학교가 반드시 교육에 소홀한 학교라고 볼 수도 없다. 예를 들어 학습 지원이 더 많이 필요한 학생들이 집중된 학교는 학생들의 출발점이 다른 학교보다 불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최종 성취도만으로 학교를 평가하면, 어려운 여건에서 학생의 학습을 크게 향상시킨 학교가 그 노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 성과를 측정하지 않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성과를 확인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실제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학교 간 격차나 특정 학생 집단이 겪는 어려움이 가려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측정의 유무가 아니라 무엇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최종 시험 점수뿐 아니라 학생의 학습 성장, 출석과 학교생활, 교육과정 참여 등 여러 측면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지표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들이 또 다른 평가 목표로 굳어지면 학교는 여전히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를 우선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 성과 측정의 한계는 모든 교육적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측정된 결과가 학교의 성공을 정의하는 순간, 측정하기 어려운 교육적 가치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가 학생의 배움을 위해 존재한다면, 성과 지표는 교육의 목표를 대신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자료여야 한다. 그렇다면 성과를 공개하는 정책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어디까지 기여할 수 있을까? 특히 학교의 성과가 공개되더라도 그 차이를 만들어 낸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투명성과 책무성만으로 교육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까?

 

 

공개는 격차를 드러내지만, 격차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는 정책이 갖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교육의 격차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별 학업 성취도와 졸업률을 공개하면 어떤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특정 학생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불리한 교육적 결과를 경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가 없다면 교육의 불평등은 개별 학생의 실패나 가정의 책임으로 여겨진 채 학교와 교육 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과 공개는 교육의 문제를 사회가 함께 확인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격차를 발견하는 것과 격차를 줄이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다. 학교의 성과가 낮다는 사실이 공개되더라도 그 학교가 처한 조건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학습을 지원할 교사가 부족하거나, 학교 밖에서 필요한 학습 지원을 받기 어렵거나, 지역사회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면 성과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학교가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개선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과 공개가 교육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문제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학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정보를 공개하면 학부모가 더 나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기대에도 비슷한 한계가 있다. 학교의 성과 정보는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보를 안다는 사실이 곧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거지와 교통 여건, 가정의 경제적 자원, 학교 선택에 관한 규정 등에 따라 학부모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달라진다. 학교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할 시간과 자원이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모든 학부모에게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모든 가정이 그 정보를 동일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간 성과 차이를 공개하는 방식 역시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과가 높은 학교와 낮은 학교를 구분하는 일은 문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공개된 순위가 학교의 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처럼 사용되면 학교가 처한 조건은 쉽게 가려질 수 있다. 학생의 출발점과 지역의 교육 자원이 서로 다른 학교를 최종 성취도만으로 비교하면, 처음부터 유리한 조건에 놓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학생의 학습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여전히 평균 성취도가 낮은 학교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성과 공개는 교육의 격차를 보여 주면서도 그 격차를 만들어 낸 구조적 조건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성과 공개의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성과가 낮은 학교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표를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학교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하고, 학생의 학습을 지원할 인력과 자원을 제공하며, 학교가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때 학교의 책임을 묻는 일과 학교가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의 학교 성과 공개 정책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투명성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누가 해결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은 어떻게 배분되는가이다. 교육의 격차를 공개하는 일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출발점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학교의 성과를 공개하는 정책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려면, 낮은 성과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성과를 만들어 낸 조건까지 바꾸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좋은 학교를 알아보는 것에서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으로

 

한국에서도 학교의 교육 성과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일은 중요한 정책 과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공교육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 평가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되려면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과가 낮게 나타난 학교에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가 통제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비롯된 문제까지 학교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평가는 교육의 개선을 돕기보다 학교 간 차이를 확인하고 서열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무엇보다 평가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학교의 성과를 측정하는 이유가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를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모든 학교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도록 돕기 위해서인지에 따라 평가의 설계와 활용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전자의 관점에서는 학교 간 순위와 성과 차이가 중요해진다. 반면 후자의 관점에서는 학교가 어떤 학생들에게 충분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지, 학생들의 학습이 이전보다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그 변화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가 중요해진다. 평가가 학교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교육을 개선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려면, 성과의 수준뿐 아니라 성과가 형성되는 과정과 조건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 성과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평가를 강화할 것인지 완화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평가가 없으면 교육의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평가가 지나치게 좁은 지표에 의존하면 교육의 다양한 목표를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측정 가능한 성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된 성과가 교육의 목적을 대신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시험 점수와 대학 진학률은 학교 교육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지만, 그 자체로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의 모든 가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평가 결과를 해석할 때는 학교의 성과가 학생의 학습 경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개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미국의 경험이 한국 교육에 던지는 질문은 학교의 성과를 공개해야 하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의 성과를 공개한 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낮은 성과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가 나타난 이유를 살펴보고 학생과 학교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인가. 교육의 투명성은 문제를 드러내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도적 노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학생의 성적표가 단순히 등수를 알려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더 배우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알려 주기 위한 것이라면, 학교의 성과표 역시 그래야 한다. 학교를 평가하는 이유는 학교 간 차이를 확인하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차이가 학생들의 교육 기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더 많은 학생이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꾸는 데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 Ball, S. J. (2003). The teacher’s soul and the terrors of performativity. Journal of Education Policy, 18(2), 215–228. https://doi.org/10.1080/0268093022000043065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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